육조스님이 자기 마음이 처음 깨달았을 때
개오했다.
열려서 깨달았다
열렸다, 마음이 열린 거겠죠.
개오라는 말을 제일 먼저 써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변오, 돈오, 대오
이런 게 아니라 지금
개오했다, 열려서 깨달았다.
이런 표현을 한번 눈여겨보겠습니다.
본문에 대한 선적인 해석을 보면
/육조대사의 아버지는 하급 관리였는데
620년경 좌천되어
(620년이면 혜능이 태어나기 전이죠)
그래서 좌천되어 남쪽 변방인 신주, 현재 광주로 귀양을 갔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해남 땅끝으로 귀향을 간 거예요.)
홀어머니를 모시고 나무꾼으로 가난하게 살아서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같이 나무하는 친구를 따라
친구 고모인 무진장 비구니 스님의 절에 자주 들리면서
불법과 인연이 깊어졌다./
같이 나무하는 그 친구 고모가
산속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어서 거기서 살았어요.
나무하고 내려오면서 친구랑 같이 늦으면
그 집에서 절에서 자고 내려오고
대신에 절에서도 비구니 스님이 나무가 필요하니까
나무도 드리고 하면서
/근데 무진장 비구니는 늘 열반경을 독송하였는데
혜능은 때때로 절에서 자면서 그 소리를 음미하였다.
선근이 있던 혜능은 열반경의 법문을 들으면서
마음이 열려가고 있던 중이었다./
열반경은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제일 마지막에 설하신 거잖아요.
굉장히 깊은, 선하고 통하는
선에서 보면 흙덩이를 던지면
강아지는 흙덩이를 쫓아가고
용감한 사자는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문다
이런 말이 열반경에 나오는 말들이에요.
그런 말을 늘 들으면서
자는데 그 소리가 들려오는 거죠.
그러면서 이 혜능이 점점점점 열반경의 그 뜻을 짐작하고 있던 중이었죠.
/그러다가 마침내 인연이 닿아서
금강경 잃는 소리를 듣다가 개오의 기회를 얻었다.
법문의 응무소주이생기심 구절은
금강경의 장음정토분 제10장이 나온다.
금강경의 제10장에 장음정토분/
원래 금강경은 1장 2장 구분이 없었습니다.
없는데 양나라 무제의 아들 소명태자가
금강경을 읽고 단락을 나눠 놨어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단락은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고 소명태자가
양나라 무제면 달마스님 시대잖아요.
5세기경에 그때 단락이 정해진 겁니다.
/제10장 장음정토분에 이 말이 나옵니다.
법문은 이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금강경의 법문이에요.)
수보리야 모든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나니
마땅히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서는 안 되며
마땅히 성_ 소리, 향_ 향기, 미_ 맛, 촉_ 촉각,
법_ 인연 따라 일어난 것, 대표적으로 생각
그러니까 마땅히 보살은 현상을 구성하고 있는
색-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서도 안 되며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그러니까 머무른다, 이 말은
가장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가장 일반적으로는 집착하는 거죠.
집착한다는데 조금 더 실감나게 말씀을 드리면
마음을 뺏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보살이라면
마땅히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의 현상을 구성하는 6가지 요소인
색, 성, 향, 미, 촉, 법에 마음을 뺏기고 살아가면 고통인 거죠.
속박당하는 거죠.
근데 마음을 뺏기지 않으면 자유인 거죠.
그러니까 지금 이게 금강경의 핵심 가르침인데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집착하지 말고 살아라, 이 말이죠.
참 지당하신 말씀이죠.
집착하면 다 속박당하니까
속박은 고통을 일으키죠.
/훗날 금강경을 해설할 때
혜능대사 자신은 이 대목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그 마음이 청정하지 않고/
(청정하다는 말은 집착하지 않는 상태죠.)
근데 청정해야 되는데 청정하지 않고
청정한 상태를 애착하여 마음이 머무는 것이 있으면
바로 법상에 물들어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청정한 상태를 법이라고 애착해서 거기에 집착하면
그게 법상이 된다.
그러니까 마음공부하는 두 가지 장애가 있는데
-첫 번째는 현상 자체가 장애고
-두 번째는 현상이 싫어서 우리는 자칫하면 법에 또 집착하게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현상에 대한 집착과 법에 대한 집착,
그리고 법에 대한 집착은 주로 무엇으로 나오는가?
현상이 시끄러우니까 고요한 것을 좋아한다, 이거예요.
고요한 것.
/그래서 법상에 물들어 집착하면 안 된다.
색을 보고 색에 염착하여, 물들어 집착하여
염_ 물들 염, 집착할 착
색을 보고 색에 염착하여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면
곧 미혹한 사람이다.
색을 보고 색을 벗어나 색에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내면
곧 깨달은 사람이다./
이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할 때
육조스님의 가르침 아주 핵심이네요.
/색을 보되 색을 벗어나 색에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내면
곧 깨달은 사람이다./
약견제상비상_ 색을 벗어나 색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면 즉견여래_ 여래를 본다.
그러니까 같은 지금 같은 말이죠.
/색을 보고 색을 벗어나 색에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내면
그걸 깨달은 사람이다.
근데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면 바로 망념이며
색에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내면 바로 참 지혜다.
망념이 일어나면 곧 어둡고
참 지혜가 비치면 곧 밝으며
밝으면 곧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어두우면 곧 육진이 다투어 일어난다./
이게 금강경 대목의 핵심적인 가르침이고
요 말을 듣고 육조혜능스님이 첫 번째 깨달음
개오, 마음이 열려서 깨닫는 것이 이제 일어났다.
그러면 1장부터 지금 여기가 10장이니까
금강경 1장부터 10장까지 보면
다 나와요.
전체 요지가 이미 다 10장 정도까지 오면
다 설해진 거예요.
그러니까 이 대목에서 깨달았지만
육조혜능 스님은 1장부터 쭉 들었다 이거죠.
쭉 듣다가 듣다가 10장에 와서
‘오케이’ 하고 한 번 딱 점을 찍었다.
그렇게 되죠.
/그래서 이로써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뜻은 명료해진다.
실제로 지금 일어나는 이 순간뿐이며
진리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우리 평상의식
평상심 뿐이다/
이렇게 됐는데 여기서 한번 본문을 읽었으니까
실질적으로 이 말이
지금 이 순간 여기의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한번 돌이켜 보십시다.
그래야 되죠.
이거는 책 속의 이야기고.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데 경험적으로
항상 마음 공부를 할 때 항상 이런 말들이 경험적으로
나한테는 어떻게 실감이 나는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마음공부를 할 때
우리가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가장 기본은
그러니까 지금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은
현상에서만 살다가 현상의 한계를 느낀다 이거예요.
현상에서만 살면 현상에 집착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 집착으로부터 풀려나오려면
이 현상에서만 살다가 뭔가 한계를 느끼는데
현상의 한계 첫 번째가
여러분은 불교의 부처님 가르침에, 팔만대장경 중에
어떤 가르침을 첫 번째로 꼽는지
다들 사람마다 다르겠죠.
근데 일반적인 교리에는
불교 할 때 첫 시간에 제일 먼저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저는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요.
부처님이 모든 교리 중에서
제일 앞에 이 대목을 놓았을 때
이거는 경험적으로도
이게 참 타당하다, 이런 느낌이 오는데
그게 뭐냐 하면
삼법인이 불교 교리에 제일 먼저 나오고
그중에 첫 번째가 제행무상이잖아요.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이것도 열반경에 나오는 거네요.
열반경에 이 대목이 나오는데
열반경은 여기다 스토리를 붙여서
제행무상을 한 번 더 설명을, 대승불교적으로
한 번 더 설명을 했죠.
열반경에는 스토리를 붙여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하면
부처님 전생에 설산에서 동자로 있으면서
굉장히 진리를 사랑해서 진리를 깨달으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에 제행무상 시생멸법
제행이 무상하다, 이것이 바로 생멸법이다, 나고 죽는 법이다
여기까지 말을 들었다 이거예요.
말을 들었는데 조금 뒤에 보니까 주변에 둘러보니까
이게 지금 게송의 첫 단락인데
그 뒤가 궁금해진 거예요.
그래서 두리번 두리번 해 보니까 아무도 없는데
귀신이 악귀 하나가 있어서
아무래도 이 말 한 사람이 그 악귀밖에 없어서
부처님 전생에 동자 시절에
“혹시 당신이 이 말을 했습니까 하니까?”
그 뒷 구절을 동자가 좀 일러주시겠습니까? 할 때 그 악귀가
“나 지금 배가 고파서 말을 못하겠다”
그러니까 하는 소리가
“일러주시면 제가 먹이로 기꺼이 제 몸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그 잡아먹히는 대가로 진리를 들었는데
그 뒤가 제행무상 시생멸법인데
생멸이 멸이하면, 생멸이 멸하면
이것이 적멸
적멸은 열반을 적멸이라고 하거든요.
적은 고요한 적, 멸은 사라지는 거
적멸의 기쁨이 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듣고 자기 몸하고 바꿨다 이거예요.
열반경에서는 그런 스토리까지 엮어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적으로
우리가 이 세상의 실상을 가만히 관찰했을 때
가장 확실한 것이 제행무상이라는 거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무상하다, 영원하지 못하다.”
그렇습니까? 여러분
이게 경험적으로 느껴져야 돼요.
그 마음공부를 하려면
지금 제행무상이 실제 자기 경험적으로 느껴져야 한다.
그러면 오늘 아침 일어나서 아침 먹고 오전에 일하고
그리고 오후에 점심 먹고 이 수업에 참관하는데
오늘 일어난 일들이 있죠.
있는데 돌아보면
그 케이스 바이 케이스, 내가 한 일들이
제행_ 모든 행이지나가고 없다는 사실
이거 사실입니까?
그러니까 이거를 일반적인 철학에서 말할 때는
‘존재의 시간성’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러니까 이 시간이 마음공부뿐만 아니고
우리가 인간이 성숙해지는데
시간이 아주 핵심적인 우리 경험이에요.
인간 경험이에요.
시간에 대한 경험
시간이 흐른다고 하는 이 사실
그래서 제행무상은 시간을 말하는데
시간 속에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무상하다
이렇게 설명할 수가 있겠죠.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서
여러분은 그냥 벌떡 일어나십니까?
아니면 일어나서 조금 자기를 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십니까?
대개 보면 눈을 뜨건 안 뜨건 간에
하여튼 아침에 깨면
발딱 일어나기보다는
이제 또 하루가 밝았는데
또 깨어났구나,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면서
계속 자기를 좀 반추하는 그런 시간을 되게 가지죠.
나이 들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도 아침에 매일 눈 떴을 때
누워서나 아니면 앉아서나
벌떡 일어나지는 않고
항상 한번 이렇게 돌아보는 것이 저의 경험이에요.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이 일어나고 있어요.
경험이 일어나는데 경험의 핵심이
지금 지나간다는 이 사실
지나간다
지나가고 어디가 어디로 갈까? 이 경험들이
이 경험이 지나가는데
‘지나가서 어디로 갈까?’ 생각해 보면
이제 경험이니까 알잖아요.
‘아, 기억으로 가는구나’
저는 느끼기에 이게 지나가는데 실체가 없고 기억만 남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몇십 년을 나름대로 살았는데
돌아보면 경험적으로 몇십 년을 살았지만
다 지나가 버리고 어떤 그런 기억으로만 남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네요.
하나는 지나간다고 하는 이 사실
제행이 무상하다고 하는 사실
또 하나는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또
기억도 경험적으로 이것도 분명하지 않나요?
기억은 있잖아요. 그죠?
“이게 지나갔는데 기억에는 남아 있구나”
이제 그렇게 알 수 있죠.
여러분, 기억이 뭘까요?
모든 것은 지나가는데 기억으로 남죠.
기억이 어디 어디 새겨져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것도 하나의 비밀인 거예요.
기억되는 그 자리, 기억으로 남는데, 사라지는데
기억되는 그 자리
그거는, 그건 있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계속 지금 공부의 포인트는
자기 경험에 비춰서
생멸법_ 생겼다가 사라지는 법칙
이것과 불생불멸법
요 두 개에 대한 안목이 결국 우리 공부의 핵심이에요.
일반인들은 생멸법밖에 경험을 못하고 살아가는데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생멸법을 통해서
모든 것이 다 지나갔는데 기억이 있잖아요.
그 기억이 어디서 떠오르는가 하는
그 기억이 떠오르는 고거는 안 사라지는 거를
저는 아침마다 확인해요.
아침마다 일어나면
벌떡 안 일어나고
내 경험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반추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 어제가 지나갔는데 완전히 지나갔구나.
지나가고 없구나.
근데 어제의 일은 기억이 나거든요.
기억은 떠올라
그러면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그 자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는 거예요, 거기서.
경험적으로
그래서 제행무상 시생멸법
이것은 생멸법이구나.
그래서 이 현상의 세계는
생멸법에 의해 지배를 받는 세계구나 하고
자기가 스스로 확인을 해요.
확인을 하는데
그거 확인해서 안 끝나고
확인하는, 그러니까 기억하는 놈
딱 한마디로 말해서
이게 지나가는데 기억하는 놈이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또 생각해 보면
어젯밤에 내가 꿈을 다 기억은 못해도
‘이런 꿈을 내가 꿨구나’ 하고 또 그것도 기억나죠.
꿈은 깼는데 그 꿈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지나가는 것과
지나가는 것을 보고 기억하는 것
두 가지가 경험적으로 있구나 하고
자기 확인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공부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확인이 되어야
이것이 자기 것이 되고
자기 것이 되어야 자기 소리를 할 수 있게 돼요.
공부가 남의 것을 얻어듣기만 해서는
그건 자기 것이 안 됩니다.
근데 자기 것이 되려면
자기 소리를 할 줄 알아야 돼요.
자기 소리.
그러니까 1700공안이 있는데
1700공안이 전체가 다 자기 소리들이에요.
그전까지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던 말을 그 사람들은 했다.
자기 소리를 했다.
자기 소리가 화두로 남은 거예요.
그러면 나도 이 공부를 통해서 자기 소리를 할 줄 알아야
내가 성숙한 인간이 된다, 이거예요.
내 것이 된다, 이 공부가.
그러면 자기 경험을 반추해서
거기서 ‘이거다’라고 딱 정해 놓은 것은
이거는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나의 존재 기반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한 가지 사실은
지나갔다는 거 하고
또 한 가지는
그 지나간 것을 기억하는 놈이 있다고 하는
이 엄연한 사실
꿈도 기억하고
또 어제도 기억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지나가는 것과
그 지나간 것을 기억하는
그 딱 두 개가 지금 나한테 있구나.
이것이 나의 경험적으로 이것이 확인이 되는구나.
그러니까 이게 아주 중요한 공부의 포인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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