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선과 깨달음, 즐탁동시

Buddhastudy 2024. 11. 18. 19:39

 

 

동대문시장에 20년 된 점포를 가진 사장님에게

어느 날 중학생이 된 조카가 찾아와 묻습니다.

이모, 장사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열심히 하는 거지

 

~~

질문도 답도 다 틀렸다고 봐야겠죠.

왜냐하면 질문하는 이의 의도와 답하는 이의 의도가

전혀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쳇말로 핀트가 안 맞았습니다.

 

선 공부도 그렇지만

사람 사이에 뭔가 의미 있는 것이 오고 가려면

의도가 맞아야 합니다.

 

남대문시장에 30년 된 점포를 가진 사장님에게

어느 날 무역회사를 다니고 있는 조카가 찾아와서 묻습니다.

이모 요즘 장사 어때요?”

밥 먹고 갈래?”

 

두 사람 모두 의도한 바가 잘 전달되는 것이 보이죠.

장사가 어떠냐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오랜만에 얼굴 보고 안부 인사를 하는 겁니다.

 

물론 밥 먹고 갈래?”라고 하지 않고

밥은 먹고 산다라고 하면

안부에 더불어 장사 이야기도 되는 셈이죠.

 

무엇이 대열반입니까?”

급하구나

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을 보아라.”

 

이처럼 선문답도 문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문맥에 맞지 않으면

그냥 멋이 없어서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묻는 이의 의도와 답하는 자의 의도가 맞지 않아

상승 작용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공부가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선문답은 현장감이 살아있는 질문과

질문의 의도에 맞는 답이 중요합니다.

 

뭘 물어도 같은 대답을 했던 선승도 있습니다.

구지 선사는 일생 동안 손가락 법문을 했죠.

하지만 그 한 때 한 때가 같은 손가락이 아닙니다.

손가락을 드는 때와 분위기,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짓는 표정과 더하는 말은 모든 때가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결정적인 사건은

동자승의 손가락을 칼로 베어버린 과격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대사가 반두에게 물었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가?”

“3년 있었습니다”.

나는 전혀 그대를 모르겠는데?”

반두가 어쩔 줄을 모르다가 화를 내며 떠나갔다.

 

멱살을 잡고 몽둥이를 드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경우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연한 만남이면 간단한 탐색을 거치고

멀리서 온 객승이면 그 상황에 맞게

오래된 수좌면 또 그 상황에 맞게

선문답은 이루어집니다.

 

3년 동안 같이 있었으면서 모른다고 하자

화를 내는 반두 스님은

3년의 면식이 걸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려는 상황과 문맥은

자기가 걸릴 수 있는 온갖 것들입니다.

제 공부는 알을 깨뜨리고 나가려는 병아리와 같습니다.

부디 밖으로부터 껍질을 한 번만 깨뜨려 주십시오.

그러면 즉시 삼계를 초월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살아남지 못한다면

스님께서 도력이 없다는 증거이니

세상에서 비웃음을 받을 것입니다.”

역시 형편없는 놈이구나. 어서 썩 물러가라.”

 

의외로 이 공부는 아무나 하고 할 수는 없고

모르는 사람끼리도 할 수 없으며

조건이 맞지 않으면

만나기도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수행승이 썩 물러나지 않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

비슷한 다른 사례에서는

말이 없거나 아예 드러누워 잠을 청하는 스승도 있습니다.

 

저는 아마도 첫 물음에조차 답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의도가 곧 인연입니다.

안팎이 잘 맞아야 알껍데기를 깨기 쉽습니다.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의 뜻이죠.

 

당신이 공부한 논어 중에

선의 가르침과 매우 합치하고 있는 구절이 있다.”

공자가

너희는 내가 무엇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실로 너희에게 아무것도 숨긴 게 없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황산곡이 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자

회당은

아니다, 아니다하며 즉각 그를 가로막고 말했다.

이에 황산곡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매우 심란했다.

그 후에 이 두 사람은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

그때 월계수나무의 꽃이 만발해 향기가 계곡에 가득했다.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예 그렇습니다.”

그것 봐라.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숨겨놓은 것이 없다.”

이 말에 황산곡은 깨달았다.

 

때와 장소와 마음이 맞으면 이심전심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경험해봐서 압니다.

흔히 형태공명이라고 하는 양자역학적 현상은

정말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대사와 대중들이

서로의 의도가 맞을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진짜 스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대사가 불을 때는 소임을 맡았는데,

어느 날 문을 닫고 불을 때서 절 안에 연기가 가득하게 해놓고 소리쳤다.

불이야, 불이야

이때 대중이 모두 달려 나오니 대사가 말했다.

바로 말하면 문을 열어주리라.”

 

대중에서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자

남전이 열쇠를 가지고 와서

창틈으로 넘겨주니 대사가 얼른 문을 열었다.

 

말없이 열쇠를 넘겨준 남자는 답을 한 것이 아니라

대사와 같이 공모를 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답이든 공모든

이처럼 때가 맞아 질문을 하고

때에 맞게 답을 해야

맥락이 살아 의도가 마주칩니다.

 

마주치는 곳에 불꽃이 일고

불꽃이 잃어야 불이 활활 탑니다.

 

스님, 이 많은 목석을 태운들

절 살림이 나아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