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야정견

(알라야 정견) 진정한 퀘렌시아 #18 나는 누구인가?

Buddhastudy 2024. 6. 19. 19:16

 

 

투우사와 혈전을 벌이다가 소가 도망치는 곳

소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싸우다 지친 소가 자신이 스스로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는 곳.

투우장에서 소들이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 찾는 곳이

바로 [퀘렌시아]입니다.

 

미국 동부지역 체로키 인디언들도

살다가 고난이 닥치거나 힘들면

숲속으로 자신이 정해둔 나무를 찾아가

교감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만지고 껴안고 기대면서 한나절씩 나무와 지냅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대사처럼

희망을 안고 집이든 숲이든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아서

피곤한 심신을 다시 회복할 때입니다.

 

그럼, 그대의 퀘렌시아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가요?

 

젊은이들은 그것을

돈이나, 남들의 인정이나, 특정한 지위나, 장소에서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인들이 말씀하셨다시피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깨달음은

확고부동한 나의 퀘렌시아를 찾아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편안하게

심신과 영혼의 짐을 다 내려놓고

쉴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내면에서 이것을 찾아냈을 때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찾아내는 것은

왜 그다지도 어려운가요?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업습 속에

너무나도 깊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부지불식간에 화를 냅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후회하면서

그땐 왜 그랬을까?”를 고민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그대의 에고가 만든 프로그램이

그대의 본래 마음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수행자란

바로 이런 자기의 업습을 알아차리고

걷어내려고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참다운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사랑은 온유하고 오래 참으며 쉽게 성내지 아니한다고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나의 퀘렌시아, 깨달음이나 구원은

대단히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항상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나의 내면에 대해 주시하면서 깨어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열리고 보이기 시작하는 내면의 차원입니다.

 

내가 새롭게 배우고 체험한 것이 아니라

항상 나 그 자체로서 있었던 본래의 참모습을 되찾고

밝히는 데서 시작하는 길입니다.

 

그것은 안다거나 모른다고 도달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의 내 모든 기준을 내려놓고

지금의 나를 계속 변화시켜 나갈 때

가능한 길입니다.

 

참다운 우주정신, 섭리, 그리고 생명의 에너지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속에 충만합니다.

 

다만 내가 후천적으로 익혀

훈습되고 중독된

이 프로그램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