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야정견

(알라야 정견) 아니타 무르자니가 말해주는 [내어맡긴 삶], 내어맡김 #21 나는 무엇인가?

Buddhastudy 2024. 6. 26. 19:43

 

 

오늘은 <아니타 무르자니>가 말해주는

내어 맡긴 삶의 의미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암에 걸려 죽어가며 임사체험을 겪습니다.

그리하여 삶에 대한, 존재에 대한, 우주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이는 미지의 힘에 자기를 내어 맡길 때 일어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타 무르자니에게 일어난 내어 맡긴 삶,

과연 어떤 삶일까요?

 

사람들은 [내어맡긴 삶]을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내어 맡긴 삶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내어맡긴 삶]이란

매사에 너무 긴장하지 말고

꽉 들어간 힘을 떼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의도를 포기한 채

소극적으로 살란 말이 아니라

나란 개체, 존재의 배후에

더 큰 미지의 힘이 항상 같이하고 있으니

그와 항상 같이하라는 말입니다.

 

내 의지와 열정을 갖되

그것이 결코 배후의 힘과 섭리를 가려선 안 됩니다.

 

그럴 때 나는 뭘 해도 쉽게 지치는 대신

항상 생기로 충만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언행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존재에 의해 항상 스스로 고양된 상태로 삽니다.

이것은 스스로 배후의 더 큰 에너지에게

자기를 내어 맡길 때만이 가능합니다.

 

기독교에선 이를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 합니다.

명상에선 이를

개체짐을 무아로 돌리고, 우주 전체에 나를 내어 맡기라합니다.

불교에선

일체가 한마음에서 나왔으니, 뿌리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말에 속지 말고

한마음, 우주, 하나님으로 보면

다 똑같은 말이 되어버립니다.

 

바로 이 자리에 나를 턱 하니 내려놓고

완전하게 [내어맡긴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더 살고자 하는 희망조차 포기하고

완전하게 이 자리에 자기를 내어 맡겼을 때

불과 며칠 만에 악성암이 완전히 그녀로부터 사라졌다고 수많은 영상에서 밝혔습니다.

 

우리가 아는 나란

결국 미세한 탐진치들의 집합 상념에 불과합니다.

사람에 따라선 깨달음이나 구원에 대한 서원과 희망조차도 그에 속합니다.

 

그것을 진실로 완전하게 내려놓고

자기 삶의 환경들에 저항하는 대신에

완전하게 비운 자아의 자리에

더 큰 존재가 들어오시게 내어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수행이 아니라

다만 자기가 무슨 번뇌와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를

그저 똑바로 바라다보는 것

정견만으로 모든 것은 저절로 알아서 해결됩니다.

 

그렇게 내어 맡긴 이후에는

그 빈자리에 장엄하고 경이로운 존재 방식이 대신에 자리하고

나의 삶을 사랑과 지혜로 안내해 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명상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바로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수행을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나를 100%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그 나란

몸이 아니라

나를 구성한 생각, 감정, 감각, 느낌들의 집합체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하지 않는 수행]이며

오직 [존재 방식만으로 공부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본래 우주 대자연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주란 대존재 자체가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되어

모든 것을 그 안에서 창조해 냈다는 진실에서 그러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신비한 힘과 섭리 속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존재와 힘에 나를 내어맡기고,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살아가는 존재 방식에 집중할 뿐

이러저러한 수행이 필요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