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뜻은 명료해진다.
실재는 지금 일어나는 이 순간뿐이며
진리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우리 평상의식뿐이다./
진리, 실상, 정말로 있는 거
정말로 있는 것은 지금 여기밖에 없죠.
지금 눈앞에 정말로 있다 하는 것은
눈앞에 지금 이것밖에 없어요.
근데 이것의 구성이
평상의식 속에 이 모습이
찰라생 찰라멸하고 있는 거
이게 지금 딱 실상이에요.
그러니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깨어 있는 이 의식.
이 의식의 공간 속에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형상이
이렇게 나타났다가 지나가는데
이건 시간 속에 있어서
시간 속에 있는 것은 찰나생 찰나멸하고 있는 거
이거 하나죠.
지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 형상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면
마지막 남아 있는 하나의 실재는
언제나 여여부동한 지금 이 의식
이 의식의 공간 자체
이거 하나만이 남아 있죠.
이거를 선불교의 입장에서는 화두라고
그러니까 이것이 화두인 거죠.
‘화두 놓친다’ 이 말은
응무소주에서 마땅히 무소주, 머무는 바가 없이 할 때
머문다는 말은 현상에 집착한다는 말이죠.
현상에 집착하는 것은
딱 집착할 때 집 자를 쓴다면
현상에 대한 집착은
이 현상은 지금 나하고 남인 거죠.
그래서 나는 아라고 부르니 한자로 아집
나에 대한 집착, 아집
그리고 이 대상에 대한 집착, 법집
대상을 법이라고 하니까 불교에서는
불교용어로 아집, 법집
이게 지금 주, 머문다는 거죠.
무주 하면 아집 법집에서 벗어나라 그 말이죠.
그래서 하여튼 실재로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세계밖에 없고
이 세계의 모양은
배경으로서 있는
혹은 그냥 비유를 한다면
사진을 보면 사진에 인화지 있지 않나요?
사진에 인화지, 인화지라는 게 있죠?
그 위에 사진이 컬러가 입혀져 있잖아요.
여기에 지금 우리 눈앞이 그런 것과 같다는 거죠.
인화지 위에 이 현상이 지금 탁 찍혀서 나타나고 있다.
하여튼 그 인화지가 여러분의 의식인 거죠.
우리 각자의 의식.
의식이라고 하는 인화지 위에
지금 이 사진이 탁 찍혀서,
근데 사진은 사진의 내용은 찰라생 찰나멸하는
그래서 이미지 같은 것이라서
이것은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실상이라고 하기가 좀 어렵다.
그래서 꿈 같고 영화 같다.
나타나는 이 모습은 꿈 같고 영화 같다.
근데 이것들이 나타나는 인화지가 있다.
인화지는 눈에는 안 보이지만
바로 지금 우리 각자의 의식이다, 이거죠.
그러니까 이 의식 속에 모든 것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생멸이라고 하고
변하지 않는 인화지는 진여라고 해서
실제로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진여 하나가 있고
그것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실재는 지금 일어나는 이 순간뿐이며
진리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우리 평상의식, 평상심
평상의식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지금 이렇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평상심이 도라고 하는 것이다./
평상의식, 무언가가 나타나기 전부터 있는 것.
이것을 가려서 보는 게
안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참선공부를 한다’ 이 말은
철저하게 이 본질인 이 의식과
거기에 나타나는 현상인 이 생멸의 갖가지 모습들
이것을 가려볼 줄 아는 안목이 가장 핵심인 거죠.
그러면 이 중에서도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 너무나 익숙한 세계고
생멸하는 현상계는 너무나 익숙한데
이 모든 것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 사진 같으면 인화지 같은
이 공간 자체가
물리적으로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들의 의식 자체가 지금 공간이 되어 있다, 이거죠.
그래서 이 의식 공간에 대한 안목이
항상 눈이 여기 가 있어야지, 공부하는 사람은.
그래서 이거를 놓치지 않는 것을 화두라고 하고
‘화두 놓치지 않는다’ 이 말은
이것을 우리가 놓치지 않는다.
나머지는 여기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든 것이 여기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고
불변하는 것은 지금 모든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지금 깨어 있는 이 말짱한 평상에
이거는 특별한 사람만 그런 게 아니고
부처님이나 일반 중생이나 모든 사람이
나이가 많으나 적거나
남자 여자 인종도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 의식
그러니까 이것이 도다.
그래서 참 공부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특별한 것을 추구해서 얻는 게 아니라
언제나 여기서 살았는데
미처 돌아보지 못한 이 공간 자체를 알아채는 거죠.
이 공간 자체를 알아채는 것.
/이것이 본래 청정하기 때문에/
이 평상심이/
본질은 본래 청정하다고 해요.
본질은 본래 청정하다.
/청정하기 때문에
매 순간 물들지 않은 새로운 현재가 솟아난다./
이게 지금 진공묘유라고 부르는 거예요.
이 본질이 청정하기 때문에 묘유로서의 현상이
지금 이렇게 탁 솟아난다. 샘 솟는다. 매 순간순간 샘이 솟고 있다.
/본래 청정한 자성인 본질의 샘에서
천차만별의 현상이 솟아난다.
근데 솟아나는 현상은 찰나생 찰나멸이다/
좀 공부가 익어질수록 찰나생 찰나멸에 대한 안목도 자꾸자꾸
그러니까 눈이 매서워진다 그럴까?
눈이 매서워져서 그러니까 현상의 특징은 시간이에요.
저 같으면 이 죽비가 뭐로 만들어졌는가?
죽비의 재료 할 때
현상으로서의 입장에서는 이게 시간이다 이거예요.
시간
시간이 어디서 흐르는가.
시간이 어디서 흘러요?
저 어디 하늘 위에서 흐르나요?
시간이 어디서 흘러요?
이 현상계의 하나하나가 시간이 흐르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게 변한다는 거예요.
현상계의 특징이 생멸이라고 하는 건
생멸이라는 말 자체가
시간이라는 말이에요, 시간.
현상계의 특징은 시간이다.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이 찰나생 찰나멸하는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지혜의 마음을 일으켜서
현상으로부터 자유롭게 살라는 메시지가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그래서 구하는 바가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
무구무고/
구하는 바가 있으면 괴로움도 있다.
그러면 지금 안목에 의해서
본질하고 현상에서
한 개 마음에 두 가지 측면
본질과 현상에서
한 개 존재의 두 가지 측면에서
본질을 보는 사람이라면
현상이 찰나 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꿈 같고, 영화 같고, 몽환포_ 물거품 같고, 영_ 그림자 같고
여로_ 아침을 갖고, 그리고 여전_ 번갯불을 같고
하는 것이 어디서 보이는가?
현상 속에서는 그렇게 안 보여요.
[본질에 있어야
현상이 꿈 같고 영화 같다는 게 보인다]는 거죠.
그러니까 항상 우리가 포지션이 어디냐?
지금 본질에서 살자.
본질에서 살아야 만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된다는 거죠.
무명은 본질을 모르는 거예요. 한마디로 말해서
본질을 모르면
주지_ 땅에 집착하게 된다.
하여튼 이 땅은 현상계를 지라고 표현한 거예요.
그 본질을 모르면 현상의 주, 주는 집착, 머문다 집착한다.
그러니까 본질을 모르면
현상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번뇌다.
이게 아주 간략하지만
택암선사라고 하는 일본식으로...
...
공부에 있어서 아주 핵심 포인트가
본질을 아느냐 모르냐에서
본질을 모르면 무명
무명이면 주지_ 현상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 번뇌가 된다.
그러면 명이면 밝으면
응무소주_ 마땅히 현상에 머물지 않고
이생기심_ 마음을 낸다.
이러면 걸릴 것이 없죠.
하여튼 뒷끝 없는 삶이에요.
뒷끝 없는 삶
이 간단한 마음공부의 원리를 딱 한마디로 말하면 이건데
근데 실천하기는 매 순간순간 삶이 도장이 되는 도량
도장이라고 쓰고, 발음을 도량이라고 읽죠.
삶이 순간순간 수행의 도량이 되어서
삶에서 우리가 부닥치는 수많은 현상계의 모습들에 내 마음이
주하느냐 무주하느냐
머무느냐 머물지 않느냐
집착하느냐 집착하지 않느냐
그게 공부의 그냥 핵심이다 이거죠.
그래서 지금 이 말을 반야심경에서는
조견_ 비추어 본다.
오온_ 오온이 현상이다 이거죠.
조견오온_ 5가지 현상의 모습을 비추어 봐서
개공_ 공이라는 말을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꿈이라고 써본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5가지 오온이 모두 꿈인 줄을 비추어 본다면
도일체고액_ 일체의 고통에서,도_건너게 된다.
그래서 지금 같은 맥락이죠.
응무소주 이생기심에서 육조 혜능이 깨달았다.
깨달은 내용이 무엇일까?
마음 공부의 내용은 이거다.
이거 하나다 이거예요.
본질을 알면
본질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본다.
그러면 마땅히 머물지 말고.
이 땅에 있으면서 우리가 몸은 있죠.
몸이 있는 한은 영화는 계속되는 거예요.
몸이 있는 한은
몸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영화, 혹은 꿈
이것은 계속되는 거예요.
그럼 꿈속에서 꿈을 깬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응무소주 이생기심하고 산다 이거예요.
이게 지금 육조 혜능 스님의 깨달은 대목이
그냥 마음공부의 액기스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오온을 새로운 방식으로 한번 설명을 해볼게요.
오온이 불교기초 교리인데 5가지 쌓임.
이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에요.
이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그중에 제일 핵심이 나니까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 한번 써보면서 하죠.
나라는 것을 나, 이 나를
몸과 마음으로 인수분해 할 수 있죠.
지금부터 수학적인 인수분해를 하면
나를 몸과 마음으로 인수분해가 된다.
그러면 몸을 색이라고
이건 불교용어에요, 색이라고 하고
마음을 수상행식 이렇게 불렀어요.
다시 말하면 인수분해를 했어요.
그러면 색수상행식이 오온이 되죠.
5가지 뭉치, 쌓임.
근데 오온을 제가 설명하는 방식은
5가지의 온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5가지의 뭉치들인데
그 뭉치를 바디라는 거죠. 바디
영어로 하면 바디에 해당한다.
인간이 5가지 몸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핵심이 뭐냐 하면
내면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인간의 내면
오케이?
인간의 내면이란 말 쓰잖아요.
그럼 흔히 생각 감정 이런 것들은
인간의 내면속, 내면에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 내면이 이 몸뚱아리 속에는 뼈하고 살이 있잖아요.
맞아요?
가슴 열어봐도 뼈하고 살하고 피밖에 없어요. 그죠?
머리 쪼개 봐도 뼈하고 피하고 살밖에 없어요 그죠?
하여튼 골수라고 해도 그거잖아요.
그러면 내면이 어딜까 해서
하나의 공부하는 사람은
현대에 심리학이 발전을 해서 그 성과를 보면
수상행식이 있다면 위치가 어디냐 이 말이에요, 제 말이.
그래서 이게 뭐냐 하면
색을 피지컬 바디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의 몸을 피지컬 바디, 영어로 하면
육체적인 몸
우리가 지금 이 몸을
수라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이모셔널 바이다 이거예요.
감정적인 바디
다시 말하면 오온이라는 말은
인간이 5개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본 거예요.
그러면 지금 참 잘 그린다.ㅎㅎ
이 모양이 절에 가면
대웅전 같으면 문이 있고
문 위에 포라고, 건축학적인 용어로는
기둥 위에 보조 기둥을 세우거든요, 천장을 만들려면.
그걸 포라고 해요.
그러면 그 포의 그 형상이
그냥 직선이 아니고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대개 문하고 문 사이에 양쪽에 포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포와 포 사이에 모양이 이렇게 생겼어요.
이게 피지컬 바디라면
요즘 현대 심리학의 용어
과학이 발전해서 인간의 에너지로 사진을 찍으니까
바디 주변에 에너지가 같이 있더라
이런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바디가 있으면
요 주변에 에너지가 같이, 무지개 모양으로 에너지가 같이 있더라.
그거를 지금 제일 먼저 둘러싸고 있는 가장 가까운
신체적인 육체에 가장 가까운 것이
감정적인 에너지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감정은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
내면이 우리 몸속에 있는 게 아니고
우리 몸을 둘러싸고 있어요.
내면의 위치가.
발상을 바꾸세요.
발상이
인간의 우리가 내면 그러면
자기 몸속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지금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수라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몸이고
상이라고 하는 것은 멘탈 바디
금방 들어오지 않나요?
인간의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디가 있다.
행은 욕망의 바디, 디자이어라고 할까요? 디자이어 바디
식은 분별식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 그러잖아요.
그 사피엔스의 바디
이때 식은 사실은 정보거든요.
정보를 영어로 뭐라 그래요? 인포메이션.
인포메이션 바디라고 합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정보를
정보 바디가 제일 크겠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분별한 공통 지식의 총합
엄청 클 거 아니에요. 인간마다.
그러니까 인간이 몸이 오겹이라는 말이네.
지금 오온이라는 말을 이해할 때
하나, 둘, 셋, 넷, 다섯
피지컬 바디_ 색, 수, 상, 행, 식
그래서 감정이 막 화가 막 날 때 뚜껑 열리죠.
에너지가 확 발동 하잖아요.
그리고 이런저런 우리가 생각을 하면
생각 이미지들이 떠오르잖아요.
이미지가 떠오르는 바디
이미지 바디에 떠오른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굉장히 많은 생각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의지나 욕망 같은 것도 상당히 크죠.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런 에너지장들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데
문제는 색수상행식이 원만하게 소통이 되면 좋은데
대개 과도한 감정, 감정적인 상처
또 과도한 고정관념들, 과도한 욕망
그러니까 왜곡된 욕망, 왜곡된 고정관념, 왜곡된 감정적인 상처
그리고 왜곡된 분별식
이런 것들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이 에너지장들이
굉장히 막혀 있다 이거죠, 보통 사람들은.
그래서 이런 것이 뚫리는 게
그러니까 우리 마음공부에서도 아주
그래서 이거를 내외명철이라고
육조스님은 내외명철
안과 바이 명철하게 뚫린다 할 때
밖은 물질세계에 있는 거지
안은 이 마음의 세계인데
마음의 세계는 인간이라면 이런 에너지장들을 가지고 둘러싸여 있다, 이거예요.
근데 이것이 인간의 입장에서는 현상의 지금 모습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분별식
우리가 알고 있는 5식, 6식, 7식, 8식, 이렇게 분석을 해 들어가면
식도 굉장히 복잡한 건 아시죠?
유식사상이라고 해서.
근데 그 모든 식은 굉장히 큰데
그 합은 엄청나게 큰 거죠.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을 지금 이렇게 형성하고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이 세상은 자기 몸인 거예요.
우리들의 몸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팔식이 모양을 갖춘 게
이 세상으로 나타나 보인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은 나의 몸인 거예요.
우리가 발상을 전환하면
이 발상만 전환을 해도
내면이라는 것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에너지장을 말하는 거다.
그러면 이 식 정도 들어가면
우리가 아는 아뢰야식이라고 해서
모든 걸 함장하고 있는 식 있잖아요.
그게 이미지를 띠고 나타나는 게 이 세계다 이거죠.
그렇게 되면 나의 몸은 육체만 몸이 아니고
감정하면 벌써 에너지가 여기가 막 에너지가 막 들끓잖아요.
거기다가 색수상_ 생각은 또 이미지 떠올리면 떠오르죠.
여기 앉아서 무슨 이미지 떠올릴까?
떠올릴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 떠오르는 자리가 나의 멘탈바디라는 거죠.
그리고 나의 욕망, 의지
이것도 강렬하죠.
살아있는 한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도 굉장하지.
그리고 나아가서
그 수많은 정보가 보존되어 있는 그 에너지장은 엄청나게 큰 거지.
몸은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정말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거죠.
그러니까 지금 이 세계 자체가 내 몸인 거지.
그렇게 보면
식의 바디
그래서 바디 대신에 신을 붙이면
색신
색신은 이렇게 분명하게 작지.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신, 상신, 행신, 식신 하면
이 세계가 지금 이렇게 형성돼 있다는 거예요.
근데 중요한 거는
이 어마어마하게 마지막은 큰데
이 모든 것이 칠판 위에 지금 그려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려지는 것은 현상이고
다시 말하면 변한다 이거예요.
몸의 육체도 육체의 몸도 변하고
감정의 몸도 변하지요. 수시로 변하지요.
생각의 몸도 우리들의 관념들도 변하잖아요.
그리고 의지, 욕망도
우리가 아주 원초적인 욕망은 어떤 이런 원력이라고 하는
원력이라고 하는 것으로 그 욕망도 바꾸면
원력도 어마어마하게 큰 거 아시죠?
행원이라고 그러잖아요, 행원
이 행신, 행의 몸에다가 그 방향을 원력으로 바꾸면
아미타불 같은 경우는
법장비구가 이 행운을 세워서
아미타불의 불국 극락정토를 또 만들었다 이거잖아요.
행신도
그러니까 극락정토는 아미타불 부처의 하나의 몸이네, 그 세계네.
세계라는 말은 몸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저도 지금 이런 식으로 처음 말해보는 거라서
오온을 이렇게 해석을 하면
결국 인간은 어마어마한 존재죠.
색신은 이거지만
색 수, 감정의 몸이 이렇게 나를 둘러싸서 있고
그리고 생각의 몸은 우리가 지금 떠올리는 모든 것들은
이 생각의 몸 안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인 거죠.
거기다가 원력의 세계, 욕망의 세계
이것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정말 큰 것은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정보의 양은 정말 크거든요.
그 큰 세계가 이 세계로 드러난 거야, 그냥.
끝이 없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다 현상이에요.
바뀐다 이거예요, 내용이.
내용이 바뀐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 어마어마한 끝이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인화지는
그러니까 지금 몸은 인화지 위에 나타난 사진이고
그 어떤 사진도 인화지 위에 나타난다 이거예요.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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