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뭡니까?’라고 하는 질문
근본에 대한 질문
지금 이 순간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데, 무엇이 합니까?
이 질문이잖아요.
그 질문을 당장은 답을 못해도
한 번 질문을 받으면
계속 이 질문이 안에서 돌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문득
“어, 이거네” 하는 게 온다 이거죠.
이게 초견성
“아, 이거구나” 하는
근데 ‘이거구나’ 해도 이 분별해서 추구하는 이 정은 남아 있다.
인간이 현상에 대한 끈질긴 집착인 정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정 떼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거예요.
그게 지금 공부의 과정이에요.
빨리 알아채세요.
그냥 미적미적 이렇게 막연하게 미뤄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보입니까?
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질문이 중요한 거예요.
뭐가 봅니까?
지금 보는데 뭐가 봅니까?
그래서 이걸 알아채야 돼요.
이걸 구체적으로 “아, 지금 보는 이거구나” 하고 알아채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보는 걸 조금만 외연을 확장하면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것, 다양하게 경험해요.
인간의 감각이 안, 이, 비, 설, 신, 의
감각기관이 다양해서
그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서 이 현상계를 경험하고 있어.
근데 경험하는 주체는
이 현상계를 꾸고 있는, 그려내고 있는
지금 이 본질 자체다 이거예요.
그래서 항상 깨달을 기회는 언제나 있다.
언제나 돌아보면 된다.
회광반조
언제나 의식이 현상계에 가서..
일반인들은 현상계라고 하는 영화 속에 빠져서
이 영화가 장편영화에요, 애석하게도.
단편이면 빨리 불이 들어오고 화면이 꺼지면
“아 영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데
지금 영화가 계속 돌아가고 있어.
그래서 이게 영화라는 걸 알아채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한번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순간, 이 영화로부터 벗어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경험이
그게 어떤 사람은 강력한 경험이 있고
어떤 사람은 약한 경험이 있더라도
한 번 발동만 되면
그다음부터는 돌이킬 수는 없어요, 사실은.
계속 메시지가 온다 이거죠.
그래서 지금 하여튼 중요한 것은
한 번은 알아채야 된다.
그러니까 ‘아’라고 하는
이걸 ‘아’ 힘 력자가 있어요. 네모 안에
이걸 와라고 해요, 한자 발음은 와지일성
와라고 하는 한마디 말
우리 말로는 ‘아’ 감탄사
걷다가, 밥하다가, 설거지하다가, 밥 먹다가
뭘 하더라도 하는 이것을 한 번
아,
근데 이게 알아챌 때는, 지금 몸이 있는데
의식이라는 것이
이 눈앞이 살아있는 밝은 느낌으로 자각이 돼요.
그런데 제 말도 속으면 안 돼.
제 말도 잡으려고 하면 안 돼.
하여튼 지금 일거수일투족을 통해서 이 현상계를 경험하는 여러분 본질
그것이 24시간 작동을 하고 있어요.
완전히 잠이 폭 들었을 때는
숨 쉬고, 피 돌리고, 그리고 이 감각기관을 다 닫아서
낮에 방전된 에너지를 꼽아서 충전시키고 있어.
24시간 작동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24시간이 있다.
어떻게 깨닫는가?
계속 회광반조를 하고 살면
다시 말하면 한 번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것이 뭡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한번 받고
그 질문에 대해서 내가
학생으로서, 선생의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려고 하다 보면
문득 “아, 이거구나”
지금 법문 들으면서도 마찬가지예요.
법문 들으면서도 “아, 이거구나” 하는 이 와지일성이 한번 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럼, 그때부터 수행이 시작된다.
자성을 확인한 사람한테는
그 자성과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게 복전이다, 이거예요.
공부하는 과정에서
부처님의 오도송을 한번 음미하고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의 오도송, 법구경의 153번이에요.
부처님께서 깨닫고 하신 말씀이
“윤회 속을 유랑해 왔네.
집(오온)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자
마침내 집을 짓는 자
너(아상)를 찾아냈도다.
서까래와 대들보는 부셔졌도다(몽환포영)
나는 열반에 이르렀고
모든 갈애는 사라졌도다”
윤회 속을 유량해 왔네.
윤회는 현상에 집착해서 현상 속에서 헤매는 거죠.
그럼 여러분, 윤회가 반드시 이 몸이 죽어서 윤회입니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생시와 꿈과 또 생시에서 일으키는 생각들
그 사이를 계속 유량하고 있지 않나요?
매 순간순간 한 생각이 일어나면 이게 환생인 거예요.
그렇게 느껴요.
“또 한 생을 살았네, 또 유해했네” 이런 식으로
지금 계속 현상은 바뀌어 간다.
그래서 윤회 속을 유랑해 왔는데
집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자 했다.
이때 집은 오온이에요.
그래서 5가지, 온이라는 것은 쌓임이라는 뜻이죠.
쌓임 온, 온이라는 말은 쌓일 온, 무더기, 쌓인 무더기
이걸 지금 부처님은 집이라고 또 표현하셨는데
이해할 때는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해도 하고
몸이라고 이해해도 이거는 좋아요.
그러니까 나를 미혹시키는 이 몸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자
오랫동안 윤회해 왔다.
마침내 집을 짓는 자, 너를 찾아냈도다.
아상이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미혹시키는데
그 미혹시키는 그게 집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 집을 만드는 자,
우리로 하여금 미혹시키는 집을 만드는 자, 그 너를 찾아냈도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에 의하면
‘내가 누구인가?’ 하는 본질을 깨닫고
그리고 그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것은
그 깨달음의 힘으로 지금까지 나를 계속 미혹시키는
자성을 등지게 만드는 이 에고를 정확하게 찾아내야 된다, 이거예요.
에고 찾아 내는 이 작업이
굉장히 세밀한 작업이라는 걸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작업을 여러분 선방에서 하는 거예요? 일상에서 하는 거예요?
일상에서 하는 거죠.
진짜 수행은
일상에서 나를 미혹시키는 내 안에
지금까지 나를 끌고 다니는 그 에고를, 그 집착의 주체를
찾아내는 것이 공부고
부처님은 참 통쾌했겠죠.
마침내 이 오온, 집을 짓는 자, 현상을 짓는 자, 너를 찾아냈도다.
서까래와 대들보는 부서졌도다.
집의 구성 요소가, 제일 중요한 게 서까래하고 대들보잖아요.
서까래와 대들보가 부서졌도다. 이 말은
현상계가 몽환포영임을 보았노라. 이 말이죠.
현상계가 꿈 같고, 환은 환상인데 요즘 말로 하면 영화
현상계가 꿈 같고, 영화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것
현상계가 그렇다는 것을 보는 것이
서까래와 대들보는 부서졌다.
나는 열반에 이르렀고, 모든 갈애는 사라졌도다.
부처님의 오도송이에요.
법구경에 이 대목이 있습니다.
본질을 깨닫고 그때부터 수행이 시작되어서
마침내 에고를 봐야 되는 거죠.
여기 부처님이 우리 깨달음이 완성되는 모습을 이렇게 보여줬는데
에고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에고를 보려면
생각 따라다니는 것을 멈춰야 되죠.(止觀)
다시 말하면 치구심을 멈춰야 되죠.
그리고 관, 자기를 봐야 되지
생각 따라다니면 자기를 못 보겠죠.
근데 생각 따라다니지 않으면 이제부터 자기가 보여요.
그럼 자기 안에 헐떡이는 치구심이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는 거죠.
이게 수행이다 이거예요.
이게 점수의 내용이다.
점수는 자기 보는 거예요.
자기를 보면
자기를 보는 요령까지 말씀드리고 오늘 수업 마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본다’, 이 말은
자기가 현상에 미혹당하는 걸 본다. 이 말이죠. 맞아요?
그러면 현상을 보려면
현상 안에 있어야 보일까요? 밖에 있어야 보일까요?
밖에 있어야 보이죠.
그러니까 에고를 제대로 보려면
현상에 밖에 나와야 에고가 보여. 맞아요?
그러면 현상에 나온 그 자리가 뭘까요?
자각은 현상에서 일단 나온 상태예요.
그래서 자각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수행의 가장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이 자각을 다른 말로 할 때는
서구식으로 말하면 현존이라고도 해요.
현존, 이 순간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
이 순간에 대한 감각.
자각의 느낌을 자꾸 길러가야 돼요, 한마디로 말해서.
그래서 ‘자각의 느낌’할 때
제가 서양에서 공부할 때는
자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각의 느낌을 길러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라고 하는 것을 느낀다’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이 현재라는 거.
제가 노상 말씀드리는 게
하여튼 버스 기다리는 게 나한테는 제일 좋은 시간이야.
버스 기다리면 딱 보면 3분 나오잖아요.
‘몇 번, 3분 뒤에 도착한다’ 하잖아요.
그 3분간 딱 현재, 지금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3분 뒤에 버스 오는데, 그 3분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잖아요.
굉장히 긴 시간이에요.
그때 안 끊어지고 현재를 자각하는 거예요.
그럼 어떤 느낌이냐 하면
생각이 나를 자꾸 낚아채.
지금이 현재라는 것을 느껴요.
이거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는 게
내가 현재라고 하는 걸 느끼는 순간
얼마 못 가서 생각이 덮쳐.
근데 생각은 나를 과거나 미래로 끌고 가.
저는 화두 드는 방법이
현재를 자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현재를 서핑하는 거예요.
현재가 파도처럼 오고 있는 것 같아.
이 순간, 이 순간, 이 순간, 계속 새로운 순간이 이렇게 오는데
미묘한 균형 감각이 있어요.
이게 화두 드는 거예요.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화두
현재를 타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방하착이에요.
릴렉스 하는 거예요.
완전히 방하착, 릴렉스, 이완을 하면
현재를 탈 수밖에 없겠네.
아이러니가 한 번도 현재를 타지 않은 적이 없어요.
이 순간에도 현재잖아요.
그러면 완전 방하착을 해야
완전히 방하착을,
방하착은 다 내려놓는 거잖아요.
완전히 방하착을 해야만
현재에 오롯이 같이 현재를 타는 건데
우리가 방하착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여기에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집 나간다 이거예요.
집이 현재다 이거예요.
이 집 나가는 습관을 바로 잡도리 하기가 쉽지 않다.
근데 하다 보면 하다 보면
정말로 깨달음이라는 건 와요.
법안에 대한 깨달음이 와요.
돈오돈수의 깨달음이 와요.
그거는 내가 애쓰지 않는 것이
비열이라는 것을 정말 깨달을 때가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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