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뵐 때마다 반복하게 되네요.
본질과 현상
다른 말로 하면
의식과 생각
그러면 지금 이 순간, 자기한테서
“의식 그리고 생각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는가?”의 문제예요.
자기가 생각과 의식을 구분할 수 있는가?
생각은 떠오르면 보여지죠.
생각은 보여지는 거예요.
보여지는 것이 현상이고
그 생각을 보는 것이 본질이에요.
아주 간단하죠.
소리가 있으면
들려지는 소리는 현상이고
이 소리를 듣는 것은 본질이에요.
같은 것이
생각도 보고, 소리도 듣고
또 다른 말로 하면 죽비가 있으면 죽비를
보여지는 죽비는 현상이고
지금 바로 이 순간, 이 죽비를 보는 여러분의 본질
그게 의식이죠.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도 보여지고
보여지는 형상, 색이라고 하는 거
그리고 들려지는 소리
맡아지는 냄새
그 맛보아지는 맛
그리고 느껴지는 촉감의 이런 형체들
우리 손이 촉감할 수 있는 형체들
그리고 생각 감정도 전부 다, 보여지는 것들, 보이는 것들
그런데 보는 것은 하나예요.
동일한 거.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의식이라고 하는 게.
물론 물론 의식이 보여지지는 않아요.
보여지면 현상이지.
본질은 보여지지 않아요.
보는 거라서.
그래서 보여지지 않아서
우리들의 지금 카테고리 미스테이크라는 건 뭐냐 하면
빨리 이걸 알아차려야 돼요.
보여지는 것과 그 범주와 보는 것,
다시 말하면 현상과 본질의 범주가, 카테고리가
서로 다르다.
비유한다면
꿈하고 꿈을 깬 생시의 차이처럼
이 차원 자체가
다르다, 이거예요.
그러면 본질을 현상에서 찾으면
차원이 다른 본질을 다른 차원인 현상에서 찾으면
못 찾는다.
그러니까 요 점이 하나의 힌트다.
깨달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힌트입니다.
그래서 “의식이 뭐지?” 하면 영원히 못 찾아요.
“의식이 뭐지?” 하는 게 생각이 들어서.
생각으로 의식을 찾으면
영원히 못 찾는다.
그럼 어떻게 찾는가?
그냥 이렇게 “이 뭐꼬?”라고 하는 질문을 가지고 있다가
법문을 듣든지, 산책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일상생활을 하든지 하다가
이 질문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아, 이거네” 하고 깨달아지는 거예요.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어요.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만이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
이 말은 이해되죠?
그래서 가장 가장 기본 질문
“이 뭐꼬?”
“이 뭐꼬?”는
“이것이 무엇인가?” 할 때 이것은
모든 행위의 주체
흔히 말하는 송장을 끌고 다니는 것
다시 말하면 물질인 이 육체를 움직이는 것
이게 주체인 본질이에요.
그럼, 그 본질을
“뭐지?” 하고 생각으로 찾으면 못 찾는다.
보통 사람들이 깨닫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생각의 습관이 워낙 짙어서
생각으로 생각이 끊어진 상태인 의식을
생각으로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거는 못 찾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 본질이 뭐지?”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이 순간, 항상 365일, 24시간, 매 순간순간
이 몸을 움직이는 것
그러니까 자기 자신.
몸은 옷과 같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옷을 벗으셔도
알맹이는 있지 않아요.
그것처럼 몸은 옷 같은 거예요.
근데 이 몸을 움직이는 것
이게 의식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께서 평소에
“의식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이 무엇인가?” “의식이 무엇인가?”
다른 말로 하면
“진짜 나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나가 무엇인가?”
혹은 더 깊게 말하면
“죽지 않는 나는 무엇인가?” “변화하지 않고, 죽지 않는 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있다가
이렇게 강의를 듣다가, 하여튼 계속 그 질문을 가지고 있다가
이 질문이 잘 익어가서 시절 인연을 만나서
탁 알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거구나”
그러니까 “아, 이거구나”
이게 견성이다.
이렇게 멀쩡하게 말하는 거 하고
지금 뭔가가 푹 이렇게
지금 하여튼 뭔가 마비되어서 그냥 푹 쓰러졌다.
그 차이
지금 의식 하나가 있고 없고의 차이, 이거잖아요.
“지금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 뭐냐?” 할 때
뭐 그리 어렵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뭐꼬?” 질문을 받아서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의 몸이 물질인데
그 물질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이 질문에
생각으로 들어가면 영원히 못 푼다, 이거는.
생각으로 들어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못 푼다.
근데 코미디만 보면 되잖아요.
이렇게 툭 쓰러지면
“어, 의식이 있다가 없어 의식이 없네.”
이게 다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저의 본질은, 지금 살아있는 것은, 죽은 시체가 아니라는 것은
의식이 있는 거 이거 하나잖아요.
근데 이 의식이 여러분께서 생각으로
“의식이 무엇인가?” 하면
그 의식을 못 잡아요.
근데 그냥 느끼는 거야.
그냥 느끼는 거.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표정이 심각해서 보고 있으면 안 돼요.
이 순간에도 표정이 심각해서 이렇게 꽂꽂하게 있으면 안 돼요.
그냥 웃고 마는 거예요.
깨달음은 이렇게 웃고 마는 거야.
“어, 이거...”
여러분 느껴지나요?
자기한테 의식 있다는 것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어렵거나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짜 간단명료하게
지금 이렇게 깨어 있는 이것.
이것이 있나요? 없나요?
이 시간 이후로 나는
의식의 본질이기 때문에
본질을 성품 성자를 쓰는 거예요. 성품 성자를
그래서 견성한다. 본질을 봤다
다시 말하면 의식을 알아챘다.
“아, 이거구나” 하는 거
여러분
“아, 이거”
지금 이 순간 느끼세요?
“아, 이거”
이거 느껴집니까?
이거 안 느껴지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안 느껴지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자기 이거, 이거 지금.
정신 안 나갔잖아요. 정신 안 나가고 지금 있잖아요.
지금 있는 정신, 의식.
그런데 여러분 놀랍게도
이거를 깨달으려고 그렇게 고생하고 있네.
돌아보면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요?
큰 스님들께서 결제 들어갈 때, 입재식을 하잖아요.
그러면 대중들이 3개월간 참선할 사람들이 다 모이잖아요.
그 자리에서 제일 먼저 어떻게 해요?
아주 똑같이
다 주장자를 이렇게 한번 들어서 이렇게 보이죠.
뭐겠어요?
아니 나도 의식이 있고
들고 움직이는 게 내 의식이고
보는 것이 여러분들 의식이고
의식과 의식이 서로 간에 통하면
이것이 깨달음이다.
이거 이거잖아요.
지금 이것만 해도 충분한데
혹시 못 알아들을까 봐
한 번, 소리를 또 한 번
제가 이렇게 소리를 낸 것도 제 의식이고
이 소리 듣는 것도 여러분들의 의식이다.
의식의 본질이다.
의식은 안 변해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 공부는 의식의 탐구예요.
의식의 탐구.
근데 지금 앰블런스가 지나가면서 삐용삐용삐용 하잖아요.
의식의 핵심이 뭐냐 하면
의식이 하는 일은 힘이 들지 않아요.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에요.
의식이 하는 일은 힘이 들지 않는다.
지금 저 소리, 앰블런스 소리 듣는데 힘듭니까?
힘 안 들죠.
여러분이 저 보시는데 힘드나요?
그러니까 의식이 하는 일은 힘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이 하는 일은 무위법이라고 해요.
무위.
그리고 무위는 자연스러워요.
그러니까 살아있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
그러니까 살아있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이 의식이 이렇게 있잖아요, 의식이.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제가 제 표현에 의하면 초롱초롱 말고
의식이 초롱초롱한 거 말고
그냥 맹숭맹숭한 거
이것도 중요해요.
그냥 맹숭맹숭한 거.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나 있는 의식
그리고 이 의식은
탐구하기 시작하면 신기한 물건인 거예요.
신기한 물건이에요.
크기가 어때요?
자기의식, 크기가 뭐라고 말할 수가 있긴 있는데
그래서 이거를 다석 류영모 선생은 함석헌의 스승이에요.
함석헌의 스승이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은
이것을 “없이 계신다” 그랬어요.
“없이 있다.”
말로는 모순이죠.
“없이 있다.”
이렇게 있다고 할 수 그러니까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어서
현상으로서는 없이 그러나 본질로서는 있다. 이거예요.
없이 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알아들어야 된다. 이거예요.
없이 있어서
현상에서는 무아이고
본질에서는 독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에요. 본질로서는.
현상에서는 무아예요.
것이 현상으로 드러나지만
현상에 있는 것들은 나라고 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죽비는 죽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죽비다.
그럼 죽비가 뭐냐?
이거는 본질이 인연 따라 현상으로 드러난 거다.
삼라만상이
그래서 죽비는 무아다.
그럼 죽비가 뭐냐?
본질이 드러난 거다, 모든 현상이.
근데 이렇게 의식을 탐구하기 시작하면
알고 보면 의식은 무궁무진하게 깊어요.
의식은 무궁무진하게 깊어요.
단순하게 지금 자각되는 것에서 시작을 하지만
자기 지금 눈앞에서 시작하지만, 의식이
알고 보면 이것이 온 천하를 다 덮고 있고
그리고 시에도 나오지만
만물이 전부 다 의식 속에서
의식이 인연따라 탁탁 드러나는 것들이에요.
요 대목에서 한 말씀만 드리면
모든 보여지는 것들은
안, 눈이 색을 인연에서
모든 보여지는 것들은 안식이에요.
모든 보여지는 것들은 안식
이때 식이 의식이다 이거예요.
보여지는 의식
이게 모양가진 모든 것들.
그리고 안 이, 이식
귀로써 들려지는 것들은 전부 다 이식인데
이식이라는 말은
소리로 나타난 의식이라는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식, 혹은 지각된다 그러죠.
감각된다. 지각된다.
각이라는 말도 ‘깨달을 각’자잖아요.
각이라는 말도 그게 의식이라는
그러니까 의식이 각이에요.
의식의 다른 이름을 식이라고도 하고, 각이라고도 하고
지금 모든 것은 지각된 것들이다.
지각이다
이거 여러분
*~
여러분에 의해서 지각된 거예요. 그죠?
각이다 이거예요. 각
혹은 식
이런 말들이 전부 다 의식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처음에는 이런 말이
탁 안 와닿아요.
기존의 어떤 관습적인 습관이
여기에 어느 정도 분별하고 있어서 잘 안 와닿아요.
그렇지만 자기의식을 깨닫고
그 의식이 구체화되면 될수록 공부가 깊어져, 굉장히 깊어져요. 공부가.
그래서 진짜 모든 것이 보이긴 보이는데
모든 것이 의식이라고 하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그게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와서 지금 여러분 의식 있나요?
아니 제가 쓰러지기까지 했는데
제 체면도 좀 봐주셔야지.
지금 뭔가 쇼크 와서 마비 와서 푹 쓰러지면
이거 하나가 그냥 간 거예요.
제가 죽고 난 뒤에 제 의식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몸이 죽고 난 뒤에
여러분 의식은 어디 있을 건가?
또 부처님은 250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부처님의 의식은 어디 있는가?
어디 있겠어요?
지금 여러분의 의식이다 이거예요.
부처님의 의식이 어디 있느냐?
지금 여러분의 의식이 그거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의식은 하나예요.
언제나 테두리도 없잖아요, 무한대고.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께서 시작은 미약해요.
시작은
“지금 나는 쓰러지지 않고 멀쩡하게 앉아서 이렇게 대화하고
살아있는 한은 이 의식이 이렇게 있다.”
이게 시작은 이렇게 미약하지만
들어가 보면 보통 여기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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