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96] 마음이 일어날때 빠지지 말라 / 피올라 현대선 15강 "응무소주 이생기심" 1회

Buddhastudy 2025. 5. 6. 19:28

 

 

  • 자신의 생각과 이해에 갇히지 말라: 진리 앞에서 자기를 내려놓고, '내가 알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가롯유다의 예시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식에 대한 배신감을 설명합니다 [01:11].
  •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올바른 이해: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따라갈 수 없으며, 마음이 일어날 때 거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05:37].
  • 마음의 본질: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 느낌은 스스로 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것들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06:23].
  • 삶의 허상: 여러분의 생각, 감정, 느낌은 환상이며, 영원한 것은 진리 뿐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아야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07:59].
  • 마약 비유: 자신의 생각에 갇히는 것은 마약에 중독된 것과 같습니다. 진리는 자유를 주지만, 자기 생각에 갇히면 구속됩니다 [09:05].
  • 몸과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은 영원한 생명에 의지하여 잠시 작용하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생각에 빠져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13:17].
  •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해석: 마음이 일어나도 머무르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보게 되고, 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14:36].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도

아직도 자기가 공부를 해요.

 

옆에 있으면

정말 강펀치를 날렸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 되고

아직도 자기가 공부를 해.

 

입장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진리가 있어.

진리인 우주 대생명이 있어.

하나님이라도 좋고 부처님도 좋아.

그게 있어요.

근데 그게 있어서 여러분들이 태어났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생각도 하시는 거 아니야?

그 생각, 느낌, 다 그거 있기 때문에

그거에 기반해서 움직이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생각 느낌이 이제부터 자기가 진리를 알겠다고 그래.

그리고 내가 이걸 이해해서, 내가 소유하고 잘 유지하겠다고 그래.

이게 말이 되는 얘기예요.

그게 마귀거든.

근데 계속 그걸 못 벗어나는 거야.

내가 공부하겠다.”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가룟 유다가 왜 예수를 배반했는지 여러분 아세요?

나쁜 사람이라?

아니에요.

제자 중에 제일 많이 배운 사람이야.

솔직히 베드로가 뭘 알아? 무식쟁이지.

고기나 잡던 사람이지.

제일 유식한 사람, 오늘날로 치면 박사야 가룟 유다가.

근데 왜 배반했을까요?

그 사람은 처음에 예수를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구세주하고 따라왔는데

내 방식대로 안 하는 거야.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면

지기가 군대를 조직하고, 돈 있는 사람들을 뒤에서 군자금을 받아서

뭐 이렇게 저렇게 해서 독립운동을 해야 될 거 아니냐 이거지.

근데 그거 안 하고, 맨 허튼소리만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꿈만 꾸고 앉아 있는 거야.

그러니까 답답하죠.

답답한 게 점점 세월이 지나니까 어떻게 돼요?

배신감이 되는 거예요.

 

내가 너를 쫓아다니면서

그동안 쓴 시간과 정력이 얼만데

계속 무슨 하늘나라 얘기나 하고 있고 말이지.

그래서 너 같이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배신한 거예요.

 

그런데 진리 앞에서는 자기가 승복을 해야 돼.

자기가 자기를 내려놔야 된다고.

그런데 끝까지 자기가 버티고 있어.

내가 알겠다. 내가 이해하겠다. 내가 가지겠다.”

허상이거든.

그걸 정말로 제발 좀 한번 철저하게 하셔야 되는데

끝까지 내가 요것 좀 해서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는 거야.

 

그런 부귀영화가 아니거든.

부귀영화는 부귀영화인데요, 그런 부귀영화가 아니에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걸 훨씬 넘어 있는 엄청난 부귀영화인데

자기 욕심 때문에 그 부귀영화가 안 보이는 거야.

자기 부귀영화래.

그래서 깨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 강의의 제목은 응무소주 이생기심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진짜 대승불교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말이죠.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다 들어보셨죠?

 

그런데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다른 말로 말하면

이게 해탈이고, 이게 열반이에요.

열반하고 해탈한 사람한테서 나오는 말이야.

 

근데 여러분들이 한번 잘 생각해 봅시다.

석가나 육조 혜능이 깨닫고 나서 설법했지, 남의 설법 듣고 깨달았어요?

그냥 스스로 깨달은 거야.

고생을 하셨든, 악을 썼든 간에

어쨌든 스스로 깨닫고 나서 설법을 시작한 거야.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이 말을

논리로 해석하고, 생각으로 해서 따라가는 사람은 전부 못 깨달아요.

, 그게 이런 거니까,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러면 안 된다고.

 

오히려 이걸 거꾸로 봐야 되는 거예요.

우리 쪽 피올라는 맨날 역발상 얘기를 하잖아요.

거꾸로 봐야 돼.

 

무슨 말이냐 하면

응무소주 이생기심 하면 대부분 이렇게 배웠을 거야.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그렇게 하면 망한다고.

 

왜냐하면 벌써 여러분은 법상을 갖고 있거든.

머무른 바 없이에 머물고 있잖아. 안 그래?

벌써 머무른 바 없이에 머물고 있어.

지기가 생각해 갖고.

 

마음을 내라

마음은 자기가 냈어요?

마음이 그냥 자연스럽게 여러분 안에서 나오지.

여러분이 언제 냈냐고

 

생각을 자기가 내서 해?

생각이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지.

그러니까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계속 이렇게 공부하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히려 거꾸로 봐야 돼요.

이생기심하면 뭐야?

마음을 낸다라는 게 이생기심이잖아요.

 

근데 마음이 생겨나도

마음이 여러분이 솔직히 내는 거는 거의 없잖아.

주로 마음이 저절로 나오지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나오고, 생각이 나오고, 느낌이 일어나고 하지

언제 내가 다 냈어요?

말이 안 되잖아.

 

이게 일어날 때

거기에 머무는 바가 없으면

응소주가 되는 거예요.

아니요?

그러니까 여태까지 거꾸로 공부한 거지.

 

그러면 마음을 낼 때마다

내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 어떤 생각이든, 그 어떤 마음이든, 그 어떤 느낌이든, 어떤 감정이든.

?

여러분 20년 전, 30년 전에 속 썩이던 애

지금 다 어디 있어요?

없잖아.

다 사라졌잖아요.

 

여러분 18세기, 19세기에 유럽의 공장에서

내가 오는데 ‘The Second Waltz’가 그 음악이 어디서 나오더라고.

그게 뭐냐 하면 귀족들이 왈츠 추는 음악이야.

<전쟁과 평화>에 아마 그게 나왔을 거야.

그 시대에 그 화려하게 잘 살던 귀족들은 지금 다 어디 갔어?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전부 다 환영이 됐잖아요.

 

여러분은 앞으로 100년 뒤에 안 그럴 것 같아?

여러분이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지금 지지고 볶는 일들이 안 그럴 것 같아요?

다 허상이야.

오로지 실상은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이걸 깨치자는 거야.

그래야 여러분이 진짜 영생을 얻고

여러분이 진짜 존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법열과 기쁨과 환희와 평화를 누릴 수가 있어요.

 

찬송가에 그런 말이 있어요.

내게 강 같은 평화

강은 비유도 안 돼.

바다 같은 평화가 온다고, 우주 같은 평화가 와.

 

이렇게 자기 생각 따라서

그걸 마치

있다, 감정도 있다, 느낌도 있다.

지금 잠깐 있지.

 

근데 여러분이 잘 봐요.

마약이 왜 나쁘냐면

마약이 그 LSD 같은 거 하면 그때 황홀해. 그리고 깨달은 것 같데요.

진짜 깨달은 것 같데요. 그냥 절대 평화가 온데.

 

근데 문제는 이게 딱 그 약효, 그 시간뿐이야.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냐?

아 이걸 또 체험하고 싶은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또 마약해야 돼요.

그래서 어떻게 되지?

노예가 되는 거예요, 뭔가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진리가 아닌 거야.

예수님이 말했잖아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했는데

자유가 아니라 구속을 주잖아요.

 

여러분 지금 봐요.

여러분이 평생 이렇게 살아오면서

지금 이렇게 삶이 무겁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유가 뭐야?

없는 걸 가지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생각, 감정, 느낌.

 

좀 거시적으로 보세요. 어떤가

정말 환영이잖아.

이 몸뚱아리도 환영 아니야.

자기 마음 다 환영 아니냐.

아니 이게 절대 진리 아니에요.

 

여러분이 이미 인생 수십 년 살면서

다 자기도 인정하는 바야, 안 그래요?

근데 왜 중독됐어요?

왜 그거를 벗어나질 못하는 거야.

마약 환자들 아니야?

이거 수사해 봐야 되는 거 아니야, 여러분?

안 그래요?

 

자기를 좀 봐요.

자기 하는 꼬라지를.

그러니까 이게 깨닫는다는 게 별게 아니에요.

정말 끝까지 보고, 철저하게 보고,

정말 내가 그렇구나이걸 인정해야 되는 거야.

근데 이걸 대충 하다 말아.

어 그런 것 같아요.”

뭐가 같다는 거야?

답안지에도 맨 같아요. 같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오온이라고 하는

오온이 뭐예요? 색수상행식이죠.

색은 뭐야? 몸이에요.

_ 물질,

그다음에 수상행식은 뭐예요?

_ 느낌, _ 생각, _ 어떤 의지나 의도, _ 분별

이게 다 마음 아니에요?

마음을 다른 말로 수상행식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다 공함을 보면, 이게 다 환영임을 보면

이 모든 것이

몸과 마음이 지금 어디에 의지해서 살아요?

여러분 몸과 마음이 어디에 의지해서 알아?

 

지금 이렇게 날 보고,

이 말을 듣고 있는 그 힘에 의지해서 살잖아.

그 힘이

-여러분 밥 먹는 거 소화시켜주고

-잠 잘 재워주고

-필요하면 생각하게 해주고

-필요하면 기쁘다, 슬프다

다 하게 해주잖아.

 

그건 변하지도 않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늙지도 않았고

-커지지도 않았고

-불생불멸 부증불감이야.

근데 왜 자꾸 그건 놔두고 딴생각만 하고 앉아 있어

 

잘 모르겠어요. 이해가 안 돼요. 정리가 안 됩니다.”

정리는 왜 하려고 그러는데?

알거나 모르거나 다 생명이 아는 거 아니에요?

근데 왜 알려고 들어요?

 

나는 몰라요.

근데 하면 다 알게 돼.

여러분 알려고 노력하면 다 알잖아.

네이버만 찾아보면 다 알아요.

뭘 그렇게 자꾸 알려고 들어.

 

그러니까 그게 마약에 중독된 거하고 똑같다는 거예요.

이런 삶의 방식이.

 

그래서 삶의 본질이라는 게

우리 삶이라는 걸 잘 들여다보면, 정말 객관적으로 보면

우주의 영원한 생명이

잠시 몸이라는 것에 깃들어서

몸을 체험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생명이

자기 본래 가진 기능이 있잖아.

몸에 맞춰서 가진 기능이 있죠.

그게 안이비설신의라는 거예요.

안이비설신의라는 능력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작용으로 나타나죠.

 

그러니까 이거의 내용물에만 안 떨어지면

안다 모른다, 이해가 됩니다 안 됩니다.

이런 게 다 내용물이거든

거기 안 떨어지면

얘나 지금이나 잘 작동하고 있지 않아요?

 

언제 한번 작동 제대로 안 한 적 있어?

내가 봤는데 안 보인 적 있어?

내가 들었는데 안 들린 적 있어?

그게 무지개 몸이라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이미 완전해.

근데 자기가 완전하지 않다는 거야.

?

자기 생각에 빠져가지고

 

뭘 보고 있는 거예요?

자기 생각에 속아서.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앞으론 여러분이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된다고요?

이생기심 되어도 응무소주 하면 이 자리를 본다.

이렇게 여러분은 보셔야 돼.

 

우리의 진리를 말하는

이 동그라미 자리를 보려면

이생기심은 항상 하고 있잖아요.

되고 있지 사실은

되고 있어요.

되고 있어도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면

뭘 보냐면

살아서 움직이는 이 살아있음을 보게 된단 말이야.

 

여러분 살아 있으니까 지금 여기 왔지

죽었는데 여기 왔어요?

살아 있으니까 내 말 듣잖아.

살아있으니까 내 말 듣고

아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라는 생각을 또 하고 있잖아.

왜 잘 모르겠어요?” 떨어지는 거냐고.

그게 머무르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그런 거에만 머무르지 않으면

그리고 계속 이 살아 있음만 보면

여러분이 이 자리를 드디어 만나게 돼요.

 

그게 소를 보고, 소를 만나고, 소와 하나가 되고, 소를 타고

마침내 소라는 것도 내 분별이라

없애버리는 경지까지 가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부처님의 법은, 진리는

우리의 오온의 재료지

오온의 내용물이 아니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