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10] 바탕을 깨닫고, 소통한다 | 기억이라는 정보

Buddhastudy 2024. 6. 6. 19:16

 

 

/대승불교에서는 일심이문이라고 해서

한 개의 마음이

현상의 생멸문과 본질의 진여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이 세상은 한 개의 마음인데

본질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아주 간략하게 썼지만

이 세상에 대한 해석이

철학적인 해석도 있고, 종교적인 해석도 있고, 정말 다양한데

이 다양한 해석 중에서

저는 대승불교의 해석이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우리가 무엇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여기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요 단락을 정말로 진실되게 믿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일심이문이라고 해서

한 개의 마음이 현상의 생멸문과 본질의 진여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이 세상은 한 개 마음인데

본질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 문장도 재미있죠.

한 개 마음인데

본질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그래서 마치 이 진여문을 선사들이 용이라고 비유했어요.

그리고 생멸문은 껍질이라고 비유해서

용이 벗어놓은 껍질.

 

그럼 이 세상은 용과 껍질로 돼 있는 거죠.

그런데 알맹이는 용이고, 껍질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거죠.

 

그래서 이 세계는 한 마리, 한 개의 생명, 그걸 용이라고 비유했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용이 벗어놓은 이 껍질이다, 이렇게 비유를 했어요.

 

그래서 이게 일심이문이라고 해서

대승불교에서 보는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참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다른 말로 한다면

우리가 언제나 혼돈이 있을 때

공부하다가 약간 혼란이 있을 때

이리로 돌아오면 되는 거죠.

 

그래서 용과 껍질, 또 많이 쓰는 비유는

바닷물과 파도라고 하는 바닷물과 파도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것은 파도만 본다 이 말이죠.

보는 것은 용의 껍질만 본다.

 

/한 개 마음인데 본질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마음이라는 말을 다양한 의미로 쓰고 있다.

마음 자는 변하지 않는 본질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변하는 현상의 마음을 지칭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본질과 현상이 둘 다 마음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한자 마음 자가 두 가지 의미로 쓰기 때문에

본질도 마음이라고 하고

현상도 마음이라고 해서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걸 잘 구분해서 봐야 됩니다.

 

/본질의 마음을 본심이라고 하고

변하는 현상의 마음을 몽키마인드라고 한다./

이러면 조금 이해가 되죠.

 

/그래서 초심자는 마음이라는 말을 대할 때 매우 혼란스럽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

본문에서는 마음 자를 마음이라고 번역하겠다.

그리고 선해, 해설에서는 이걸 구분해서

본질의 마음은 의식, Consciousness라고 하고

현상의 마음은 마인드, 마음이라고 구분해서 쓰기로 합시다/

하고 제가 지금 제안을 드린 거예요.

우리는 이거 해설에서 이렇게 해야만이 구분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왜 이러는가?

이유는 간단해요.

마음 자는 외국어라고 봐야 돼요.

한자 마음 자는 외국어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국어는

19세기에 영어를 번역한 언어를 지금 우리가 쓰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우리가 한 200년 전에 한국인하고 대화하면

말을 잘 이해 못할 거예요.

우리가 쓰는 많은 단어들이, 용어들이, 영어의 번역어에요.

실제로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로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한국어로 이 마음 자를 번역할 때

본질의 마음은 의식이라고 하고, 영어에서는.

그리고 이 현상의 마음은 마인드라고 해서

항상 마인드는 몽키마인드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문제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재밌는 게

요즘은 또 우리가 하는 마음공부에 연관된 한 가지, 학문 분야가 심리학이거든요.

여러분, 말이 나온 김에

심리학적인 어떤 연구를 빌려오면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가 있어요.

의식과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

중요해요.

의식과 마음이 다르다, 구분해서 쓴다.

전 세계적으로.

 

그래서 어떻게 다른가 할 때

심리학에서는 우리 인간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면

이렇게 우리가 있다면

영어로 ‘Physical Body’ 하면 이해하시겠어요?

육체, Physical Body, 이해하시죠?

 

근데 인간이 육체 + 이게 몸이죠, 마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마음하고 의식을 구분하는데

이 마음에는 기본적으로

생각과 감정이 마음에 속해 있어요. 생각과 감정.

의식을 대개 심리학에서는 Spirit라는 말도, 정신이라는 말도 많이 씁니다.

그래서 의식, 그리고 마음은 mind.

mind를 생각(Mental Body)와 감정(Emotional Body)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우리 육체가 있을 때

육체를 이렇게 감싸고, 에너지 장이 있는데

그런 무슨 카메라가 있다네요.

에너지를 찍는 카메라가 있다네요.

그걸 찍어보면 Physical Body 밖으로

Emotional Body, 감정체

감정체가 이렇게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둘러싸고 다시

Mental Body, 생각체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뭐 멘탈체 이모셔널체 하여튼 용어는 다양하게 쓸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 육체가

지금 우리 눈에는 에너지는 안 보이기 때문에, 물질만 보이기 때문에

육체만 보는데

그런 에너지를 찍는 카메라로 사람을 찍어보면

그 사람의 이 감정체가 있고, 그리고 생각체가 이렇게 있어서

생각체가 조금 더 범위가 넓다고 합니다.

 

근데 문제는 이런 채 밖에

지금 여기 그림을 그렸지만

바탕 위에 그림을 그렸잖아요.

그래서 이 바탕이 의식, Spirit라는 거예요.

그래서 Spirit하고 지금 멘탈 바디, 이모셔널 바디, 피지컬 바디가

본질과 현상의 관계를 이루는데

문제는 피지컬 바디가

이모셔널 바디하고 멘탈 바디에 의해서 둘러싸여져 있기 때문에

감정체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이해됐나요?

그리고 멘탈체의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은

그것도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러니까 피지컬 바디하고

이런 바탕 자체인 스피리트하고 연결할 때

둘러싸여 있는 것에 에워싸인 형상이다라고 설명을 해요.

 

일리가 있죠?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는

이것들이 원만하게 소통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리학에서 말하는 것도 원만하게 소통이 돼야 되는데

이게 감정은 감정의 상처 때문에 굳어 있고

또 우리들의 멘탈은, 생각은

어떤 고정관념 때문에 이게 굳어 있어서

원활하게 소통이 안 되고 있는 거

그러니까 이거를 뚫어서 소통시키는 게 우리 공부다.

이렇게 심리학에서는 이야기를 하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육조단경을 공부해 나갈 때

본문에서는 자가 나오면 마음이라고 번역할 수밖에 없지만

해설에서는 현상과 본질을 좀 구분해서

이런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훨씬 더 디테일하게 우리가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럼 내가 무엇에 막혀 있는가가 문제잖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감정에도 막혀 있고, 또 생각에도 막혀 있어요.

뭐든지 생각으로 하려고 한다. 이거예요.

 

밤에 잠이 안 올 때

고요하게 있느냐? 생각에 좀 시달리느냐? 할 때

잠이 안 올 때 생각에 시달릴 수가 많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할 때 항상 2가지가 있는 거예요.

공부는 항상 2가지입니다.

피지컬 바디, 이모셔널 바디, 멘탈 바디

어떤 바디 건

바탕 위에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걸

이거를 깨달아야 돼.

 

그래서 바탕을 깨닫는 게 첫 번째

이건 바탕을 깨닫는다. 깨달음이다.

이게 첫 번째 공부예요.

 

근데 이것이 다가 아닌 게

바탕을 깨달아도

이 감정체와 생각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얘네들이 오염돼 있으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우리가 힘들어요, 삶이.

 

생각이 많고 번뇌망상이죠.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이 우리를 괴롭히고

따라서 두 번째는 마음치유, 마음의 정화죠, 정화.

 

의식을 깨달아야 되지만

동시에 이 이모셔널 바디와 멘탈 바디를

오염되어서 굳어 있는 것을 풀어내야 되는

그런 정화 작업도 같이 가야 된다.

 

이게 지금 우리 공부의 2가지

그러니까 새는 두 날개로 난다.

마차는 두 바퀴로 구른다.

항상 요 양쪽을,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균형 잡힌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통합명상이라고 불러요.

통합명상은 켄 윌브라고 하는 서양 심리철학자가 이런 책도 냈습니다.

통합명상

항상 통합을 해야 된다.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좀 치우친 공부가 되어서, 균형 잡힌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양쪽을 항상 같이 살피는 공부를 지금 하고 있다.

이해되셨나요?

 

그러면 요 동그라미, 재밌지 않나요?

그래서 저도 공부할 때

공부가 되면서 자꾸 이런 실내에 있으면 답답한 거예요.

공부가 되면서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

그래서 옥상이나 뭐 한강변이나 아니면 바위나

이런 데 자꾸 앉아 있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소통하느라고

저도 모르게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아무튼 공부하는 사람은

소통이 중요해서

내가 지금 막혀 있구나 하는 거

답답하고 막혀 있는 것은 뚫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뚫어서 소통하는 게 공부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진리는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것이다.

나는 한 개 의식인데 본질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몸과 생각과 감정/

지금 여기서 말하는 이런 현상으로서의 바디

/몸과 생각과 감정은

스스로 지각되는 상대적인 것으로 현상의 나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 몸이 지각됩니까?

몸 지각되지 않나요? 맞아요?

그리고 생각도 지각이 되죠.

감정도 지각이 되죠.

 

/그러니까 이거는 상대적인 것으로 현상의 나라고 할 수 있다.

현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들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현상에 나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변하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한번 돌아볼게요.

 

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저는 이번 연휴 동안에 불현듯이 이런

그러니까 낮에 실컷 자서 밤에 잠이 안 올 때

그때 괜히 누워서 뒤치덕거리지 말고

그냥 앉아서 가만히 있으면

공부와 관련된 생각밖의 생각을 하게 되니까

이렇게 떠오르는 영감 같은 것들이 이렇게 있어요.

 

이번에 떠오르는 영감이 뭐냐 하면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변하는 건데

이 변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지금 220분이니까 한 두시간 전에 점심 드셨죠?

그렇지 않나요? 드셨죠?

점심 들었던 그게 한두 시간이 지난 지금 입장에서 볼 때는

점심 먹을 때는 굉장히 리얼했죠.

실재했지 않습니까? 굉장히 실재했는데

지금 불과 1시간 전에 거를 돌아보니까

이미 흘러간 과거가 되었는데

근데 재밌는 거는 그 점심 먹는 그 장면이 어디 가 있죠?

기억에만 있어.

근데 기억은 정보이지 실재는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기억에만 있어 참 희한해요.

 

그래서 제가 지난 시간에

꿈도 깨고 나면 사라지지만

기억에만 저장되어 있다고 그렇게 말씀드렸잖아요.

 

현실도 똑같이

지나가면서 사라지는데 기억에만 남아 있어. 그렇죠?

 

여기서 여러분

1시간 전의 것이 이미 지나가서 사라지고 있다.

어딘가에 리얼하게 실제로서 저장되어 있는 게 아니라

단순한 이미지로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요거 사실이죠.

 

그러면 영감이라는 거는

깨달음의 중요한, 깨달음과 마음공부의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 하면

나와 내가 처한 상황을 벗어나서 한번 나를 보는가?

이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예요.

그러니까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가?

 

그러면 여러분 보세요.

1시간 전에 밥 먹던 장면은 지나가고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1시간 뒤로 가볼까요?

1시간 뒤면 우리가 휴식시간을 취하고 있겠네요.

요즘은 시스템이 30분 휴식이기 때문에

휴식하면 아예 화장실을 저 넓은 데로 나가서 잠깐 걷고 이렇게 돌아오시죠.

그런데 지금 1시간 뒤면 아직 휴식시간 중이니까

밖에 나가 있겠죠.

 

보세요.

1시간 뒤에, 1시간 전인 지금을 보면

지금이 어떻게 어떨까요?

여러분 잠시 한번 떠올려보세요.

1시간 뒤에 지금을 보면 어떨까요?

기억으로만 남고 실상은 없겠죠.

그렇지 않나요?

 

불과 1시간 뒤, 불과 1시간 뒤로 가도

1시간 뒤에서 앞으로 1시간 뒤를 가서 지금을 본다면

이것이 그냥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그냥 현상일 뿐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이것이 리얼리티라고 할 수가 있을까? 하고

우리가 질문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1시간만 뒤로 가도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는데

지금 우리는 이것을 리얼리티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아왔다는 거죠.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그 바탕은 변하지 않는데

바탕에 나타나는 장면들은 무수히 변해가고 있어요.

그래서 바탕 위에 나타나는 장면을

하나로만 고집할 필요는 없구나 하고

지난 시간에 잠깐 말씀드렸어요.

바탕에 나타나는 장면을

꼭 하나라고만 고집할 필요는 없구나.

 

그리고 그 예로

장자의 꿈을 가지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러면 장자가 꿈을 꿨더니

꿈에서 나비가 되어서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꿈에서 깼더니 장자라는 인간이더라.

 

그러면 장자의 말은 좀 신기하다, 알쏭달쏭하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된 건지,

나비가 나비의 꿈에서 장자가 된 건지 아리송한데

이렇게 말을 해놨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 말을 가져온다면

장자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지나가는 현상이고

나비라고 하는 것도 그 사람의 꿈속에서는 그것도 하나의 현상이었죠.

그러면 Identity, 침상에 누워 있을 때는 장자지만

그 사람의 꿈속에는 나비였다 이거예요.

그러면 장자와 나비가 동시에 존재했던 거 아닙니까? 사실은.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냐 할 때

어떤 것이 진짜냐 할 때

우리로 하여금 이런 에피소드가 어떤 Inspiration, 어떤 영감을 주느냐 하면

나비 입장에서 장자를 본다면

장자는 정말 꿈속에 등장인물일 뿐이죠.

 

그래서 우리 꿈을 꿔봤죠.

그 꿈속의 나의 입장에서, 지금 김 아무개를 본다면

꿈에 나타난 인물이잖아요.

실상이 아니잖아요.

이게 참 묘하다 이거예요, 이 느낌이.

 

그래서 우리가 깨달음과 마음 치유가 조금 더 깊게 이루어지려면

이 나의 입장에서 벗어나 보는 게 중요하다.

잘 보인다. 한마디로

그러면 나의 입장을 벗어나는 단서 중에 하나가

우리가 뒤집어서

꿈속에 나가 오히려 리얼하다고 생각하고

그 입장에서 지금의 나를 본다면

나는 어디까지나 꿈속의 나가 꾸는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믿었던 그것이

얼마나 허구인가 하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어떤 무너지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이거예요.

 

그때 나만 무너지는 게 아니고

철석같이 이 세상도 같이, 나와 세상이 같이

그냥 꿈에 불과한, 무너지는 느낌이 있다 이거죠.

 

그러니까 이럴 때 확실하게 우리가 벗어난다.

지금 이런 바디로부터.

왜냐하면 우리는 의식이기 때문에, 무한대의 의식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걸 우리가 소화하기가, 받아들이기가 조금 어려우니까

쉽게 1시간 뒤로만 가봅시다, 간단하게.

1시간 뒤로만 가도

지금 1시간 전인 이 현실은 완전히 환이죠, .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