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참다 참다 같이 막말을 했더니 남편이 이혼하자고 해요

Buddhastudy 2024. 11. 19. 19:57

 

 

 

저희 남편이 성격이 급하고 막말을 많이 했습니다.

40대가 되어 이제 그런 소리가 듣기가 싫어서 같이 막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속은 편한데 남편이 이혼하자고 그래서요.//

 

 

 

뭐 어떻게 살든 건 자기 마음대로 하세요.

 

이혼하고 살아도 큰 문제없고

애들 다 컸기 때문에

또 지금까지도 살았는데

같이 살아도 큰 문제가 없고

그게 뭐 여러분들이 볼 때는 큰 문제 같지만은

20년 살았으면 많이 안 살았나?

지겨울 때도 안 됐어요?

 

그러니까 헤어지고 따로 살아도 되고

20, 30, 40대까지 오히려 어려운 젊은 시절을

이렇게 갈등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애들도 결혼할 정도 나이까지 됐는데

새삼스럽게 지금 못 살겠다고 할 이유가 있나?

지금까지 잘 살아놓고.

 

...

 

그건 자기 사정이고.

그래서 나이가 50대가 다 돼 가는데

아직도 할 말 못하고 사는 거는

제가 볼 때는 좋은 건 아니에요.

할 말을 하시고 사세요.

 

...

 

근데 그게 잘못된 거예요.

할 말을 하되, 막말은 하지 말고 할 말을 하라는 거예요.

할 말하는 거 하고 막말하는 건 틀리잖아요.

 

할 말을 하되 화내서 말하지 마라

할 말은 하되 욕설은 하지 마라.

할 말은 하되 막말은 하지 마라.

그러니까 그런 거 빼고 할 말은 다 해라

 

...

 

들은 척 많은 척을 하는 거는 괜찮잖아요.

즉 내가 말을 안 하면 화병이 나니까

내가 말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남편이 듣고 안 듣고는 남편의 의사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내 할 말을 하느냐 마느냐고 나한테 물으니까

그건 내 자유니까

말하고 싶으면 할 말을 다 해라.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내 말을 남편이 들어줘야 된다

그러면 자기 독재자지.

 

...

 

아니 부드럽게 말하거나 예쁘게 말하는 거는 아니에요.

욕설을 하지 마라는 거지.

그러니까 잘못 알아듣지 말고.

 

뭐 부드럽게 말한다. 예쁘게 말한다.

이렇게 자기 그렇게까지 인격자도 아닌데

뭘 그렇게 부드럽게 말하고 예쁘게 말하려고 그래

자꾸 인위적으로 할려 그래요.

 

그냥 할 말을 한다.

내 마음속에 있는 할 말은 한다.

그런데 상대를 걸은

그런 화내서 말하거나 막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면

상대가 기분이 나쁘니까

상대가 지금 거기에 받아쳐서 막말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러면 나만 손해잖아요.

내 뜻을 전하면 되지

꼭 욕설을 해야 전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화내서 말해야 전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 뜻을 전할 건지 말 건지는

전할 게 있으면 전하라고 하는 거고

남편이 그 말을 듣고

그걸 하든지 안 하든지는 그의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그의 자유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에 서야 된다.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스님이 물으니까 할 말을 다 하라더라

그러면 또 내가 남편에게

아내의 말을 듣든지 안 듣든지 그건 너 자유다

이것도 녹화해서 보여줬어요.

 

그러니까 남편을 바꾸려고 자꾸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좋다, 이런 얘기예요.

 

근데 그 말하는 방식이

욕설을 하거나, 화내서 말하거나, 막말을 하게 되면

안 한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타난다.

그럼 그건 손해잖아요.

 

남편을 위해서 막말을 하는 게 안 하는 게 아니고

남편을 위해서 욕설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남편을 위해서 화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면 뜻이 제대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왜곡돼 전달이 돼서

남편으로부터 욕설을 얻어 듣거나

남편으로부터 화내서 고함치는 소리를 듣거나 막말을 들으니까

한마디로 본전을 못 건진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본전을 못 건지는

즉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지 않으냐.

뭐 내가 고생해서가 아니라

내가 손해날 짓을 내가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 아닌가.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하면 돼요.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데

그러니까 욕설로 화내서 하게 되면

오히려 손실이 생기니까

손해 안 나도록 말하는 게 낫지 않느냐.

 

그러니까 자기가

내가 화를 내고 욕설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러면 당신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거에요.

 

이혼을 당하든지

내가 속 시원한 대신에 이혼을 당하든지

두 배로 욕설을 얻어먹든지

손찌검을 당하든지 하는

손실을 감수하고 하는 거는 괜찮아요.

 

근데 현명한 사람이라면

굳이 손실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느냐

자꾸 남편을 위해서 내 인격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것이 나를 위한 것이냐?”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내가 할 말을 못하면 답답해지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나한테 손해예요.

할 말을 하는 게 좋다.

 

근데 할 말을 하는데 화를 내서 말하면

돌아오는 게 더 크니까, 나한테 손해니까

할 말은 하되 화내서 말하지 않는다.

욕설로 하지 않는다.

막말을 하지 않는다.

그거는 인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손해를 덜 보기 위해서다.

손실을 내가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도 막 화를 내서 욕설을 해버려야 속이 시원하다.

그러면 우리가 놀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잖아요.

맛있는 거 먹으려면 요금을 지불해야 되고

구경을 다녀도 요금을 지불해야 되듯이

내가 속이 시원한 행동을 했으니까

그래서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뺨따귀를 한 대 맞으면서 욕설을 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한 대 맞는 아픔보다는 욕을 해버리면 속이 시원하다

그러면 실컷 욕하고

뺨따귀 맞으면서도 빙긋이 웃어야 돼요.

, 속 시원하다그러면 그건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 우리는 항상 이렇게 대가를 지불하는 경우가

이것만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뭔가 내가 즐겁거나 나의 이익을 위할 때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거든요.

 

답답한 속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욕설을 하고

나머지 대가를 지불한다.

그러면 그게 아깝지가 않다.”

관점을 그렇게 가지면

내가 괴롭지 않다 이런 얘기에요.

 

...

 

자기도 못 알아채는 게 어떻게 남을 알아차려?

그러니까 그건 다 남편을 고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남편을 고쳐서 내가 좀 편안하게 살겠다 하니까

그거는 절이나 교회 가서

하나님이나 부처님한테 빌어보세요.

 

여기서는 어떻게 나를 고치느냐 하는 것만 중심이지

남을 어떻게 고칠 거냐

그거는 수행이라는 것은

남을 어떻게 고칠 거냐 그거는 기복이고 종교지

수행은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욕을 하든, 화를 내든, 뭘 하든

그 남편의 성격, 성질 아닙니까?

저 사람 성격이 저렇구나이렇게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그렇게 말을 해도 나는 괴롭지가 않다.

 

그러니까 날씨가 춥든, 덥든

날씨를 내가 어떻게 바꿀 거냐 하는 건 여기서 논의가 아니고

날씨가 추울 땐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옷을 좀 더 입고 나가라.

날씨가 더울 땐 어떻게 합니까?”

옷을 좀 가볍게 입고 양산을 쓰고 나가라.

비가 오면 어떡합니까?”

우산을 쓰고 나가라.

미끄러울 때는 어떡합니까?”

장화를 신고 나가라.

 

세상이 어떻든

그건 세상이 알아서 할 일이고

그런 가운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수행이에요.

 

그러니까 왜 외출하려는데 비가 오냐?

왜 해가 뜨느냐?

이렇게 얘기하는 게 이제 세상에 불만이고

 

그러니까 하나님 오늘 비 안 오게 해주세요.

하나님 오늘 해안 나게 해주세요.

오늘 날씨 따뜻하게 해주세요.”

이제 이런 어리석은 일이 빚어지게 된다.

 

...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하면

주인이 나요? 하나님이요?

하느님이 주인이에요.

 

내가 부처님께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할 때는

내 인생의 주인이 부처님이에요.

 

내가 남편에게

당신 이게 문제야, 당신 저게 문제야이러면

인생의 주인은 남편이에요.

 

남편의 말 행동에 따라서

내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가 주인이다.

이 얘기에요.

 

근데 내가 주인인 삶

상대가 아니고

그것이 하느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임금도 아니고

내가 주인인 삶은

세상이 이러면 거기에 맞게

저러면 저에 맞게

남편이 술을 먹으면

남편이 술 안 먹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면 남편이 주인이 되는 거예요.

남편이 안 먹으면 좋아하고

남편이 먹으면 기분 나빠하고 이러니까

 

그러니까 술 먹는 남편을 나는 어떡할 것이냐?

그래도 술은 먹지만 돈은 잘 번다.

술은 먹지만은 사람이 마음은 괜찮다.

그러면 술 먹는 걸 감수하고 이 남자하고 사는 게 낫겠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사람이 정신 맑을 때 잘해줘도

술 먹고 개구신할 땐 진짜 인간하고 못 살겠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점이 있어도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그만두는 겁니다.

누가 결정한다?

내가 결정한다.

그게 인생의 주인이란 뜻이야.

 

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다 된다.”

이게 인생의 주인이 아니에요.

모든 결정을 다 내가 하는 거예요.

 

내가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총을 대놓고

, 너 타고 있는 오토바이 그거 내놔.”

그러면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강도가 결정하는 거 아니에요.

 

오토바이를 내가 너무너무 아끼지만은

목숨하고 비교했을 때 어느 게 더 중요할까?

두 개에서 선택해야 된다면

나는 목숨을 선택하고 오토바이를 내주겠다.

그래야 내가 주인이 된다.

 

그놈한테 내가 오토바이를 뺏겼다

이렇게 억울하고 분해하는 게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목숨이 중요하지만

나는 오토바이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오토바이를 지켜야 되겠다.

그러면 한 판 싸우고 총 맞는 거예요.

 

이런 경우가 없을까?

있어요.

여러분들 애국자들은

다 자기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지키려고 합니까? 안 합니까?

해요.

자기 목숨을 버리고

아내를 지키고, 자식을 지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 너 원하는 대로 죽을 테니까

우리 아이들은 손대지 마라, 우리 가족은 손대지 마라

이런 경우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 목숨도 내놓을 때가 있어요.

 

여성이 성적으로 정조가 중요하다.

그러나 목숨하고 바꿀 때는 목숨이 더 중요하지.

그럼, 그건 너무 문제 삼으면 안 돼요.

나는 그때 현명한 선택을 한 거야.

목숨을 지켰다.

 

근데 옛날 사람들은

종교를 더 지킨 사람도 있죠.

그럴 바에는 내가 죽겠다이렇게 해서

기꺼이 그냥 뛰어내려 죽든지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건 누가 선택이냐?

자기 선택이에요.

 

이게 붓다라는 거예요.

붓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에요.

저 하늘의 신도, 왕도 세상의 누구도

내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다?

나다.

내가 결정한다.

이 관점이 분명해야 돼.

 

근데 저런 식으로 하면

지금 질문자처럼 생각하면

내가 주인이 아니에요.

 

늘 남편이 말하는

남편 말에 따라 기분 좋았다 나빴다가

남편 행동에 따라 기분 좋았다 나빴다가

남편이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온갖 남편의 행위

딴 여자 만났나 안 만났나

돈을 어떻게 쓰냐

거기에 희로애락이 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그건 노예예요.

 

그러니까 개가 막 길을 지가 알아서 가는 것 같지만은

결국 개목걸이를 쥐고 있는 주인을 따라다니잖아요.

주인 앞으로 갔다가 주인 뒤로도 갔다가

저쪽으로 끙끙데다가 이쪽으로 끙끙데다 해도

주인 산책 코스를 따라다니잖아요.

 

순간순간 자기가 주인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목걸이를 잘라야 돼요.

 

근데 여러분들은 그런 목걸이를

자발적으로 자기가 목에 걸고

그 끈을 남편한테 주는 거예요.

나 끌고 다니십시오.”

아내한테 주는 거예요, 자식한테 주는 거예요.

심지어는 하느님한테 부처님한테 주고

나의 주인이 되십시오.”

이게 종이에요.

 

그럼, 일부 종교 보면

자기가 종이라는 걸 자처하는 종교도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 않습니까? 그죠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주여!”

이것도 주인이란 뜻이에요.

주인.

종은 항상 죄인에게 복종해야 돼.

 

그런데 불교는 자기가 죄인이에요.

어떻게 내가 주인으로 살아갈 거냐?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불교 용어로는 중생이라 그래

중생이다.

 

그리고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붓다다, 부처다

이렇게 부른다.

뭐 부처가 특별한 걸로 자꾸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 처하든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떡할 거냐?

그건 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과 그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