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 삶에 깨어나는 명상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권해드리려고 하는
명상이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에 대해 눈을 제대로 뜨려면
그리고 참된 자기를 제대로 직시하려면
명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명상? 그거 가만히 가부좌하고 앉아서
눈 감고 하는 지루한 거 아니야?”
아마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상의 일반적인 겉모습이지
진짜 명상의 핵심은 그런 게 아닙니다.
명상을 드러누워서 하면 어떻고, 잠자면서 하면 어떻습니까?
겉시늉만 따라 한다고 누가 명상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명상이란
그 어원에서도 보듯이 medi로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치료한다, 원상태로 되돌린다는 라틴어의 어원입니다.
명상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고
그래서 본래의 하나님과 같이 있었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또 한자로는 명상이라고 쓰는데
그것은 상념을 어둡게 한다는 뜻이니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많이 가졌던 번뇌덩어리들인
온갖 상념, 이미지와 추상적인 개념들과 욕심들을
다 깨끗이 씻어내고
본래 태초의 순진무구한 우리 상태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마음 안에
지금 복잡하게 차지하고 있는
여러 가지 욕심이나 희망이나 생각이나 번뇌들을 다 씻어내고
그 이전의 본래적인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다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다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무엇을 또 욕구하고
설사 그것이 진리에 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려 들며, 그것에 집착하여, 또 하나의 번뇌 망상을 부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다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번뇌망상이라고 해야 알맞습니다.
제가 ‘삶에 깨어나는 명상’이라고
이 장의 이름을 지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명상을 잘 모르는 우리가
대체 어떻게 해야 명상을 제대로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주 쉽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정성스러운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실 지금도,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은
다 인내와 노력의 산물이 아니겠습니까?
명상을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자기를 될 수 있는 한 깨어서
객관적으로 지켜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자각한다
혹은 자기 자신을 통찰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명상의 제1차적인 단계는
자기 생각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남이 되어야 합니다.
한 번 자기 생각에 지배당하게 되면
그다음의 감정과 느낌의 후폭풍들의 영향권 하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각이란
자꾸 자기 생각을 바라다보며
그것을 바로 자기와 동일시할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막 했군” 하고
객관적인 자세에서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꾸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는 생각을 따라가면서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것이 자각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생각이 일어나려는 찰나에 그것이 보이게 되며
더 이후에는 그런 경향을 가진 생각 자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기질과 습성이 뿌리 뽑히고
그래서 그 사람이 변하고 바뀌게 되는 것이죠.
인격이 더 좋아지고 사람이 따스하게 바뀝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중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나란 존재의 본래자리마저 알고, 그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제 안에 이미 깃들어 계신
하나님, 부처님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진리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이나 불경 안에요?
그 성경이나 불경에 진리가 있다고 누가 그럽니까?
바로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 아닙니까?
자기가 거기에 그런 가치를 부여하니까
그 대상들이 자기 안에서 그런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진리다’라고 결정하는 것 역시
결국은 자기 자신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자기는 객관적으로 못 보고
그렇게 자기가 만든 제 생각에 휘말려 그것을 따라 끌려갑니다.
돌멩이를 던지면
사자는 그 던진 사람을 쫓아와 물고
개는 그 돌멩이를 따라가 문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자입니까? 아니면 강아지입니까?
한순간의 나태함과 방일함이 진리를 찾고 못 찾고를 결정합니다.
참으로 순간의 선택이
10년이 아니라 평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명상이란
가만히 눈 감고 앉아, 참고 있는 지루한 것이 아닙니다.
명상은 살아 움직이는 이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보고
끝없이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자기가 세상에 먹히고 잡혀 들어가느냐
아니면 세상을 자기가 삼키느냐 하는
가장 치열한 수행법입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 성경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왜 그냥 믿으면 되는데, 성경은 굳이
‘깨어 있으라’고 되풀이하여 반복하며 경계합니까?
그것은 우리를 보고 항상
너 자신을 돌이켜보며
자기가 만든 피조물인 자기 생각의 노예로 전락하지 말고
그 생각의 주인이 되어
자기 생각을 다스리며, 능동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생각의 산물인 세상을 이기고
그것을 넘어서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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