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38] 생각이 끊어진 자리 / 피올라 현대선 7강 "뿐과 즉(卽) 사이" 4회

Buddhastudy 2024. 10. 8. 19:35

 

 

근데 중요한 건 이거예요.

이라는 것도 생각이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럴 뿐이다라는 것도 생각이잖아. 그죠?

 

그래서 선이라고 하는 게

’, 우리가 참선한다 할 때 이 이라고 하는 게

모든 매사의 본질을

단순하게, 가장 단순하게 보자는 얘기 아니에요. 그죠?

 

이라고 하면 모든 생각을 다 단순하게 만들죠.

그렇지만 이라는 생각은 아직 남아있잖아.

그래서 그것마저 없앤 게 이에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으로 시작해야 돼요.

처음에는 여러분은 을 모릅니다.

 

이라는 게 어떤 거냐면

생각이 뚝 끊어졌는데

바로 그냥 즉각 보고 아는 게 이에요.

이거예요. 이거.

 

여러분 이게 무슨 생각이 들어요?

그냥 즉각 보고 알았죠.

근데 진리가 무엇입니까?” 했더니

이렇게 하면

이미 자기는 즉각 보고 알았는데

이게 있는 그대로를 본 건데

생각이 이거를 해석하려고 들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어려워지는 거야.

저게 뭔 뜻이지?”

생각이 알고자 하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거야.

 

선문답이라는 게 뭐냐?

네가 그 생각으로 풀려고 하는 한, 절대 못 푼다라는 게 선문답 문제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끝까지 생각으로 풀려고 들죠.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깨닫는 건 아주 쉬운데, 그래서 영원히 안 되는 거예요.

불가능한 짓을 하니까.

 

그러면 이라고 하는 게 뭔지 이제 알았죠.

그냥 팩트’,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고 아는 것뿐이에요.

그게 이야.

아무 생각이

그럴 뿐이다라는 그 마지막 생각까지 사라진 거야.

그리고 있는 사실 그대로만 나타난 거라고요. 아시겠죠?

 

그래서 생각, 느낌의 이전 자리다라는 말은

바로 의 세계를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어떻게 보면 좀 본능적인 행동들

화장실 가서 용변 보고, 눈 비비고, 뭐 이렇게 기지개 한번 펴고

이런 거를 생각해서

이 다음 번에는 기지개를 켜야 되고

그 다음 번에는 화장실 가서...”

이런 거 생각하고 갑니까? 그냥 막 자연스럽게 합니까?

자연스럽게 하죠.

이게 의 세계예요.

 

의 세계는 그래서 생명이 그냥 살아서 작동하고 있는데

나중에 뭐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

그렇게 하루에도 여러분 이미 살고 있어요.

사실은 안 그래요.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이미 부처라는 거야.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모든 걸 알려고 들어.

생각이 정리해야 되고. 이해해야 되고.

그래서 모르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생각은 경험의 세계만을 정리하고, 알 수 있을 뿐이지

경험을 단어로 만든 세계

생각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안 그래?

 

들어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 자기가 알겠다고 하니까

애시당초 불가능한 짓을 하려는 거야.

 

그러니까 의 세계와 의 세계인지 아시겠죠?

의 세계 뭐냐?

*!

이게 의 세계예요.

지금 사실만이 있었잖아. 그렇죠?

 

여러분이 아무 생각 안 하고 이거를 접했다면

이게 의 세계야.

 

또 예를 들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파란불이 켜졌어요.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건너갔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막 나를 향해서 돌진해 와.

그때 여러분이

저 차의 속도는 120인데, 내가 2분의 1초 내에 피하지 않으면...”

이런 거 계산합니까?

아니면 그냥 바로 아무 상관없이

바로 본능적으로 행동하죠?

그게 의 세계야, 알겠죠?

 

그러면 사이에는 뭐가 있는 거예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생각 하나 밖에, 한 겹 생각만 있는 거야.

 

그런데 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예컨대 다만 그랬을 뿐이다

다만 그랬을 뿐이다.”

다만 모를 뿐이다.”

 

선문답으로 물었더니

난 몰라요.”

몰라요했을 이에요. 그죠?

이게 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자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에 갇혀 있는 거예요.

너무나 쉬운데 몰라.

다만 그랬을 뿐이다라는

여기에 생각의 의미가 들어가 있잖아요.

다만 그랬을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어가 있다고, 의미가, 내용물이. 그죠?

 

근데 그 내용물만 빼버리면 말은 똑같아.

다만 그랬을 뿐이다데 이게 이 돼버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의미가 없으니까 그냥 이게 이야.

*!

이거랑 똑같은 거야.

 

그러니까 불교에서 가르치는 사사무애라는 게 있어요.

이사무애와 사사무애라는 차이점이 있어요.

이 차이가 어떤 거냐면

 

[이사무애]는 이치와 사_ 실제 일어난 팩트가 무애하다 이 말이에요.

이치로 알고 있는 거와 실제로 자기 삶이 똑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를 들어

누구 앞에서 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심히 지나간다.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얼굴도 안 변하고,

이러면 이사무애예요.

?

부처님이 그런 것에 그 개념치말고, 집착하지 말아라. 오온개공이다.

그러니까 그걸 알고

그래서 누가 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가면 이게 이사무애에요.

 

그런데 [사사무애]는 뭐냐?

욕을 했고, 지나갔다야.

욕을 했다라는 말도 벌써 분별이지

말했고 지나갔다야 그죠

말했고 지나갔다 이건 사사무애에요.

아무런 판단이 없어요, 분별이.

그냥 일어나는 팩트만 말한 거야.

 

그러니까 이사무애와 사사무애의 차이가 뭔지 알겠어요?

[이사무애]

이는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이미 한결 깔려 있는 거야.

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히 지나갔다

, 훌륭하다라고 하는 생각이 숨어 있는 거야.

이치는 이런데 실제 삶이 그렇게 일치했다. 그러니까 훌륭하다

이런 분별이 깔려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사무애]

쟤가 뭐라고 얘기 했고, 얘는 그냥 지나간 거야.

이게 예수님이 말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에요.

사사무애가 되라는 거야.

 

그런데 예를 들어

하나 더 비유합시다.

내가 뱃놀이를 하는데 남의 배가 와서 부딪혔어.

그러면 부딪힌 사람은

진동을 받았고, 충격을 받았으니까 기분도 나쁠 거 아니야.

근데 아이 뭐 그럴 수도 있지 뭐하고서 웃으면서 너그럽게 지나갔다.

그럼 이건 [이사무애].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런데 배가 와서 부딪히고 헤어졌다.

이건 [사사무애]. 아무런 해석이 없어요.

배가 와서 부딪혔음에도...

 

여러분이 만약에

내가 어떤 배에 드러누워서 호수 위에서 하늘 바라보면서

이렇게 명상을 즐기고 있는데

어떤 배가 와서 나를 꽝 부딪혀서 하마터면 내가 물에 빠질 뻔했어.

그 화가 나요? 안 나요?

화가 나서 이렇게 딱 일어나서 보니까

상대방 배가 빈 배야.

그러면 누구한테 화를 내 화낼 사람이 없죠?

사사무애는 마치 이와 같은 거야.

그냥 일어났을 뿐이야.

 

그러니까 의 차이를 알겠죠.

에는 모든 생각이 뚝 떨어진 거야.

 

이게 여러분이 이 앎으로만 있으면

아까 내가 말하는 모든 걸, 지금 여러분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다 알고 있어요.

보고 알고 있다고.

내가 말한다는 것을.

 

내가 말하는 걸 전부 다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 난 모르겠어요.

그건 난 개의치 않아.

보고, 지금 말하는 건 내가 사사무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을 얘기하는 거라고

여러분은 내가 말한다는 사실을 보고 알고 있어요.

 

이것만이 진실한 거예요.

이게 사사무애 세계고, 이게 진리의 세계라고.

이게 본지풍광이고, 실상세계라는 거예요.

이게 법계라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