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 선사들이 하는 말 중에
이렇게 자꾸 처음에는
내가 여러분들한테
“빨리 깨달으려면
[뿐명상]을 하루에 백 번씩
일주일만 해보시면 생각이 뚝 끊어진다.”
그다음 주에는 [즉명상]을 하세요.
모든 게 뿐이라는 생각도 없어.
/그냥 모든 게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것만 보는 거야./
생각이 뚝 끊어져 있으니까.
그러면 저절로 매 순간, 이 의식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보게 돼요.
매순간 팩트만 보잖아. 그죠?
그러면 깨달음이 저절로 와요.
2주면 돼, 2주.
하루에 100번씩만 하면
안 하니까 문제예요.
안 하고서 힘들다고 그래요.
그래서 선사들이 주로 하는 말 중에
“탁, 치고 이것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뭐 와서 이러쿵저러쿵 이게 저러고 저게 저러고...
그런 건 다 그냥 쓸데없는 말이고
그냥 닥치고 이거다.
*!
이게 팩트니까.
이게 전오식을 이용하여 9식이 지금
여러분한테 자각되는 그 순간 아니에요?
잘 들리지 않아요?
잘 보이지 않아요?
이 허공이 누구한테 어떻게 인식되고 있어요?
허공이라는 것도 내가 붙인 이름이에요.
이게 사실은 실체가 내 의식이야.
내가 허공이라고 이름 붙였지
실제로는 이게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생명의식이 인식을 해서 이렇게 있는 것뿐이에요.
여러분이 정말 이렇게 신묘하게
이 세상 전체가 내 의식 속에 비춰지는 거울과 같은 상들이라고.
마음공부가 지금 되신 분들은 알 거야.
옛날에 비해서 원근감이 뚝 떨어진 거를.
옛날엔 원근감이 디테일하게 잘 보였는데
지금은 원금감이 잘 없어졌어요.
그게 왜 그런지 알아요?
원근감이 디테일한 사람은
나라는 개체 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요거 중심으로 있고, 나머지는 다 먼 거야.
근데 자기가 그냥 무소부지한 의식이 돼버린 사람은
원근감이 사라져요.
그래서 세상이 2차원 평면처럼 보여.
자기가 원근감이 생생하면
아직 공부가 멀었다고 생각하시면 돼.
그래서 “깨어나기 위해서, 깨닫기 위해서 마음을 쓰지 마라”
이런 말이 있어요.
깨닫기 위해서 마음을 쓰시면 안 돼.
왜냐하면 여러분 마음 써봤자 뿐이나 분별 망상밖에 안 되니까
아무것도 안 쓰면 [즉의 세계]에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무위로 있으라
이런 말을 자꾸 하는 거예요.
공부하지 않는 공부
이 말이 이 말이에요.
즉으로 있어라. 즉의 세계에
실상 세계에 있어라.
번뇌 망상 좀 그만 떨고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매 순간 사실만 보면서
분별이 끊어진 즉으로만 있다면
마음 쓸 일이 있어요? 없어요?
마음 쓸 일이 없어
하루 종일 가도 마음 쓸 일이 없어요.
해탈했다면
그냥 삶이 그냥 시원해요.
그리고 아무 일이 없어.
그리고 몸과 마음의 무게가 제로야.
뭐가 있다고 해야 있는 건데.
이 마음공부 해서 해탈한다는 거는
무아가 되는 게 아니고요.
내가 유아인데 무아가 되는 게 아니고요.
원래 없어, 나라고 하는 건
정보에 불과해.
원래 없다라는 걸 보는 거지
있던 놈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있긴 뭐가 있어?
지가 있다고 착각한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죠?
/진짜 여러분들은
이 영원한 우주의 생명의식이 있으면서
그 안에 이런 물질 현상들이
연기법에 따라 일어나는 거를 감상하고 있는
그런 정말 신묘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우주의 생명의식일 뿐이에요./
어느 곳에나
어느 것에나
다 두루 존재하는 게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잖아요.
그게 부처님의 존재 방식이에요.
어느 곳에나
어느 것에나.
여러분은 생각에서 분리되는 방법을 아셨죠?
아셨어요?
좀, 좀, 좀 표정이
리암님 뭐 아셔? 표정이 약간 아리까리한데?
아시는 거예요? 모르시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럼 해탈했네. 적어도 생각에서는, 그죠?
...
모든 게 다 생각이에요.
지금 여기에 여러분들이 자기가 미세한 생각으로 다 덮여 있어요.
여기 내가 있다라는 걸 여러분이 안다면
그것도 생각이야.
여기 칠판이 있다는 거 안 나오면
그것도 생각이라고
그런데 이거를 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바보 천치 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그런 생각의 내용물을
그게 공한 걸 보면 내용물에 빠지지 않으면
생각이 있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그럼, 그 생각의 실체가 뭐냐고
그게 살아있잖아요.
살아있으니까 생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지
이 허공에 공기가 있으니까
담배 연기가 나타나서 이렇게 이렇게 댕기다가 사라지잖아요. 그죠?
담배 연기가 이렇게 날아다닐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공기가 있기 때문이야.
생각이 나왔다 사라졌다, 나왔다 사라졌다.
이렇게 분주한 이유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제발 생각이 다 헛깨비인 줄을 보면
필요하면 내가 붙잡아 쓰고
아니면 단변기처럼 놔버리면 그만이야. 그렇죠.
근데 왜 그거 붙들고 그 난리를 치시냐고/
/자기 생각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그래야 비로소 생명의 실상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럼 이게 비단 [생각]만 그렇겠어요?
[감정]이나 [감각]도 그럴 거 아니에요.
근데 감정이나 감각은
생각에 비해서 훨씬 벗어나기가 쉬워요.
근데 생각이 제일 어려워.
이놈이 아주 교활한 놈이거든.
여우 같은 놈이거든.
/깨달음이라는 게 뭐냐?
생명의식이 스스로를 자각하는 거예요.
스스로를 알아보는 거야.
그래서 견성이라고 그러잖아./
근데 견성見性이라고 하면은
사람들이 또 착각을 하는 게
성性을 견見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그게 아니에요.
‘성을 보는 거다’ 이게 아니고
‘성품을 보는 거다’가 아니고
이 안에 그렇게 되면 벌써
이 행위가 생기고, 주체 나가 있고, 이 대상이 또 생기잖아요.
그게 아니고 [견이 곧 성]이라는 얘기예요.
[보는 이 자리가 바로 성품이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견성]이야 아시겠죠?
그런데 깨닫는다는 게 뭐냐 하면
나와 이 세상 모두가 다
아침이 되면 이 동그란 자리 안에 딱 나타났잖아요.
이 자리 안에, 지금 이 안에.
밤이 되면 잠 속에 빠지면 어떻게 돼요?
사라지죠.
다음 날 꿈속에서는 또 나타나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 이게 나타나죠.
우리는 그거를 거꾸로
“내가 잤다 깼다 의식이 돌아왔다”
이렇게 말하는데
이게 말이 전도몽상이에요.
사실은 그게 아니라
이 생명의식이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거야.
몸을 이용해서
무슨 말인지 알겠죠?
우리가 눈을 감으면 안 보이죠?
눈 뜨면 보이죠?
이 몸이 법신의 눈과 똑같은 거야.
그러니까 몸이 아침에 깨면 눈을 뜬 거 하고 같은 거고
저녁에 잠들면 눈을 감은 거하고 같은 거예요.
아시겠죠?
그래서 내가 생각, 감정, 느낌으로 분별만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실체는 그냥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것뿐이에요.
그냥 즉한 세계야.
그래서 사사무애한 세계예요.
모든 일과 일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래서 사사무애라고 그래요.
그래서 깨달음을 대상으로 두시면 안 돼.
지금도 저기 마스타 7강에서
내가 자꾸 이렇게 여러 사람 지적하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 자리를 내가 보고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이거는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하는 거지
이거는 사실은
그러면 ‘주체가 대상을 본다’라는 ‘삼분열’이 이미 일어난 거잖아.
그게 아니고
실상은 어떻게 되는 거냐면
얘가 다 눈인 거야.
얘가 다 눈이에요.
이게 다 눈이라고.
눈이니까 다 알지.
[마음의 눈] 아시겠죠?
그래서 그러니까 깨달음을 대상으로 둘 게 아니라
사실은 나라는 몸이나, 생각이나, 마음조차도
이 동그라미 안에서 일어나는
분별 현상에 불과하다라는 거예요.
그렇게 돼야 돼요.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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