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한 사람이
지금 막 깨달음의 세상으로 들어섭니다.
우리는 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일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고민입니다.
그 고민을 안고 절에 가죠.
2600여 년 전, 같은 고민에 직면했던 한 사람이
오랜 수행 끝에 답을 찾았습니다.
깨달은 자, 붓다가 되어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치를 언제나 말하는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중아함경, 전유경”
이 세상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깨달음의 진리
그 진리를 찾는 선재동자의 마음으로
구도의 길을 떠납니다.
그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나고
그 만남은 어떤 인연의 꽃을 피울까요?
이제 우리는 깨달은 자
붓다의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화엄사
-전라남도 구례군)
새벽,
도량석 목탁 소리가
수행의 공간을 깨우고
절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화엄사 새벽 예불)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지극한 마음으로 온 세계 스승이며
모든 중생 어버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화엄사 홍매화)
매해 봄
화엄사를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홍매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화엄사를 다시 중건하면서 심은 나무입니다.
붉은 꽃빛은 속새 중생들의 간절한 마음이요.
그 향기는 불보살님 전에 올리는 불자의 공양입니다.
“청주에서 내 집에 왔습니다.
이렇게 빛이 나야지 꽃이 환하게 예쁘게 나와요.
부처님 서강이 그냥 내리비치는 것 같은 이런 게 보이죠.”
어느 한 송이 소외되지 않고 고루 퍼진 햇살
붓다의 세상에 가지를 뻗은 홍매화는
아름다운 색으로 세상을 덮어주며 화엄매라는 이름도 얻었습니다.
(우견스님)
“화엄은 [잡화엄식]의 준말이에요.
잡화라는 거는 글자 그대로 뭇꽃들이죠.
엄식이라는 말은 장엄하다 이렇게 많이 쓰는데,
부처님의 세계는 온갖 꽃들로 장엄이 되어 있다
이런 의미라고 볼 수 있죠.
길을 가다가 보는 풀 한포기, 그리고 돌, 돌멩이 하나
그리고 이렇게 화엄의 꽃 한 송이까지
사소한 것일지라도 절대적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천년 고찰, 지리산 화엄사
이 세상 모든 것이 어느 하나 홀로인 것 없이
끝없이 연결되고 어우러지는
장엄한 화엄의 세계입니다.
(법산 스님)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그러잖아요.
사바세계라는 말이 인고라
참을 인, 괴로울 고
괴로움을 참고 사는 세상이 사바세계요.
고해라고 그러죠. 고해
괴로움의 바다다.
그 괴로움의 바다는
인생 사는 그 자체가 전부 고통이고 괴로움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모두가 다 괴로움이요.
그러니까 일체개고라
일체의 모든 것은 다 괴로움이다.
그러한 전제가 주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화엄사 방장교)
괴로운 인생에서 잠시 벗어나
붓다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은 일주문에서 시작됩니다.
화엄사 현판은 선조의 아들 의창군이 힘찬 글씨로 써놓았습니다.
(화엄사 금강문)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역사가 우릴 기다립니다.
행여 따라온 나쁜 마음은 쫓아내고
깊은 불심은 귀여운 동자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화엄사 천왕문)
아직 문 하나가 더 있습니다.
(화엄사 북방 다문천왕)
사천왕은 비파, 검, 용과 여의주, 삼지창을 들고
위험 있는 자세로
부처가 계신 곳, 불국토를 지키고 있죠.
(화엄사 남방 증장천왕)
(화엄사 서방 광목천왕)
화엄사의 사천왕상은
흙을 빚어 만들었는데, 높이가 5미터나 됩니다.
거대한 사천왕이 지켜보는 천왕문을 지나갈 땐
어느 누구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겁니다.
일주문을 넘어서
마음을 다잡는 금강문과 천왕문을 지나고
종을 치는 종각과 2층 다락집, 보재료를 넘어서면
석탑이 있는 절 마당이 나옵니다.
마당에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대웅전과 여러 정각들이 있는 절의 중심에 들어서게 됩니다.
절의 공간 배치는
스님들의 수행 공간을 구성하는 의미로 가람 배치를 하는데,
대부분 대웅전을 중심으로
모셔진 불보살에 따라 다양한 정각들로 이루어집니다.
(미술사학자, 탁현규)
“많은 분들께서 절에 오셔서
그 너른 대웅전 앞마당을 한 바퀴 휙 도시고선
약수물을 딱 한잔 마시고
다시 내려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이 대웅전 안에 들어가야 되는데 그냥 가시다니.’
그래서 이 안타까움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일단 대웅전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순간
밖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화려하고 찬란한 부처님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화엄사 대웅전)
세상을 밝히는 큰 영웅을 모신 곳, 대웅전은
단청과 불상, 불화로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절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예불과 불공을 들이는 장소이기 때문이죠.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조선 1635)
화엄사 대웅전에는
새 몸을 한 부처, 삼신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성각 스님)
“화엄사에서는 대웅전을 조성할 때
화엄에 근거해서
부처님하고 탱화를 조성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어떤 진리, 법 그 자체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게 되고요.”
가운데 비로자나불은 보이지 않는 법을
형상으로 보여주는 부처입니다.
“서쪽에 계시는 노사나불 부처님 같은 경우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떤 깨달음의 측면을 가지고
저렇게 노사나불을 모시게 됩니다.”
노사나불은 공덕을 쌓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 구제,
모든 중생들을 다 행복하게 하겠다고 하는 실천의 측면으로 인해서
이렇게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시게 됩니다.”
인간 모습으로 나타난 부처입니다.
법신, 보신, 화신으로 나타난 세 부처는
손 모양, 수인도 다릅니다.
석가모니 불은 항마촉지인<마군을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증명하는 손짓>을
노사나불은 양손을 든 설법인<법을 설하는 손짓>을
비로자나불은 주먹을 쥔 지권인<지혜의 주먹을 쥔 손짓,
오른손은 부처, 왼손은 중생을 상징>을 하고 있죠.
삼신불, 셋이지만 하나의 법신
진리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탱화, 벽에 거는 불화)
(미술학자 탁현규)
“근데 이 탱화를 그리신 분이
당대 조선 탱화의 1인자셨던 의겸 스님이세요.
의겸 스님의 거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 멋진 걸작을 완성하셨습니다.”
불상 뒤에 걸려 있어 놓치기 쉽지만
불상과 짝을 이룬 탱화 중에는 명작들이 꽤 많습니다.
세심한 붓놀림과 생생한 채색이 살아있는
화엄사 대웅전 비로자나삼신불회도도
놓칠 수 없는 조선후기 불화의 명작입니다.
(송광사, 전라남도 순천시)
순천 조계산에 위치한 송광산은
나라의 스승, 열여섯 명의 국사를 비롯해
훌륭한 큰스님들을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입니다.
경내로 들어가면서 만나는 삼천교와
그 위에 우화각은
송광사의 절경으로 유명합니다.
석가모니 일생을 펼쳐 놓은 영산전은
석가모니를 공부하는 공간입니다.
(김태형
송광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
“석가여래에 대한 그 일생을 이해를 해야지만이
기본적으로 불교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그런 부분도 있고,
또 석가여래의 인생 8장면 자체가
수행자들로서는
따라야 하고 따라가야 하는 그런 과정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불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불화입니다.”
(송광사 성보박물관)
송광사 팔상도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명작입니다.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사건으로 나누어
인물과 장면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시공간의 전환도 자연스럽게 표현했죠.
석가모니의 일생 이야기
시작합니다.
천상의 도설천에 살던 호명고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낮잠을 자는 카필라국 왕비
마야 부인의 꿈속으로 들어옵니다.
마야 부인은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에서 상기를 느끼고
옆구리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이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 걷고서 큰 뜻을 외칩니다.
평온한 왕자의 삶을 살던 시타르타는
어느 날, 사방의 성문을 차례로 나갔다가
노인과 병자, 죽음을 보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민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출가를 결심하고 말
발굽을 들어주는 사천왕의 도움을 받아 몰래 성을 빠져나갑니다.
6년의 고행 끝에 싯다르타는
고행이 깨달음을 얻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고행을 중단합니다.
목욕하고 우유죽을 받아먹고 깊은 명상이 듭니다.
마군들이 싯다르타의 명상을 방해하기 위해 공격을 해 오지만
물리치고 항복을 받아냅니다.
이때 전생에 일곱 부처가 나타나 싯다르타의 승리를 증명하죠.
반짝이는 새벽 별을 보고
그는 깨달음을 얻고
붓다, 부처가 됩니다.
(금강 스님)
“부처님이 사람들에게 하는 첫 설법이 고집멸도예요.
모든 고통은 집착해서 온다.
그 집착을 여의는 공부만 한다면 도를 이룬다.
철저하게 자기의 고통을, 또 내면의 그 고민을
들여다봐야 돼요.
이거 어디서 오는가?
바로 그 고민과 그 의문을 통해서
자기를 깨달음의 길로 이를 수 있다는 것이죠.
(녹원전법,
녹야원에서 법을 전하다)
붓다는 그 깨달음을 널리 전하기 시작합니다.
45년 동안 수많은 제자를 키웠죠.
노사나불이 설법하는 장면으로 잘 표현돼 있습니다.
(쌍림열반
쌍림에서 열반에 들다)
붓다는 80세의 열반을 맞이합니다.
장례를 마치고 화장을 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늦게 도착한 제자 가섭이 예를 갖추자
관은 스스로 타올랐고, 수많은 진신사리를 남겼습니다.
붓다는 떠났지만, 그의 가르침은 남았습니다.
(덕문 스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는 얘기는
하늘 위, 하늘 아래에 나 홀로 존귀하다.
그냥 해석을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사실은 부처님 혼자 존귀한 게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렇게 존귀한 존재다.
삼계개고,
욕계, 색계, 무새계의 모든 중생들이 고통 속에 있는데
그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중생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
이 세 가지에는 차별이 없네.
-육십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
(통도사
경상남도 양산시)
붓다가 설법했던 인도의 영축산
그 이름을 딴 양산 영축산 자락에 통도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붓다는 최초의 설법에서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를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초전볍륜경
우리는 무엇에 집착하는가?
어떻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붓다에게 해답을 구합니다.
(통도사 금강계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계, 불자가 지켜야 할 규범을 수여하는 의식을 행하는 곳)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금강계단이 있죠.
금강계단의 석종 안에
불가의 보물인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통도사는 불보사찰이라 불립니다.
(법산 스님)
여든의 큰스님이 금강계단을 참배합니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바가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바가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바가 없다.
얻을 바가 없다는 것은 소유할 것이 없다, 가질 것이 없다는 뜻이거든요.
근데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현재는 지금 계속 지나가고, 변화하고 있는 상태라
변화하고 있는 상태를 어떤 정점을 잡아서
‘이거 내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내 것이다’ 했을 때는 벌써 과거로 가버렸어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과거에도 집착하지 말고,
현재에도 집착하지 말고, 미래에도 집착하지 말라.
다만 객관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내가 이 현시점에서 어디로 갈 것이냐?
내가 어떻게 전환해 갈 것이냐?하는 것을 생각해 봐.”
일체개고_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
제행무상_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_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모든 것은 괴로움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기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버릴 뿐이다.
(영산전 벽화
양산 통도사)
통토사 영산전에는
법화경의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하던 때
다보탑이 솟아났고
다보여래가 그 설법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죠.
석가모니의 인생을 그린 팔상도가 있고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습니다.
통도사 영산 해상도는 3미터가 넘습니다.
4명의 화승이 그려 완성했다고 하죠.
깨달음만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영축산으로 모였습니다.
사천왕들이 양쪽 아래 자리를 잡았고
문수보현보살이 석가문이 좌우에서 보좌하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여의를
보현보살은 연꽃을 들고 있습니다.
하늘의 천신들도 제자들도 자리를 잡았죠.
염화미소의 주인공 제자 가섭도 함께했습니다.
석가모니를 모시며 가르침을 누구보다 많이 들은 아난을 비롯해
하늘과 땅에서 모여든 많은 제자들을 잘 배치해
설법의 웅장한 장면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세로 9미터, 가로 5미터가 넘는 거대한 그림
400년 가까이 된
괘불의 상태를 살핍니다.
(영산의 모임, 진천 영수사 괘불 전
2024. 5. 1~10.13)
(양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괘불이라는 거는
사찰에서 야외 의식이 있을 때 거는
아주 커다란 불화를 말하는데요.
진천 영수사 괘불에 나오는 인물은 총 140명이에요.
그래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괘불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나오는 괘불입니다.
특히 화면 오른쪽에 악기를 연주하는 천녀라든가
중앙에 이렇게 부처님을 향해서 절을 하는 인물이라던가
이런 모습들은 사실은 다른 괘불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거든요.
16세기 후반에 임진왜란이나 정묘호란이라는
굉장히 큰 우리가 전쟁을 겪고 나서부터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그런 사회적인 기능을 불교가 하면서부터 나온 그림이기 때문에
그 시대를 이렇게 헤쳐나 가면서 새롭게 만들어낸 또 그림이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가 좀 큰 그림인 것 같습니다.”
(송천 스님)
“법화경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불성이 있다’라고 하는 일승사상이 있습니다.
그 사상에 기반을 해서
모든 사람들은 이 부처를 보고
깨우칠 수 있다, 성불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설하신 겁니다.
부처님 살아계셨을 때는
불상이나 어떤 형상을 만들지를 않았고
부처님 돌아가신 이후에
많은 제자들 또 불교를 추정했던 신자들이
그리워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무불상 시대를 지나서 불상이 출연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조각이나 그림으로 많이 그려지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비록 상을 갖추고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절대적인 요소를 갖는 건 아닙니다.
다만 방편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부처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내 그림이나 불상을 통해서
‘이런 깨달은 사람이 있고, 이런 위대한 사람이 있다’라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산치 대탑)
붓다가 열반에 든 후
사람들은 그의 진신사리를 모아 탑을 세웠습니다.
당시에는 붓다의 형상을 감히 만들 생각을 못하고
상징으로 표현했습니다.
보리수 아래 빈 대좌는
깨달음을 얻은 붓다를 상징하는 것이었죠.
붓다의 가르침은 발자국과 수레바퀴로 새겨 놓았습니다.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붓다의 가르침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였죠.
(존 가이,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
“법륜의 상징은, 붓다의 가르침을 기리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입니다.
붓다 자신도 항상 말씀하셨어요.
‘나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나는 이 한평생으로 지나가지만
가르침은 계속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 가르침은 25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 다르마의 가르침은
불교의 핵심이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법륜입니다.
’가르침의 법륜‘이 ’다르마 차크라‘라고 불리는 이유죠.
(화엄사
전라남도 구례군)
(철한 스님)
1년 365일, 중생들의 평안을 기도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오늘 하루 무탈하기를 빌고 또 빕니다.
기도 스님의 큰 서원입니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사사자 삼층 석탑 맞은 석등 아래
한 스님이 차를 공양하고 있습니다.
(화엄사 공양석등)
스님은 화엄사를 영원토록 밝히겠다는
공양자의 서원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의 소원을 듣고 있는 스님은
연꽃 송이 하나 가슴에 품었습니다.
(화엄사 명부전)
절에는 생과 사의 공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명부전,
지장보살과 명부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한 전각)
여기는 사후 세계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명부에 가서
죄의 크고 작음에 따라
10명의 왕, 시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죄의 기록을 보고 시왕이 판결을 내리면
다음 생을 살거나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간다고 하죠.
무서운 경고만 하는 건 아닙니다.
지장보살이 우리를 구제할 서원을 세웠으니까요.
/모든 중생을 끝없이 제도해
마침내 그들이 모두 깨달음을 얻어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저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지장보살의 서원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
2024, 3.27~6.16, 호암미술관)
모두가 지옥에 가는 건 아닙니다.
극락도 있으니까요.
(아미타여래삼존도
고려 14세기, 리움미술관 소장)
극락은 아미타불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무아미타불의 아미타불이죠.
(이승혜, 리움미술관 학예연구원)
“나무아미타불은
나무는 인도말로 귀위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미타여래에게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아미타여래의 서방 극락정토에는
더 이상 고통도 없고 즐거움만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는
아미타여래가 다스리는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기를 빌었습니다.
임종의 순간에 아미타여래가
자신들을 맞이하러 오기를 바라는 신앙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고려를 비롯한 일본과 중국에서는
그 내영의 장면을 그린 불화가 많습니다.”
(내영도
아미타불이 죽은 자를 맞이해
극락으로 인도하는 내용을 그린 불화)
아미타불은 죽은 사람을 맞이하러 갈 때
지옥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
중생의 모든 괴로움을 듣는 관세음보살과
동행하기도 합니다.
(관동 관음보살 입상
백제 7세기 중반, 개인소장)
관세음보살
자비의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죠.
관세음보살의 서원은 이렇습니다.
“한량없는 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받을 때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한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흥국사 대웅전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 흥국사 대웅전
뒤편으로 가면
특별한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수월관음도
보타락산에 머무는 관세음보살이
달빛 아래 바위에 앉아
진리를 구하는 선재동자와 만나는 장면을 그린 불화)
진리를 구하는 구도자 선재동자는
지혜의 큰 스승을 찾아 남쪽으로 순례를 떠납니다.
험한 여정 끝에 달이 비치는 밤
남쪽 바다 바위 위에 앉아
설법을 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을 만납니다.
선재동자는
관세음보살의 발아래 엎드려 절하며
지혜를 구합니다.
보살이 되는 지혜죠.
중생의 모든 것을 보고, 보살피며
괴로움에서 구하고, 평등한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
그 이름을 부르며
거친 삶의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빌어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법산 스님)
무명無名
“어리석음이 무명이거든요.
무명을 밝혀서 지혜롭게
반야심경에 나오듯 지혜롭게 살자는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불을 밝히면서 이 등불이 내 마음이 되어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내 촛불을 붙여서
또 그 촛불도 밝고, 그 촛불도 밝고
그 마음의 촛불이 다 밝아져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밝은 마음으로 밝게
가다가 부딪히지 말고, 걸려서 넘어지지 말고
길을 잘 찾아다녔으면
그게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씀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관세음보살”
(송광사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 저녁 예불)
(법고, 북을 두드려 불법을 전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나는
이전도 지금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천명할 뿐이다
-상윳타 니카야, 아누라다경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습니다.
책임프로듀서_ 김한석
프로듀서_ 이지희
촬영_ 홍성준, 이희주, 조호영
활영보조_ 박부승, 김성경
동시녹음_ 김경수
조명_ 전명환
미국취재_ 이윤정 뉴욕PD특파원
종합편집_ 이영준
NLE_ 김미연, 윤민기
책보정_ 정해인
UHD리커넥트_ 박상옥
자막디자인_ 황은서
2D그래픽_ KBS미디어텍 이세연, 전혜정
나레이션_ 정형석
사운드마스터_ 김은웅
음악_ 이유미
작곡_ 최혜인
음향효과_ 이택환, 박효진, 이규범
행정_ 이지혜, 김하늘,
자료조사_ 지민정
조연출_ 이학원, 최희지
글 구성_ 김어흥
연출_ 류송희
제작_ KBS
다큐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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