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교장쌤 특강] 기대하지 마세요

Buddhastudy 2024. 4. 29. 20:21

 

 

우리의 존재 방식을 한번 정견하면서

깨달음을 다시 한 번 검토를 해봅시다.

 

꿈꿀 때는 어떤 꿈속에서 막 헤매고 있어요.

그럼 그게 이미 분별지이고 차별지야.

꿈속에서 생각도 하잖아요.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 보면

결국 꿈이라는 게 뭐냐면 이거였어요.

나도 모르는 어떤 마음자리 위에 뭔가가

안이비설신의가 살아서 움직였을 뿐이여.

 

꿈속에서는

네가 말이지 나한테 뭐 그런 심한 말을 했는데

오늘 드디어 네가 나한테 뭐 그러는구나

이건 자기가 만든 해석이고

그냥 꿈의 본질은 이거예요.

 

그럼, 현실하고 뭐가 달라요?

하나도 다른 게 없어요.

이걸 철저하게 요달해야 돼요.

 

그냥 일체가 다 이건데

뭘 여기 성내고, 화내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붙잡고 할 게 있어

그냥 바람 불면 부나 보다, 끝나면 끝났나 보다 하면 되는 거거든요.

여기에는 이 자리에는

나도 없고 너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깨달음도 없어.

그냥 이 자리가 스스로 존재한다는 거를

정견하고 확인한 것뿐이야.

거기다 굳이 깨달음이란 이름을 붙였을 뿐인데.

 

이게 옛날엔 안 그랬어요?

항상 이랬잖아.

여러분, 항상 이랬거든.

 

--미혹망상에서 깨어나기

근데 내가 미혹 망상으로

무슨 내가 깨달아 보니

라는 것도 분별이고

깨달아 보니도 분별이잖아.

 

그래서 묵조선 같은 그 선의 파에서는

애시당초 깨달음도 없다고 생각해요.

깨달음이라니, 이게 웬 분별 망상이냐

이렇게 말한 종파도 있어요, 중국에.

 

그래서 그냥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이것이 살아 움직이면서

그냥 안이비설신의 활동으로서 살아 움직이는 것뿐이에요.

그게 여러분이라고.

 

 

--본래면목이란?

 

본래의 면목이 그거요.

그냥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거야.

이렇게.

생명으로.

 

모든 생명을 있게 하고

모든 현상으로 나타나는 이것!

그냥 그것뿐이에요.

 

거기에 무슨 더 깊은 뜻도 없어.

무슨 깊게 들어,

깊게 들어가긴 누가 들어가고 어디로 들어가요?

그냥 이거라니까.

 

이거하고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딱 하나가 된 게 그게 깊은 거야. 깊다면.

 

그래서 생각으로 이해하면 안 되고

그냥 지금 이 순간도

생명이 살아 춤추고 있다라는 거를 정견하셔야 돼.

 

지금 여러분이 가만히 계신 것 같지만

여러분의 몸속에 심장이 지금도 막 뛰고 있으니까

여러분의 육체가 살아있잖아.

지금 생명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어.

살아 움직이니까 제가 이렇게 앞에서 말이 많은 거예요.

또 여러분 알아듣고 계시잖아.

 

그러니까 이 생명으로 드러나는 이 자리

이 자체가 그냥 법신이라고요.

이게 부처고, 이게 성품이여, 이게 본래면목이고 별거 아니에요.

알고 보면 간단해.

 

문제는

이거하고 확실하게 하나 되는

그게 아공법공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럼, 거기에 무슨 내가 어디 있고

니 생명 내 생명이 줄 그었어요.

여기까지는 내 생명, 여기서부터 네 생명 이러나?

아무 경계가 없거든.

일체가 그냥 하나거든.

 

이게 마치 우주에 물, , 우주의 기본 요소들을 봐요.

, , 전기 이런 것들이

우리는 그게 부분적으로 막 생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것들은 하나의 원리처럼 그냥 있어. 섭리처럼. 그죠.

 

근데 어떤 부싯돌을 친다든가

전기를 이렇게 벼락이 친다든가

뭐 전등을 킨다든가 하면

그때 환경과 조건에 맞게 자기를 드러낼 뿐이지

이게 생멸이 있고, 어디에만 있고, 이런 건 없어.

언제 어디서나 조건만 맞으면 나와.

마치 이와 같아요.

 

그러니까 생명이라는 게 생멸하는 게 아니고

항상 있는데

난자 정자가 만나야 인간으로 태어나죠.

그러면 또 난자 정자가 없을 때는 죽은 거 아닙니까?

이런 분별 망상을 떨어요.

난자 정자가 있으려면 생명부터 먼저 있어야 될 거 아닌가?

 

우주의 인간이 먼저예요? 생명이 먼저예요?

생명성이 먼저지.

우주의 얼음이 먼저요? 물이 먼저요?

 

 

--삶이 곧 이 생명의 자리!

 

그래서 여러분이 잘 보시면은

간밤에 아무것도 없었다가

아침이 되면 또 이렇게 세상 삶이 시작됐다가

또 오늘 밤에는 또 아무것도 없어졌다가

또 내일 아침에 또 시작됐다가

계속 이러죠.

, 그게 이거 아닌가?

 

동그라미가 간밤에 아무것도 없던 거라고 해봐.

그러면 이 화살표가 아침에 이렇게 딱

지금 이렇게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거 자체가 화살표예요.

그러니까 삶 그 자체가 이것뿐이라니까

이게 삶의 제1원인이야.

 

그래서 이게 부처 자리고, 신의 자리고, 하나님 자리고, 진리 자리예요.

그냥 이 생명 그대로가

이게 우주를 딱 살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우주로 자기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근데 생사라고 하는 생각을 해서 여기 떨어지는 거야.

생사라는 건 이 몸에나 있지.

이 자리는 생사도 일어나려면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려면 바다가 있어야 되듯이

생사도 일어나려면 이 자리부터 있어야 돼요.

 

생명이 먼저 있어야 몸이 태어나지

몸이 태어나서 생명이 들어오는 거예요?

난자 정자부터가 생명인데.

난자 정자 만드는 것도 생명인데.

 

그러니까 이 자리가 있어야

태어나는 것도 가능하고 죽는 것도 가능해요.

죽는 것도 이거 없으면 못 죽어.

 

그래서 반야심경에 보면

이 자리야말로 조견오공개공도 하니까 일체고액

모든 게 다 평등지에서 보니까 분별 차별에 불과했구나.

일체고액을 도_넘어서고

이 자리를 보니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구나.

항상 여여했구나. 영원하구나.

 

반야심경 얘기가

제가 이렇게 그림으로 그리면 이거예요.

이게 반야심경이에요.

 

 

--진리는 이미 깨어있다

 

그런데 이 본래면목은 이미 진리잖아.

이미 진리고 이거로 지금 이것이 우리로 변신해서 살고 있는 거야.

예를 들면

여러분 H2O가 허공에 꽉 찼지만 얼음으로 잠시 나타났어요.

?

날씨가 영하거든.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조건 환경이 되면

이런 몸으로 나타났단 말이에요.

무지개 몸이 펼친 우주가 돼서 일부가 이렇게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이 진리는

이미 항상 이 자리에서 여여하게 잘 있어, 이미 깨어 있어.

 

사실은 내가 깨어난다라는 것 자체가 분별 망상이에요.

내가 뭘 깨어나?

그냥 정견만 하면 이미 그것으로 깨어 있어.

진리가 현재 잠자고 있나?

진리는 항상 깨어 있지.

 

 

--정견하라! 오온개공!

 

이미 진리는 완벽하기 때문에

내가 수행해서 깨나는 게 아니고

내 분별망상만 딱 떼면

그냥 진리가 바로 나하고 합체하는 거예요.

이미 합체돼 있지.

 

그래서 오온개공 명상을 철저히 정견하면

그냥 진리하고 하나 되는 길이다, 이 말씀입니다.

 

, 그래서 이미 있는 그대로가 진리 아닌 게 없고

평등지와 차별지라는 것도 또 분별해서 만든 방편이지

사실은 다 그냥 진리의 활동이에요.

그래서 산이 다시 산이 되는 소식이야.

 

평등지만 딱 들어가 있으면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지만

다시 이게 산이 산이 되고, 물이 물이 되는 소식이 이거예요.

 

지금 진리의 무지개 몸이

한껏 그것이 펼친 우주를 쫙 펼쳐서 이런 몸도 생기고

그래서 이것이 꿈을 꾸고 있죠.

진리를 찾겠다.’

내가 깨달아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내가 깨달아서 어떻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라는 것만 내려놓으면 이미 깨달아 있어.

 

그러니까 마치 이게 뭐와 같으냐면요.

이 스테레오에 보면 돌비 시스템이라는 게 있어요.

돌비 시스템은 뭐냐 하면

음질의 소음을 제거하는 시스템인데

소음을 일으켜서 소음의 이 주파수를

그거하고 거꾸로 되는 주파수를 일으켜서 이걸 제로화시켜 버려요.

 

그게 돌비 시스템 원리인데

마치 불교는 그와 같이

모든 깨달음의 방편은

다 분별입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것도 사실은 다 분별이야.

이 분별을 일으켜서

우리의 번뇌망상이라는 분별을 제거하고

스스로 사라져 주면 돼.

그럼 이미 있는 그대로 완벽한 거예요.

 

진리는 얻는 게 아니고

이미 있는 걸 확인하는 거예요.

 

 

--알쏭달쏭 생각으로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본래 이미 부처였고

본래 이미 성불해 있어요.

 

근데 이 말을 들어도 큰 환희심이 안 일어나고

글세, 그럴까? 말은 그럴 듯한데등등

여러분이 알쏭달쏭한 것은

이 중생심의 무게 때문에, 업장 무게 때문에,

생각에 쩔어서

생각으로 바로 그냥 무슨 뭐 4 곱하기 4는 얼마입니까?

16이다.

이런 식으로 답을 구하니

그래서 알쏭달쏭한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