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62. 여성 수행자의 기구한 사연

Buddhastudy 2019. 5. 15. 20:36


오늘도 여성수행자들에 대한 얘기를 계속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연화생녀이라고 하는 비구니가 계셨습니다.

이분은 비구니가운데에서는 신통제일이다. 이렇게 알려지신 분이에요.

이 비구니스님도 아주 사연이 기구했습니다.

 

제가 이 비구니스님들의 사연에 기구함을 말씀드리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나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거고요,

그러나 그런 고통 속에 살던 분들이 부처님 법을 만나서 어떻게 해탈을 할 수 있었는가

이런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연화생녀라고 불리는 비구니스님은 그 세속적인 생활에 여러 가지 조금씩 조금씩 다른, 경전마다 사연이 조금씩 다릅니다.

고귀한 집안의 여인으로 태어났다 하는 것부터 가난한 집안에 여인으로 태어났다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기록상의 문제이고, 내용의 본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저는 그 가운데에서 한 얘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연화생녀는 원래 가난한 집에 태어났습니다. 신분도 낮은 집에서.

그런데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다웠어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에게 청혼을 한 거요.

남자들이 여자들을 데려갈 때는 당시 사회에서는 많은 돈을 주고 데려가나 봐요, 사다시피.

그러니까 이 아버지는 형편이 어려우니까 누구든지 돈 많이 주는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던 거요.

 

그런다보니까 아직 딸은 어린데, 딸의 아버지뻘 되는 나이 많은 남자가 돈을 많이 주고 이 소녀를 데려가게 된 거요.

이렇게 해서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아주 호화롭게 편안하게 잘 살게 된 거요.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돈을 많이 받은 아버지가 그 돈을 가지고 술을 먹고 흥청망청 낭비를 하다고 결국은 다 탕진하고 병들어 죽게 된 거요. 어머니가 혼자 살게 되니까, 딸은 어머니를 데려다가 함께 살게 된 거요.

 

이렇게 함께 살면서 또 자신의 딸도 낳아서 아주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어머니와 남편이 연애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거요.

그러니까 이 딸이 아직 열몇 살 밖에 안 되니까, 어머니도 나이가 많아야 한 30대 초반이나 이렇게 될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남편이 어머니와 나이가 같거나 오히려 많은 사람이니까, 이렇게 따지고 보면 장모가 되지만, 나이로 보면 이게 다 같은 동년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남편이 죽고 혼자 있는 여자니까 누가 가져도 된다. 제가 몇 번 말씀 드렸죠.

그리고 또 천한집의 여인이니까, 이런데서 이 남자는 자기 아내의 어머니도 또 쾌락을 즐긴 거요. 이게 당시 사회라는 거요.

 

지금 입장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느냐 하지만, 당시 사회는 아까도 얘기했지마는 여성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니에요.

이런 내용은 비일비재하게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부인이 얼마나 그걸 보고 환멸을 느끼고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그 집을 뛰쳐나오게 된 거요. 그래서 아예 다른 도시로 가버렸어.

아직 젊잖아요. 이제 15, 16살밖에 안 된단 말이오.

뛰어난 미모니까 또 딴 돈 많은 부자가 보고 또 데려가서 결혼을 한 거요.

이렇게 해서 그 장자와 결혼해서 잘 살았습니다.

여긴 제법 한 10년 가까이 행복하게 다 잊어버리고 잘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먼 다른 도시에 장사를 갔다가 돈을 다 잃어버렸다면서 그냥 돌아온 거요. 그리고 또 돈을 새로 가져간 거요. 도둑을 맞았다면서. 그런가보다 했어요.

그 이후부터 남편은 그 도시로 장사하러 간다면서 가서는 항상 오래 머물다가 오고, 오래 머물다가 오고 그래요.

 

그대로 아내는 남편이 하는 일이니까 그런가보다 했죠.

남편이 오래 집을 비운 사이에 남편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혼자 있으면 적적하지 않느냐. 나하고 연애라도 하자.

그래서 거절을 한 거요.

어떻게 친구로서 그럴 수가 있느냐?” 이렇게 거절을 했더니 그 남편 친구가 웃으면서

당신 남편도 지금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런데 왜 당신 혼자 외롭게 살 필요가 뭐 있냐?”

그게 무슨 소리냐?”

남편이 돈 잃어버렸다며 가져간 적이 있냐? 바로 그 때다. 저 다른 도시에 아주 젊고 예쁜 여자를 그때 돈을 주고 사서 살림을 차려놓고 요즘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거기에 살고 있다. 그래서 집을 맨날 비우고 거기가 있다. 그런데 뭣 때문에 홀로 외로이 사느냐? 나하고 즐기자.”

 

그런데도 거절을 하고, 남편이 언젠가 돌아왔을 때 물어봤어.

남편이 사실이라는 거요. 요즘 같으면 발뺌을 하고 난리가 나겠죠. 그 당시는 돈 있는 남자는 제1, 2, 3 부인을 둘 수 있는 시대에요.

그래서 이 부인이 남편에게 제한을 한 거요.

나도 이렇게 혼자 있으면 쓸쓸하고 당신도 두 집 살림 차리려면 돈도 많이 들고, 내 질투 안할 테니까, 그 여인을 데려와서 같이 살자.” 이렇게 남편에게 자꾸 권유를 한 거요.

 

그런데 남편이 변명을 하기를, 내가 그냥 바람이 난 게 아니고, 혼자 적적하고 외로운 것도 있었지만, 그 아이가 너무 당신을 닮아서 그 아이를 보면 당신 생각이 나서 그랬다. 그러니 용서해 달라는 거요.

그렇다면 잘됐다. 데려와서 같이 살자.

이렇게 남편을 자꾸 꼬드겨서 데려와서 한 집에 살게 된 거요.

 

그런데 정말 두 번째 부인이 자기가 봐도 귀엽고 예쁘고,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거요.

그래서 마치 동생처럼, 딸처럼 생각하고 한 집에서 잘 지냈어요.

오히려 어린 부인이 함부로 해도 마치 어머니가 딸에게 아량을 베풀 듯이 그렇게 베풀면서 살게 된 거요.

 

그런데 어느 날 둘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고향이 어디냐? 아버지는 누구신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까, 이 부인이 자기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자기 딸이에요.

그래서 너무너무 놀라서 말도 못하고, 그래서 집을 뛰쳐나온 거요.

 

인생이 얼마나 기구합니까. 어려서 돈에 팔리다시피 시집을 가고, 시집을 가서 얼마 있지 않다가 자기 어머니와 한 남자를 두고 경쟁을 해야 했고, 또 뛰쳐나와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좀 살았는데, 자기 딸과 또 한 남자를 두고 시기질투를 해야 된단 말이오.

 

너무너무 인생이 환멸스럽고 그리고 남자에 대한 증오심이 너무너무 불탔던 거요.

그래서 다시 집을 뛰쳐나와서는 기생이 된 거요.

다시 딴 남자 만나서 결혼을 안 하고 아예 기생이 되어버렸어.

그런데 이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원래 영리한 사람에다가 복수심이 있고 이러니까 남자들을 잘 다뤘나 봐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이 돈 있는 장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왕자들이거나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서 사업이 굉장히 번창하게 된 거요. 요즘 말하면 요정이 점점점점 커진 거요.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이 여인을 만날 수가 없어.

그래서 이 여인은 다시 다른 유녀를 두게 되고, 이렇게 해서 유녀가 500명이나 되는 큰 유곽의 사장이 된 거요. 그러니까 명성도 났던 거죠.

 

당시 사회에서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차한 대가 아니라 아파트 한 채 값이라도 주고 만나려고 하는, 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사업차 왔다가 이 여인을 만나서는 사업자금 다 탕진하고 돌아가는, 한 마디로 말하면 남자의 채무를 다 뺏은 거요. 그래서 점점 커졌던 거요.

이렇게 수백 명의 남자를 파산시켰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도 마음속에는 복수를 하고 나면 좀 시원해야 될 거 아니오. 그죠? 그래도 이 마음에 허전함이 공함이 가시지가 않는 거요.

그때 마침 부처님께서 이 도시로 오시게 되었고, 이교도들이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존경하고 따르니까 어쨌든 부처님을 명예훼손을 시키기 위해서 온갖 수작을 해도 성공을 못했던 거요.

 

그래서 그들이 생각할 때, 이 여인에게 이 여인이 부처님을 유혹하게 하는 게 어떤가 해서 십만금의 돈을 주고 여인에게 부처님을 타락시켜달라고 제안을 했던 거요.

여인이야 돈이라면 뭐 당연히 승낙을 하죠.

그런데 이 여인은 물론 돈 때문에 승낙도 했지마는 그 늘 마음이 공하니까, 그 분은 일체를 깨달았다니까, 뭔가 그분은 나를 나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내면의 다른 희망도 있었던 거요.

 

그러나 이 여인은 이제 부처님을 유혹하기 위해서 잘 차려입고 화려한 마차를 타고 뒤에 오백유녀를 거느리고 부처님 오는 길을 맞이하러 나갔던 거요.

부처님은 앞에서 다 떨어진 옷 입고 깡통하나 들고 뒤에는 거지가 쭉 따라오는데, 이쪽은 화려한 여인 500명이 길에서 만났다.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런데 이 여인이 마차에서 내려서는 부처님께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내가 듣기로 당신은 일체 중생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체 남자를 좋아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당신의 가르침을 따라서 다 훌륭하다고 들었는데,

나의 제자들도 남자를 좋아하는 데는 다 일각연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면서 부처님께 도전장을 낸 거요.

 

부처님께서는 이 여인을 물끄러미 보시다가

여인이여, 당신은 지금 뭔가 복수심에 불타있다. 수많은 남자들에게 당신은 복수를 하고 있는데, 그런데 여인이여, 사실은 당신과 똑같은 불행을 안은 여인이 계속 생겨날 뿐이다.

여인이여, 원한으로 원한을 없앨 수가 없다.

 

이렇게 얘기할 때 문제의 본질을 깨달은 거요. 사실은 이 여인은 그런 어떤 복수심, 그리고 그 집이 가난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오는 그런 기구한 운명 때문에 재물을 모으고 남자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남자들을 파산시키고 했는데, 사실은 그 남자들의 집에 가보면 다 자기 남편처럼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을 파괴했을 때 사실은 수많은 여인들에게 피눈물을 준 거 아니겠어요.

 

그걸 깨닫게 되고 너무너무 자기가 어리석고 바보같은 짓을 한 거요.

그래서 무릎을 꿇고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랬을 때 부처님께 법을 설했고, 그는 법을 듣고 깨쳤던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 출가하기를 청했고, 부처님께서 출가를 승낙하셨습니다.

그때 그 500여인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다 출가하기를 발원했고 다 출가를 했어요.

 

여성출가만 해도 어려운 일인데, 유녀가 출가를 했다. 유녀라는 건 당시 사회에서 제일 천하게 여겨진 집단 아닙니까. 우리 조선시대에도 7가지 천인 가운데 기생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거요.

그러니까 스님들이 탁발을 하러 가게 되면 유녀들이 다 스님이 되었다니까, 스님은 비구니스님들을 다 유녀로 보고, 비구스님들에 대해서는 그 유녀들하고 가까이 지낸다는 온갖 험담과 비난이 쏟아졌던 거요.

그리고 더럽다고 걸식을 가면 주지도 않았어요. 밥을 안 줬단 말이오.

자기들은 다 성스러운 사람한테 줘서 복을 짓고자 하는데, 그런 더러운 인간들에게 뭘 주겠느냐.

 

그러니까 부처님제자들 사이에도 내부에서 문제가 많이 제기 되는 거요.

여성의 출가도 문제가 있는데, 하물며 유녀를 그것도 한꺼번에 저렇게 많이 출가를 시키니, 이게 사회적인 저항과 무리가 얼마나 크겠느냐.

 

부처님께서 여래는 법다이 설할 뿐이다.

어떤 사람도 이 좋은 법을 듣고 귀의하지 않는 자가 누가 있겠느냐.

세속적인 비난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러니까 그 비난에 대해서 해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신 거요.

왜 그럴까?

비난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시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사회적으로 큰 저항에 부딪힐 거라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아시고 계셨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길이라는 거요.

이것은 허의식, 거짓된 의식 속에서는 큰 사건이지만, 진실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가야할 길이다.

부처님께서는 그 때를 기다리신 거다.

 

여성의 출가라고 하는 것은 출가한 여성들 개인에게도 이 사회적인 관습으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마는 또한 부처님에게도 승단에도 많은 문제가 제기된 거요.

그래서 나중에는 이 여성출가를 허락한 거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이 나오게 된 거요.

그래서 이 죄를 다 누구에게 덮어 씌웠어요?

부처님이 잘못했다.’ 이렇게 말할 수 없잖아.

우리가 부처님을 존경하는데 부처님이 뭔가 잘 몰랐다. 글렀다. 이래되면 이게 성립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죄는 다 아난존자에게 뒤집어씌운 거요.

 

부처님이 안 된다고 했는데 아난존자가 자꾸 가서 이야기를 해서 부처님이 할 수 없이 승낙을 하셨다.

그래서 부처님이 여성출가 때문에 정법이 500년 일찍 망할 거라고 말씀하셨다든지, 정법이 500년밖에 못갈거라고 말씀을 하셨다든지. 이런 식으로 나중에 얘기가 되죠.

 

그러나 부처님이 이 출가를 허락한 게 잘못됐다고 하는 게 숫제 낫지, 아난존자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부처님이 안 된다고 했는데 아난존자가 사정을 해서 됐다. 나는 이렇게 말하면 더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거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런 데서 여성의 출가는 사회적인 저항이 많았고,

결국은 후대에 이것이 폐지가 되어버린 거요.

 

부처님께서 아시고 부처님 당대에 그걸 실천을 못했다 하더라도 후대에는 오히려 그걸 실천을 해야 되는데, 부처님께서 실천하셨던 것마저도 후대에 다 없애버렸다는 거요.

그걸 감당을 못해서.

 

이런데서 우리가 붓다의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부처님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저 마음만 다스리고, 이런 수준을 넘어서는 거다.

 

마음에 아무 번뇌가 없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 대해서도 초연할 수가 있었고,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그분께서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신 거요.

어떤 고집이 아니라 그런 거짓에 휘둘리지는 않으셨다.

 

이런데서 오늘 우리 불자들은 이렇게 훌륭하신 부처님을 우리가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 이분의 가르침을 다르고 있다는 것, 이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당당하신 분, 이렇게 지혜로우신 분, 이렇게 사람들의 아픔에 함께 하신 분,

이런 분의 제자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 불자들이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부처님 제자 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당당함이 우리 불자들에게 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