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원빈스님_shorts 37

[shorts, 원빈스님] 죽음의 예고편

특히 누군가를 간병하거나 지인이 지금 이 병상에 있거나 이러면 저런 과정들을 잘 알아야 돼요.그래야 예측을 할 수가 있어요.  죽음이라고 하는 건 삶의 원동력이 사라지는 거니까 몸과 마음을 이루는 요소가 분해되는 겁니다. 몸이 자꾸 땅바닥으로 들러붙고 못 일어나겠는 거예요. 수의 요소가 붕괴되는데 수는 물의 요소예요. 그래서 입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합니다. 화의 요소가 붕괴되는데 추워져요. 입술이 파래지기 시작합니다. 그다음에 풍의 요소가 붕괴됩니다. 풍의 요소가 붕괴되면 그럼 뭘 보냐면 환영을 보기 시작합니다.헛걸 보기 시작하고 이제는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는 거예요. 저 예고편을 기억을 해야 자기가 죽을 때도 주변에 누군가 죽어갈 때도 그 사람이 죽어간다라는 걸 감을 잡을 수가 있어요.

[shorts, 원빈스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만약에 지금이라도 우리가 출발점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시간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다 똑같은 출발점에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만약에 지금 내가 충분히 쓸 돈이 있다. 그러면 시간을 사는데돈을 절대 아끼면 안 돼요. 그중에서 하나가 뭐냐면은요 책을 사는 데 절대로 돈을 아끼지 마세요. 책은 가장 싸게, 가장 저렴하게 저자의 시간을 사는 겁니다.저자가 10년, 20년, 30년 정제한 이 지식, 이 정보를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는 거예요.

[shorts, 원빈스님] 불안한 삶에서 안심을 찾기 위해 배워야 할 금강경

한마디로 요약하면 “불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자유를 얻기 위해서 금강경을 배워야 한다.”이렇게 요약을 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대자유]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말씀하시는 대자유는 한마디로 표현할 때 뭐라고 하냐면 [안심]이라고 표현을 해요.

[shorts, 원빈스님] 죽음이 불안한 이유는?

몸이 없는데 몸이 있는 느낌이 있는 걸 거예요. 그러니까 몸이 없는 것 같은데 느낌은 몸이 경험이 되는 거예요. 이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전형적으로 경험하는 곳들이 있거든요.여정. 여정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근데 그 여정은 전부 다 혼란의 연속입니다.왜 그럴까요?  이유는 굉장히 간단해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워서 그래요.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은 경우가 만약에 더 많다면 죽음의 여정은 평화로울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란스러우니까 그 혼란을 가중시키는 겁니다.중요한 건 염불. 부처님을 염하고, 기원하고, 찾는 마음이 이것에 익숙해지고 숙달된 마음이 죽음 이후에 자기 자신과 존재들을 도울 수 있다라는 거예요.

[shorts, 원빈스님]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우리의 뇌는 부정어로 입력이 불가능해요. 긍정어로 해야 돼요.긍정어로.  예를 들어서 화를 잘 내요. 그러면 “화를 내지 말아라.” 이거는 입력이 잘 안 돼요. 그런데 “화를 조절해라.” 이것은 입력이 돼요.  둘은 비슷한 효능을 보이거든요.근데 명령어가 “화를 내지 말아라.” 이건 화를 내게 돼 있어요.뭘 더 입력한 거냐면 화를 내라고. 그런데 “화를 조절해라.”이 입력어를 쓰면 화를 조절하는 방향성으로 뇌가 흐르게 되어 있어요, 생각이.  정반대로 적어보면 자신이 뭐 하고 싶은지가 어떻게 뇌에 입력을 해야 되는지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shorts, 원빈스님]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이유

왜 끼리끼리 모이느냐?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서로 공진한 거예요.비슷한 진동수끼리 모인 겁니다.  자신의 수준을 가장 객관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가 뭐냐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냐면 당사자,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에요.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죠. 아주 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비슷한 진동수의 사람들이 모인다.

[shorts, 원빈스님] 죽을 때 주마등이 스친다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이 세상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걸까? 누구에게만 자신 있으면 되냐면 자신에게 그 주마등이 자신의 두려움과 후회를 불러일으키는 장치가 아니라 기쁨과 평화를,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장치로 활용하기 위해서 임종을 잘 준비하고 삶을 잘 살아가는 그런 요기(수행자)들이 되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shorts, 원빈스님] 기도는 왜 하나요?

기도하는 목적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축복을 받거나 길상한 징조를 찾거나 아니면 행복을 추구할 때 1번으로 해야 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이다.일단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올바른 방법으로 했어요.”“최선을 다해서 했어요.” “할 수 있는 최고 노력을 다 했어요.”그리고 나면 그다음에 뭘 하는 거냐면 이제 자신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shorts, 원빈스님]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면

인과관계를 보셔야 돼요. 왜 혼자 있는 걸 연습하는가? 결국은 죽음을 삶의 평균 모델에서 볼 때 노년 이후에 맞이한다고 생각을 할 때 이런 평범한 라이프 스타일에서 볼 때 이 패턴에서 놓고 볼 때 죽음의 직전에는 노년의 생활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죽기 전에 최소한 뭘 견딜 수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거냐면 혼자 있는 것 외로움 혼자 있는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그래야 죽음을 맞이할 때 편안할 수 있는 거예요.

[shorts, 원빈스님] 나는 죽으면 어디에 태어날까?

꿈속에서의 경험을 잘 살펴보면 자기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그리고 죽음 이후 어떤 경험을 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금 당장 만약에 죽는다면 지옥 아귀 축생 면할 것 같으세요? 못 면할 것 같으세요?  겸손하게 대답하실 필요 없어요.객관적으로 아주 객관적으로 자기를 볼 때 지옥 아귀 축생은 면할 것 같으세요? 못 면할 것 같으세요? 면할 것 같으세요?  같은지 안 같은지는 꿈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거예요.꿈의 내용. 꿈속에서 맨날 쫓겨. 꿈속에서 맨날 울어. 꿈속에서 맨날 우울해요.꿈속에서 맨날 사람 죽여요.  이러면 지옥 아귀 축생을 면할 수 있다? 없다? 없다는 증거예요.

[shorts, 원빈스님]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선해야 되는 이유는 다른 게 없어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때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저 그렇게 중립적으로 산 분들이든 전부 다 광명으로서의 부처님이 찾아오십니다. 다만 그 광명을 선하게 산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손을 잡고 악하게 산 사람들은 그 광명으로부터 도망갈 뿐이에요. 선하게 살아야 되는 이유는 다른 게 없어요. 자신에게 다가오는 광명으로서의 부처님의 손을 잡기 위해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shorts, 원빈스님] 죽으면 진짜 끝일까?

죽으면 끝일 것인가? 연속되는 것인가?  이럴 때 부처님께서 보통 어떻게 답변을 하시냐면 그러면 둘 다 증거가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생각을 해보자고 그러세요.다른 방향으로.  뭘 생각을 해보냐면 둘 다 증거가 없으면 두 가지가 다 가설이거든요, 가설. 증명이 되지 않은 주장, 가설.  그러면 두 가지 가설 중에 무엇을 받아들이는 게 내 남은 삶의 행복에 도움이 될지 이걸 따져보자고 얘기를 하세요. 부처님은 “본인이 확인했다 그래서 무조건 믿어라” 이렇게 강압하시는 분이 아니에요.사실은 지극히 실용적인 분이에요. “무작정 믿는 거는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그거 증명할 수 없으니 뭐가 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가, 한번 따져보자.”

[shorts, 원빈스님] 유언장에 꼭 써야 하는 내용

유언장을 적으실 때 두 가지를 분명하게 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첫 번째는 장례를 어떻게 어떤 절차로 할 것인가? 두 번째는 그 장례와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기부를 좀 해야 될 거 아니에요?살아생전 기부를 못했으니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라도 학교, 병원, 그리고 각종 사회시설에 기부를 좀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러면 얼마큼을 장례 비용으로 쓸 것인지 공양금, 기부금으로 쓸 것인지까지 정확하게 비율을 적어두시는 게 좋더라. 이 정도까지 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면 현실적으로 죽음을 준비하기 전에 생각해 보고, 정해야 되는 것들이 어느 정도 내용이 정리가 되는 겁니다.

[shorts, 원빈스님] 죽기 직전에 꼭 들어야 하는 말

생각해 보세요. 살아있을 때 지금 옆에 있는 사람한테 “극나게 태어나야지” 그러면은 그런 마음을 일으켜요? 안 일으켜요? 안 일으키죠?근데 죽기 직전에는 다 일으켜요. 왜 임종의 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하냐면 그때는 누구나 무섭고, 누구나 간절해요. 그래서 진짜 누가 한마디만 해주면 그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거든요. 근데 그 한마디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제가 ‘불교식 호스피스 교육을 받아야 된다’라고 하는 이유는 그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누가 죽음을 맞이하려고 한다 그러면 반복적으로 얘기해 주셔야 돼요.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좋은 세계래. 돌아가시면 그쪽에 왕생하세요.”

[shorts, 원빈스님]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

남을 조종하려고 하는 태도를 가지고 관계를 맺으면 서로 극혐하는 상대가 될 수 있어요. 모르는 사람한테 ‘삶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참견을 많이 하나요?아는 사람한테 참견을 많이 하나요?  아는 사람 중에서도가끔 보는 아는 사람한테 참견을 많이 하나요?매일 보는 친구나 가족들한테 참견을 많이 하나요? 그래서 친구나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되는데 이 수면 밑에서 혐오하게 되는 거예요.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를 잘 모르는 겁니다.‘상대방을 위한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체를 잘 모르는 거예요. ‘상대방을 위한다’라고 하는 건 상대방의 뜻을 인정해 주고 그것을 존중해 주고 이것이 상대방을 위한다라는 건데  그게 아니라 “그 길이 잘못된 것 같으면 때려서라도 이렇게 가르쳐야 된..

[shorts, 원빈스님] 장례식장에서 울면 일어나는 일

온 지인들이 울고, 비탄에 빠지고, 슬퍼하고, 싸우고 이러면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이런 심상으로 나타나는 거예요.천둥이 치는 것처럼 느껴지고 피의 폭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느껴지고,달걀 크기의 고름과 물이 마구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생각을 해보세요.이런 경험을 만약에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숙련된 명상 수행자도 의식의 집중이 깨질까요? 안 깨질까요? 깨집니다.  깊은 선정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아니면 깨져요.이런 경험들이 일어나면. 하물며 불안에 떠는 사람은 정말 큰 공포에 빠지겠죠. 우리는 누군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앞에서즉 시신 가까이에서, 또는 시신이 있는 장소 가까이에서 울고 슬퍼하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하는 걸 멈춰야 돼요.

[shorts, 원빈스님]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법

그러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게 바로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거냐면 일단 한다.일단 시작한다.  반드시 욕망이 필요해요, 반드시. 욕망이 없으면 진짜 이거는 친구 따라 일단 시작이라도 해야 돼요.그래서 일단 움직이면 달라져요, 움직이면.마음이든 몸이든 일단 움직이면. 그러면 달라져요.왜 달라지냐 하면 움직이는 순간 몸과 마음이 우리 온 몸 시스템에, 온 마음의 시스템에 어떤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냐면 ‘움직이는 모드’로 바꾸라고 ‘모드’가 바뀌는 거예요.‘상태’가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먼저 시작해야 돼요.

[shorts, 원빈스님] 말 잘하는 방법

존경받는 선배가 되고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존경받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고 존경받는 스승이 되려면 말을 정말 잘해야 돼요. 근데 말의 원칙은 이렇게 하는 거예요. 밀당인데, 기본적으로는 침묵의 배경을 잘 쓸 줄 아셔야 돼요. 왜냐하면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은 말에 힘이 없어요.목소리 자체에도 힘이 없어지고요. 그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도 너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니까 그 말이 잘 안 들리는 거예요.그러니까 말을 떠드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주변에 침묵의 배경을 만들 줄 알아야 돼요.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죽음의 순간에는 모든 걸 뺏긴다! 주는 법을 연습하기

사실은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때 모든 걸 뺏기게 되어 있어요. 무엇을 뺏기느냐? 첫 번째 재물을 뺏깁니다. 죽음에게 뺏기는 거예요. 두 번째 자신의 육신을 뺏깁니다. 세 번째 자신의 기억을 뺏겨요. 우리가 만약에 기억을 들고 갈 수 있으면 다음 생에 태어나자마자 ‘내가 어디에 누구였지’ 생각이 날까요? 안 날까요? 나겠죠. 안 나는 건 뭐냐면 뺏겼다는 거잖아요. 우리는 죽음의 순간 모든 걸 뺏기게 되어 있어요. 재물, 사람, 명예, 몸 그리고 정신까지요.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는데 죽음의 순간에는 모든 걸 뺏긴다. 이 전제에서 생각하면 원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거냐면 [주는 법을 연습하면서 살아야 돼요.] 이유는 어차피 이것은 뺏길 거니까. 정말..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극락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자 생각해 보세요. 천상하고 극락은 완전히 틀릴까요? 갑자기 극락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요? 불교는 그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아요. 극락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천상세계에 모티브가 있어요. 천상세계의 환희동산이 극락과 똑같은 모습이라고 얘기합니다. 천상세계에는 한 층 한 층마다 욕계 천상에는 환희동산들이 있대요, 환희동산. 환이 동산 무슨 뜻이냐면 들어가면 환희만 있다는 거예요. 극락이라는 뜻이죠. 근데 그 모습을, 그 디자인을, 그 기능을 모티브로 삼아서 단점을 조금 보완해서 극락세계가 만들어진 거라. 그러니까 단점이 뭐냐 하면 들어가면 너무 좋아요. 그럼 정신을 차려요? 못 차려요? 그래서 시간이 빨리 가는 거예요. 수명을 다 해버리고, 공덕을 다 써버려요. 그러니까 약간 무슨 도박장이랑 비슷..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꿈속에서 죽고 있다면 부처님이 오실까? 신심이 중요한 이유!

꿈을 꿨어요. 꿈을 꿨는데 자기가 죽는 거예요. 죽는 꿈 안 꿔보셨어요? 누가 쫓아와서 자기를 죽이는 거 말고 어떤 상황이든 정말로 죽음의 과정을 가서 ‘내가 이제 죽는구나’라고 해서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렇게 하는 꿈 그런 꿈 안 꿔보셨어요? 엄청 재밌거든요. 이게 꼭 꿔봐야 돼.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이런 꿈을 꿔요. 이런 꿈을 꼭 꿔봐야 돼요.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른다니깐요. 근데 기대가 되려면 배웠어야 기대가 되는 거예요. 평화로운 죽음, 기쁜 환생을 준비했다면 정말로 죽음을 맞이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잖아요. 그러면 첫 번째는 무섭겠지만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인정이 되면서 은근히 기대가 돼. 자기가 꿈인 걸 알기도 해요, 사실은. 내가 꿈속에서 죽는 건데 어떤 의문이..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방법!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만약에 누군가, 자의 지인 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분이 생길 수 있겠죠. 그러면 그분이 돌아가실 때 그 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 중에 하나는 죽음을 인지시키는 겁니다. “당신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경험이 시작되면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걸 인지시키는 거예요, 인지. 생각해보세요. 어떤 생각이냐면 자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복권을 사야 돼요 그러면 ‘잠자기 전에 복권을 사야 된다’ 옆에서 누가 말해 주는 게 다음 날 기억나 기아 쉬울까요? 말 안해주는 게 기억나기가 쉬울까요? 말해주는 게 쉽겠죠 그래서 요즘엔 “지니야, 말해 줘” 아침에 깨워주고 말해주고 막 이러잖아요. 별거 아닌 것 같은 이런 도움들이 사실은 굉장히 그런 도움을 받기 희유하고 희박한 확률의 도움..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영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 한국 불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영가들이 살아있는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악영향을 미치는가? 이걸 잘 이해를 해야 돼요. 그러니까 그 악영향을 미치면서도 다가오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봐야 이게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해결을 해주고, 원만하게 보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결국은 그렇기 때문에 천도재 의식에서 두 가지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뭐가 중요하냐면 첫 번째, 음식 준비하고, 목마른 걸 해결하기 위해 차 따르고. 그러니깐 한국 불자들이 본능적으로 아는 거라. 그렇게 차 따르는 걸 중요시 여기더라고요. 천도 지낼 때 차 따르는 기회를 안 주면 그렇게 서운해해요. 그러니까 기갈과 허기를 면하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다. 그럼, 기갈과 허기가 면해지면 어떻게 되느냐? 이제는 마음이 편해지니까 마음이 편해진 그 상태에서 갈 길..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영가도 위가 있나요? 영가가 느끼는 감정들!

생각해 보면 영가는 먹어야 될까요? 안 먹어야 될까요? 안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육체가 없으면 먹어야 돼요? 안 먹어야 돼요? 근데 먹는 습관이 있으니까 안 먹으면 배고픈 거예요. 먹던 습관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위가 없으면 사실은 위가 커져서 우리가 위가 안 차면 배고픈 느낌을 받는 거잖아요. 그런데 위가 없는데도 배고픈 느낌을 받는 거예요. 목이 없는데도 목마른 느낌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내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사실은 약간 나를 무시하고 따돌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영가들은 대부분 그런 상태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아니면 화가 나거나 아니면 서운해하거나 이런 감정들을 이 영가들이 평범하게 느낀다 이렇게 ..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영가도 몸이 있을까? 영가에게 위패가 필요한 이유!

구천을 떠도는 영가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분들은 몸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육신이 없죠. 그러니깐 저렇게 육신처럼 의지처로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드리지 않으면 이 자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여기 계시는 법우님들이 천도재를 지내러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위패를 쓴 분은 다음 생을 받았어요. 근데 천도재 지내러 오신 분들하고 관련 있는 영가가 그분만 있을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자기가 기억 못 하는 영가가 있겠죠. 그러면 자기가 기억 못 하는 영가가 구천을 떠돌다가 합동천도재는 두 가지 의식인데 -첫 번째는 음식과 기갈을 면할 수 있도록 허기와 기갈을 면할 수 있도록 이 음식을 베푸는 의식이 있잖아요. 이건 무슨 뜻이냐면 잔치, 영가 잔치, 파티를 베푸는 거라. 그러니까 배고파 죽겠는..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죽음이 두렵고 무섭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

이제 죽을 때쯤 되면은 사람이 양심적으로 변하잖아요. 염라대왕 만나러 가야 되는데 거짓말해서 뭐 하겠어요? 못 사는 건 못 산 거지 잘 살았으면 당당하게 잘 산 거고 당당하게 잘 산 사람은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 않아요. 아쉬울 뿐이지. 남겨두고 가는 것들이. 그런데 잘 못 산 사람이 죽음이 정말 두려워요. 그래서 비유로서 뭐라고 표현을 하냐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돼지 같다’ 이렇게 표현을 하잖아요. 소리를 지르고,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그러면 자기가 그렇게 죽음이 두렵다라는 건 자기가 잘 살았다는 거예요? 못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를 잘 점검을 해봐야 돼요. 제 말을 잘 기억을 하셔야 돼요. 만약에 ‘내가 못 살았다’ 그러면 인정을 해야 되요, 일단. 내가 못 살았다라는 걸. 그 다음에 기..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죽을 때 저승사자가 나타나는 이유! 사람마다 다르게 보인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은요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맞이하러 옵니다. ‘저승사자가 온다’ 그러잖아요.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 대해서 사실은 앞부분의 죽음 수업에서 자주 다뤘잖아요. 지수화풍의 요소가 붕괴될 때 풍의 요소가 붕괴되기 시작하면 호흡이 끊어져요. 그러면 호흡이 끊어지기 시작하면 산소 공급이 안 된다는 거거든요. 뇌에 산소가 공급이 안 되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게 뭐냐면 환상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뇌의 산소 공급이 적어지기 시작을 하면 돌아가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저기 검은 게 있다. -누가 나를 데리러 왔다 -저기서 누가 나를 부른다 -나를 밑으로 누가 잡아당긴다 이런 표현들을 쓰시는데 그게 죽음을 맞이할 때 산소 공급이 끊어지기 시작을 할 때 나타나는 대부분의 공통적인 ..

[원빈스님_죽음 수업 Clip!] 무엇이 지옥을 만들까? 지옥의 원동력은?

지옥의 원동력이 무엇인가? 지옥의 원동력은 탐진치라고 이야기합니다. 탐진치. 탐욕 탐욕은 욕심일까요? 아니면 비정상적으로 큰 욕심일까요? 욕심, 말을 좀 바꾸죠. 탐욕은 원하는 걸까요? 아니면은 비정상적으로 큰 욕심일까요? 착각하시면 안 되는 게 탐욕을 제거해야 된다, 그랬더니 원하는 게 없어야 되는 줄 알아요. 원하는 게 없는 건 욕구가 없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면 죽어 먹고 싶지 않거든요. 자고 싶지도 않고 자기를 보호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정말 많은 불자들이 착각하는 게 불교 수행은 아메바가 되기 위해서 하는 줄 알아요. 원하는 것도 없고. 또 진짜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무념 생각이 없어지는 수행이 불교 수행인 줄 알아요. 절대 불교 수행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