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96

대행 스님 법문_ 왜 놓아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당신 뿌리에 놓으라고 하니까 모두 어떻게 놓느냐고 합니다. 어떻게 놓습니까? ‘놓으려고, 놓으려고 애를 써도 놓아지지 않습니다’ 하거든요. 왜 그럴까요? 본래 콩씨와 콩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인데. 그래서 콩씨가 콩싹으로 화하려면 수분도 필요하고 흙도 필요합니다. 가운데는 그 부분들은 다 놔두고라도 정자, 난자를 비롯해서 자기가 싹으로 화합니다. 싹으로 화하는데 그 싹이 어디 가서 내 콩씨를 찾겠습니까? 네? 뿌리로 과거로 돌아가서 뿌리로 찾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미래로 찾으러 가겠습니까? 그러면 형상에게 내 뿌리 씨를 달라고 하겠습니까? 이름에게 달라고 하겠습니까? 중들의 고기 덩어리한테 달라고 하겠습니까? 누구한테 달라고 하며 누구를 믿으며…. 그런데 그 콩씨만은 바로 자기 콩씨를..

대행 스님 법문_ 찰나찰나 회향

회향이라는 것이 천차만별이죠, 회향도. 지금 현재에 살아나가는 생활 속에서 인생의 회향을 하느냐, 인생의 회향을 어떻게 해야만 잘했다고 하느냐는 회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술을 자시고 집안을 난가를 만들고 이렇게 해서 인생의 회향을 마치느냐? 또는 두 첩, 세 첩씩 두고 이렇게 서로 은혈이 지게끔 해놓고 회향을 하느냐? 또 그렇지 않으면 수수하게 잘 살다가 회향을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내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둔다는 그러한 일념으로써 살아나가면서 회향을 하느냐? 또 우리네가, 이러한 공부를 하는 스님네들로 하여금 일체 회향이 있습니다. 일체 회향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서 회향을 해야 하는 겁니다. 죽어서 회향은 없습니다. 즉 말하자면 회향이 있는 까닭에 살아나온다 죽는다 이런 언어가 막히는..

대행 스님 법문_ 안되는 게 없다면 배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을 좀 더 넓게 써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걸 표현하자면 잘되는 것만 있고 안 되는 건 없으면 진리가 아니에요. 꼭 상대성이거든요. 우리가 차를 타고 갔다 하면 꼭 내려야 하죠. 꼭 내리고 꼭 내렸다가 또 타고 올라와요. 그 잘되는 것만 있다면 이 진리는 끊어져 버리죠. 모두 여러분들의 마음의 차원에 의해서 잘되는 것이 있고, 중(中)이 있고, 하(下)가 있죠. 그래서 이게 둥글러 가면서 자기 마음에 따라서 차원이 달라지면서 하로 사는 사람, 중으로 사는 사람, 대(大)로 사는 사람 이렇죠. 그러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요렇게만 생각하세요. 차를 여기에서, 아니 예를 들어서, 광주에서 여길 타고 왔는데 타고만 다니는 게 아니죠. 내려서 볼일 다 보고 또 타고 올라가야죠? 그러니까 종점과 시발점이..

대행 스님 법문_ 믿는 만큼 없어지는 도리

내가 항상 저 나무들 뿌리하고 싹 얘기를 하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누구나가 다 나무 싹과 뿌리가 있듯이 그렇게 본래 그냥 그렇게 달려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니까 “네 뿌리는 바로 네 주인공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이 일체 우주 전체를 한데 쌓아봤자 이 콩 알갱이 하나로도 할 수 있고 요런 데로 하나도 할 수 있고 한 사발로도 할 수 있고 한 주먹으로도 할 수 있고 아주 없이도 할 수 있단 얘깁니다. 그 모두를 하나로다가 이렇게 했을 때 그 콩 하나를 갖다 짊어지니까 세상에 짊어질 수도 없고 무겁더라. 그런데 그거를 어떡하면 빨리 해소를 시킬 수 있나. 그래서 그냥 무조건 관하라고 그런 겁니다. 진짜로 믿는다면 믿는 것만치 없어질 거고 믿지 못하고 ..

대행 스님 법문_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 놔라

오늘은 한자리한 분들이 모두 청년분들일세. 그러고 너무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아다 줘서 감사해요. 그러고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데 강당에 앉아 계셔도 모두가 한자리라는 거를 아셔야 합니다. 청년분들이니까 더더욱 우리가 생각을 깊이 해야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좀 깊이…, 우리가 평상시에 어렵지 않게 살면서도 한번 뒤집는 그런 거를 한번 생각해 봐요. 뭘 가지고 뒤집는다고 그러느냐 하면 항상 얘기하죠. ‘이건 잘못될 거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건 잘될 거다’ 하고 뒤집는 거 말이야. 그걸 번연히 잘못된 걸 알면서도 ‘잘될 거다’ 하고 뒤집는 거, 무조건. 이건 스님네들도, 공부하는 스님네들도 그렇거니와 사회적으로 지금 사는 분들도 그래요. 필요해요, 아주. 자기는 과거 정신계하고 자기 현실 물질계하고 포함이..

대행 스님 법문_ ‘참 나’와 ‘가아’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가 나(假我)’도 없고 ‘참 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기둥 하나가 이렇게 방편으로 있다면 굴레가, 거기에 끼고 돌아가는 굴레가 있습니다. 기둥은 움죽거리지 않지만 그 굴레는 그냥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돌아가고 있는 그 수레가 역시 댁에서 지금 살고 있는 그거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거를 일일이 가(假) 내가 믿고 찾는 거 또는 진짜 참 나가 하는 거 이렇게 따로 따로 찾지 마세요. '주인공' 했으면요 그 기둥째, 수레째, 내가 찾는 나와 더불어 같이 지금 댁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수레에서 굴러 나오는 거와 같습니다. 수레에서 자꾸 자꾸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댁에는 자꾸 수레에서 나오는 대로 그 수레에다 다시 집어넣는 겁니다, ..

대행 스님 법문_ 내일을 대비하는 마음가짐

근데 사시는 일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요 쓸데없이 생각해요. 사람들이 살아나가면서 그저 살아오던 그 생각을 하고 예를 들어서 얼른 쉽게 말하자면 이사를 가도 뭐를 봐야 한다. 어디로 가야 되나. 동서로 가야 되나, 남으로 가야 되나, 북으로 가야 되나 이런 것도 보고요. 그것이 그것뿐만 아니라 살아나가는 데 24시간에 우리에(게) 아주 해당하는 것이 절대로 이렇게 오게 되면 벌써 낌새가 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이 뜻이 옵니다. 오면은 거기에 대해서 대책을 세워라 하는 것이 그냥 생각을 하지 말고 그거 오면 어쩌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 마시고, 그냥 한생각으로 그냥 공식(共食)으로 해버려라 이겁니다. 한생각으로 공식으로 해 버려라. 살생이 닥쳐올 때는 공생(共生)으로 해 버리고 또 근심이 닥쳐올 땐 공심(共..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촛불재

우리가 왜 촛불재를 그렇게 하느냐? 귀중하게 해야 되느? 이 마음의 촛불재를 하는 것이 방편으로서의 그 마음과 더불어 즉 자신과, '자(自)'는 이 몸이 되고 '신(神)'은 자기 불성(佛性)이 되는 겁니다. 이게 자·신이 다 둘 아니듯이 촛불재를 하는 것도 마음에 없으면 그 촛불을 들 수가 없습니다, 들질 않게 되죠. 마음에 있으니까 촛불재를 하는 겁니다. 그 촛불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이 가설이 돼 있다고 항상 얘기하죠?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한 가정에 내 자식이다 내 부모다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다 가설이 된 겁니다, 그게. 다 가설이 되고 그것을 넓게 지혜롭게 모르는 사람은 전체가 가설이 돼있다는 걸 모를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이라도 그것을 알아야 전체가 다 가설이 돼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 이름만 찾고 계신가요?

그런데 선생님은 항상 주인공 찾기를 이름만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 네, 많이 찾고 있어도요 맷돌에 물건을 넣지 않고 굴리는 거와 같죠. 그러니까 이 깊은 마음속에 진짜로 믿는 것은요 잘 된다 낫는다 못 낫는다 이걸 떠나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대로 자기 주인공이 자기를 이끌어가는 겁니다. 자기를 형성시켰구요. 그러니까 진짜로 그냥 죽으나 사나 믿는 거죠. 낫기 위해서 믿는 것도 아니고 잘 되기 위해서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통신이 되질 않죠. 그러니까 진짜 이 콩씨, 콩과 콩싹이 어디 하나가 없어도 안 되죠? 콩이 콩싹을 만들지 않으면 콩싹이 콩이 보이지 않구요. 그러니깐 콩싹이 없어도 콩이 없고 콩이 없어도 콩싹이 없죠. 그러니까 둘이 아니에요, 주인공이랑. 그런데 자꾸 둘로 보시고..

대행 스님 법문_ 안달복달하지 말고 지혜롭게 믿고 맡기세요

그건 나더러 할 소리가 못 됩니다. 항상 여러분들한테 해드리기를 그것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여러분들의 자가 발전소에 있다고 말을 해드렸죠. 그러니까 그런 소리는 여기 있는 스님네들한테 말씀해도 관(觀)하는 거 가르쳐 드리고 진짜로 제 나무가 제 뿌리를 믿어서 관하는 도리를 알려 드릴 겁니다. 제대로 하시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통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대에 통신이 되지 않고 또 건너편에 아들과 같은 뿌리에 통신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이 모두가 여러분들의 그 믿음에 의해서 자기 불종을 믿고 그 불종을 믿음으로써 자기 뿌리가 되고 바로 자기 뿌리가 됨으로써 자기 싹이 됨으로써 그 싹도 금갑옷이라 그랬습니다, 금갑옷. 금으로 만든 갑옷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그것을 올바로 하지 못하시고 ..

대행 스님 법문_ 그냥 그대로 무조건 믿어라

이 24시간을 일을 하는데요. 주인공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고 생각을 합시다. 그런데 24시간이 지나서 주인공 생각이 났단 말입니다. 그랬으면 그게 24시간을 공간을 두고서 띄어졌나요? 그냥 무시거든, 무시, 무시라고. 무심, 무시라고. 그러니까 24시간 뒤에 생각난 것은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24시간이 있지 24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도 초월해서 그냥 그 시간에 생각났으면 그 시간에 난 거지 24시간이 왜 거기 붙느냐 이거예요. 그리고 24시간이 붙기 이전에 또 관하는 게 생각이 났든 안 났든 그대로 뿌리와 싹이 같이 붙어있는데 무슨 찾고 안 찾고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 그냥 그대로 믿어라, 무조건 믿어라. 이 세상에 난 것부터 벌써 났으니까 있는 거다. 그러니 그대로 무조건 믿어라. 자기..

대행 스님 법문_ 잘났든 못났든 나를 먼저 믿어야

우리가 공부하는 도리는 시공도 없고 공간도 없고 모든 게 다 없지만 우리 사람들이 살려니까 시간도 만들어 놓고, 또 일 년, 해우년도 만들어 놓고 몇 해니 몇 해니 하고 나가는데 그거를 질서를 지키기 이전에 그냥 순서대로 살아나가기 위해서 방편으로 여러분들이 해놓고 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편 더 생각해 볼 때는 이 마음이 아니라면 몸이 움죽거리지 않는다는 거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고 믿고 자기의 그 마음의 영혼이 빠지면 송장이 된다는 것도 잘 아실 거고. 그러니까 옛날에 부처님께서도 그랬고, 역대 조사들도 그랬습니다. 공부할 때, 이 들이고 내는 구멍은 한 구멍이다. 자기가 여기 있으면 부처도 여기 있는 것이고 바깥에 나가면 바깥에 나가는 대로 자기가 있는 자리에 부처가 있는 것이다. 변소엘..

대행 스님 법문_ 뿌리를 알면 가지 잎새는 저절로 알아집니다

사람마다 다 본체가 있습니다, 근본 본체. 즉 말하자면 본체라는 것은 근본과 이 체와 둘이 아닌 그 자체를 본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예를 들어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 본성은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대로 있기에 그 불성 자체가 하늘과 땅을 기준으로 해서 불기둥이라 한다면 ‘불’이라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말합니다. 그래서 방편으로 기둥이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그렇게 돼 있으니까요. 직결이 돼 있고 우주와도 직결이 돼 있고 이 모든 일체 만물이 자라는 땅과도 합류화가 돼 있습니다. 천지가 합류화 돼 있듯이. 그래서 그 기둥이 있으면 그 기둥을 끼고 수레가 돌듯이 돌아가는 겁니다. 지금 우리 생사윤회 모든 일체가 돌아가는 것이 그 기둥을 끼고 돌아가는데 그 기둥은 움죽거리질 않습니다. 움죽거..

대행 스님 법문_ 왜 심부름꾼이 참섭을 합니까?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오늘을 잡아놓고 오늘 질문을 할 것을 공부하는 데 질문 또 자기가 공부하면서 체험 이런 거를 서로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오늘부터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자에는 그냥 설법을 그냥 했는데 너무 여러분들하고 나하고 무의미하게 돌아가는 것 같애서요 오늘서부터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이 그렇게 힘듭니까? 보세요. 싹은 무조건 자기 뿌리에 의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싹이 말입니다. 한 줄기가,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힘들어!' 이런다면 그 뿌리는 뭐라고 할까요? 뿌리로만이 성립이 되고 싹은, 뿌리가 썩질 않아야 만이 싹도 싱싱하게 푸르르게 살 수 있는데요. 그러니까 괜히 뿌리를 놔두고도, 그 능력 가진 뿌리를 놔두고도 그 싹은 이파리 하나하나..

대행 스님 법문_ 한마음으로 세우는 원

이 원이라는 건 둥근 것이 원이죠? 그래서 원심을 낸 거죠. 한마음이 된 거죠. 한마음으로 구성해서 통신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그냥 이렇게 공부하는 거 같지만 이거는 심성의학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천문학이기도 하고, 천체물리학이기도 합니다. 그건 왜냐? 내가 전체의 그 몸속에 있는 의식과 모든 걸 한마음을 냈습니다, 한마음으로. 원이라는 그 말이 한마음이란 뜻입니다. 그래 한마음을 냈는데 한마음으로 내가지고 보니까 바깥 경계도 한마음으로 되돌아가더란 얘기죠. 안에서 한마음이 다 이렇게 한다고 말을 할 땐 내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원자에서 입자로 화(化)해서 다 조절을 한다, 한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한마음을 냈는데 그것이 어떻게 비는 겁니까..

대행 스님 법문_ 진짜로 믿는다면 두려울 게 없다

이거 보세요. 내 몸뚱이는 내 몸뚱이가 아니에요. 모든 생명들의 집이죠. 그런데 그 생명들을 다스리는 바로 자기 마음의 근본이 있거든요. 근본을 진짜로 믿는다면 두려운 게 없어요. 진짜로 믿어서…, 그 믿는다는 걸 어떻게 말을 해줘야 될까? 진짜로 믿는다면요 아무 의심도 없고요. 죽느냐 사느냐도 거기에 의심이 가지 않아요. ‘죽이든지 살리든지 너 알아서 해라.’하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뭐 두려운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죽는 것도. 죽는다 산다 이런 것도 두려움이 없고요. 또 뭐라고 그랬죠? 두려운 거하고…. 내세운다. 믿지 못하니까 나를 내세우죠. 내가 몸속에 있는 생명들과 더불어 물 한 컵을 마시되 지금 이 성대든가 이 위에서 날더러요 물을 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심부름 해줬죠, 지금. 그런데 이 심..

대행 스님 법문_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체험하는 공부

누구나가 다 자기를 자기가 몰라서 길을 잃고, 길을 헤매고, 길을 찾으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그 길을 찾기 위해서 그거를 자기가 정립시키고 나가면서 체험하고 나가는 거죠. 체험하고 나가다가 보면 '아, 이런 거로구나! 이렇게 아주 틀림없는 사실이구나!' 하는 거를 알았으면 그것을 놓고, 또 딴 데로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해보시구요. 또 딴 것도 또 자연스럽게 오는 것도 대치할 수 있게끔 이렇게 한번 해보시구요. 모든 걸 이렇게 살림살이 속에서 모든 걸 다 해보세요. 찍어서 안 먹혀지는 게 없어요. 이 세상을 다 한주먹 안에다 넣고 한 입에 털어 넣으려도 털어 넣을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이 도리를 아셔야 해요. 이 삼라대천세계를 한 ..

대행 스님 법문_ 문이 없는 문을 찾는 공부

집이 몸뚱이로서는 문을 꼭 찾아서 들어가야 들어갈 수가 있죠? 그런데 마음은 말이에요.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갈려면 어떻게 나가야 마음이 나가죠? 예? 집에 갔다 오실…, 지금 이 자리에서 집엘 갔다 와 보세요. 어디로 나가야죠? 지금 마음이 문을 찾아나가야 될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나가야 될까요. 예? 난 여기서 저 건너 저기 나 방에 있는 데를 그냥 벽도 봇장도 없이 그냥 뭐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나가지는데…, 저 건넌방 가는데요. 건넌방 가는 데도 그렇고 고 사이가 지구를 전체를 돈다고 하더래도 고 사이밖에 안 돼요. 또 다른 우주에 태양에 또 다른 혹성에 이렇게 간다 하더래도 차이가 나지 않아요. 한 생각 딱 하는 거하고 차이가 나지 않거든요. 그러면 내 몸속에서 수없는 입자가 만약에 벽도 없..

대행 스님 법문_ 자기가 한다는 마음 자체를 떼어라

수염이 나도 달마고 수염이 안 나도 달마고 그렇다면 무효죠? 그렇죠? (예. 그렇습니다) 표현을 하자면, 그런데 그런 표현으로 해서 꽃이 피는 게 아닙니다. 붉게 익은 꽃이 피려면 그런 말대답으로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또 이차적으로 말할 때 분별은, 분별은 분별입니다. 분별을 하되 분별이라고 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지금 연구를 하신다고 그랬는데 모든 거를 생각하되 함이 없다 이겁니다. 함이 없는 줄 알아라 이거예요. 그럼 댁의 육체 속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들어있죠? 그러면 더불어 같이 생각을 하지 왜 당신이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공(空)했죠? 그럼 공체(共體)로서 공심(共心)으로서 생각한 게 아닙니까? 자기 혼자만이 그 생각을 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봤다, 자기가 생각한다 이런 마..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만이 할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다면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그런데 댁이 어떠한 고통이든지 막론해 놓고 어떠한 고통의 용도든지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거 하나 지나고 나면 또 오고 또 오고 이런 게 있어. 사는 게 그렇고 진리가 그러하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나한테 닥쳐올 때마다 자기 주인공인, 즉 말하자면 자기 몸뚱인 싹과 같고 자기 주인공은 뿌리와 같은 거야, 불성이라는 게. 그러니까 그 싹은 뿌리를 믿고 거기에다 모든 것을 ‘너만이 할 수 있어.’ 이 마음이라는 건 체가 없어서 광대무변하거든. 그러니까 어떤 거든지 처리할 수 있는 그 구성된 하나의 바로 불성이니까. 불성이 중심을 꿰어서 바퀴가 돌아가듯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너만이 모든 거를, 마음이 의욕이 생기고 편안케 할 수 있고 너만이 병을 ..

대행 스님 법문_ 우주를 삼키는 큰 도둑이 되려면

첫째, 되려고 해도 아니 되고 다 집어삼키려고 해도 아니 되고 또 나하고 같이한다 해도 아니 되고 또 아니 한다 해도 아니 돼. 그런 사심은 다 버리고 오직 한마음이, 두 마음이 아니라 일체 닥치는 대로 다 집어삼킬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그대로 여여하게 그대로 발을 떼어놓고 다니다 보면 날아도 다니겠지, 날개가 생겨서. 그리고 또 구석구석이 자기가 없어야 그것이 일치되는 거지, 자기가 있다면, 배울 수 있는 자기 못난 놈이 있다면 아니 되지. 못난 놈도 없고 잘난 놈도 없어야 되겠지. 그 못난 놈이 있다면 어떻게 그게 거기에 해당이 되는가, 둘 아니게. 모두가 내가 없어야 벌레 하나라도 버리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있다면 벌레 하나뿐만 아니라 모두 미운 건 다 버려야 하고 나쁜 건 다 버려야 하고 이렇지..

대행 스님 법문_ 죽은 세상에 가는 공부

이거 봐요. 기복이라기보다요, 당신이 만약에 늙어서 죽을 때에, 죽을 때 남의 걱정하게 됐소? 내가 부지런히 지금 급해서 길을 가는데 옆에서 싸운다, 옆에서 나쁜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냥 그 길을, 그냥 급하게 달려가지 여기서 참섭하고, 급하게 지금 가서 일할 거를 폐지 시키겠소? 그렇지? 그럼 또 한번 극치적으로 생각해 봐. 죽어서 우리가…, 지금 죽으려고 깔딱깔딱 할 때 옆에서 잘못하고 잘한다고 그거 참견하게 생겼느냐고.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게 무슨 공부를 하느냐 하면 자기가 나왔던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서 공부하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나왔던 구멍에다가 자꾸 관하니까 거기에서 자꾸 힌트를 주는 거지. 힌트를 주고 어떤 때는 잘되게 했다가 안되게 하는 수도 있어. 그런데 안 되게 하는 거를 ..

대행 스님 법문_ 일체를 다스리게 그냥 주인공에다 맡겨놔라

사람이 말이에요. 항상 이쁘나 미우나 볼 때에 아주 긴 여행이 아니라 짧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죽은 송장이나 아니, 죽은 송장이 아니라 죽은 영혼이나 산 영혼이나 똑같애요. 50프로가 산 영혼이라면 50프로가 죽은 영혼이죠, 보이지 않는 영혼. 그렇다면 내가 볼 때는 평등해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그리고 현실로 이렇게 수억겁을 살아나온 그 과정의 모습들을 다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 여러분들도 잘 아시라고 몸뚱이 속에 있는 그 모습들을 한번 생각해 봤느냐고 하죠.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온 인연으로 인해서 모두 한 데 한 개체가 된 거라고요. 그런데 '죽어야 한다'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이 자기가 자기가 아니라구. 자기 몸뚱이는 자동차와 같다면 그 자동차..

대행 스님 법문_ 우리가 왜 사람으로 태어났느냐

그것도 우리가 생각을 가만히 해봐요. 바람이 있고, 흙먼지가 있고, 물이 있고 이건 스스로 자생으로서 그냥 생기는 거죠. 이건 자연의 원리면서 자연의 이치예요. 그렇게 생겨서 모아지고 모아지고 하다보니까 온기가 생긴 거죠. 그래서 생명체가 생기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날까지 진화돼서 이렇게 인간도 제일 나중에 됐다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제일 나중에 돼서 살아가면서, 살다 보니까 진화도 되고, 살다 보니까 물리도 터지고 살다 보니까 모든 게 물리가 터져서, 지금 보세요 얼마나 방대하게, 의학이나 과학이나 많이 방대해졌나. 그러나 우리가 최초에 내가 어디서 온 거를 모른다면 모두가 아주 귀한 과학자가 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자가 아니죠. 남의 생명을 우습게 생각하고 남의 일을 모두 우습게 생각하고 깔보는..

대행 스님 법문_ 조상과 후손이 함께하는 공양의 의미

그렇게 되면 그거부터 얘기해야겠군요. 내가 항상 말하기를 “위패를 정해놓지 않는다” 이런 말을 했죠. 우리가 살 때에 자유스럽게 사는 것과 죽은 사람도 체가 없이 사는 도리를 알게끔 된다면 관습과 습이 없어진다면 자유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스럽게 하기 위해서 위패를 정해놓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냐하면 천리만리라도 손가락 하나만 끄덕하면 다 모이는데 왜 그것을 거기다 묶어놓고 있습니까? 그러면 공부하는 데도 지장이 있고 스님네들한테도 지장이 있고 여러분들한테는 물론이고, 그렇게 된단 얘깁니다. 그러니까 또 여러분들이 그렇게 공부를 못하고 그런 것만 알면 연방 찰나찰나 영령들이 이렇게, 조상님들이 집이 들으셨다가도 그 도리를, 집이 마음을 읽어보고 가시는 거예요. 마음을 읽어보시는데 마..

대행 스님 법문_ 모든 게 갖추어져 있는 자기 근본을 믿고

‘너만이 낫게 할 수 있잖아.’ 하는 거는 진짜로 믿으니까 그렇죠? 또 ‘둘이 아니잖아.’ 하는 거는 즉 말하자면 믿지 못하기 때문에 ‘둘이 아니잖아.’ 이 소리가 나오죠. 결국은 우리가…,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유전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결과든지 다 유전에 의해서 모두 대대로 유전으로 인해서 그렇게 수백 년을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고 수천 년을 내려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유전이라는 게 그 잠시 잠깐에 그 유전을 해치시킬 수 있는 문제가 바로 이 공부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모두 어저께가 과거입니다. 어저께가 과거고 아까 한 시간 전이 과거니까 우리가 과거다 미래다 또는 현실이다 하실 게 없이 그대로 공해서 그대로 공해서 우리가 항상 이렇게 하되 자기가 하는 게 아니죠! 얼른 쉽게 말해..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불성이라는 생명력이 선장이다

여러분들의 이 몸체가 공체共體라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도 빠질 것도 없고 들여놓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유를 해서 따진다면 방편으로써 선장으로 진짜 마음, 진정한 마음을 선장으로 하고 자기 육신 속에 있는 생명들은 중생으로 하고 이 모습은 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만이 그 배에서 움죽거리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냥 비바람이 치고 뇌성벽력을 하는데도 잠자코 그냥 무사히 타고 건너갈까요? 건너오기도 하고. (오직 그 선장만을 믿고서 믿고 간다면 거기에는 딴 하자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분이 다 자기 불성이라는 그 생명력을 즉 말하자면 선장이라고 비유한다면 아주 어떠한 비가 온다 하더라도 비가 안 올 것이고 또 어떠한 바람이 분다 하더라도 바람이 안..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마음이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본래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은 그게 아닙니다. 상대를 보고 해달라고 그런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형상과 내 형상이 둘이 아니요,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요 그 뜻도 또한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부처님이 내 몸과 둘이 아니고 마음이 둘이 아니라면 해 달랠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네 마음을 먼저 알아야 내 마음을 알 수 있느니라. 그럼으로써 네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뒤에는 "만약에 네 마음이 전깃줄이라면 내 마음이 또 전깃줄이라면 전깃줄과 전깃줄이 한데 합치면 불이 들어올 뿐이지 거기서 ‘해달라 안 해달라’ 이런 게 붙지 않느니라.”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기복이라는 얘기가 지금 나오는데 부처님이 가르치실 때는 ..

대행 스님 법문_ 내 마음의 문이란?

ㅎㅎ 질문 쳐놓고는 아주 가까운데 두고 질문을 찾으시는군요. '문이 없어 문을 찾지 못하고 문이 많아서 문을 찾지 못하고' 하는 소리는 우리 자체가 이거 말로 할 수는 없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다 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문이라 딴 데서 문을 찾아서는 아니 되죠. 내 마음의 문이란 천궁을 통하는 문입니다. 내 마음의 문이란 천궁을 통하는 문이기 때문에 문이 많아도 문 찾기 어렵고 문이 없어서 문 찾기 어렵고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가운데 어디에 문이 있는가. 바로 내 빗장문을 열어야 열리는 거지 내 빗장문을 열지 않고는 열리지 않습니다. 대답이 알쏭달쏭합니까? (일체 생명은 자신을 위하여 이생에 온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대중을 위하여 이생에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같은 생각은 편..

대행 스님 법문_ 둘이 아닌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주고받고 삽니다. 더불어 살지 혼자 사는 사람 없어요. 옷도 더불어 같이 주고받고 입었고 먹는 것도 주고받고 먹고 모두가 일체가 다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둘 아니게 실천을 하느냐 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둘이 아니라고 하느냐 ‘분명히 줬고 분명히 받았는데 어째 둘이 아니라고 하느냐.’ 이렇겠죠? 그런데 내가 전깃줄 얘기를 가끔 하죠. 전기, 전력이 들어왔을 때는 이게 불이 들어옵니다. 전력이 끊어졌다 이럴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면에 전깃줄을 갖다가 이렇게 이어야 전기가 들어옵니다. 그렇게 들어오듯이 이것은 이거를 주고받을 때, 이걸 줄 때 이걸 받을 때, 이게 한 순간은 같이 이 마음이 즉 말하자면 정신계가 둘 아니게 이어진단 얘깁니다. 이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