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136

대행선사 법문1_ 주인공에 몰락 놔버려라

누구나가 내가 한 대가가 잘못한 대가는 잘못한 대로 올 것이고 잘한 대가는 잘한 대가대로 올 것이다, 이거죠. 그런 걸 모르겠걸랑은 우리가 한 달 내내 일을 하지 않으면 대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그 점 말이에요. 그러니 모두가, 일생 사는 게 모두가 다 그렇거든요. 그럼 부처님 법이 따로 있고 우리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우리들이 있기 때문에 부처도 났고 부처가 났기 때문에 우리들이 부처를 섬기고 사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한테 제일 근본적으로 우리가 말해드릴 것은 진짜로 자기 자신들을 믿어라! 이겁니다. 자신들을 믿지 않는다면 몰락 거기다 일임시켜서 참, 놔 버릴 수가 없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 내공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마는 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씨들이 있기 때문에 바로 마음이..

대행 스님 법문_ 지금 말을 하게 하는 주인공을 믿어라

스님 법문에서 주인공에게 맡기라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그러면 그 주인공은 제 몸 속에 있는 것인지 우주에 다, 허공 법계에 꽉 찬 것인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주인공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그러면 염불이나 기도는, 주인공에 맡길 경우 꼭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쭤봅니다.// 사람은 뭐, 문이 여기도 많죠. 염불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경을 읽어서 가는 문이 있고 선(禪)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여러 가지의 문이, 이 문 저 문이 많죠. 그러나 문밖에 나가면 그저 다른 문이 아니죠. 이 주인공(主人空)이, 이 마음 자체가 내놓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빛깔도 없습니다. 이 허공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허공이 있다는 것은 아시죠? 그렇다면 그와 같은..

대행 스님 법문_ 책을 보는 이가 누구인가?

세상살이 만사가 다 댁의 마음에 가설이, 직결이 되어 있어. 그러니 어떤 걸 한들 부처님 법이 아니겠는가? 책을 보나 모든 것이..., 예를 들어서 인간의 뿌리도, 뿌리가 있어야 몸이 있고 몸이 있어야 행이 있듯이 모든 건 마음의 주인공의 그 뿌리가 있기 때문에 하는 거니 모든 것을 해도 함이 없이 하라 이 소리지. 당신 송장 덩어리가 보는 게 아니거든. 눈을 보게 하고 귀를 띄게 하고 손을 움죽거리게 하고 몸을 움죽거리게, 전체 움죽거리게 하니 보는 거 아냐? 그러니 그건 누가 보는 거야? 그러니 이거는 망상이고 이거는 망상이 아니고 그런 게 어딨나? 그러니 이 세상에, 아까도 얘기했듯이 전체가 '나같이 살라고 하네’ 이랬으니 하나도 버릴 게 없네. 아니할 게 없고 할 것이 따로 없어. 내 앞에 주어지..

대행 스님 법문_ 자생중생 제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러분들 몸뚱이 속에 의식들이, 생명들이, 모습들이 천차만별로 있죠? 근데 그 생명들은 전자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차원대로 그 부모를 정하게 돼 있거든요.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차원이 어떤 거냐? 그것이 바로 금 차원이라면 금은방에 탄생이 될 거고 또 무쇠 차원이라면 무쇠전에 무쇠로 탄생이 될 거고 넝마전이라면 넝마전에서 넝마로 탄생이 될 거고 이러듯이, 그렇게 이 세상에 출현을 하게 돼 있죠. 그거는 왜냐하면 악업 선업, 인연 지은 인연들이 바로 내 몸뚱이 속에 주둔을 하고 있으니까요. 자기 영혼과 더불어 같이 정자 난자를 빌어서 자기 탄생을 시키는 것이 바로 자기 주인공(主人空)이거든요. 그래서 그 수억겁 광년을 거쳐오면서 진화시키고 탄생시키고 이렇게 온 장본인이 바로 여러분들의 주인공의 ..

대행 스님 법문_ 마음공부가 잘 안될 때

우리가 표현 할 때 두 가지 표현으로 해보죠. 한 가지는 차를 탔으면 내리려고 타죠? 그죠? 그냥 한계가 없이 그냥 타고 갈 그런 사람은 아니죠. 차를 타면 내리려고 타고 내리면 타려고 내립니다. 어때요? 그 답답한 마음도 또는 어떠한 마음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거는 과거의 업식에서 입력된 게 나오는 거니까 그대로 상관할 게 없이 거기다 놔 버리고 새 걸로 바꿔서 쓴다면 좋은 거고요. 좋게만 생각을 해서 거기 놓으세요, 자기한테 이익하게만. 자기의 가정에도 이익하고 모든 게 이익하게만 생각을 해서 놓으세요. 바꿔 놓으세요. 꿈을 꾸고도 잘못, ‘이게 어떻게 되면 어떡하나’ 이렇게 관습에 의해서 쩔쩔매지 말고 또 다가오는 용도도 ‘이거 이렇게 다가오니까 이거 사람이 살 수가 있나’ 하고선 고민하고 이렇게 하..

대행 스님 법문_ 번연히 알면서도 벌금을 내야 했던 이유

우리가 못났든 잘났든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자기로부터 상대가 있는 거죠. 그죠? 그런데 내면세계에서 당신을 이끌어 가는 데는 바로 그런 점에서 그것이 채찍질을 하는 겁니다. 그러한 돈이 걸렸더라도 즉 말하자면 그냥 무심으로 돌리라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믿으니까 ‘응, 이것도 주인공 너가, 너가 한 거지?’ ‘너가 한 거지?’ 하면서 상대방을 고맙게 생각하는 거는 그 사람네들이 이 주인공으로 인해서 댁의 즉 말하자면 심부름을, 댁으로 인해서 심부름을 하게 됐으니까 외려 고맙죠.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사실이 그렇고 또.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삼십만 원이고 사십오만 원이고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 그렇게 상대방을 원망하면서 대립이 되니까 거기까지, 알라고 거기까지 간 ..

대행 스님 법문_ 진정 사랑한다면 놓아줘야 하나요?

여러분들 잘 들으세요. 두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보통 그냥 살아가면서 나 싫다는데 금은보화를 준다고 하더라도 나 싫다는데 할 수 없겠지 그러고선 놔주는 거고요, 한 가지. 그렇게 되면 사랑하기 때문에 놔줬다고 합니다. ㅎㅎ 보통 말들이 그렇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것이 대단한 문제입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차원이 지워지고 차원에 따라서 인연이 되고 만남이 되는 겁니다. 그냥, 보통 그냥 이렇게 만남이 아닙니다. 만약에 열 사람의 차원이 똑같다면 그 열 사람 중의 하나가 자기 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차원, 똑같은 차원끼리 많고 똑같은 차원끼리 또 많고 이렇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차원 차원에 따라서 같이 만나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항상 그러죠. 당신의 팔자 운명의 그 차..

대행 스님 법문_마음에 어떻게 입력을 해야 그대로 되나요?

그것도 맞습니다. 물론 입력을 하되 내가 판단을…, 그 경우에는 판단을 하고 안하고도 없습니다. 그렇게 될까 안 될까 이것도 없습니다. 그냥이지. 그냥 무조건입니다. 벌써 그런 거를 이렇게 했을 때에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런 것이 문을 막는 겁니다. 그냥 '잘 되려니’ ‘그렇게 되려니’ ‘안 되니' 이런 이유가 붙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 것도 붙지 않고 그냥 무조건 나도 불성이 있고 저 스님도 불성이 있으니까. 저 스님은 불성을 발견해서 융통성 있게 이 세상을 또 공부하고 또 이렇게 베풀어주는 그런 지혜 넓은 분이, 일체제불이 있다면, 일체 선지식이 있다면 다 통하는 일이고 다, 나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입력을 할 때에도 '이게 언제 될까’ ‘이게 될까’ ‘이게 안 될까’ ‘아..

대행 스님 법문_ 마음공부와 꿈

그것을 어떤 스님네들이나 스님네들 아닌 분들도 꿈에 상상하고 좋은 꿈을 꾸고 부처님께서 나타나서 자기의 금강좌를 줬다 뭐 이런 꿈도 꿨다고 그래요. 그렇게 하고 글씨를 써서 깨우쳤다고 그러고 그러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그러나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림자에 있는 빵 하나를 놓고 볼 때 그게 배가 부르겠습니까, 안 부르겠습니까? 그림자 떡을 말이에요. 놓고 그게 배가 부르겠습니까 안 부르겠습니까 하는 소립니다. 그러면 꿈에 했다거나 또 꿈에 나를 보고 내가 거들어 줬다거나 이렇다면 그저 ‘아유, 감사하구나.’ 이렇게 하고 그냥 놔야지, 거기에 좋아서 그냥 거기에 자꾸 자꾸 자꾸 이렇게 꿈으로 좋아하고 가거나 따라가거나 꿈의 형상을 보고 따라가거나 이런다면 자기는 백네 날 해도 자기가 실천을 할 수가..

대행 스님 법문_ 육법공양의 참뜻

옛날에도 그랬지마는 선지식들이 일 년에 한 번씩이라든가 이럴 때 육법공양을 했습니다. 모두들 여러분을 가르치기 위해서 너무나 과거의 선지식들이 너무 애를 쓰신 것 같아요. 그랬건 만도 그거를 뜻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뜻을 못 받고 있다는 얘깁니다. 첫째 우리가 촛불을 켜놓을 때 어떠한 심정으로 촛불을 켜는지 그것조차도 잘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불을 켜놓을 때는…, 항상 내가 그러죠. 주인공에다가, 오직 한 군데다가 몰입을 해서 거기 놓아라. 잘된 거든 잘못된 거든 모든 거를 감사하게 놓고 또 ‘거기에서만이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거기다 전부 놔라. 일거수일투족 다 놔라, 이랬죠. 그것이 바로 저 촛불 켜는 거와 같습니다. 저 촛불을 켜면 초와 불과 불을 켜놓으면 초는 닳습니다. 녹습니다. ..

대행 스님 법문_ 참된 방생이란?

방생은 뭐 이 자리에서도 방생이고 또 지나가다가 생각 한 번만 해줘도 방생이고 이건 무심 방생 유심 방생 유체의 방생 무체의 방생 뭐 헤아릴 수가 없지요. 방생이라는 뜻은 모든 걸 남을 이익하게 해줘야지 내 사리사욕을 취해서 방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방생이 아니죠. 예를 들어서 내가 그런 말을 합니다. 돈을 뜯겨서 울고불고, 보증을 서고 울고불고 돈을 빌려주고 받지를 못해서 울고불고 그런 사람이 가끔 있죠? 그러면 애당초에 당신이 밥을 먹고 내가 이것을 빌려주고 내가 이걸 못 받아도 할 수 없이 그건 꼭 줘야만 되겠다 할 때는 줘라 이거야. 주되 그거를 되받으려고 생각지는 마라. 그 사람이 잘 돼서 줄 때까지 주게 되면 다행이고 못 주게 되면 외려 그건 안되니까 그 사람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받으려고..

대행 스님 법문_ 미생물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지금 어떻게 표현을 할까? 저 콩나무를 표현을 할까? 콩이 말이야. 콩 씨가 있어서 땅에다 심었더니 콩싹이 났어. 뿌리로 화해가지고 싹이 났다고. 싹이 났는데 그 싹이 그 뿌리에 의지를 해야 뿌리에 의지를 해야 싹이 잘 되지? 그러고 또 콩씨가 열리지? 콩꽃이 피고. 그럼으로써 또 내년을 자기가 콩나무가, 내가 내년을 또 기약한다는 생각도 없이 영원히 지속해서 이어가는 거야. 그 생각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냥 자연적으로 그렇게 이어가게 돼 있단 얘기야. 그러면 자기 뿌리는 자기 싹을 위하고 자기 싹은 자기 뿌리를 연상하고… 즉 붙들고 믿고 나가야지. 그런데 그 콩이 말이야 화해서 뿌리로 화했는데 그게 무슨 콩이냐고 그럴 거냐 이거야. 그래서 무슨 콩이냐고 한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찾으려고 아무리 뿌리를 헤..

대행 스님 법문_ 보이지 않는 주인공을 쉽게 잡는 법

네 그러죠. 지금 주인공이 안 계시다면 댁에서 지금 송장이 될 겁니다. 지금 말씀하시게 되는 것도 그 자기의 근본, 생명의 근본이 있기 때문에 지금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그놈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그냥 천차만별로 시키고 있습니다. 시키는 게 아니라 자율적이죠. 그러니까 그놈은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쥘 수도 없지만, 역력하게 말씀하게 만들고 보게 만들고, 듣게 만들고 작용하고 살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마음이 다르고 그냥 마음이 다르다, 이런 거는 이 속의 모든 의식들이 한데 합쳐서 하나로 돌아가는 거를 한마음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내 내면 세계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만 알면 외부의 하나로 돌아가는 것도 다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나부터..

대행 스님 법문_ 직장상사가 미워요

그런데 잘 말했어. 뿌리는 한 뿌리지만 모습은 다 각각이야. 나무 이름이 다 각각이듯, 안 그래? 그지? 근본이 둘이 아니지 그 모습은 제각기 천차만별이다 이거야, 마음 씀씀이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나는 직원이다, 저 사람은 위..., 뭐라고 그러지? 상사? 상사 위에 또 상사가 있고 그런데 그 상사들끼리 그렇게 하면 자기네들 직원들한테도 이익이 별로 없지. 그러는 것도 상사다 직원이다 하는 가설이 돼 있잖아? 그지? 회사에 가면 이거다 이거다 하고, 전기가 가설이 돼 있듯이 그 마음과 마음이, 나는 바로 이 회사의 직원이고 저 사람은 상사다, 이런 걸 알고 있지? 그러니까 그게 가설이 된 거야. 마음과 마음이 가설이 돼 있다고. 그러니까 내 보당(한국어; 단추)을 누를 때에 ‘에이, 저기도 불 좀 ..

대행 스님 법문_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볼 수 있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태어나서 시발점으로 이렇게 종교를 믿고 이렇게 가는데 여기까지 와서 여기를 한 번 뛰어넘어서…, 이게 생사에 관한 건입니다, 이게 지금 말하자면. 물질세계에서 이리로 와서 여기를 다시 뛰어넘으면 이제 피안의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넘어간다 이런 소리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이것이 쭉…, 이게 살아서 열반이라고 하는 경계입니다. 죽어서 열반은 없어요. 그러니까 한 번 내가 모든 것을 놔서 돌아서 죽은 세상까지 살아있는 세상과 죽어있는 세상이 동시에 같이 있는데 거기를 찰나찰나 이렇게 한 바퀴 돌 줄 알아야 모가 나지 않게 돌아갈 줄 알아야 50% 50%, 100%를 같이 굴릴 줄 알아야 이게 됩니다. 지금 그것을 뭐라고 그러셨죠? 처음에 물으실 때. 내 듣고도 또 ..

대행 스님 법문_ 해마다 백종 천도재를 모시는 이유

우리가 왜 밥을 먹고 또 밥을 먹습니까? 왜 아침 먹었으면 됐지, 저녁까지 점심까지 왜 먹고 그 이튿날은 또 왜 먹습니까? 보십시오. 아침 쇳송(종송鐘頌)에 부모의 은혜를 갚고, 국왕의 은혜를 갚고, 만물의 은혜를 갚고 모든 이 생물의 은혜를 다 갚고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듯이, 우리가 낳아서 길러서 이렇게 해서 성장시켜서 놓은 부모입니다. 그러면은 그 부모가 낳아서 기르느라고 이 도리를 잘 배우지도 못한 채 그냥 허덕지덕 허덕지덕 하다가 돌아가셨다 이겁니다. 지금 이 도리 알고 돌아가시는 분들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천도시킬 때는 다시 짐승으로 태어나지 말고 이 지금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무죄 석방으로…, 예를 들어서 개같이 살았으면 개로 태어나야 하고 독사같이 살았으면 독사로 ..

대행 스님 법문_ 시기심을 다스리는 이치

내가 시기 나는 마음이 생기 걸랑은 ‘시기 안 나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 놓으라고 그랬죠. 또 즐거운 마음이 생기걸랑은 ‘즐거운 마음을 내게 해서, 같이 내게 해서 감사해.’ 하는 것도요. 그러니까 양면을 다 거기다가 놓으라고 그랬죠. 이게 똑 부러지는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잘되게 스스로서, 거길 믿으면 스스로서 잘되게 이끌어 갑니다, 이렇게. 댁은 그냥 어느 한 개체의 물건과 같은 겁니다. 로보트 있죠? 로보트가 어떠한 물건을 할 때는 누르고, 기계를 누르고, 그 시키는 데가 있어서 이 몸뚱이가 움죽거리듯 지금 우리가 전체가 그럽니다. 그러니까 ‘아이, 잘 가게 해서 감사해’ 또 어디가 고장이 났다 이런다면 ‘ 고장이 나게 한 것도 너니까 고치게 한 것도 너 아니야?’ 하고 놔야 합니다. 그..

대행 스님 법문_ 선과 악을 받아들이는 법

긍정적인 일은 해야죠? 그런데 부정적인 일은 하지 말아야죠? 그렇게 댁에서 ‘긍적적이다 부정적이다’ 하는 걸 알고 벌써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묘법이죠. 그 알고 있는 자체가. 그러니까 벌써 알고 있기 때문에 안하게 되고 알고 있기 때문에 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그것이 긍정이다 부정이다 하는 것이 한 구멍에서 나오는 거지 두 구멍에서 나오는 게 아니죠. 그러니까 나오는 대로 긍정적으로 나오는 거 이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나오는 것은 ‘부정적으로 나오는 것도 너한테서 나오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나오는 것도 너한테서 나올 수 있잖아.’ 하고 거기다가 놔라 이 소리예요. 한 구멍에다가! 누가 하라는 게 아니에요. ... 이거 봐요. 받아들이라는 이치는 이게 나쁜 사람이 나한테 접근을 해올 때 ..

대행 스님 법문_ 물질보시와 마음보시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렇습니다. 한 바가지 주면 한 바가지가 이자가 늘어서 세 바가지가 올 거고 한 바가지를 훔쳐 갔으면 세 바가지가 손해를 보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천연적으로 그렇게 돼 있어요. 한 바가지를 주면 세 바가지가 오지만 예를 들어서 얘깁니다. 한 바가지를 훔쳐 갔다면 세 바가지가 외려 손해가 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그런 마음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그런데 없으면 채워주고 없으면 채워주고 할 수 있는 자기 그 보배가 모두들 여러분한테 있습니다. 있는 거를 해서 자기가 가질 생각은 자기가 있는 데서 자기 거 먹을 생각은 안하고 딴 거를 물질로써 훔치려고 한다면 그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 아상(我相)이나 인상(人相)이나 뭐 수자상(壽者相) 이런 게 상이 많아서 남을..

대행 스님 법문_ 나를 발견하는 관법

그냥... 생활선법(生活禪法)이 아닐까요? 그냥 우리가 생활하면서 하되 그렇게 모든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냥 내 주인이 그렇게 시키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 주인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래라 이런 게 참선입니다, 그냥. 그대로 참선이에요. 그런데 이게 두 가지 여건에서 세 가지 단계로 내가 얘기한 겁니다, 그게. 왜냐하면 나를 발견을 못 했으면 진짜 공부를 못 하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면 저녁이면 조용한, 남이 다 자고 조용한 틈을 타서 한 30분이라도 앉아서 '이놈아, 네가 너 있다는 증명을 할 수 있는 거지 누구가 증명을 해주느냐.' 이거죠. 당신이, 당신이 있다는 것을 당신만이 증명을 해줄 수 있는 거지 누가 증명해 주느냐 이거야. 그것이 똑바로 직속 들..

대행 스님 법문_ 이유가 많으면 문이 닫힌다

묻는 거를 그렇게 길게 물으면 어떡합니까? 하여튼, 그 말뜻은 우리가 배우는 측에 있어서 맡겨놓는다, 이게 맡겨놓는 그 선을 세워야 우리가 마음이 안위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러나 걷지도 않고 뛰려고 한다면 안 돼요! 지금 말하는 거 보니까 걷지 않고 뛰려고 하거든. 내가 진짜 걸어 보고 내가 뛸 수 있어야 뛰는 것이지 걸어 보지도 않고 뛰려고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돼. 댁이 그 뜻을 알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 묻질 않아. ‘내가 놓을 것도 없다’ ‘놓을 것도 없는 데에 놔야 된다’ 이런 것은 뭐냐 하면 ‘돌려 놔라. 돌려 놓지 못하면 입력된 게 그대로 나온다.’ 입력돼서 나오는 거는 피하려야 피할 여지가 없어. 그러니까 입력돼서 나오니까 그것을 다시 바꿔서 입력을 해라, 이 소린데 이 세상..

대행 스님 법문_ 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

그런데요, 아까 내가 얘기했죠. 한발짝 떼어놓으면 한발짝 없어지고 또 한발짝 떼어놓으면 한발짝 없어진다고요. 그랬죠? 그것이 가만히 편안하게 다 버리고 있으란 말이 아니죠. 어떻게 들었어요? 연방 발이 고정되게 붙어있는 게 아니라 떼어놓는 거죠. 그러니까 아까 얘기할 때 ‘나를 버려야 된다’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내 자불(自佛)이 하는 거다’ 한다면 나를 완전히 버리는 거예요. 안 그래요? 간략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나를 버려라’ 하는 것은 나를 버리고 중심, 즉 자불만 믿어라 이 소리거든요. 당신이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 없으면 몸은 송장이 되거든? 그 내 몸이 없는데 어떻게 자불이 있겠나. 그러니 몸뚱이는 자동차와 같고 자불은 운전수와 같거든. 그러니 차는 운전수를 믿어야지? 또 딴 걸로..

대행 스님 법문_ 선행하는 것도 악행하는 것도 다 내 한마음에 있다

말이야 항상 하는 말이 그 말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전부 차원이 달라지고 그러겠죠. 그냥, 보통 그냥 ‘저 스님은 저런 말씀, 항상 저런 말씀하신다.’ 이러고 그냥 가지 마세요. 이 보이는 게 없으면 여러분들이 보이는 게 없어서 공부하는 데 지장이 많아요. 그러니까 보이는 게 있을 때 여러분들도 같이 공부를 하시구요. 아까도 그런 말을 했지만 악한 거 선한 거…, 이 악한 거를 쓸 때는 어떻게 되고 선한 거를 쓸 때는 어떻게 되나. ‘주는 거 나쁘다고 하는 사람 없다. 그런데 악한 걸 주면 나쁘다고 한다.’ 이런 거요. 그런 걸 여러분들이 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냥 여여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다 알고 계시잖아요. 악한 거는 나쁘고 선한 거는 좋다는 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대행 스님 법문_ 마음공부에도 욕심이 필요할까요?

욕심이 있고 없고 간에 자기 분수대로 자기가 능력대로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죠? 거기에는 자기의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하고 덜함도 없겠죠. 자기 지금 능력대로 살고 있는 겁니다. 그 능력대로 살고 있는 그 자체를 그대로 자기가 하고 있고 자기가 살고 있고 하니까 아까도 얘기했듯이 주인공, 자기한테 되놓는 겁니다. 현재 자기가 과거 자기한테 그냥 다 놓듯이 현재 자기와 과거 자기가 둘이 아니게 바로 삼심(三心)이 일심(一心)으로 공했으니까 주인공(主人空)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하고 가는 거 자기한테다 놓는다. 그러나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이 그냥 자기가 하고 자기가 그냥 하고 있는 자체 자기가 공했으니까, 주인공이니까 그대로, 그대로 놓고 아주 편리하게 편안하게 그대로 ‘너가, 네 놈..

대행 스님 법문_ 감사함은 모든 것을 녹인다

그런데 말이야 그 지금 마음이 아니라 다 그렇게 욕심부리고 그러는 마음 말고 말이야 움죽거리지 않는 마음이 바로 중심이 되거든. 심봉이 돼. 그 마음과 이렇게 동일하게 됨으로써 거기에다 코드를 꽂거든? 그러니까 지금 그 욕망, 의욕, 그것도 좋은데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그대로 왔다야 그거는, 아주. 시쳇말로. 그냥 감사, 모든 게 다 감사하다면 그냥 뭉청뭉청 무너져 유전성이라든가, 영계성이라든가, 업보성, 인과성, 세균성이 그냥 몽땅몽땅 무너져. 무너지게 되면 환하게 문 아닌 문이 보여. 그랬을 때에 그 문으로 털썩 들어서면 들어서는 사이 없이 들어서게 돼. 그러면 그 뭐,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그 주인이 자긴데 뭐 그러니 얼마나 좋겠어. 그러니까 그저 감사하면 모두가 녹아지게 돼 있어. 그전에 내..

대행 스님 법문_ 좋은 인연을 만나려면

그거는 마음을 내고 안 내고가 없어요. 자연적으로 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아주 친근하게 생각이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아주 냉랭하게 그냥 담담하게 생각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을 만나면 불쌍한 생각이 들고 이러죠? 그렇죠? 그랬을 때에, 또 어떤 사람을 보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을 보면 못하게 보이고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집안 환경 때문에 아주 곤궁하게 불쌍한 사람이 있고. 이러한 모든 시시때때로 각각 이렇게 보이는 게 있는데 그 보이는 거를 지혜로운 마음이라면 불쌍하면 불쌍치 않게 모든 과거 미래 현재를 한데 싸서 이게 주인공에다 거기다 놓으면 그냥 삼세가 통하는 일이에요, 이게. 그래서 주인공이거든요. 그러니까 거기다 놓고 마음 한 번 탁 내주면 그쪽도..

대행 스님 법문_ 공심으로 쓰는 지혜

오늘 처음 오셨습니까? 그러면 아리송하죠. 얼른 쉽게 말해서 육바라밀이 따로 없고 또는 지혜가 따로 없이 여러분들이 생활하고 가시는 데에 지혜롭게 마음 쓰시는 것이 지혜로우면 그것이 지혜고 그 뭐 별다로 따로 없습니다. 그 속의 진의는 여러분들이 다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 마음,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쓰는 마음은 지혜롭고 그거를 정신계와 물질계를 같이 쓰지 못하고 즉 말하자면 물질계에서만 쓰게 되면 그것이 지혜롭지 못하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이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쓰는 사람들은 공덕이 있지만 그냥 육안으로 그냥 쓰는 사람은 공덕이 하나도 없다. 이 물질만 보고, 내 물질이 물질만 보고 기도 하거나 그런다면 그건 상대를 보고 기도를 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한마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공덕..

대행 스님 법문_ 불법의 인연을 이어주는 길

우리가 이런 인연 만나는 거는 천 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렵다고 그랬어. 그러는데 그런 마음이 얼른 닿겠어, 그거? 그러니까 자꾸 재주를 부려야지, 당신이. 왜냐하면 이렇게 건수가 이리로 이렇게 해서 공부하게끔 건수가 생겨야 되거든. 그러니까 건수를 만들라고. 그저 너무 잘못 되게 하면 안 되니까 그저 편안하게 오게끔 자꾸 건수를 만들라고. 당신이 다리를 놓지 않으면 누가 놔. 그러니까 한생각만 잘하면 올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한생각을 잘해도 오지 않더라 이러거든. 그런데 그것이 마음과 마음에 맘대로 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든. 그 영혼을 붙들고 저거 해야지 몸과 말로 해서 그 몸뚱이를 끌려고 그러면 끌어지지 않어. 그것은 마음으로서 마음을 끌어야지 되는 거지 아무리 몸뚱이하고 말로 해서 끌려고 그러면..

대행 스님 법문_ 고라 생각 말고 항상 주인공에 기쁘게 놓으세요

여러분들한테 줄창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나간다면 “아유 팔자운명이다, 뭐 어쩌다” 이런 얘기들을 하고들 삽니다. 그러나 이 마음공부를 하고 가시는 분들에 한해서는 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자기고 마음을 허탕하게 쓰는 것도 자기입니다. 자기가 이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옳고 그른 거, 하지 않아야 할 거 하여야 할 거, 이거를 다 알고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자체를 쓰는 대로 고다, 고가 아니다 하는 것이지 고가 따로 없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런데 고라고 한 것은 오히려 자기를 승화시키는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막다른 데를 들어가 보지 않았으면 그 처참하고 갈 길이 없어서 쩔쩔매고 이렇게 해보질 못했으면 그런 데가 앞으로 또 닥치면 기가 막히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마음의 주인을 무조건 믿어라

어떻게 믿긴 뭘 어떻게 믿어요. 자기가 이 세상에 났으니까, 있는 거니까 믿어야죠. 자기 끌고 다니는 그놈이 바로 자기 마음의 주인인 놈인데 주인 놈이 과거로부터 이끌고, 지금도 또 이끌고 가고 있고 그러는데 어떻게 안 믿겠소? 허공을 믿겠소, 이름을 믿겠소, 고깃덩어리 형상을 믿겠소, 무엇을 믿겠소? 나부터 믿어야, 나부터 알아야 상대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 우주를 알고, 세계를 알고 내 나라도 생각할 수 있고, 내 가정도 생각할 수 있고 사회, 국가 모두 생각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나는 이상스럽게 생각이 들어요, 어떤 때는. 어떻게 믿습니까? 이런단 말이에요. 아니, 자기도 자기를 못 믿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믿고 돈은 주고, 또 돈을 남의 보증을 서고, 망하고 온통 이 짓이 나요. 자기가 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