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법상스님의 목탁소리 131

[반야5] 쥐고 있는 것이 있어서 괴롭다, 이대로가 실상이다

네, 반갑습니다. 지난번에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할 때 반야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반야바라밀다(반야경)를 반야심경이라고 줄여서 하는 것처럼 반야지혜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 보니까 오늘도 반야에 대한 이야기를 좀 이어가겠습니다. 반야를 세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어요. 그것을 방편반야 또 실상반야 그리고 관조반야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우리는 평생 세상을 살면서 분별하면서 세상을 살아왔다. 여러분들이 집에서 여기 절까지 도착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분별입니다. 지하철 몇 호선을 탈지, 또 내려서 어떻게 걸어와서 어디까지 와야 할지, 이런 걸 다 알음알이 분별로써 알아야, 분별을 가지고 왔단 말이죠 이처럼 우리는 그 분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반야심경에서는 이 분별의 지혜가 아닌 그 무분별지를 설한..

[반야4] 마음공부로 되찾은 진짜 남편, 모름 불완전함이 진리, 참된 지혜

네, 반갑습니다. 지난 번에 반야에 대한 설명을 좀 했었습니다. 오늘 좀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면서 번역할 때 지혜라는 말이 있는데, 굳이 반야라는 말로 번역한 이유가 있겠죠.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지혜와 이 반야라는 지혜는 좀 다른 거니까 그렇게 아마 했을 거예요. 우리가 꿈을 꾸잖아요. 꿈의 세계 속에서 지금처럼 이렇게 삶을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꿈속에서도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있겠죠. 착한 사람도 있고, 좀 악한 사람도 있고, 또 지혜로운 사람도 있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도 있겠죠. 꿈속에도 보면 아주 지혜로운 환자들도 있을 수 있겠죠. 그리고 좀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꿈 속에서 막 꿈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가 지혜를 많이 닦고 하면 꿈의 세계를 ..

[반야3] 은사 불심도문 스님의 반야지혜, 진짜를 보는 지혜, 실상을 비춰보는 지혜

지난번, 마하에 대해서 반야심경의 첫 제목, 첫 글자죠. 마하에 대한 설명을 좀 드렸었고요 거기에 대해서 잠깐 좀 정리를 하면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반야심경의 제목이 [마하반야바라밀다 심경]인데요 크나큰 지혜로써 그 바라밀다하는 즉 바라밀다라는 것은 이 차안에서 저 피안으로 건너간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즉 이 중생의 세계에서 저 깨달음의 세계로 이렇게 건너간다는 어떤 방편을 바라밀 혹은 바라밀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중생의 언덕에 있는 우리가 저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가는 어떤 반야의 지혜 그 핵심만을 설한 경전이 이 반야심경이라고 했고요. 이 [바라밀]이라는 방편은 여기서 저기로 간다고 했는데 사실은 가지 않습니다. 가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이 중생이 부처로 간다라는 방편..

[반야2] 비교 분별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 분별하지 않는 것이 뭘까? 마하란?

지난 시간에 반야심경에 대한 간략한 말씀 좀 드렸고요 반야심경은 우리가 많이 알고 있으니까 본격적으로 오늘부터 하나나 말씀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이 강의를 통해서 ‘반야심경 공부를 한번 떼어야지’ 내지는 ‘반야심경을 확실하게 이해를 해야지’ 그런 생각을 굳이 가지시는 것보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걸 통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의 참뜻이 뭔지 그리고 이 선에서 얘기하는 자기의 본래면목이 무엇인지 또 이 진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걸까? ’ 그리고 내가 도대체 진리라는 말이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내 괴로움이 없는, 괴로움이 나오기 그 전, 괴로움이 본래 없었던 그 자리를 가리키고 있는 거다 보니까 이걸 통해서 자신의 괴로움을 어떻게 하면 더 소멸시킬 수 있을까?’ 내가 공부를 하면 할수..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반야1] 가장 먼저 반야심경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불교의 핵심, 불교대학의 축소판

네, 반갑습니다. 지난 한 해 [오늘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해서 BTN 방송국에서 녹화를 했었는데요 올해부터는 그것을 끝내고 반야심경을 주제로 새롭게 찾아뵙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 타이틀 제목은 ‘반야심경과 마음공부’입니다 왜냐하면 선이든 불교든 통틀어서 보면 이게 마음공부이기 때문에 ‘반야심경과 마음공부’란 이름이고 교재는 [반야심경과 마음공부]라는 책이 있으신 분들은 그걸 보셔도 되고 또 이렇게 [반야심경과 선공부]라는 책, 요걸 제가 기본으로 해서 강의를 하겠고요 그래서 교재는 없으셔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집에서 또 듣고 하시는 분들은 아마 우리 PD님께서 자막도 잘 달아 주실 거고 하니까 그냥 듣기만 하셔도 돼요. 그러니까 제가 그냥 ‘요거를 펴고 하는구나’ 그런 정도만 알아주시면 되겠고 우..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지금 이대로를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 있는 것을 원하지 않을 때 혼란이 생기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 있는 것을 원하지는 않죠. 지금 있는 대로 있도록 지금 있는 것이 진리거든요. 제법이 실상이고 현실이 진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있는 것을 지금 있는 대로 두면 문제 될 게 없어요. 지금 여러분 삶에서 가장 뜯어버리고 싶은 거 한 세 가지만 생각해 보세요, 속으로. 뜯어고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걸로 인해 괴롭지 않던가요? 그게 내 뜻대로 바뀌지 않으니까 괴롭지 않나요?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그걸 있는 그대로 허용해 준다면 어떨까요? 그것이 지금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더라도 내 생각으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돼야 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는 거 아닐까요? 내가 정말 다 알 수 있을까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우주 전체가 나다

깨어난다는 것은 이 몸과 마음이, 오온이 내가 아니구나.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구나라는 거에 깨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태어나는 게 내가 아니었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 게 내가 아니었구나. 여기에 깨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얘가 늙고 병들고 죽는 거에 신경 쓸 일이 없단 말이에요. 이게 내가 아니니까. 법신으로 깨어나는 거예요. 말하자면 이 몸이 내가 아니고 마음이 내가 아니라 이 연기하는 전체가 자기란 말이에요, 전체가. 전 우주법계 전체가 통으로 하나란 말이에요. 그거를 자기가 생각을 가지고, 분별심을 가지고 이 몸 안에 가뒀단 말이에요. 생각으로 가둔 거예요, 생각으로. 가둬지지 않아요. 그런데 자기 생각과 분별 망상으로 가뒀단 말이에요. 거기서 깨어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완전 자유죠. 죽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신통한 능력은 삿된 것일 뿐

스님 제가 공부하고 마음공부 열심히 했더니 꿈이 잘 맞고요 사람을 보면 딱 이 사람이 어떤지 알겠고요 뭔가 그 사람의 기운을 알겠고요 이 사람은 이상하다 싶은데 여지없이 맞아요. 그게 점점 더 잘 맞아요. 남들도 딱 보면은 이게 이 사람이 이걸 해야 되는지 안 했는지 이게 감으로 이렇게 뭔가 탁탁 와버려요.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내려놔야 해요. 그거를 추구해서 그걸 찾아서 “그게 맞네” 그래서 이거를 막 좋아하고 이걸 또 ‘개발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남들에게 알려주기까지 하고 여기에 관심이 있으면 이건 도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삿된 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도는 흐릿해진단 말이에요. 이 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도와는 멀어진단 말이에요 도와는 멀어지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생각을 믿었을 뿐인데 괴로워

“지금 이대로 와 달라야 해”하는 어떤 한 생각을 일으키고 “맞아 맞아, 나는 지금 이대로여서 나는 절망스럽고 좌절하고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거지? 나는 세상에서 이렇게 못난 사람이지? 세상 사람들은 나를 왜 이렇게 미워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일으키고 그 생각을 따라간단 말이에요. 그 생각을 진짜라고 여기면서 동일시해서 그 생각이 실제가 돼버려요. “진짜 세상 사람은 나를 미워해!” “나는 세상에서 볼품 없는 사람이야!” 그거는 실제 그런 게 아니라 내 생각일 뿐인데 근데 이 생각을 ‘나’라고 여기면서 그 생각을 일으켰을 때 그냥 나에게서 일어난 왔다 가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왔다 가는 바람처럼 왔다 가는 것으로 보지 않고 내 생각인 걸로 쥐었을 때 문제가 되거든요. 근데 그걸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내가 못난 놈이라는 생각이 들 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이 세상 있잖아요? 여러분이 창조한 세상이에요. ‘만법 유식’ 만법은 내가 오로지 내 식으로 만든 거예요. 자기 인식으로 만든 세상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이런 곳이야, 저런 곳이야”하는 내 머릿속에 생각이 있잖아요?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야” “대한민국은 선진국이야, 후진국이야” 이런저런 세상에 대한 나의 해석과 판단을 쥐고 “그 세상이 실제 있어” 이렇게 느끼잖아요. “내 바깥에 그 세상이 실제 있어” 그러잖아요. 내 바깥에 그런 세상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은 어디에만 있을까요? 자기 생각 속에서만 있어요. 자기가 분별심으로 “세상은 이런 곳이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딱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내가 만들어 놓은 그 분별심에 내가 갇혀서 그 생각에 짓눌려서 내가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지금과 마주하는 질문

질문 자체가 그런 거예요. 질문 자체가 우리는 성과 위주, 결과 위주의 질문을 하잖아요. -시험 잘 봤어? -친구 몇 명 있어? -친구 몇 명하고 친해? -왕따는 아니지? -성적은 잘 나왔니? -그래서 시험은 다 했어? 결과를 물어보잖아요. 항상 질문이. 근데 ‘과정’, ‘지금’을 물어봐야 해요. 지금 눈앞으로 돌아오는 질문을 해야 해요. -행복하니? -마음은 어떠니? -아, 그래서 어떤 느낌이었니? “오늘 시험 봤어요.” “몇 등 했는데?”가 아니고 “아 시험 끝나서 마음이 어때? 홀가분하겠네.” 그러면 “마음이 어때?” 이러면 자기 마음을 보게 돼요. “어, 그러네요, 맞네. 되게 홀가분한데요” 그 홀가분함을 비로소 그 질문 때문에 마주하게 돼요. 그렇게 지금과 마주하는 질문을 던져줘야 해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욕망과 두려움 뿐

이 ‘나’라는 아상과 에고가 있는 동안은 나를 만들어 놨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더 갖고 싶은 것들이 생겨난단 말이에요. 내가 갖고 싶은 것들 그걸 욕망하는 삶을 살아요. 또 내가 버리고 싶은 것들 혹은 “나에게서 멀어지면 어쩌지?” “난 이건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하고 내 인생에서 사라지면 어쩌지?” 싶은 게 두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나’라는 것에서 취사 간택이 생기니까 내 걸로도 취하고 싶은 거에는 욕망이 생기죠. 근데 이게 취해야 되는데 이게 자꾸 버려지는 것들 버리기 싫은데 버려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또 더 갖고 싶은데 못 가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그러니까 아상과 에고가 있는 삶은 욕망 아니면 두려움밖에 없어요. 욕망 아니면 두려움. 욕망은 내 걸 만들고 싶은 거고 두려움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욕망? 문제 없어!

욕망도 욕망 있는 게 뭐 문제겠어요. 사람이 살려면 이 몸을 이 에고를 가진 이 몸뚱이를 가지고 우리는 일단 인생을 이렇게 이 꿈속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얘가 원하는 것을 충족해 주면서 사는 게 왜 문제예요? 당연한 거예요. 당연히 그러고 살아야 해요.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다만 그 욕망이 과도했을 때 문제가 되는 거지.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얘는 얘가 할 역할이 있어요. 인연 따라 그 인과응보라 그랬잖아요. 인연 따라 얘가 할 이번 생의 역할을 얘는 알아서 하게 돼 있어요. 그냥 내가 신경 안 써도. 그러니까 얘는요 여러분이 아니라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얘는 얘가 할 일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세요. 얘가 그 일 잘하든 못하든 나랑 상관없어요. 잘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연결된 전체가 나다

이 세상은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저절로 되는 거지.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도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잖아요. 공기가 없으면 나도 없거든요. 공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숨을 쉬어요? 공기 덕분에 사는 거잖아요.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건데 어떻게 이걸 나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전체 공기가 다 나지. 햇살이 없으면 내가 없잖아요. 이 태양이, 전체가 나지 어떻게 나만 나예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밥 한 끼 먹어도 밥 한 끼랑 연결된 이 우주의 모든... 밥 한끼에 우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근데 밥 한끼와 연결된 우주 전체가 나잖아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하루에 한 끼도 아니고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새끼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없으면 내가 없다니..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업보는 있지만 작자는 없다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잡아함경 과거에 지은 업이 있으면 거기 따라 보를 알아서 받을 거예요. 그런데 죄지은 사람이 나도 아니고 죄를 받을 사람이 나도 아니에요. 그거는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어요. 그냥 업보만 있어요. 업보는 인연따라 일어나는 거니까 받으면 되는 거고 뭐 거부할 수 없는 거고. 그래서 우리는 이대로 안전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옛날에는 나쁜 놈이었어도 지금 안전하다니까요. 지금 무죄라니까요, 무죄. 옛날에 죄가 있었어도 지금 무죄라니까요. 옛날에 잘 나가는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어도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지금 이대로에요. 불교는 에고가 절망하는 공부거든요. 우리는 불교 영적인 공부를 하면서 내가 더 에고의 우월감을 느껴요, 처음에는. 근데 나중에는 이 마음공부는 자기의 우..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보는 것이 전부다

그 생각에 자꾸 끌려가지 않도록 그냥 그걸 바라보면 돼요. 볼 뿐. 전부에요 그게. 이건 너무 단순한 공부예요. 이 공부는 그냥 보면 돼요. 그런데 우리는 명상 마음공부를 어떻게 하냐면 이걸 보고 나서 “봤으니까 내가 알아차려서 이걸 없애야 돼”라는 생각이 막 뒤따라오다 보니까 보고 나서 “봤으니까 사라지겠지. 이거 진짜 아니야. 이거 없애야 해. 이건 진실이 아니라 그랬어, 스님 법문에. 여기 끌려가지 마. 너 지금 끌려가고 있어” 이러면서 자꾸 속삭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생각으로 생각을 뒤덮으려고 그래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보면 돼요, 그냥. 아주 가볍게. 그냥 보고 보는 거예요, 그냥. 그게 다예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들숨에 미소, 날숨에 평화

틱낫한 스님께서 들숨에 숨을 들이쉬면서 ‘미소’ 날숨에 ‘평화’ 이렇게 말씀하신 게 억지로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보게 되면 미소가 띠어지게 돼요. ‘또 올라왔구나’ 하고 내가 거기 바로 올라온 생각을 따라가느라고 경직되는 모습을 보게 된단 말이에요. 보면서 그냥 스르륵 미소가 띠어져요. 그 말이 뭐냐면 스르륵 긴장이 풀린단 말이에요. 스르륵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걸 보게 되는 거예요, 그냥. 그래서 그냥 웃어넘겨요. “또 끌려갔구나” “또 끌려갈 뻔했구나” 그게 보인단 말이에요. 그냥 보면 그냥 미소가 띠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 속에 평화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바라보면 돼요. 그러면 두려운 것도 없어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두려울 때 그저 볼 뿐

마인드 플리스, 알아차림 지관, 사띠, 위빠사나 멈추고 보라는 거예요. 왜? 진짜가 아니니까. 두려운 생각이 일어날 때 그냥 보라는 거예요. 다른 거 아무 것도 할 것도 없다. 없애려고 애쓸 거 없다. 없애려고 애쓰려고 하면 없애려고 애쓰는 마음이 여기 힘을 실어 줘요. “없애야 되는데” 하는 막 강력한 생각을 부여하기 때문에 “안 없어지면 어쩌지?”하는 두려움도 같이 부여해요. 그러니까 없애려고 애쓰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두려운 마음 생길 때 “이러다 병나는 거 아니야?” 뭐 이런 두려운 마음이 딱 생길 때 그걸 없애려고 애쓰는 거는 이 생각을 더 강화한단 말이죠. 애쓸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볍게 보면 돼요, 그냥. 지관, 생각을 더 그 생각에 자꾸 끌려가지 않도록 그냥 그걸 바라보면 돼요. 볼..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내버려 두면 알아서 한다

“얘가 잘 알아서 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 다음 달에 중요한 발표가 있거나 중요한 자식 시험이 있거나 중요한 남편 진급에 달렸는데 “이게 잘 될까?” 막 조바심 내지 않아도 돼요. 지가 알아서 할 거예요. 내가 그러지 않아도. 얘가 알아서 할 거에요, 그냥. 얘는 어떻게 알아서 하느냐? 전자동으로 알아서 해요. 어떤 전자동일까요? 그게 업습이거든요, 업식이고. 업이라는 건 과거에 지어왔던 수많은 행위들이잖아요 행위들이 식, 의식으로 쌓여서 자기 인식에 다 아뢰야식 속에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은 얘가 아뢰야식 속에 다 가지고 있어요. 다 취해서 이걸 나라고 알고 있는 에고가 있잖아요. 이건 얘가 할 일이에요, 그냥. 얘가 알아서 할 거예요. 여러분이 걱정 안 해도 얘가 알아서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탐진치 삼독의 참된 의미

어떻게 하는 것이 불이중도(不二中道)의 수행이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고 과도하게 버리려 하지 마라. 탐진치 삼독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라 그러잖아요. 이 취사간택심이 바로 탐진치 삼독의 다른 말입니다. 즉 좋은 것을 취하려고 막 애쓰는 마음이 탐심이죠. 또 싫은 것을 “내 인생에서 없어져야 해” 하고 막 몰아내려고 하는 것도 탐심입니다. 또 좋은 걸 내 걸로 막 갖고 싶은데 가져지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그게 진심이죠. 삶은 이대로 완전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탐심과 진심이라는 허망한 분별 망상이 그냥 허망한 분별이었음을 모르니까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을 치심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 탐진치 삼독을 여의기 위해서는 불이중도(不二中道)를 실천해야 되고 불이중..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집착 없이 하면 더 큰 열정이 생겨

집착 없이 하게 되면 집착을 가지고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열정과 에너지와 뭔가 막 삶의 뭐랄까 요즘 말로 파이팅이 넘치게 되는데 하되 함의 없이 할 때는 과도하게 애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열정과 에너지가 이렇게 막 나도 모르는 무언가의 어떤 힘이 나를 끌고 가는구나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어떤 그런 자각이랄까 그런 일이 생겨납니다 이처럼 사실은 잘하려고 기를 쓰면 잘해지지 않아요. 릴렉스 할 때 이완할 때 턱 내맡길 때 그때 무위로써 유위 조작하려 하지 않을 때 진짜 잘 되는 일이 벌어지거든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문제가 나를 찾아온 이유

이 문제가 나에게 찾아온 것은 괴로움으로써 나를 죽이기 위해서 문제로써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부처로서 찾아왔단 말이에요. 왜? 여러분이라는 이 70억 인구 가운데 하나의 존재, 하나의 삶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펼쳐지고 있을까요? 그게 여러분으로 피어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대로일 때 가장 완전한 부처예요. 발 아래에 있는 꽃다지가 “나도 장미꽃처럼 강렬하고 화사한 꽃이 될 거야”라고 한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평생 자괴감에 빠져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살아야 할 겁니다. 문득 꽃다지가 지금 이대로를 허용하게 됐을 때 “나는 이렇게 볼품없는 꽃다지로서 완전히 허용하고 받아들이고 이 꽃다지의 삶을 살겠어” 라고 받아들여줄 때 그때 꽃다지인 채로 문제가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외로움과 하나될 때 외로움은 없어

내가 외로움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그 외로움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해결이 된다기보다는 외로움을 찾을 수 없어요. 즉, 내가 외로움을 직면할 때 그때 외로움이 사라집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스님. 제가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진짜 받아들일게요. 이것과 같이 살게요.” 그리고 한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 “해봤는데도 안 되네” 또 이런단 말이에요. “안 되네” 하는 마음은 뭐예요? 둘로 나누는 마음이에요. “안 되네” 하는 마음은 이것과 같이 살 마음이 없는 거예요. 이걸 해결하고 가고 싶은 것이죠. 이걸 해결하고 가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 이것과 같이 살겠다. 꼭 같이 살아야 합니다. 왜? 그것이 왔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찾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과 같이 살아주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운 마음을 해결하려면 거기에 접속하라

달마대사에게 혜가가 찾아와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 괴로운 마음을 가져와 봐라” 괴로운 마음이 어디 있지? 가져가려고 찾아보니까 이 괴로운 마음과 접속한 거죠. 찾아본 거예요, 본 거죠. 어디 있을까? 있는 그대로 괴로움을 찾아보니까 이 괴로움이 찾을 수 없어요. “없습니다” 분명히 혜가는 방금 전까지 괴로웠거든요. 괴로움이 있고 내가 괴로움에 물들었고 내가 이 괴로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달마가 “그 괴로움을 가져와 봐라” 했을 때 비로소 이 괴로움과 내가 하나가 된 거예요. 즉 지관, 멈추고 보게 된 겁니다. 둘로 나누지 않고 그냥 하나가 하나를 보게 된 거예요. 이것은 이것이 저것을 보는 그런 봄이 아닙니다. 둘로 쪼개지는 봄이 아닙니다. 이게 진짜 위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학부모의 집착, 공부 성적 스트레스 푸는 지혜

아이를 막 쪼기 시작했고 공부하라고 나도 그래야만 아이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과도하게 절대적 진실인 것처럼 믿고 집착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도 힘들어지고 나도 힘들어 지거든요. 그렇게 아이도 공부 공부하면서 숨 막히면서 공부를 해오고 있고 엄마도 그거로 인해서 내 뜻대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걸로 너무 힘들고 괴롭다가 문득 한 생각 돌이키게 됐다는 얘기를 하세요. “내 생각이 정말 옳은가?” 문득 그 집착심을 내려놓게 됐다는 것이죠. 나만 편안해졌던 게 아니라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아이도 너무 편안해지더라는 거죠 내가 아이의 공부 닥달을 덜 했더니 이 아이가 “어 이거 내가 스스로 해야 되겠구나”라는 걸 깨닫고는 스스로 더 열심히 하..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움 속으로 뛰어들라

여기 내가 있고 여기 문제가 있어서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둘로 나누는 이법의 방식이기 때문에. 부디 중도의 길이 아니다.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떻게 하는 게 받아들이는 것이냐? 괴로움이 있을 때 그 괴로움 속으로 100% 뛰어드는 겁니다. 괴로워해 주기를 선택하는 겁니다. “수행을 통해 괴로움을 해결할 거야” 이것은 수행이 아니고요 회광반조 해서. 내가 지금까지는 수행을 통해 괴로움을 없애야지 아니면 어떤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했어요. 그런데 탁 문득 돌이키는 겁니다. 마음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애쓰고 노력하면 될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애써서 노력해야만 된다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거예요, 우리는. 어떤 아이들은 그러죠. 부모님에게 상처받았던 아이들은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커서도 사회에서도 직장 상사에게 친구들에게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내가 노력해야만 해” “있는 그대로 괜찮아. 완전히 사랑받을만 해” 하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 되기 시작합니다. 왜?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고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괴로워질 것 같으니까. 진실은 유위 조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위법에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다 열심히 살라고 하는데 부처님 가르침은 하던 걸 하지 말라고 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군대에서 목사, 신부, 스님들의 훈련 이야기

제가 훈련받을 때 우리 목사, 신부, 스님들이 같이 훈련받고 있는데 제일 먼저 신부님이 보온통에 티백 커피 잔뜩 넣어서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한여름에, 훈련받고 있는데. 저쪽에서 제가 태어나 처음 해 본 거예요. 100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목사 신부 스님, 목사 신부 스님 하니까 경쟁이 되잖아요. 막 포복을 해서 빨리 가는 사람은 두 잔씩 준다고 해서 내가 목사님, 신부님께 질 수 없다 해서. 옆에서 뒤에서 응원하고 있고. 그리고 앞에 딱 도착해서 온몸을 그렇게 쓴 게 처음인 것 같아요. 야 이 100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높은 포복, 낮은 포복 막 번갈아 가면서 거기까지 갔더니 녹초가 되어 죽을 거 같더라구요. 목이 말라서. 근데 신부님이 냉커피를 주시는데 “한 잔만 더 주세요”이랬더니 “이번 주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지금 이대로 부처다

여러분들 확실한 진실은 우리는 전부 다 부처를 찾잖아요.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추구하잖아요. 이미 와있습니다. 완전한 삶은 이미 와 있고 그 완전함은 괴로움을 배제한 완전함이 아니에요. 괴롭고 두려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대로가 안전하다는 거예요 진실로 여러분은 완전한 부처님이에요. 부처님을 매 순간 확인하고 있어요. 자기 생각, 그 중생을 믿지 않으면. 그 생각만 따라가지 않으면.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분 자신은 아, 이런 표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훨씬 괜찮은 사람이에요. ㅎㅎ 우리는 전부 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에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에요. 전부니까. 내가 부처니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있는 그대로의 눈앞의 현실

우리는 딱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속에 삶을 산단 말이에요. 생각을 일으켜서 “아, 나는 지금 몇 살쯤 된 사람이고 아, 나는 인생의 어느 때는 실패 했었고, 어느 때는 성공했던 사람이야.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때가 있어서 참 가슴 아팠어. 회사에 가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내가 앞으로 몸이 더 아파지면 어쩌지? 죽고 나서 지옥 가면 어쩌지?” 이런 류의. 무수히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자기와 세계를 만들어낸단 말이에요. 나와 세상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나와 세상이 진짜 나와 세상이 맞느냐? 그걸 자기에게 자꾸 질문을 던져 봐야 해요. 정말 진실한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정말 나와 세상이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