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법상스님의 목탁소리 117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업보는 있지만 작자는 없다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잡아함경 과거에 지은 업이 있으면 거기 따라 보를 알아서 받을 거예요. 그런데 죄지은 사람이 나도 아니고 죄를 받을 사람이 나도 아니에요. 그거는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어요. 그냥 업보만 있어요. 업보는 인연따라 일어나는 거니까 받으면 되는 거고 뭐 거부할 수 없는 거고. 그래서 우리는 이대로 안전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옛날에는 나쁜 놈이었어도 지금 안전하다니까요. 지금 무죄라니까요, 무죄. 옛날에 죄가 있었어도 지금 무죄라니까요. 옛날에 잘 나가는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어도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지금 이대로에요. 불교는 에고가 절망하는 공부거든요. 우리는 불교 영적인 공부를 하면서 내가 더 에고의 우월감을 느껴요, 처음에는. 근데 나중에는 이 마음공부는 자기의 우..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보는 것이 전부다

그 생각에 자꾸 끌려가지 않도록 그냥 그걸 바라보면 돼요. 볼 뿐. 전부에요 그게. 이건 너무 단순한 공부예요. 이 공부는 그냥 보면 돼요. 그런데 우리는 명상 마음공부를 어떻게 하냐면 이걸 보고 나서 “봤으니까 내가 알아차려서 이걸 없애야 돼”라는 생각이 막 뒤따라오다 보니까 보고 나서 “봤으니까 사라지겠지. 이거 진짜 아니야. 이거 없애야 해. 이건 진실이 아니라 그랬어, 스님 법문에. 여기 끌려가지 마. 너 지금 끌려가고 있어” 이러면서 자꾸 속삭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생각으로 생각을 뒤덮으려고 그래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보면 돼요, 그냥. 아주 가볍게. 그냥 보고 보는 거예요, 그냥. 그게 다예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들숨에 미소, 날숨에 평화

틱낫한 스님께서 들숨에 숨을 들이쉬면서 ‘미소’ 날숨에 ‘평화’ 이렇게 말씀하신 게 억지로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보게 되면 미소가 띠어지게 돼요. ‘또 올라왔구나’ 하고 내가 거기 바로 올라온 생각을 따라가느라고 경직되는 모습을 보게 된단 말이에요. 보면서 그냥 스르륵 미소가 띠어져요. 그 말이 뭐냐면 스르륵 긴장이 풀린단 말이에요. 스르륵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걸 보게 되는 거예요, 그냥. 그래서 그냥 웃어넘겨요. “또 끌려갔구나” “또 끌려갈 뻔했구나” 그게 보인단 말이에요. 그냥 보면 그냥 미소가 띠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 속에 평화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바라보면 돼요. 그러면 두려운 것도 없어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두려울 때 그저 볼 뿐

마인드 플리스, 알아차림 지관, 사띠, 위빠사나 멈추고 보라는 거예요. 왜? 진짜가 아니니까. 두려운 생각이 일어날 때 그냥 보라는 거예요. 다른 거 아무 것도 할 것도 없다. 없애려고 애쓸 거 없다. 없애려고 애쓰려고 하면 없애려고 애쓰는 마음이 여기 힘을 실어 줘요. “없애야 되는데” 하는 막 강력한 생각을 부여하기 때문에 “안 없어지면 어쩌지?”하는 두려움도 같이 부여해요. 그러니까 없애려고 애쓰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두려운 마음 생길 때 “이러다 병나는 거 아니야?” 뭐 이런 두려운 마음이 딱 생길 때 그걸 없애려고 애쓰는 거는 이 생각을 더 강화한단 말이죠. 애쓸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볍게 보면 돼요, 그냥. 지관, 생각을 더 그 생각에 자꾸 끌려가지 않도록 그냥 그걸 바라보면 돼요. 볼..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내버려 두면 알아서 한다

“얘가 잘 알아서 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 다음 달에 중요한 발표가 있거나 중요한 자식 시험이 있거나 중요한 남편 진급에 달렸는데 “이게 잘 될까?” 막 조바심 내지 않아도 돼요. 지가 알아서 할 거예요. 내가 그러지 않아도. 얘가 알아서 할 거에요, 그냥. 얘는 어떻게 알아서 하느냐? 전자동으로 알아서 해요. 어떤 전자동일까요? 그게 업습이거든요, 업식이고. 업이라는 건 과거에 지어왔던 수많은 행위들이잖아요 행위들이 식, 의식으로 쌓여서 자기 인식에 다 아뢰야식 속에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은 얘가 아뢰야식 속에 다 가지고 있어요. 다 취해서 이걸 나라고 알고 있는 에고가 있잖아요. 이건 얘가 할 일이에요, 그냥. 얘가 알아서 할 거예요. 여러분이 걱정 안 해도 얘가 알아서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탐진치 삼독의 참된 의미

어떻게 하는 것이 불이중도(不二中道)의 수행이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고 과도하게 버리려 하지 마라. 탐진치 삼독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라 그러잖아요. 이 취사간택심이 바로 탐진치 삼독의 다른 말입니다. 즉 좋은 것을 취하려고 막 애쓰는 마음이 탐심이죠. 또 싫은 것을 “내 인생에서 없어져야 해” 하고 막 몰아내려고 하는 것도 탐심입니다. 또 좋은 걸 내 걸로 막 갖고 싶은데 가져지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그게 진심이죠. 삶은 이대로 완전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탐심과 진심이라는 허망한 분별 망상이 그냥 허망한 분별이었음을 모르니까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을 치심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 탐진치 삼독을 여의기 위해서는 불이중도(不二中道)를 실천해야 되고 불이중..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집착 없이 하면 더 큰 열정이 생겨

집착 없이 하게 되면 집착을 가지고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열정과 에너지와 뭔가 막 삶의 뭐랄까 요즘 말로 파이팅이 넘치게 되는데 하되 함의 없이 할 때는 과도하게 애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열정과 에너지가 이렇게 막 나도 모르는 무언가의 어떤 힘이 나를 끌고 가는구나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어떤 그런 자각이랄까 그런 일이 생겨납니다 이처럼 사실은 잘하려고 기를 쓰면 잘해지지 않아요. 릴렉스 할 때 이완할 때 턱 내맡길 때 그때 무위로써 유위 조작하려 하지 않을 때 진짜 잘 되는 일이 벌어지거든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문제가 나를 찾아온 이유

이 문제가 나에게 찾아온 것은 괴로움으로써 나를 죽이기 위해서 문제로써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부처로서 찾아왔단 말이에요. 왜? 여러분이라는 이 70억 인구 가운데 하나의 존재, 하나의 삶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펼쳐지고 있을까요? 그게 여러분으로 피어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대로일 때 가장 완전한 부처예요. 발 아래에 있는 꽃다지가 “나도 장미꽃처럼 강렬하고 화사한 꽃이 될 거야”라고 한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평생 자괴감에 빠져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살아야 할 겁니다. 문득 꽃다지가 지금 이대로를 허용하게 됐을 때 “나는 이렇게 볼품없는 꽃다지로서 완전히 허용하고 받아들이고 이 꽃다지의 삶을 살겠어” 라고 받아들여줄 때 그때 꽃다지인 채로 문제가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외로움과 하나될 때 외로움은 없어

내가 외로움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그 외로움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해결이 된다기보다는 외로움을 찾을 수 없어요. 즉, 내가 외로움을 직면할 때 그때 외로움이 사라집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스님. 제가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진짜 받아들일게요. 이것과 같이 살게요.” 그리고 한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 “해봤는데도 안 되네” 또 이런단 말이에요. “안 되네” 하는 마음은 뭐예요? 둘로 나누는 마음이에요. “안 되네” 하는 마음은 이것과 같이 살 마음이 없는 거예요. 이걸 해결하고 가고 싶은 것이죠. 이걸 해결하고 가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 이것과 같이 살겠다. 꼭 같이 살아야 합니다. 왜? 그것이 왔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찾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과 같이 살아주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운 마음을 해결하려면 거기에 접속하라

달마대사에게 혜가가 찾아와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 괴로운 마음을 가져와 봐라” 괴로운 마음이 어디 있지? 가져가려고 찾아보니까 이 괴로운 마음과 접속한 거죠. 찾아본 거예요, 본 거죠. 어디 있을까? 있는 그대로 괴로움을 찾아보니까 이 괴로움이 찾을 수 없어요. “없습니다” 분명히 혜가는 방금 전까지 괴로웠거든요. 괴로움이 있고 내가 괴로움에 물들었고 내가 이 괴로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달마가 “그 괴로움을 가져와 봐라” 했을 때 비로소 이 괴로움과 내가 하나가 된 거예요. 즉 지관, 멈추고 보게 된 겁니다. 둘로 나누지 않고 그냥 하나가 하나를 보게 된 거예요. 이것은 이것이 저것을 보는 그런 봄이 아닙니다. 둘로 쪼개지는 봄이 아닙니다. 이게 진짜 위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학부모의 집착, 공부 성적 스트레스 푸는 지혜

아이를 막 쪼기 시작했고 공부하라고 나도 그래야만 아이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과도하게 절대적 진실인 것처럼 믿고 집착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도 힘들어지고 나도 힘들어 지거든요. 그렇게 아이도 공부 공부하면서 숨 막히면서 공부를 해오고 있고 엄마도 그거로 인해서 내 뜻대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걸로 너무 힘들고 괴롭다가 문득 한 생각 돌이키게 됐다는 얘기를 하세요. “내 생각이 정말 옳은가?” 문득 그 집착심을 내려놓게 됐다는 것이죠. 나만 편안해졌던 게 아니라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아이도 너무 편안해지더라는 거죠 내가 아이의 공부 닥달을 덜 했더니 이 아이가 “어 이거 내가 스스로 해야 되겠구나”라는 걸 깨닫고는 스스로 더 열심히 하..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움 속으로 뛰어들라

여기 내가 있고 여기 문제가 있어서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둘로 나누는 이법의 방식이기 때문에. 부디 중도의 길이 아니다.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떻게 하는 게 받아들이는 것이냐? 괴로움이 있을 때 그 괴로움 속으로 100% 뛰어드는 겁니다. 괴로워해 주기를 선택하는 겁니다. “수행을 통해 괴로움을 해결할 거야” 이것은 수행이 아니고요 회광반조 해서. 내가 지금까지는 수행을 통해 괴로움을 없애야지 아니면 어떤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했어요. 그런데 탁 문득 돌이키는 겁니다. 마음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애쓰고 노력하면 될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애써서 노력해야만 된다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거예요, 우리는. 어떤 아이들은 그러죠. 부모님에게 상처받았던 아이들은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커서도 사회에서도 직장 상사에게 친구들에게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내가 노력해야만 해” “있는 그대로 괜찮아. 완전히 사랑받을만 해” 하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 되기 시작합니다. 왜?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고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괴로워질 것 같으니까. 진실은 유위 조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위법에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다 열심히 살라고 하는데 부처님 가르침은 하던 걸 하지 말라고 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군대에서 목사, 신부, 스님들의 훈련 이야기

제가 훈련받을 때 우리 목사, 신부, 스님들이 같이 훈련받고 있는데 제일 먼저 신부님이 보온통에 티백 커피 잔뜩 넣어서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한여름에, 훈련받고 있는데. 저쪽에서 제가 태어나 처음 해 본 거예요. 100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목사 신부 스님, 목사 신부 스님 하니까 경쟁이 되잖아요. 막 포복을 해서 빨리 가는 사람은 두 잔씩 준다고 해서 내가 목사님, 신부님께 질 수 없다 해서. 옆에서 뒤에서 응원하고 있고. 그리고 앞에 딱 도착해서 온몸을 그렇게 쓴 게 처음인 것 같아요. 야 이 100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높은 포복, 낮은 포복 막 번갈아 가면서 거기까지 갔더니 녹초가 되어 죽을 거 같더라구요. 목이 말라서. 근데 신부님이 냉커피를 주시는데 “한 잔만 더 주세요”이랬더니 “이번 주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지금 이대로 부처다

여러분들 확실한 진실은 우리는 전부 다 부처를 찾잖아요.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추구하잖아요. 이미 와있습니다. 완전한 삶은 이미 와 있고 그 완전함은 괴로움을 배제한 완전함이 아니에요. 괴롭고 두려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대로가 안전하다는 거예요 진실로 여러분은 완전한 부처님이에요. 부처님을 매 순간 확인하고 있어요. 자기 생각, 그 중생을 믿지 않으면. 그 생각만 따라가지 않으면.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분 자신은 아, 이런 표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훨씬 괜찮은 사람이에요. ㅎㅎ 우리는 전부 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에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에요. 전부니까. 내가 부처니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있는 그대로의 눈앞의 현실

우리는 딱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속에 삶을 산단 말이에요. 생각을 일으켜서 “아, 나는 지금 몇 살쯤 된 사람이고 아, 나는 인생의 어느 때는 실패 했었고, 어느 때는 성공했던 사람이야.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때가 있어서 참 가슴 아팠어. 회사에 가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내가 앞으로 몸이 더 아파지면 어쩌지? 죽고 나서 지옥 가면 어쩌지?” 이런 류의. 무수히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자기와 세계를 만들어낸단 말이에요. 나와 세상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나와 세상이 진짜 나와 세상이 맞느냐? 그걸 자기에게 자꾸 질문을 던져 봐야 해요. 정말 진실한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정말 나와 세상이 맞는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그냥 경험되고 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고의 수행은 뭐예요? 말로 표현하니까 삶을 사는 것 삶을 받아들이는 것 분별없이 삶을 경험하는 것 삶을 허용해 주는 것 삶을 받아들이는 것 이렇게 하지만 이 말 자체가 둘로 나눠지잖아요 내가 삶을 받아들인다. 내가 삶을 허용한다. 이렇게 이해 되잖아요, 여러분 머릿속에서는.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게 100% 허용되고 있어요, 완전히. 삶이 삶을 사용하고 있어요. 내가 나를 활용하고 있어요. 여긴 둘이 없어요 그냥 경험되는 거예요, 삶이. 진실이 경험되고 있어 매 순간. 그런데 내가 아상 에고가 계속해서 시비를 거는 거예요, 그 진실에. “이건 진실이 아니야. 너는 더 나아 줘야 돼. 더 벌어야 돼. 저 사람과 비교해 봐 너는 못 낫잖아” 계속해서 속삭이는 그 소리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말이죠. 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움은 전부 비교에서 온다

아무리 내가 가난하다고 해도 제가 인도에 갔을 때 집도 없고 부모도 없이 떠도는 아이들이 많았아요. 근데 걔네들은 집도 없고 부모 없이 떠도는 게 괴로운 게 아니에요. 당장 입에 들어가는 게 없는 게 괴롭지. 그래서 쓰레기통 항상 뒤지거든요. 그 더운 무더위 속에서.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의 괴로움이 괴로움일까요? 우리의 가난은 가난일까요? 가난이 아니거든요.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가난이 생겨요.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들과 비교하고 내가 옛날에 잘 나갔을 때와 비교하고. 그러니까 즉 요 정도는 다른 나라 어느 나라에서는 아프리카나 이런 나라에서는 아주 행복한 건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괴롭죠. 그죠? 그러면 지금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 진짜 괴로움이냔 말이에요. 비교에서 오는 괴로움 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현실이 곧 진실, 진실 이대로 내맡겨라

생각은 자기에게 생각할 수 있는 것만 보잖아요. 진리는 전체를 본단 말이죠. 그러니까 언제나 진리가 하는 대로 내버려둬야 해요, 내맡겨야 해요. 진리가 어떻게 해요? 현실대로 해요. 진리의 결과가 현실이에요. 내 결과는 생각이고. 내 생각은 “현실이 잘못되고 있어. 나는 지금 돈을 더 벌어야 해. 나는 지금 보다 더 예뻐져야 해. 나는 지금보다 더 안 아파야 해. 나는 지금보다 더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부자가 되어야 해.”하는 생각은 자기 생각을 믿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러면 안 돼요. 나는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되면 안 돼요. 지금만큼 부자여야 해요. 왜 부자가 되면 안 될까요? 내 복이 요만큼이면 요만큼만 받아야지 더 만큼 당겨써버리면 까먹는 거잖아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성경 창세기 에덴동산의 의미, 애쓸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보기 좋았다

성경에 다시 한번 창세기를 봤더니 그렇더라고요. 첫날부터 7일째까지 창조를 하면서 날마다 아직 완성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보기 좋았다. 있는 이 대로 보기 좋다는 거예요. 미완성인 채로.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즉, 근본 무명, 분별심을 일으키면서부터 하나님이 벌을 줬다, 이렇게 나와요. 어떤 벌을 줬냐? 이제부터는 그냥 있는 그대로 아무거다 다 따먹으면서 마음 편히 살아도 되도록 에덴동산이 본래 이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기 좋게 이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중생이. 분별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부터 땀을 흘려야만 뭔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별을 하면 애쓰고 노력하고 유의 조작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 근원은 그럴 필요가 없단 말이죠. 될 거는 저절로 되고..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현실이라는 진실에 만족하며 살기, 진을 빼고 살지 않기

내가 만나는 친구나 친지나 형제나 다른 남편들은 정말 자상하고 돈도 잘 벌어오고 아내한테 잘하고 항상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행복한 삶을 매일 살고 있는데 나는 이 남편 하나 잘못 만나서 저 놈을 만나서 내가 한다고 하면서 “저 남편, 저 남편은 정말 저런 남편하고 사는 여자는 기분이 어떨까?” 그래봐야 그것은 내 분별심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꾸 인생이 비효율적으로 바뀌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 나에게 있는 현세, 현실이 현실이라는 진실을 만족하지 못하면. 삶이 되게 비효율적으로 바뀌죠. 왜 비효율적이냐? 자꾸 이 사람을 미워해야 하니까. 자꾸 나와 인연도 없는 저 사람을 동경해야 하니까. 막 분노, 질투, 화 이런 게 계속 일어나지 않겠어요? 그런 거에 에너지를 빼고, 진을 빼며 살아야 하니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삶은 애쓰지 않아도 막 강렬하게 뭔가를 막 추진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열정은 인연 따라 시절 인연이 탁 분발 돼버리면 자연스러운 삶의 열정은 저절로 나오는 거거든요. 모든 일은 내가 과하게 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삶은. 원래 이 삶은 저절로 해요, 전부다 상당히 효율적이죠. 적은 노력을 했는데 큰 걸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큰 걸 얻고 싶어도 그게 때가 아니면 시절 인연이 아니면 죽도록 노력을 해서, 에너지를 막 300, 400, 500 죽을 것처럼 에너지를 투여해도 안된단 말이에요, 안 될 거는. 그러니까 안될 거에 공연히 기를 쓰고 에너지를 낭비하느라고 효율성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단 말이죠. 삶을 스트레스받아가면서 뭐 유의 조작할 필요가 없단 말이죠.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욕심과 현실 사이의 갭만큼 괴롭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살면 우리 마음은 비효율적이다. 공연히 안 해도 되는 거 괜히 기를 쓴단 말이에요 그렇게까지 진이 빠지지 않아도 되는데 진 빠지는 삶을 산단 말이에요. 아이가 성적이 안 나오는 데 어느 정도 공부시켜도 되는데 이 만큼까진 안 될 건데 요만큼 될 게 그 아이의 인연인데 업이고 팔자인데 이만큼 되길 바라면 이만큼 갭만큼 죽도록 해도 안 나올 건데 성적이 그분이 만큼 노력한 만큼 괴롭겠죠, 그죠?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전생에 복 지은게 예를 들어 복 지은게 내가 이번 생에 감당해야 할 복이 1억, 2억 버는 부자다, 이번 생 내가. 그런데 나는 10억을 벌고 싶다 그러면 8억의 갭만큼은 죽도록 해도 안 될 거 아니에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진정한 자기를 확인하는 명상

잠깐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라는 이 생명력? 내가 이렇게 있는 이 느낌? 이걸 한번 가만히 느껴보세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는 것을 가만히... 알아차려 보세요. 생각에 내가 아니라 들어오고 나가는 이 살아있음? 여기서 이게 바로 내면의 나가 가진 에너지 거든요. 내가 이렇게 들이쉬고 내쉬는 이 속에서 나의 에너지 나의 생명? 생명력이 느껴져요. 그냥 지금 이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어떤 존재감이랄까요? 이렇게 있는... 이렇게 있음 속에 잠시 그냥 있기만 해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삶에 일체를 내맡겨 버려, 가볍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내식대로 통제하고 지배하고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막 기를 쓰지 않아요. 변화시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반드시 이것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단 말이에요. 반드시 이것만이 절대 진실한 생각이 없이 그냥 가볍게 가볍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매 순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나는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것이 좋으니까 내가 지금은 이것이 내 머리로 쓰는 최선이니까 그걸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러나 결과에 대한 집착은 없이 내맡기는 거죠. 그랬을 때 생각을 믿지 않거든요. 근원에서 겉으로는 생각이 원하는 걸 하지만 근원에서 생각을 믿지 않아요. 진실을 믿지. 그러니까 결과는 내맡기게 돼요. 현실은 내 생각대로 막 하지만 결과는 완전 내맡기..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를 살게 해 주는 모든 인연이 전부 나, 삶 전체가 바로 나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도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잖아요. 공기가 없으면 나도 없거든요. 공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숨을 쉬어요? 공기 덕분에 사는 거잖아요.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건데 어떻게 이걸... 전체 공기가 다 나지. 햇살이 없으면 내가 없잖아요. 태양 전체가 나지 어떻게 나만 나예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밥 한 끼를 먹어도 밥 한 끼랑 연결된 이 우주의 모든, 밥 한 끼에 우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근데 밥 한 끼와 연결된 우주 전체가 나잖아요. 그게 없어 내가 죽는데요? 하루에 한 끼도 아니고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세 끼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이 없으면 내가 없다니까요. 이 우주 전체가 없어 내가 없는 거니까 진짜 나는 이게 아니에요. 그 연결된 전체가 나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라는 독특한 부처로 태어난 삶, 이것이 진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이 우주 전체의 여러분 한 명밖에 없잖아요. 삶을 이렇게 경험한 사람, 나밖에 없잖아요. 그 자기 그 내 현실 그게 진실이에요. 부처님은 그걸 경험하고 싶어서 여러분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보낸 부처님도 여러분이고 온 나도 부처님이에요. 내가 나를 보냈단 말이에요. 나가 나를 경험하려고.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우주의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부처가 이렇게 이걸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 거예요. 부처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 뜻을 이루어야죠. 그 뜻은 이미 이루어져 있고. 그러니까 이 정말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 그 속으로 뛰어든다? 뛰어든다 해도 뛰어든 내가 있고, 뛰어드는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뛰어들어져 있어요. 그걸 그냥 허용하고 살아 주면 돼요. 그게 진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죽지 않는 길, 괴로움 없는 길,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

“아, 이제 발견했다. 돈, 명예, 권력, 지위 이거는 진짜 즐거움이 아니었구나. 그건 왔다 가는 것이었구나.” 이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삶이 젊었을 때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즐겁고 재미있고 뭔가 가슴 뛰는, 나를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가슴 설레게 해요. 왜? 죽지 않는 길이니까. 늙고, 병들고, 죽지 않는 길 괴롭지 않고 삶을 살 수 있는 길 두려움 없이, 외로움 없이 정말 살아갈 수 있는 길. 그런 가능성이 정말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안 할 이유가 없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공적영지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그 모든 것들이 생멸한다는 것을 누가 알죠? 무엇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까? 분명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은 목격됩니다. 생멸하는 것이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생이야 희극이든 비극이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무언가가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라고도 하는데요 공적해서 텅 빈 가운데 그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소소영령한 아는 것이 있습니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집착만 없으면 이대로 좋다

미래에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믿지만 않으면 무엇을 원해도 좋습니다. 그 모든 생각, 추구, 바람 들을 그저 왔다가 가능 손님처럼, 바람처럼 여기고 진실이라고 믿지만 말아 보십시오. 그 생각을 집착하지 않으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이렇게 아무 일 없이 그러나 모든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그대로 존재하며 거기에서 삶을 즐기십시오. 이대로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