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법상스님의 목탁소리 109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외로움과 하나될 때 외로움은 없어

내가 외로움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그 외로움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해결이 된다기보다는 외로움을 찾을 수 없어요. 즉, 내가 외로움을 직면할 때 그때 외로움이 사라집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스님. 제가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진짜 받아들일게요. 이것과 같이 살게요.” 그리고 한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 “해봤는데도 안 되네” 또 이런단 말이에요. “안 되네” 하는 마음은 뭐예요? 둘로 나누는 마음이에요. “안 되네” 하는 마음은 이것과 같이 살 마음이 없는 거예요. 이걸 해결하고 가고 싶은 것이죠. 이걸 해결하고 가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 이것과 같이 살겠다. 꼭 같이 살아야 합니다. 왜? 그것이 왔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찾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과 같이 살아주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운 마음을 해결하려면 거기에 접속하라

달마대사에게 혜가가 찾아와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 괴로운 마음을 가져와 봐라” 괴로운 마음이 어디 있지? 가져가려고 찾아보니까 이 괴로운 마음과 접속한 거죠. 찾아본 거예요, 본 거죠. 어디 있을까? 있는 그대로 괴로움을 찾아보니까 이 괴로움이 찾을 수 없어요. “없습니다” 분명히 혜가는 방금 전까지 괴로웠거든요. 괴로움이 있고 내가 괴로움에 물들었고 내가 이 괴로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달마가 “그 괴로움을 가져와 봐라” 했을 때 비로소 이 괴로움과 내가 하나가 된 거예요. 즉 지관, 멈추고 보게 된 겁니다. 둘로 나누지 않고 그냥 하나가 하나를 보게 된 거예요. 이것은 이것이 저것을 보는 그런 봄이 아닙니다. 둘로 쪼개지는 봄이 아닙니다. 이게 진짜 위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학부모의 집착, 공부 성적 스트레스 푸는 지혜

아이를 막 쪼기 시작했고 공부하라고 나도 그래야만 아이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과도하게 절대적 진실인 것처럼 믿고 집착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도 힘들어지고 나도 힘들어 지거든요. 그렇게 아이도 공부 공부하면서 숨 막히면서 공부를 해오고 있고 엄마도 그거로 인해서 내 뜻대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걸로 너무 힘들고 괴롭다가 문득 한 생각 돌이키게 됐다는 얘기를 하세요. “내 생각이 정말 옳은가?” 문득 그 집착심을 내려놓게 됐다는 것이죠. 나만 편안해졌던 게 아니라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아이도 너무 편안해지더라는 거죠 내가 아이의 공부 닥달을 덜 했더니 이 아이가 “어 이거 내가 스스로 해야 되겠구나”라는 걸 깨닫고는 스스로 더 열심히 하..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움 속으로 뛰어들라

여기 내가 있고 여기 문제가 있어서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둘로 나누는 이법의 방식이기 때문에. 부디 중도의 길이 아니다.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떻게 하는 게 받아들이는 것이냐? 괴로움이 있을 때 그 괴로움 속으로 100% 뛰어드는 겁니다. 괴로워해 주기를 선택하는 겁니다. “수행을 통해 괴로움을 해결할 거야” 이것은 수행이 아니고요 회광반조 해서. 내가 지금까지는 수행을 통해 괴로움을 없애야지 아니면 어떤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했어요. 그런데 탁 문득 돌이키는 겁니다. 마음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애쓰고 노력하면 될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애써서 노력해야만 된다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거예요, 우리는. 어떤 아이들은 그러죠. 부모님에게 상처받았던 아이들은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커서도 사회에서도 직장 상사에게 친구들에게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내가 노력해야만 해” “있는 그대로 괜찮아. 완전히 사랑받을만 해” 하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 되기 시작합니다. 왜?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고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괴로워질 것 같으니까. 진실은 유위 조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위법에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다 열심히 살라고 하는데 부처님 가르침은 하던 걸 하지 말라고 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군대에서 목사, 신부, 스님들의 훈련 이야기

제가 훈련받을 때 우리 목사, 신부, 스님들이 같이 훈련받고 있는데 제일 먼저 신부님이 보온통에 티백 커피 잔뜩 넣어서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한여름에, 훈련받고 있는데. 저쪽에서 제가 태어나 처음 해 본 거예요. 100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목사 신부 스님, 목사 신부 스님 하니까 경쟁이 되잖아요. 막 포복을 해서 빨리 가는 사람은 두 잔씩 준다고 해서 내가 목사님, 신부님께 질 수 없다 해서. 옆에서 뒤에서 응원하고 있고. 그리고 앞에 딱 도착해서 온몸을 그렇게 쓴 게 처음인 것 같아요. 야 이 100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높은 포복, 낮은 포복 막 번갈아 가면서 거기까지 갔더니 녹초가 되어 죽을 거 같더라구요. 목이 말라서. 근데 신부님이 냉커피를 주시는데 “한 잔만 더 주세요”이랬더니 “이번 주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지금 이대로 부처다

여러분들 확실한 진실은 우리는 전부 다 부처를 찾잖아요.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추구하잖아요. 이미 와있습니다. 완전한 삶은 이미 와 있고 그 완전함은 괴로움을 배제한 완전함이 아니에요. 괴롭고 두려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대로가 안전하다는 거예요 진실로 여러분은 완전한 부처님이에요. 부처님을 매 순간 확인하고 있어요. 자기 생각, 그 중생을 믿지 않으면. 그 생각만 따라가지 않으면.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분 자신은 아, 이런 표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훨씬 괜찮은 사람이에요. ㅎㅎ 우리는 전부 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에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에요. 전부니까. 내가 부처니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있는 그대로의 눈앞의 현실

우리는 딱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속에 삶을 산단 말이에요. 생각을 일으켜서 “아, 나는 지금 몇 살쯤 된 사람이고 아, 나는 인생의 어느 때는 실패 했었고, 어느 때는 성공했던 사람이야.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때가 있어서 참 가슴 아팠어. 회사에 가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내가 앞으로 몸이 더 아파지면 어쩌지? 죽고 나서 지옥 가면 어쩌지?” 이런 류의. 무수히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자기와 세계를 만들어낸단 말이에요. 나와 세상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나와 세상이 진짜 나와 세상이 맞느냐? 그걸 자기에게 자꾸 질문을 던져 봐야 해요. 정말 진실한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정말 나와 세상이 맞는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그냥 경험되고 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고의 수행은 뭐예요? 말로 표현하니까 삶을 사는 것 삶을 받아들이는 것 분별없이 삶을 경험하는 것 삶을 허용해 주는 것 삶을 받아들이는 것 이렇게 하지만 이 말 자체가 둘로 나눠지잖아요 내가 삶을 받아들인다. 내가 삶을 허용한다. 이렇게 이해 되잖아요, 여러분 머릿속에서는.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게 100% 허용되고 있어요, 완전히. 삶이 삶을 사용하고 있어요. 내가 나를 활용하고 있어요. 여긴 둘이 없어요 그냥 경험되는 거예요, 삶이. 진실이 경험되고 있어 매 순간. 그런데 내가 아상 에고가 계속해서 시비를 거는 거예요, 그 진실에. “이건 진실이 아니야. 너는 더 나아 줘야 돼. 더 벌어야 돼. 저 사람과 비교해 봐 너는 못 낫잖아” 계속해서 속삭이는 그 소리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말이죠. 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움은 전부 비교에서 온다

아무리 내가 가난하다고 해도 제가 인도에 갔을 때 집도 없고 부모도 없이 떠도는 아이들이 많았아요. 근데 걔네들은 집도 없고 부모 없이 떠도는 게 괴로운 게 아니에요. 당장 입에 들어가는 게 없는 게 괴롭지. 그래서 쓰레기통 항상 뒤지거든요. 그 더운 무더위 속에서.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의 괴로움이 괴로움일까요? 우리의 가난은 가난일까요? 가난이 아니거든요.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가난이 생겨요.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들과 비교하고 내가 옛날에 잘 나갔을 때와 비교하고. 그러니까 즉 요 정도는 다른 나라 어느 나라에서는 아프리카나 이런 나라에서는 아주 행복한 건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괴롭죠. 그죠? 그러면 지금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 진짜 괴로움이냔 말이에요. 비교에서 오는 괴로움 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현실이 곧 진실, 진실 이대로 내맡겨라

생각은 자기에게 생각할 수 있는 것만 보잖아요. 진리는 전체를 본단 말이죠. 그러니까 언제나 진리가 하는 대로 내버려둬야 해요, 내맡겨야 해요. 진리가 어떻게 해요? 현실대로 해요. 진리의 결과가 현실이에요. 내 결과는 생각이고. 내 생각은 “현실이 잘못되고 있어. 나는 지금 돈을 더 벌어야 해. 나는 지금 보다 더 예뻐져야 해. 나는 지금보다 더 안 아파야 해. 나는 지금보다 더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부자가 되어야 해.”하는 생각은 자기 생각을 믿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러면 안 돼요. 나는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되면 안 돼요. 지금만큼 부자여야 해요. 왜 부자가 되면 안 될까요? 내 복이 요만큼이면 요만큼만 받아야지 더 만큼 당겨써버리면 까먹는 거잖아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성경 창세기 에덴동산의 의미, 애쓸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보기 좋았다

성경에 다시 한번 창세기를 봤더니 그렇더라고요. 첫날부터 7일째까지 창조를 하면서 날마다 아직 완성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보기 좋았다. 있는 이 대로 보기 좋다는 거예요. 미완성인 채로.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즉, 근본 무명, 분별심을 일으키면서부터 하나님이 벌을 줬다, 이렇게 나와요. 어떤 벌을 줬냐? 이제부터는 그냥 있는 그대로 아무거다 다 따먹으면서 마음 편히 살아도 되도록 에덴동산이 본래 이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기 좋게 이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중생이. 분별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부터 땀을 흘려야만 뭔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별을 하면 애쓰고 노력하고 유의 조작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 근원은 그럴 필요가 없단 말이죠. 될 거는 저절로 되고..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현실이라는 진실에 만족하며 살기, 진을 빼고 살지 않기

내가 만나는 친구나 친지나 형제나 다른 남편들은 정말 자상하고 돈도 잘 벌어오고 아내한테 잘하고 항상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행복한 삶을 매일 살고 있는데 나는 이 남편 하나 잘못 만나서 저 놈을 만나서 내가 한다고 하면서 “저 남편, 저 남편은 정말 저런 남편하고 사는 여자는 기분이 어떨까?” 그래봐야 그것은 내 분별심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꾸 인생이 비효율적으로 바뀌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 나에게 있는 현세, 현실이 현실이라는 진실을 만족하지 못하면. 삶이 되게 비효율적으로 바뀌죠. 왜 비효율적이냐? 자꾸 이 사람을 미워해야 하니까. 자꾸 나와 인연도 없는 저 사람을 동경해야 하니까. 막 분노, 질투, 화 이런 게 계속 일어나지 않겠어요? 그런 거에 에너지를 빼고, 진을 빼며 살아야 하니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삶은 애쓰지 않아도 막 강렬하게 뭔가를 막 추진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열정은 인연 따라 시절 인연이 탁 분발 돼버리면 자연스러운 삶의 열정은 저절로 나오는 거거든요. 모든 일은 내가 과하게 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삶은. 원래 이 삶은 저절로 해요, 전부다 상당히 효율적이죠. 적은 노력을 했는데 큰 걸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큰 걸 얻고 싶어도 그게 때가 아니면 시절 인연이 아니면 죽도록 노력을 해서, 에너지를 막 300, 400, 500 죽을 것처럼 에너지를 투여해도 안된단 말이에요, 안 될 거는. 그러니까 안될 거에 공연히 기를 쓰고 에너지를 낭비하느라고 효율성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단 말이죠. 삶을 스트레스받아가면서 뭐 유의 조작할 필요가 없단 말이죠.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욕심과 현실 사이의 갭만큼 괴롭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살면 우리 마음은 비효율적이다. 공연히 안 해도 되는 거 괜히 기를 쓴단 말이에요 그렇게까지 진이 빠지지 않아도 되는데 진 빠지는 삶을 산단 말이에요. 아이가 성적이 안 나오는 데 어느 정도 공부시켜도 되는데 이 만큼까진 안 될 건데 요만큼 될 게 그 아이의 인연인데 업이고 팔자인데 이만큼 되길 바라면 이만큼 갭만큼 죽도록 해도 안 나올 건데 성적이 그분이 만큼 노력한 만큼 괴롭겠죠, 그죠?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전생에 복 지은게 예를 들어 복 지은게 내가 이번 생에 감당해야 할 복이 1억, 2억 버는 부자다, 이번 생 내가. 그런데 나는 10억을 벌고 싶다 그러면 8억의 갭만큼은 죽도록 해도 안 될 거 아니에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진정한 자기를 확인하는 명상

잠깐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라는 이 생명력? 내가 이렇게 있는 이 느낌? 이걸 한번 가만히 느껴보세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는 것을 가만히... 알아차려 보세요. 생각에 내가 아니라 들어오고 나가는 이 살아있음? 여기서 이게 바로 내면의 나가 가진 에너지 거든요. 내가 이렇게 들이쉬고 내쉬는 이 속에서 나의 에너지 나의 생명? 생명력이 느껴져요. 그냥 지금 이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어떤 존재감이랄까요? 이렇게 있는... 이렇게 있음 속에 잠시 그냥 있기만 해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삶에 일체를 내맡겨 버려, 가볍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내식대로 통제하고 지배하고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막 기를 쓰지 않아요. 변화시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반드시 이것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단 말이에요. 반드시 이것만이 절대 진실한 생각이 없이 그냥 가볍게 가볍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매 순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나는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것이 좋으니까 내가 지금은 이것이 내 머리로 쓰는 최선이니까 그걸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러나 결과에 대한 집착은 없이 내맡기는 거죠. 그랬을 때 생각을 믿지 않거든요. 근원에서 겉으로는 생각이 원하는 걸 하지만 근원에서 생각을 믿지 않아요. 진실을 믿지. 그러니까 결과는 내맡기게 돼요. 현실은 내 생각대로 막 하지만 결과는 완전 내맡기..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를 살게 해 주는 모든 인연이 전부 나, 삶 전체가 바로 나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도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잖아요. 공기가 없으면 나도 없거든요. 공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숨을 쉬어요? 공기 덕분에 사는 거잖아요.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건데 어떻게 이걸... 전체 공기가 다 나지. 햇살이 없으면 내가 없잖아요. 태양 전체가 나지 어떻게 나만 나예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밥 한 끼를 먹어도 밥 한 끼랑 연결된 이 우주의 모든, 밥 한 끼에 우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근데 밥 한 끼와 연결된 우주 전체가 나잖아요. 그게 없어 내가 죽는데요? 하루에 한 끼도 아니고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세 끼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이 없으면 내가 없다니까요. 이 우주 전체가 없어 내가 없는 거니까 진짜 나는 이게 아니에요. 그 연결된 전체가 나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라는 독특한 부처로 태어난 삶, 이것이 진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이 우주 전체의 여러분 한 명밖에 없잖아요. 삶을 이렇게 경험한 사람, 나밖에 없잖아요. 그 자기 그 내 현실 그게 진실이에요. 부처님은 그걸 경험하고 싶어서 여러분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보낸 부처님도 여러분이고 온 나도 부처님이에요. 내가 나를 보냈단 말이에요. 나가 나를 경험하려고.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우주의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부처가 이렇게 이걸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 거예요. 부처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 뜻을 이루어야죠. 그 뜻은 이미 이루어져 있고. 그러니까 이 정말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 그 속으로 뛰어든다? 뛰어든다 해도 뛰어든 내가 있고, 뛰어드는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뛰어들어져 있어요. 그걸 그냥 허용하고 살아 주면 돼요. 그게 진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죽지 않는 길, 괴로움 없는 길,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

“아, 이제 발견했다. 돈, 명예, 권력, 지위 이거는 진짜 즐거움이 아니었구나. 그건 왔다 가는 것이었구나.” 이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삶이 젊었을 때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즐겁고 재미있고 뭔가 가슴 뛰는, 나를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가슴 설레게 해요. 왜? 죽지 않는 길이니까. 늙고, 병들고, 죽지 않는 길 괴롭지 않고 삶을 살 수 있는 길 두려움 없이, 외로움 없이 정말 살아갈 수 있는 길. 그런 가능성이 정말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안 할 이유가 없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공적영지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그 모든 것들이 생멸한다는 것을 누가 알죠? 무엇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까? 분명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은 목격됩니다. 생멸하는 것이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생이야 희극이든 비극이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무언가가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라고도 하는데요 공적해서 텅 빈 가운데 그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소소영령한 아는 것이 있습니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집착만 없으면 이대로 좋다

미래에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믿지만 않으면 무엇을 원해도 좋습니다. 그 모든 생각, 추구, 바람 들을 그저 왔다가 가능 손님처럼, 바람처럼 여기고 진실이라고 믿지만 말아 보십시오. 그 생각을 집착하지 않으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이렇게 아무 일 없이 그러나 모든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그대로 존재하며 거기에서 삶을 즐기십시오.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는 누구인가, 오고 가지 않는 한결같은 이것

10대 때도 '나'라고 했고 지금도 '나'라고 하는데 10대 때의 몸은 갔는데도 10대 때 몸은 다 떠나가고 지금은 다른, 전혀 다른 '몸'이 와 있는데도 '나'잖아요.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고. 그 '나'가 누구예요? 그게 진여(眞如=불성=본성=참나)에요. (이것이) 모양이 있습니까? 모양 없잖아요. 옛날에 실연의 아픔이 있었고 지금은 사랑의 행복 있어요. 실연의 아픈, 그 느낌이 나입니까? 지금 사랑의 기쁨이 '나'입니까? 그 느낌이 왔을 때 온 줄 알고 갔을 때 간 줄 아는 이놈은 늘 여기 있잖아요. 여기서 느낌도 왔다 가게 생각도 왔다 가게 하고 의지도 왔다 가게 하고 의식도 왔다 가게 하고 의식이 보수였을 때도, 진보였을 때도 자기, 자기는 늘 여기 있잖아요. 보수적인 생각은 왔다 가고 진보로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늘 한결같은 여여한 친구, 승승장구 잘하는 친구보다 늘 담대한 친구

어릴 때부터 끌렸던 친구들이 어떤 친구였냐 하면 “얘는 머리가 똑똑해서 뭐든지 물어보면 다 알아 이런 친구라든지” “쟤는 뭐든지 다 승승장구할 거야” 하는 이런 믿음을 주는 친구가 끌렸던 게 아니고요. “아, 저 친구는 성공을 해도 실패해도 그냥 묵연히 나아갈 것 같은” “실패하는 게 저 사람을 막 크게 막 좌절시키지 않을 것 같은 ” “저 사람은 실패도 괜찮을것 같은데?” 그런 든든함을 주는 친구 있잖아요 항상 승승장구만 하는 친구가 멋있는 친구가 아니었던 거죠. 승리가 하든 실패하든 성공하는 실패하든 여여한(한결같은) 친구 그런 사람이 진짜 멋있는 사람 이었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도전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욕도 먹고 칭찬도 받고 그러면서 인생을 이래저래 살아보니까 꼭 그게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되도 좋고 안 되도 좋다, 가볍게 툭 털어 버려, 현실이 진실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돼” 하는 마음으로 올인하지 않아요. 우리 쉽게 말해 투자하는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이거 돈 된다고 하면 막 여기저기 막 그냥 끌어다가 막 투자 하잖아요. 이런 짓 안 한단 말이에요. 과도한 욕심 없으니까 되도 좋고 안 되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만 다 하는 거예요, 그냥. 그러니까 안 돼도 미련이 없어요 그러니까 언제나 매 순간 최선을 다해요 근데 되면 좋고 안 되면, 좋은 거 배웠다. 끝! 툭 털어 버려요, 그냥. 가볍게. 여기서 그 딱 무너지면(실패하면) 'ok!' 한단 말이에요. 왜 오케이 할까요? 이게 내 길이 아니겠지 왜? 내 현실이 지금 여기에서 무너졌으니까, 그 현실이 당연한 거예요. 현실이 진실이니까. “아 이 현실이, 내가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시절인연이 오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내가 애쓸 필요는 없어

인연이 되려면 어떻게든 희한하게 인연이 된다니까요. 내가 정말 가기 싫었던 친구들 모임 친구들이 너무 잘난 척하는 것 꼴보기 싫어서 나는 잘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친구들 모임에 한 번도 안 나가다가 하도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아이 참 꼴보기 싫은 친구 보기 싫어서 안 나가려고 하다가 딱 한번 나갔다가 거기서 그 절친한 친구하고 인연이 돼서 그 일을 배우게 되고 그 친구와 일을 같이 하게 되고 그래서 뭐 대박이 났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이렇게 우연처럼 찾아오거든요. 인연은 내 쪽에서 애쓴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에요 인연 따라 저절로 주어지죠. 그러니까 무위법(無爲法)이라 그러죠. 할 위爲 자, 애쓸 위爲 자 거든요. 내가 애쓰지 않는 게 진짜 법이란 말이에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집착은 없다,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라

열심히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야 해요. 그런데 거기 과도하게 집착하면 안되는 겁니다. 집착 안해야 하는데 너무 또 안해도 안된단 말이에요. 거문고 선 조율하듯이. 그러니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라,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인연 따라 주어진 무엇이든 해도 좋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러나 결과는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아니, 교수님, 박사님 이런 분들도 경제전문가라고 경제 어떻게 돌아갈지 100% 맞춥니까? 주식 전문가는 주식으로 돈을 엄청나게 벌까요? 박사가 되도 알 수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최선을 다해 사는 거예요. 나에게 주어진 인연 따라. 무엇을 해도 좋다.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삶의 분위기, 온도, 환경이 나를 만든다, 회사를 그만두는 청년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분위기 있잖아요, 분위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온도, 이 따스함, 이 에너지, 밝은 에너지 이런 거 있잖아요. 이게 우리 인생에 제일 중요하거든요. “아주 최악의 분위기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나오는 게 낫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데요. 옛날같이 “내가 죽어도 여기 뼈를 묻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기서 나한테 불합리한 일을 시키거나 부정적인 것을 시키더라도 그래도 돈벌어야 하니 여기 붙어있겠다.” 안 그런다는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니다 나왔다는 친구한테 “잘 나왔다, 잘 나왔다.” 얘기 들어보니까 진짜 부조리가 너무 심하고 옛날 60년대 회사도 아니고 너무 심하더라고요. 그것부터 가르치고. “야, 처음 직장생활 시작하는 데서 아무리 돈을 많이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귀신은 없다, 속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

어떤 보살님이나 나이 드신 분한테 귀신 같은 거 없어요. 우리 집에 귀신이 나온다는 거예요, 소리도 들린다는 거예요. “보살님, 그런 거 없습니다. 다 거짓부렁이에요.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귀신이. 그런 거 없으니까 당당하게 사세요. 귀신 나타나도 다 허상이라 보살님이 더 세니까 보살님이 이기니까 절대 끌려다닐 필요 없다. 그런 거 없습니다.” “진짜일까요? 스님은 아직 모르시는 거 아닐까요? 귀신 진짜 있던데...” 귀신이 진짜 있어도 없는 거라니까요. 왜? 내 몸뚱이 진짜 있잖아요. 그런데 없는 거라니까요. 몸과 마음, 내가 지금 이렇게 쓰고 살잖아요. 그런데 이게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귀신이 나타나도 내 눈앞에 딱 등장해도 없는 거라니까요, 그 귀신은. “내가 공동묘지 가면 귀신을 볼 거야.”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완전히 안심해도 좋다, 생각이 지옥 천상을 만들 뿐

이 법을 깨닫고 나면 “어디에 있어도 안락하구나” “죽든 살든 안락하구나” “지옥에 가든 천당에 가든 그게 지옥이 아니고 천당이 아니구나” 본래 지옥이 따로 없구나, 천상이 따로 없구나” “한 생각 망상 일으켜서 지옥 만들고 한 생각 망상 일으켜서 천상을 만드는구나” “과거현재미래가 따로 없구나” “동방과 서방이 따로 없구나” “정토와 예토가 따로 없구나” “중생과 부처가 따로 없구나” 완전히 안락한 거예요. 이게 완전 안심 아닙니까? 완전 안심법문 아니에요, 정말? 우리는 깨닫기 전에는 죽을 때까지 안심하지 못해요. 미래가 두려우니까. 내가 어떻게 될까 두려우니까. 그런데 이 안심법문으로 깨닫고 난다면 안심하지 않을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