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정견 89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7. 삼라만상이 설법하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삼라만상이 설법하는 소리를 듣느냐?” 선사들이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그러면 제자가 “듣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들은 선사는 “뭐라고 말하느냐?” 하고 다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삼라만상이 하는 설법을 들을 수 있는지요?사실 듣는다라고 답해도 한 방망이요, 듣지 못한다 해도 한 방망이를 맞아야 합니다. 유불선을 두루 섭렵하고 문장에도 남다르게 뛰어났던 소동파가 여산의 동림, 흥룡사에 계시는 당대의 고승, 상총 선사를 찾았습니다. 선사는 소동파에게 스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유정설법만 듣고 무정설법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충고를 하였습니다. 소동판은 ‘무정설법을 듣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만 막막하였습니다.그래서 무정설법이라는 말만 생각하면서 더 이상 묻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정..

피올라정견 2025.03.06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6 - 생각, 느낌으로는 죽어도 알지 못하는 이것!

지금 여기 생각과 느낌으로는 붙잡거나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무심하면 이미 나란 존재 현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이것은 대상이 될 수 없기에 의식을 주체, 대상, 행위로 나누어 몰아가려는 순간 어긋나고 맙니다.이것은 지금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며세상을 비춰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은 몸은 이것과 분리되었기에 같은 몸이라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포도가 포도나무에서 분리되면 죽은 것이란 말씀은 이 뜻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그래서 반야심경에선 안이비설신의가 무라고 설하니 그 뜻은 그런 것은 다 분별 속 이름이고 실재는 이것 하나의 작용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자상하게 구구절절 가르쳐 주시건만 우리는 자기 분별 속에 빠져서 끝없..

피올라정견 2025.03.05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5 - 시장 노파가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

중국 송나라 때 시장에서 유과를 기름에 튀겨 파는 유노파가 있었습니다.이 노파는 임제 스님 밑에서 화두 공부를 하였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 물건이 눈, 코, 귀, 입으로 출입하여 사람이라 불리우니 이 물건이 무엇인고?” 어느 날 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작년에 갔던 갑돌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씨구 돌아간다.절씨구씨구 돌아간다.” 노파는 거지가 부르는 각설이 타령을 듣는 순간 깨어났습니다. 그 노파는 감격한 나머지 만든 유과들을 내동댕이 치면서 외쳤습니다.“이 한 물건이로구나” 이 광경을 본 그녀의 남편이 “이 여편네가 미쳤나” 하고 비난하자 그녀는 즉각 소리쳤습니다.“당신이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오!” 노파는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요? 보통 사람은 저기 있는 거지가 각설..

피올라정견 2025.02.27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4 -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일까?

우리는 몸과 마음을 나로 여깁니다. 그런데 삶 속에서 몸과 마음을 나로 여기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면 의식이 몸의 감각이나 마음을 통해 들어붙지 않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럴 때가 일상 중에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첫째, 꿈도 없이 깊이 잠잘 때 둘째, 의식의 불은 켜 있으나 마음이 아직 제대로 작동을 시작하지 않을 때입니다.주로 우리가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가 그렇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바로 이때를 우리의 참면목이 잠시나마 드러나는 순수한 시간이라 표현하곤 했습니다. 일상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즉각 생각과 감각, 느낌의 세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그리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 몸의 감각, 또는 마음 활동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현상..

피올라정견 2025.02.26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3 - 깨달음이 어떤 상태, 경지라는 착각을 버려라!

깨달음은 어떤 상태나 경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중도라든가, 평상심이라든가, 정견상태, 주시자도 아닙니다.생각으로는 제아무리 잘 이해하고 설명해도 다 아닙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하여 그냥 몸과 마음조차 잊고 있을 때 그 순간 나는 과연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나요?우리가 보고 듣고 말할 때 과연 무엇이 보고 듣고 말하게 하나요? 분명히 나는 거기 있긴 한데 뭐라고 붙잡거나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그것을 [생명의식]이라 이름 지어 부를 뿐이지 다른 뜻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말 따라가지 마시고지금 이 말이 가리키는 실재에 깨어나세요. 마치 텅 비어 없는 듯 아무 형상과 모양 없이 살아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허공인 듯하지만 사실은 생명이자 의식 자체인 이것이 바로 그놈입니다. 내가 이것을 가지고..

피올라정견 2025.02.20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2 - 소리로 만나는 마음자리 밝히기

창 밖에서 나는 새소리를 들어보세요.“아하, 저 소리를 듣는 이 자리로구나” 생각하면 아직 아닙니다.그것은 생각으로 헤아려 이해하는 분별 망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소리와 듣는 행위 그리고 듣는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그렇게 분리된 걸로 여긴다면 이미 생각 분별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따로 없이 새소리와 세상이 하나로 다가와야 합니다.마치 살아서 생동하는 한 덩어리의 생명 에너지 같은 걸 만나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너와 나, 이것과 저것이란 상대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그냥 일체가 한 통인데 그것이 살아 있기에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 살아 있는 걸 이리저리 분리해 찢어버리고 생각 속에 담아 저장하는 게 바로 우리가 평생 배워온 교육이란 알음알이, 분별입니다. 나 자신조차도 ..

피올라정견 2025.02.19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1 - 알고 모름과 깨달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깨달음은 알고 모르는 대상이 아닙니다. 알거나 모르거나 하는 바로 그 생명의식의 활동 자체입니다. 안다 모른다는 것은 이미 생각 개념의 내용물 속에 떨어진 것입니다.그러므로 몰라도 [모르겠다] 하는 바로 그 [생명의식자체]입니다. ‘이 뭐꼬?’ 하는 선문답이 있습니다. 흔히들 ‘이 뭐꼬?’ 하는 그놈이다‘라고 생각으로 이해해서 알지만그건 완전히 아닙니다.‘이 뭐꼬?’를 하려 해도 이게 먼저 있어야 ‘이 뭐꼬?’ 할 수 있습니다.이게 없으면 ‘이 뭐꼬?’ 할 수조차 없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라 끝까지 정견하지 않기에 보지 못할 뿐입니다. 이것은 지금 자기 눈앞에 세상을 비춰주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무위로 있어도 저절로 보이고 들리지 않습니까?크기도 없고 모양도 없지만 이게 나를 잊게 ..

피올라정견 2025.02.13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0 - 그대는 지금 무엇으로 있습니까?

지금 그대는 무엇으로 있습니까? 깨달음의 자리는 생각, 감정, 느낌이 아닙니다.그러나 생각, 감정, 느낌과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생각, 감정, 느낌의 내용과 상관없는 것이 있음을 보는 게 깨달음입니다.  생각, 감정, 느낌이 일어나기 전에도 우리는 잘 존재하고 있습니다.무엇으로 존재하는 걸까요?  그걸 또 개념적인 생각으로 찾지 말고 직관 통찰하여 발견하고 깨달아야 합니다.그게 본래면목입니다.  가장 가까운 말이 생명, 의식이지만 그 말도 개념, 생각입니다.모든 개념, 생각은 살아있는 걸 죽여서 박제하고 정보화해 버립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본성을 못 보고 자꾸 죽은 개념 세계 속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어제 경봉 스님의 선문답을 줌으로 하는 정기 강좌에서 물었습니다.박수를 딱 치고 “이 소리가 어..

피올라정견 2025.02.12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19 - 우리의 삶을 있게 하는 존재현상!

우리 삶을 잊게 하는 바로 이것. 우리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그것을 ‘나’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바로 우리의 삶을 있게 하는 [존재현상]입니다. [존재현상]이 있기에 우리가 ‘나’란 것도 만들어서 이렇게 살아갑니다. ‘나’가 없는 정신병자나 기억 상실, 치매 환자도 자기 삶을 잘살고 있습니다. 이 [존재현상]이 있기에 우리가 수행도 하고, 신을 생각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존재현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잘 분석해 보고 살펴봅시다. [존재현상]이란 의식 활동을 뿌리로 해서 그 위에 펼쳐지는 생각, 감정, 느낌들 그리고 기에너지, 상념 등의 체험을 말합니다. 그 체험의 중심에 몸이란 경험이 자리 잡고 있지만 이 역시 밤엔 사라집니다.그러니까 ..

피올라정견 2025.02.06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18 - 깨달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 바로 이것!

지금여기란 말을 시공간적으로 해석하면 전혀 잘못 가는 길입니다.그건 바로 나의 의식이 눈앞에 세상 일체를 보여주며 나타내고 있는 이 자리를 말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세상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바로 이 의식자리입니다.  누구에게나 이 자리가 눈앞에 나타나 벌어져 있고 이 자리와 내 몸은 항상 같이 합니다. 세상은 항상 이 자리 안에 담겨 있고 이 자리가 곧 세상이며 세상이 곧 이 자리입니다. 우리는 3차원 감각, 즉 오온에 빠져서 세상 속에 내가 나타났다 죽어 사라진다, 착각합니다.그러나 세상과 내 몸은 항상 같이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내 몸은 똑같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의 오감 세계가 만든 감각의 착각이자 환영인 것입니다. 의식하는 자가 있을 때 비로소 의식..

피올라정견 2025.02.05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17 - 그냥 깊이 정견하면 벌어지는 놀라운 일

오늘 아침 저는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습니다.그 새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어떤 이는 창밖에, 혹은 마당이라고 답하겠지요.하지만 저는 ‘내 의식’과 ‘마음 안’에 그 새가 있었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 새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지저귀는 소리도 내 의식 안 소식입니다.일체는 다 내 의식이 있어 인식되며 그렇게 일어나기에 결국은 다 내 의식과 그 활동인 마음 세계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잠시 한 번 깊이 명상해 보세요.  “일체가 다 내 안에 있다.”   이것은 결코 수행에서 얻는 경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을 깊이 정견한 것뿐입니다. 아침에 몸의 감각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때 듣는다면 당신도 분명히 공감하실 것입니다.“새와 그 울음소리는 내 의식과 마음 안에 ..

피올라정견 2025.01.23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15 - 20년을 수행하다 정견하고 깨어나다.

저는 깨달음의 깊은 원리를 몰라 20년을 좌충우돌하며 수행했습니다. 그간 이런저런 수행도 많이 해봤고 좋고 나쁜 경험도 참 많이 했습니다.진정한 수행자 분도 만났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위선자들도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기적같이 인연이 닿고 하늘이 도와서 정견하고 깨어났습니다.그러고 나서 뛸 듯이도 기뻤지만 한편 상담 기간 허탈해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견성이란 본래 내게 있는 것을 재확인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수행해서 얻는 게 아니라 그냥 정견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정견하는가요? 마음의 내용물이 아니라 존재방식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가 있다면 그건 내가 알던 나는 환상이란 것이었습니다.과거 나로 알던 나는 죽이고 버릴 대상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일체의 분별을 쉬니..

피올라정견 2025.01.16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14 -꿈을 깨려면 “이건 꿈이다!” 하고 알아차리기만 하세요.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생각이 만든 개념화된 세상 속에 빠집니다. 그런데 개념화된 세상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만들어낸 세상이란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꿈에서 깨어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그냥 “이건 꿈이다” 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 알아차리는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즉각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당신이 계속적인 관심만 갖고 바른 메시지를 접하고 있다면 그것은 소리를 통해서든, 봄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든 깨닫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필요한 것은 깨어나고자 하는 열망과 무념무상의 태도입니다. 이건가? 저건가? 하면서 찾는 게 아니라 자기를 비운 채 기다리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익어서 감..

피올라정견 2025.01.15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13 - 눈 앞을 바로 보는 것이 제대로 하는 마음공부임을 모르나요?

반야심경의 진리는 부증불감, 늙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아무리 수행해도 본래의 성품자리는 늘거나 줄지 않는다는 말입니다.그러니까 본래면목은 항상 여여하며 무시무종으로 가만히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세상을 인식하는 우리의 존재방식이 항상 그러했지 않은가요?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항상 그대로지 더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습니다.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달으려면 수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수행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고 될까요?그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꾸 흑백 논리에 빠져 상대적으로만 생각합니다.“수행하지 말라니까 쉬거나 노는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수행하지 말라는 것은 놀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끝없이 돌아가는 자기 생각,..

피올라정견 2025.01.09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9 -깨어난 자는 환상의 내용물들을 [그럴 뿐]으로 대하며 늘 본질을 봅니다.

범인은 너와 나를 보지만 깨어난 자는 너와 나란 생각과 느낌임을 봅니다. 나란 몸과 감각들조차 낮 동안에만 일어나는 하나의 경험입니다. 범인은 아침이 되면 너와 나란 이름에 속아 이름과 개념들이 만든 환영세계 속에 빠져 한바탕 꿈을 다시 꾸지만,  깨어난 자는 항상 그 생각과 느낌들이 다 꿈임을 자각합니다. 깨어난 자는 환상의 내용물들을 항상 [그럴 뿐]으로 대하며 늘 본질을 봅니다. 그 본질이란 일체가 다 마음이 일으키는 환상의 연극 배역 놀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이니, 너이니” 하는 주관은 빼고 다만 하나의 객관적 생명 현상들만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렇게 서로 내가 없이 맑고 밝게 살아있는 세계가 천국극락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선 나부터 그런 일체 개아의 마음이 없이 텅 비어진 세계를..

피올라정견 2025.01.02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8 - 역발상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힘들고 괴로운 그 곳이 바로 수행처이고 마음학교이기에....

사람들은 삶이 힘들고 괴로워서 도피하고, 마음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힘들고 괴로운 그곳이 바로 수행처이고, 마음학교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한 곳이면 그곳은 휴식처이지 공부처는 아니겠지요. 미움과 무관심 없이 어떻게 사랑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분노 없이 어떻게 용서와 화해를 알 수가 있겠습니까?신의 부재감 없이 어떻게 신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분리감 없이 어떻게 일체가 하나임을 깨닫겠습니까?에고 없이 어떻게 참나의 자리가 있음을 깨닫겠습니까?무명과 미혹 없이 어떻게 열반과 해탈의 자리를 깨닫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원성은 우리의 교실이며 삶은 우리의 선생님입니다.상대성과 이원성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찾습니다. 너무나 찾기 힘든 술래잡기 놀이 같지만 사실은 찾는 술래가 바로 나..

피올라정견 2025.01.01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7 - 무변허공 각소현발 -허공이 곧 본래성품이 드러난 것임을 깨달아보자.

깨어나려면 지금여기인 이 허공 안에서 나란 감각과 일상이생멸하고 있음을 통찰 정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시끄러운 소리는 고요한 배경의 침묵이 있기에 들리는 것이며 기차가 달린다고 느끼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배경도 시끄러우면 다른 소리도 잘 들리지 않으며 나란히 기차가 같이 달릴 때는 마치 두 기차는 모두 정지해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우리의 느낌은 우리가 상대성에 의존해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고 내가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공간적 변화의 느낌도 역시 흐르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배경의, 그 무엇이 있길래 그렇게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느껴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배경이 되는 것이 바로 절대성을 가진 진리입니다.그것을 우리는 신, ..

피올라정견 2024.12.26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6 - 깨달음은 일상 속 깊은 곳에 언제나 우리와 같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당신은 강한 자기 개성일 때도 있지만 때론 자기를 상실하거나 완전히 잊어버린 채 대상에 몰두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당신은 잠시 그 행위나 대상과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가 되어 있습니다.일상 속에서 그런 때 우리는 잠시나마 자기를 벗어난 해방감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면 개체로 돌아와 몸을 여전히 자기라 여기고 있습니다. 평생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또 나를 잃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순. 이처럼 우리는 본래 정해진 불변의 나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일정한 경계가 없다는 말은 곧 우리가 정해진 확정적 존재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본래 모습을 살아있는 공이라 하는 것입니다.이것을 자꾸 상념으로 만들어 대상화하려 하지 마십시오. 내가 바로 그것이므로 내가 바로 ..

피올라정견 2024.12.25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5 - 의식이 비추고 보여주는 일체현상들은 다 그냥 그러할 뿐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의식이 비추고 보여주는 일체 현상들은다 그냥 그러할 뿐//  사실 깨달음의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이 삶이란 현상에서 나와 나의 것을 모두 다 지우거나 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이 눈앞의 존재 현상은 그대로 있게 하되 몸을 나라고 여긴다던가 생각, 감각 등에 의해 체험된 것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의식이 비추고 보여주는 일체 현상들은 다 그냥 그러할 뿐 더 이상 아무런 의미나 이름들도 없게 되면서 일체는 그냥 스스로 빛나면서 존재하는 하나의 상태가 됩니다.  그 어떤 개체도 더 이상 특별하게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은 채 평등하게 되는데 이때 비로소 공의 자리가 나타납니다. 공이란 전체가 있는 그대로 살아 있는 스스로를 드..

피올라정견 2024.12.19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4 - 현존은 본래 항상 지금여기에 있는 것

현존은 내가 지키고 유지하는 게 아니며본래 항상 지금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 없이 텅 빈 충만한 의식으로 지금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현존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 안에서 내가 부재할 때 그것이 바로 현존함입니다. 현존할 때 우리의 마음은 지극히 가볍고 무한하며 밝고 빛납니다.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중이라도 현존하기를 갈망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항상 새로운 기분으로 여행하길 원하는 근본적인 진짜 이유일 것입니다.  나란 것이 마음으로 활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에고입니다. 에고는 반드시 여러 걱정거리와 두려움이라는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습니다.겉으로는 가장 나를 위하는 것 같지만 실은 가장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참된 명상은 이러한 비워지지..

피올라정견 2024.12.18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3 - 일상은 그자리에서 펼쳐지는 그림같은 동영상

우리의 일상은이미 그 자리 위에서 펼쳐지는그림같은 동영상입니다//  깨닫고 나면 번뇌가 곧 보리(진리)라고 말을 합니다.왜 그럴까요?  그것은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에 그 활동작용 그대로가 곧 진리의 활동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분별을 하니까 이건 번뇌이고, 저건 진리에 부합하다, 할 뿐이지 실제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분별과 나눔이 없으니 그냥 이 마음을 한바탕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있는 그대로 여법한 활동이요, 움직임입니다. 법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이래야 하는데 아직 아니니까 도가 덜 됐다 등등 당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한 지금 여기에 이미 완전히 열려 있는 이 공간에 스스로 베일을 치고 가리는 무지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참된 본성의 자리는 3차원을 품은 4차원적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피올라정견 2024.12.12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2 - 지금 여기 눈 앞에서 깨달아볼까나.

공부는 어디서 누구밑에서 하는게 아니라항상 지금여기 눈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인간인 내가 열심히 수행 정진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 모든 존재들 사이에 기본적인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러한 속성으로서의 자신을 문득 재발견할 때 홀연히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강아지와 나를 비교해 봅시다. 강아지도 보고, 듣고, 느끼며 나도 그러합니다.나한테는 있는데 개한테는 없는 것은 우주의 진리가 아닙니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갖춘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눈앞의 세상을 보고, 듣고, 해석하는 것이나 강아지가 그러는 것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해석한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자기 눈앞에 그런 인식의 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파리나 모기조차도 그러한 ..

피올라정견 2024.12.11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1- 의식과 반딧불이의 활동을 비교 할 수 있을까?

|| 의식이 활동하여 오온을 일으키고오온이 그대로 법임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반딧불은 의식으로 몸에 불을 밝혀 주변을 확인하고 자기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쁘다고 하지만 반딧불에겐 그것은 삶의 존재 방식입니다. 인간도 의식의 반딧불 작용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온입니다. 오온이란 색수상행식이니 곧 몸, 느낌(감정), 생각, 의도, 분별을 말합니다. 이것들은 사실은 몸을 확인, 보존하는 데 필요한 의식의 변형 프로그램입니다. 인간은 오온을 이용해 주변을 반딧불처럼 확인하며 자기를 나타냅니다.그러나 반딧불 빛이 미치지 않는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엔 아직 드러나지 않는 모름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의식이 자기 주변만 밝힐 뿐 그 너머에는 모름의 ..

피올라정견 2024.12.05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7. 깨달음을 얻어서 법신불을 증득하면(깨달음의 기준)

4. 인간에 대한 탐구-깨달음의 기준  깨달음을 얻어서 법신불을 제대로 증득하면 처음엔 내 몸이나 마음을 확 잊어버리게 됩니다. 문자 그대로 심신이 탈락하게 되는데 심신이 탈락한다함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확 잊어버리거나 그 한계를 벗어나서 확실하게 벗어나 존재와 비존재조차도 넘어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엔 일체의 나라고 할 것도 없고 그 대신 법신불, 하나님만이 거기에 떡 나타나 위대한 평화와 빛으로 대광명 그 자체로서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사진관에서 대형 사진을 찍으면 확하고 아주 밝은 빛이 한 번 터져서 잠깐 동안이지만 사람들이 좀 어벙벙해지지 않습니까? 그것과 아주 흡사합니다.자기 안에서 새로이 자각한 그 빛 그리고 그 빛으로 새로이 비추어진 세계와 그 속의 존재들이 너무나..

피올라정견 2024.12.04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5. 세상은 더 큰 나

4. 인간에 대한 탐구5) 명백한 진실에 눈뜨라.   우리들은 지금 우리들 인간들의 일반 의식 차원에 갇혀 있습니다.그 누구도 우리를 여기에서 꺼내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각하고, 눈을 떠서 여기서 더 깨어나고 더 훌쩍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깨달음이며, 구원이며, 의식의 확장입니다.그러려면 우리는 우선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보고 있는 것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바라다보며 우리가 듣되 그 본질을 제대로 알고 듣지 못하던 것들에 대해서도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그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 알지만 사실은 그 누구라는 것이 하나의 허구적인 개념인 이름 아닙니까?그 실상은 누구입니까? 우리들의 실상은 바로 우주 대생명이 아닙니까? 우주 대생명이 갈대잎으로 나타나면 갈대잎..

피올라정견 2024.11.28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4. 의식의 확장(2)

4. 인간에 대한 탐구4) 의식의 확장(2)  앞장에서 설명한 의식의 확장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추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깨닫고 거듭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실제로 크게 변화한다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실제로 크게 변화하고 거듭남이 없다면 그것은 진짜 깨달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거나 또는 집단의 최면 속에 빠진 것입니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이런 일이 아주 많습니다. 즉 어떤 수행단체가 있으면 그 수행단체의 내부에서는 엄청난 경지들을 얘기하고 누구누구가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서로가 인정하지만 그 경지가 바깥 사람들하고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지식적인 측면의 대화가 아니라 인간적인 그릇의 크기로 인한 감화와 인격의 변화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럴수록..

피올라정견 2024.11.27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3. 의식의 확장

4. 인간에 대한 탐구3) 의식 확장  저는 깨달았다 하면 의식의 영역이 당연히 확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의식의 영역은 앞에서 말하다시피 광물, 식물, 동물, 인간, 영, 신에게 이르기까지 그 정밀도나, 깊이나, 존재의 자각도나, 각성의 크기에 있어서 다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좁은 인간 의식 안에서만 그 의식이 뭐 어떤 상태에 들어가면 깨달음이다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아직 한참 아닙니다. 의식을 이 지구적인 관점에서 풀어 설명해 봅시다.-광물이 자기 보존의 가장 기초적인 의식장에 들어있다면 -식물은 대부분 잠자는 듯한 반자각 상태에 들어있고 -동물은 욕망과 충동의 에너지장에 들어있으며 -고등동물이나 인간에 와서야 자발적인 사랑이나 우정이 생겨납니다. 인간은 그래서 그 존재 안에 광물부터 식..

피올라정견 2024.11.21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2. 의식이란 무엇인가?

4. 인간에 대한 탐구2)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많은 과학자들이 의식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무척이나 알고 싶어 합니다.그것은 아직도 너무나 많은 신비의 베일 속에 쌓여 있습니다. 제가 명상을 통해 자각한 의식은 -첫째로 그 본질이 신의 눈이자, 감각이라는 것이고 -둘째로 의식에는 다양한 차원이 있고 아래 차원과 위 차원은 하나의 식물이 성장하듯이 서로 연장선상에 속해 있으며 -셋째로 서로 다른 차원의 의식은, 서로 쉽게 교통하지 못한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의식은, 영원한 파동이며 동시에 입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다 의식이 있습니다. 설사 돌멩이라 할지라도 의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식은 말이 의식이지 우리 인간들의 보통 의식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의식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

피올라정견 2024.11.20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1 존재의 이유(인간이란 존재의 이해)

나를 깨우는 명상4-1) 인간이란 존재의 이해 사람들은 자기란 존재를 제대로 모릅니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니 태어나기 전에 본래면목이 어떠한지도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 단락에서는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것을 한번 깊이 탐구하여 보기로 합시다. 종교인들은 인간이 마치 태고적부터 영혼까지 무한히 존재하는 영원한 형상의 존재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 지구상에 인류와 비슷한 형상을 가진 생명체가 나온 것은 약 200만 년 전이며 현 인류의 조상이 출연한 것은 50만 년 정도로 봅니다. 하지만 수십억 년 지구 역사에 비하면 이 50만 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앞으로도 우리가 지금과 같은 ..

피올라정견 2024.11.14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3-7. 내면의 행복과 평화를 찾아서

3. 나 자신을 똑바로 보자7) 내면의 행복과 평화를 찾아서 저는 삶과 욕망 쪽에 지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인생 안의 참된 행복과 평화는 바로 내 안에 있다고.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공허한 말이며 실제로 그것을 발견하는 길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아직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홀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가 손을 붙잡아주거나 몸을 지탱해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앞서간 수행자나 정신적인 스승들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열심히 노력하여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깨닫는 말인가요? 우리 자신은 이미 완벽하며 이미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전지..

피올라정견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