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신 보살님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공덕이 있다 하는 거는 부처님 경전에 나오잖아요. 우리가 어떤 보시를 했을 때 제일 공덕이 있는 게 첫째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걸주는 거고, 두 번째가 아픈 사람한테 치료해주는 거고, 세 번째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거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옛날에 제를 베푼다 하면 음식을 마련해가지고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는 거고. 옛날에는 산에서 묘사지낸다고 애들이 학교 갔다가 그 산꼭대기까지 떡 한 조각 얻어먹으려고 올라간단 말이오.
또 잔치 같은 걸 하면 제사를 지내는 잔치 같은 걸 하면 그걸 한 바구니에 두 개. 인절미 하나 에가다 절편하나씩 두 개씩 접시에 담아 집집마다 돌린단 말이오. 그럼 다 고마워하고. 그래서 음복을 해야 복이 있다 이 말은 먹어줘야 복이 된다. 이런 말도 다 그런데서 유래된 거요. 그런데 지금은 음식이 풍부한 상태에요. 우리나라 안에서는. 그런데 배고플 때에 좋았던 거를 생각해서 그런 문화가 생겼는데. 그러면 음식이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이렇게 음식을 여기서 굳이 음식을 베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음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거요.
옛날에 음식을 만들어 차린다 하는 거는 나눠주기 위해서 차린 거란 말이오. 그런데 지금은 음식을 나눠줄 때가 없으면 음식을 차리는 건 낭비에 속합니다. 아무런 공덕도 안 된다. 그러니까 전에 같으면 10만원 드려서 제사를 지내 10만원어지를 나눠줬다 그러면, 지금은 만원어치만 제사상을 차리고 9만원은 배고픈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나눠주는 게 좋다는 거요. 다시 말하면 인도라든지 북한이라든지 배고픈 사람에게 나눠주도록 전환하고 여기는 여기 먹을 사람 것만 차리면 되는데 안 차려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래도 쭉~ 진행해온 문화가 있다 보니까 그냥 그 문화에 젖어서 섭섭한 마음이 드니까 형식적으로 어때요? 모양만 한단 말이오.
옛날에는 부모가 죽으면 굵은 제복해서 지팡이 집고 울었는데, 요즘은 자꾸자꾸 문화가 바뀌니까 그렇게 안하잖아요. 여기다가 노란 팻말만 어때요? 표시만 딱 하잖아. 그죠? 이거는 하면서 왜 음식은 안하느냐? 음식도 딱 표시로만 하면 된단 말이오. 제일 간단한거는 차 한 잔 올리거나 꽃 한 송이 딱 하고 절하고 이렇게. 원래 다례. 차례라는 게 다례거든요. 다=차 같은 말 아닙니까? 차례라면 차 한 잔 올리고 절을 하는 게 차례란 말이오. 그래서 제사는 차만 딱 올리고 절을 하면 좋아요.
귀신이 먹는 건 아니에요. 귀신이 먹는다 이거는 그렇게 옛날 사람들이 생각을 한거지. 귀신 먹는 거 봤어요? 그러니까 차를 한잔 딱 올리고 절을 하는 게 제일 좋고 제사 ** 이렇게 가난한데 도와준 게 제일 좋다. 그렇게 해야 법에 더 맞습니다. 그러면 문화라는 건 시대 따라 이렇게 바뀌는 거요. 문화는. 옛날에는 초상을 남의 집에 가서 지낸 사람 있나? 없나? 없잖아. 그런데 요새 초상은 제 집에서 지내는 사람은 없잖아. 다 남의 집에 가서 지내잖아. 친척집도 아니고
얼굴도 듣고 못하는 남의 집에 가서 그것도 집도 아니고 무슨 건물에 가가지고 이렇게 초상을 치른단 말이오. 문화가 바뀌었잖아. 그죠? 문화가 바뀐 거요. 항상 똑같이 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제사도 밤 12시에서 1시. 12시에서 1시 사이에 지내는 이유는 딴 뜻이 아니에요. 조상한테 그날 시작하는 첫. 빨리 준다 이 말이오. 쉽게 얘기하면. 그러니까 오늘 돌아가셨으면 오늘 아침 첫 시작하는 시간에 음식을 먼저 드린다. 이게 있고. 그다음에 옛날에는 귀신이 새벽닭이 울면 낮에는 귀신이 안 온다. 이런 생각이 있잖아요.
밤에 드리는데 그날 시작, 그러니까 밤에 드리는데 오늘의 꼭두새벽에 줄 수도 있고 오늘 밤에 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오늘 밤에 준다는 건 자식으로서 어때요? 하루 종일 굶겨 놨다 저녁에 준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오늘 새벽에. 오늘이라는 날짜에 시작할 때 바로 부모님께 음식을 드린다. 이런 개념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재든 뭐든 하루 당겨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원래 그런 게 아니고, 그러니까 금요일 날 돌아가셨으면 목요일 날 밤12시에 지내는 게 금요일 날 첫 시작에 드리는 거다. 이래가지고 앞날 지낸다 이 말이지 앞날이 아니에요. 아시겠습니까?
음식을 만드는 날이 전날이지 제사를 지내는 거는 그날의 첫 시작 때 지내는 거다. 이런 얘기요. 요즘은 초저녁에 지낸다. 이렇게 되면 사실은 그 전날 지내는 게 아니고 다음날 저녁에 지내야 이치로는 맞습니다. 그죠? 그런데 다음날 저녁에 준다는 건 약간 불경하잖아. 심리가. 아침 점심 다 굶기고 저녁에 갔다 주는 게 저그 바쁘다고. 그러니까 새벽에 주는 건데 그걸 땅겨서 주니까 사실은 앞날 주는 거잖아. 저녁에 지내는 건 하루 전날 주는 거니까.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잖아. 뭐든지 늦게 주는 게 문제지 일찍 주는 건 문제가 없어.
그래서 49재도 딱 49일 날 날짜가 안 맞으면 50일 날 지내는 법은 없습니다. 잊어버렸으면 몰라도. 아시겠어요? 여러 가지 스님이 안계시거나 절에 문제가 있으면 48일 날 지내는 건 아무 문제가 없는 거요. 하루 땅기기는 하지마는 하루 늦추지는 않고. 생일도 하루 지나서는 안하죠. 만일 그냥 못하는 날이면 하루 땅겨서 한단 말이오. 인사고 축하고 다 그러잖아. 결혼식도 하루 전에 가서 축하할 수는 있지마는 지나고 난 뒤에는 이미 지나가면 끝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문화가 자꾸 바뀝니다.
그래서 제사도 음식을 안 차리고 차만 딱 차려서 지내는 게 좋고. 저녁을 베푸는 게 좋고, 어차피 가족 몇 명이라도 음식은 먹어야 되잖아. 그죠? 그 정도만 딱 차려가지고 어때요? 이렇게 하는 게 좋고. 그다음에 술을 따라야 되는 게 아니라 술 대신 뭐를 따른다? 차를 따르면 되는 거지. 법당에서는 다 제사를 지낼 때 차를 따르지 술 안 따르지 않습니까? 또 술을 따라야 된다면 술중에 제일 작은 병을 하나 사가지고 소주병으로 하나 사서 따로 버릴 수밖에 없죠. 뭐. 어떻게 합니까? 그거를.
그러니까 작은 병을 하나 사. 제일 작은 병을 하나사서 하고 그건 버리고, 안 그러면 나머지는 놔뒀다가 절에 갔다 줘요. 이런 거. 그럼 “스님이 절에 왜 술을 받습니까?” 하는데 갖다 줄 때가 없다면 그 얘기요. 그러면 노인들이 시골에 그 여기 무슨 잔치할 때 병 못 따가지고 잠가 놓으면 맥주는 안 되지만 정종 같은 거는 상관없잖아. 소주라든지 이런 거는. 그렇게라도 하란 말이오. 절에서 먹는다는게 아니라. 주위에 노인들 있는데 수의라든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다가 “어제 저녁에 우리가 제사를 지내고 술을 안 먹으니까 드십시오.” 이렇게 드리면 좋은데.
차를 먹는 게 첫째 좋고. 술 안 먹는 집에는 차가 제일 좋고. 그다음에는 술을 그래도 꼭 따라야 되겠다면 이렇게 베풀어서 음식을 버리지 않는 게 좋다. 이 말이오. 너무너무 당연한 얘기니까 이렇게 차려도 되느냐가 아니고 이렇게 하는 게 오히려 법에 맞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금강경을 읽는 게 놓으냐? 안 읽는게 놓으냐? 이거는 불교식이 되는 거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꼭 불교식으로 안하더라도 기독교인이라도 또는 천주교인이라도 또는 유교라도 이렇게 음식을 간소하게 차리고 버리지 않도록 하고 혹시 차렸다면 그것을 이렇게 이웃집에 요즘은 아프트에 위층에서 제사지냈다고 해서 떡 쪼라기 갖다 주면 그거 고마워하겠어? 안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거 아파트에 굳이 돌릴 필요가 없어. 요즘은 어디든지 돈 조금만 줘도 어때요? 사먹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떡을 또 먹는 사람들도 있어.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잘 포장만 된다면 예를 들면 공사판이라든지 이런 데는 점심시간에 괜찮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공사판 주위에 이렇게 보시고 그렇게 가져가셔서 불쌍하니까 준다. 이런 마음이 아니라 저희 집에 제사라서 음식을 차렸는데 이렇게 참 우리 집에서 먹을 수가 없고 하니까 여러분들 드시게 미리 가서 물어봐도 됩니다. 아시겠어요?
제사 지내기 전에 주위에 가서 “우리 집에 음식 조금 차렸는데 내일 제사지내고 나서 음식 드시면 괜찮겠습니까?” 그러면 “괜찮다.” “몇 명이나 됩니까?” “몇 명이다” 하면 그만큼 음식을 마련해서 갖다 줘도 되겠죠. 보시하는 게 제일 좋은데, 보시로서 어렵다 하면 요렇게 또 차린 음식을 나눠줄 수 있는, 미리 살펴가지고 해야지. 아파트 아래위층에는 줘봐야 인사 못듣습니다. 욕 얻어먹지. 주기도 어렵고. 집에도 안 사는데 언제 집집마다 문 드려서 주겠느냐? 제일 좋은 거는 밖으로 보시하는 게 좋다.
여기 지금 여러분들 제를 안 지내는데, 여기는 지금 안하지만 저희 전국 법당에서는 제를 많이 지냅니다. 이거는 어차피 절에서 안지내주면 어때요? 딴 절에 가서도 어차피 지내기 때문에 정토멤버들은 “스님, 우리 절에서 다 지내주세요.” 한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이런 이런 여러 원칙이 있어 지내라.” 첫째, 음식을 안 차리고 보시만 하고 재를 지내는 게 제일 좋다. 그래 되니까 자기는 되는데 가족이 문제라는 거요. 49재 지낸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이 차만 딱 올리고 하니까 가족들이 뭐 재가 이러냐? 문제가 된다.
그렇게 해서 할 수없이 그러면 집에서 준비를 해와라. 집에서. 절에서 준비해주면 되지 않냐? 절에서 준비하면 어떠냐? 그러면 또 뭐가 문제냐 하면 준비해주는 게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누구는 많이 차려주고, 누구는 적게 차려주고. 이런 문제가 생겨요. 그럼 돈을 천만 원 낸 사람이나 십만 원 낸 사람이나 똑같이 차려주면 또 천만 원 낸 사람이 어때요? 문제를 삼을 거 고. 또 차이가 나면 “죽은 귀신도 차별하나?” 또 이럴 거 아니야. “정토에까지도 차별하네.” 또 이런다. 복잡해. 그래서 보시금은 전액 제3세계 돕는데 쓴다.
그리고 음식은 각자 집에서 준비해 와라. 자기 집에서 준비할 때는 “나는 차 한 잔만 하고 제사를 지내겠습니다.”가 있고. “아이고, 그래도 음식준비해오겠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을 때는 이거는 서로 욕이 안 되잖아. 그죠? 자기 집에서 자기가 가져오는 거니까. 그런데 이 사실은 돈 내서 집에서 차리나 집에서 가져오나 어쨌든 마찬가지기는 해도 그래도 우리는 “아이고 돈 많이 낸 다면 잘 차려주고, 돈 적게 낸다고 덜 차려주고.” 문제가 돼서 그래서 “집에서 가져오너라.” 이래.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형제간에 어욼려서 재 지낸다하고 많이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그럼 절에 또 대중이 많으니까 뭐하면 된다? 대중공양이 되거든요.
서울 같은 저희 절에서는 대중공양이 되니까 대중공양하고 그다음 차 한 잔 올릴 사람은 올리고, 그러다보니 밥해가고 국은 들고 오기가 어렵다. 그래서 밥하고 국은 절에 부엌 있으니까 여기 와서 해라. 그런데 이게 끝도 없어. 그래 되면 또 외국에서 또 누가 부탁하는 사람은 여기 집도 없어 해올 때가 없다. 그래. 그러면 부엌에 와서 빌려서 해라. 이러면 사람도 없다. 그래서 또 해주면 “왜 저 사람은 해주고 나는 안 해주느냐?” 또 이렇게. 그래서 이게 인생이라는 거는 끝이 없어. 그렇다고 안한다. 하고 딱 정해지면 또 이게 안하는 게 문제가 되고, 하기 시작하면 이런 식으로 벌어져.
그래서 중도라는 거는 거기서 적당하게 어떻게 조율을 하느냐? 원칙은 이런데 설령 해준다하더라도 그건 뭐로 해야 된다? 예외로. 아시겠어요? 예외로 처리를 할 수 밖에 없다. 원칙에 없으면 혼란스럽고 또 예외가 없으면 어때요? 인생살이가 너무 빡빡해. 하하하. 가끔 예외도. 어제 같은 날도 있어야 사람이 사는데 숨통이 트이지. 딱 원칙만 있으면 사람을 숨을 못 쉬게 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하는 거니까.
보살님이 얘기한데로 집에서 제삿날 이렇게 차 한 잔 끓여서 딱 올리고, 그렇게 하면 좋고. 섭섭하면 어때요? 과일 정도 올리고, 차 한 잔 따르고, 그렇게 해서 절 몇 번 하고 또 불자들이라면 금강경을 독송하든 해탈 주를 독송하든 천수경을 독송하든 그렇게 딱 하고 중요한거는 둘러앉아서 본인에 대해서 어때요? 얘기도 좀 나누고. 이렇게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이렇게 문화를 바꿔나가면 어차피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문화는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안 바뀌어줘도 여러분 애들은 이게 요렇게 바꿔주면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남고 형식은 간단하게 되고 의미 있게 돼서 자손들도 본받을 수가 있게 되는데, 여러분들이 안 바꾸고 고집을 하면 결국은 아이들은 아예 안 해버립니다. 제사 이 자체를 안 지내버려요. 그런 거보다야 우리가 바꿔서 젊은 세대도 용인할 수 있도록 어때요? 이렇게 연결시켜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저도 재를 지낼 때는 불교신자들이 모여서 이렇게 법당에 지낼 때는 염불 같은 거 옛날에 하는 거 다 해주지마는, 밖에 가서 문상 갔을 때, 불교신자가 아닌 사람이 다수요. 그러니까 아는 사람이 날 아는 사람 한사람만 불교 믿고 딴 사람 불교도 아니고 이런 경우에다가 목탁치고 염불을 그냥 한문으로 된 거를 한 시간씩 하고 있으면 딴 사람들이 뭐하게 느낀다? 지루하게 느끼고 귀찮게 느끼는 거요. 아시겠어요? 어쨌든 딱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딱 이렇게 해주는 게 사람들에게 더 낫다는 거에요.
목탁을 치고 이거보다 중요한거보다 더. 그렇게 해서 이렇게 문화를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해요. 예. 쓴 거는 두 개밖에 없었어요. 예. 질문을 하지 말고 자기 소감쯤 얘기 해봐요. 우리 전국법당에는 다 어떠냐하면 강의가 끝나면 둘러앉아 마음나누기라고 하는 게 있어. 아시겠어요? 자기는 금강경 듣고 뭘 느꼈다. 자기는 어떻게 했다. 어떻게 했다. 들으면 딴 사람 얘기 들으면 아~ 참~ 마음이 저래도 바뀌구나. 이래서 더 감동을 해. 스님얘기 듣는 것보다.
그런데 우리는 스님얘기 있어서 나아진 게 아니라 못해졌어. 아침에도 듣고, 점심에도 듣고, 저녁에도 듣고. 듣는 병에 걸릴 위험에 지금 처해있어. 그래서 자기얘기를 좀 한번 해봐요. 나는 이런 문제들, 그러니까 얘기를 하면서 또 이런 고민도 있다. 이래 얘기하며 스님이 고민에 대해선 또 조언도 해줄 수 있고, 꼭 금강경 강의 듣고 좋았다는 얘기만 하라는 게 아니야. 스님법문이 그래가지고 나는 뭐 헷갈리기만 한다. 이렇게 얘기해도 되고. 그럼 스님이 아~ 저런 분은 저렇게 헷깔리구나. 그래 내가 저 얘기 할 때는 설명을 조금 더 자세하게 해야 되겠다. 이렇게 또 스님이 또 법문을 더 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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