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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 45. 모든 것은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사라지게 된다 –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10. 25. 20:03

 

 

 

 

깨달음은 일체 선을 닦는 거예요.

깨달은 사람이 악한 일 하라고 그래도 안 하거든요.

또 깨달음은 일체 상을 여의는 겁니다.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일체상, 일체상을 다 여의어요.

크다는 생각이나, 죽는다는 생각,

그 죽는다는 게 순전히 자기 생각이에요.

불생불멸이 일체상인데, 불생불멸 속에서

산다 죽는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 이것도 생각이구요. 내가 죽는다, 이것도 전부 생각이구요

전부 망념 번뇌에요.

이게 문제에요.

 

지금 죽겠다고 고함지르는 사람에게

, 그 죽는다는 생각이 네 망상이다그러면 따귀 맞죠.

그래, 그래, 나도 죽고 너도 죽는다.

우리 좋은데 가서 다시 태어나자이래야 되지

죽긴 뭘 죽어, 그러면 큰일 나요. 거스르는 거거든.

 

죽는다고 고함지르는 사람한테는

그래그래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다 죽는다.

다음 세상에는 더 좋은데 태어나서 다시 만나자이래야 하지

, , 어디 경보니까 죽는게 없다고 하더라, 죽긴 뭐 죽냐?” 그러면

힘이 없는데 그런 말 하면 친구 간에 의만 상합니다.

 

이분은 도인이다, 이분 말씀은 틀림없다,

이런 상태에도 워낙 아프면 그게 영 안 들어올 수 있거든요.

그런데 죽을 때 얼마나 고통이 오는데

거기다 대고 죽는게 있니 없니 그랬다가는 큰일 나죠.

그런 걸 근기 따라서 설법을 한다, 이러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이 몸이 흩어진다고 그래서, 그게 죽는 게 아닙니다.

이 몸이 생겼다고 그래서 그게 산 게 아닙니다.

 

생사라는게 고대로 바로 보면요, 이런 겁니다.

한번 잘 보실래요?

생사가 뭐냐? 인생이 뭐냐?

주먹이 요렇게 생겼죠. 주먹 생긴 거 맞죠?

그런데 주먹이 생길 때도 손가락 하나하나가 굽어져서 생긴 거예요.

주먹이 사라질 때도 손가락 펴서 하나, , , , 다섯, 주먹 없어졌죠.

요것을 연생연멸(緣生緣滅)이라고 그럽니다.

(인연 연, 날 생, 꺼질 멸,

모든 것은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사라지게 된다)

생길 때도 인연으로 하나, , , 넷 이렇게 인연으로 생기고요,

없어질 때도 인연으로 없어져요, 인연으로.

 

갑자기 죽는 건 갑자기 숨이 떨어지는 건데,

다 안 없어집니다. 숨만 떨어졌지, 다 안 죽어 있어요.

숨 떨어진 사람 몸에도 살아있는 게 많습니다.

숨 안 쉬면 다 죽은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머리도 한참 동안 자랍니다.

그래요, 이 몸이라는 게요.

 

그리고 태어나는 것도 금방 그냥 톡 나오는 것 같죠? 그게 아니고

처음에 작은 데서 시작해서 이렇게 자라서 하고,

죽을 때도 자연사하면 그냥 죽는게 아니라

머리부터 세고, 눈썹부터 세고, 눈 어두워지고, 온갖 쑤시는데 많이 생기고, 서서~~히 세면서 죽지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요, 상당히 많이 지금 죽어 있는 거예요.

 

주먹으로 말하면 한 두서너 개는 지금 펴져 있고, 이런 정도가 늙은 겁니다.

이걸 나는 것도 인연이라 그래서 연생이라고 그럽니다. 인연 연, 날 생.

죽는 것도 인연이라고 그래서 연멸이라고 그래요.

 

연생연멸은 불생불멸이다_ 인연에 의해서 생겨나고 멸하기 때문에 그 자체란 없다.

불생불멸법이 이거에요. 인연으로 난 것은 난 게 아니다, 불생이에요. 연생은 불생이다.

인연으로 없어지는 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연멸은 불멸이다.

 

그래서 이 몸이 이렇게 인연으로 모였다가 이렇게 인연으로 사라지는구나,

이렇게 각조, 딱 깨달아서 관조를 하고 있으면 그 생사에 고통은 있어도 공포는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 중생은 고통보다 공포가 더 앞서가서

나 죽으면 어찌하라고어찌하긴 뭘 어찌해? 죽으면 그뿐이지.

참내 기가 막혀서.

공포가 문제에요. 죽는게 문제가 아니라.

 

도인들도 아프긴 다 아파요. 그런데 공포는 없거든요.

연생연멸은 불생불멸이라는 것을 환희 보니까 그래요.

중생은 그걸 못보니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어디로 갈지, 도대체 모른다, 이 말이오.

 

상에서 벗어난 것,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이 상태인데

그러면 보살이 할 일이 뭐냐? 선법을 닦을 일밖에 없거든요.

선법은 육바라밀에서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까지가 선법입니다.

반야바라밀이 거기 무상이에요.

반야바라밀은 일체 상이 없는 거예요.

 

반야바라밀은 정도이고, 상을 여읜 거, 정도, 무상무주이고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5바라밀 이건 선법이에요.

이걸 또 닦으면 반야바라말이 더 깊어지고,

반야바라밀이 깊어지면 이걸 더 깊게 닦게 되고

이걸 상자관계라 그럽니다. 서로 돕는 관계다, 서로 상, 자본주의 자, 도울 자, 상자, 서로 도와요.

 

등유라고 설명을 해요. 등유.

반야바라밀은 등불이고 선행은 기름이다, 기름.

기름이 많아야 등불이 더 밝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기름만 있으면 어떻게 하냐 이 말이에요.

그 기름 자체가 그게 밝은 건 아니거든요.

등불이 연소가 되어야 이게 밝은 거 잖아요.

 

지혜 없이 복만 많으면 이게 문제에요.

복 떨어지면 다시 가난해 지거든요.

그래서 지혜가 있는 상태에 복을 닦아야 그게 상자관계가 되어서 반야바라밀 해탈대도를 이루게 됩니다.

복만 자꾸 짓고 지혜를 안 닦으면 윤회밖에 안 돼요.

복 없어지면 다시 떨어지거든요.

 

그럼 복만 많이 지으면 환생과 상생밖에는 안 되는데

환생은 인간에 환생하는 거고, 상생은 천궁에 상생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인간 환생도 잘못하면 다시 또 더 나쁜데로 가고

천궁에 상생을 해도 복진이면 다시 또 타락해버려요. 떨어져 버려요.

 

그래서 복만 믿고 지혜를 안 닦았다가는, 그게 옳게 사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오바라밀만 닦고 반야바라밀을 안 닦으면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기름만 자꾸 쌓아놓고, 그 기름을 태우는 등불이 지금 안 밝혀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은 등불이요, 그 밑에 5바라밀은 기름이다.

등유가 상자라, 등과 기름이 서로 돕는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일체 선법을 닦아요.

그리고 화엄경에서는 이 선법을 십선으로 얘기를 했거든요. 십선.

천수경에도 그러죠

몸으로는 살도음을 안 하고, 살생이라든지 남의 거 훔친다든지, 살인_ 남을 해친다거나 죽인다거나 남의 것을 뺏거나 훔치는 것을 안 하고,

남의 가정 있는 남자하고 여자하고 잘못 사귀어서 안 되게 하는 이런 거 안하고

또 망어양설악구기어_ 입으로 하는 거 안하고

탐진치 생각으로

10가지를 안하면 십선이거든요,

이것이 일체 선법을 닦는 거예요.

 

그럼 이렇게 해서 보살은 닦을 때도 거기에다가 뭘 과보를 바라지 않는다, 불망과보라_ 그 결과의 보답을 바라지 않아요. 불망과보에요. 닦을 때도.

닦는데도 소작복덕은 불응탐착이라_ 자기가 지은 복덕을 탐착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되냐?

다 보시하고 회향해 버려요.

그래서 이런 것을 묘행반야라 그럽니다. 모행반야_ 묘하게 행하는 수행하는 반야에요, 묘행반야.

 

묘행반야라는 게 뭐냐?

바람 불면 저절로 풀잎이 슬~ 누워요, 이걸 풍행초원이라고 그러는데

바람이 지나가면 풀이 눕습니다. 그거와 같아요. 그게 묘행이에요.

바람이 슬~ 불면, 그 바람이 풀을 눕게 하겠다는 계획 세워놓고 풀을 바람이 지나가는 거 아닙니다.

그냥 쉴 지나가면 그냥 풀이 스르르르 눕는다, 그걸 묘행이라 그래요.

 

불만과보하고 불응탐착하고, 과보를 바라지 않아요.

, 이거 하면 어떤 결과에 보답이 나한테 있겠다,

난 그걸 위해서 이걸 한다, 이거 없어요.

그냥 바람이 지나가듯이 슬~ 하는 거예요.

 

또 수도거성이라_ 물이 슬 다가오면 거기에 또랑이 생겨요. 똘이 생기지

물이 흐를 때, 미리 똘 내놓고 이놈들이 흐르는 게 아니에요.

그냥 물이 오면 똘이 생겨요, 이걸 수도거성이라 그럽니다, 그렇게 돼요.

 

그리고 묘행이라고 하는 것을 뭐라고 그러냐하면

여조주공이라_ 새가 공중에 머무는 것과 같다.

주공은 공중에 머문다, 여조는 새, 같을 여, 새 조,

새가 공중에 머무는 거 보면요

지맘대로 휭 날아서 여기 앉았다가 지맘대로 휭 날아서 여기 앉았다 그러지

내가 새가 안 되어 봐서 모르긴 하지만

공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구속이 없더라고요.

그냥 이 나무에 있다가 휭 날아가면 그만이에요.

거기 공중이 있는지 없는지.

 

그래서 여조주공이라_ 새가 허공에 머무는 거와 같다, 이게 묘행입니다.

그게 보살이 하는 일이에요. 반야바라밀로 사는 거.

이런 것을 이일체상 수일체선,

수일체선법하면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하면 이 일체상이에요. 일체상을 여읜 겁니다.

수일체선법하면 일체선을 닦는 거예요.

이게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반야는 평등이요,

반야는 무상이요,

반야는 이상행선이라, 상을 여읜 상태에서 선을 행하는 거다.

이상행선.

이상은 뭐냐? 이일체상, 일체상을 여의고

행선은 뭐냐? 수일체선이라, 일체 선을 닦는 거다.

그럼 그게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소언선법자는_ 수보리야, 이 선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래설 즉비선법이니_ 여래가 말씀하시기를 곧 선법이 아니니

시명선법이니라_ 다만 그것의 이름이 선법이니라.

 

여래가 말씀하시되 선법이 아니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아는 세속적인 선법이 아니다.

이 세속적인 선법은 반드시 결과를 바래요.

희망과보라, 과보를 꼭 희망을 해요.

그래서 이게 그 바라는 대로 안 되면

좋은 일 해놓고, 좋은 일 한 사람이 더 괴로운 거예요.

 

친구한테 돈을 줬는데, 돈 줄 때는 받으려고 줬거든요.

그런데 이놈이 안 주고 외국으로 튀었다.

이런 걸 요새 인터넷 용어로 먹튀라고 그래요. 먹튀, 먹고 튀었다고. ㅎㅎ

먹튀가 떡 됐으니, 그거 얼마나 괘씸하고 얼마나 미워요.

 

줄 때는 좋은 것, 잘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미워서, 그 친구는 멀쩡한데 내가 병이 나요.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건 즉비선법이라, 그런 희망과보선법이 아니다.

과보를 희망하는 선법이 아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이 새가 날 듯이 바람이 불 듯이

묘행선법이다, 묘행선법.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고통은 없거든요.

모든 걱정근심이 바라는 데서 생겨요.

일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내 바라는 마음에서 생기는 거예요.

그거 묘하지, 그러니 이런 말 하면 잘못알아 듣는 사람이 있어요. ㅎㅎ

 

남편이 뭘 잘못해서 속상하다 그러는데

남편이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속이 상한 거예요.

남편도 남자이고 수놈인데, 수놈이 어디 가서 숫놈 질한 거는 당연한 건데

그걸 왜 내 남편이 왜 저러냐고, 자기가 그렇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여자도 마찬가지 뭐, 여자도 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데, 권리와 인격이 똑같은데

여자도 다 사랑할 수 있고, 할 수 있는데

자기 아내한테는 다른 데 가서는 절대 사랑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괴로운 거 아니에요.

 

그러면 여기서 보살이 결혼해서 사는 사람이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반야바라밀 보살은 어떻게 처리할까?

잘 들으세요. ㅎㅎ

모든 책임을 자업자득, 인과응보, 자기로 돌리는 것이 보살이에요.

남편이 바람피워도,

... 내가 잘못해 준 게 많아서

내가 제대로 해주지 못해서

바람을 피웠으니 그건 모두 내 책입니다.

내 잘못을 참회합니다.”

남편이 바람피웠을 때 자기가 참회하는 거예요.

내가 잘못해서 바람피웠다고.

그게 보살입니다.

 

, 거기까지가 오늘 얘기이고요.

다시 한번 해석으로 쭉 읽어보겠습니다.

 

정심행선분이라_ 청정한 마음으로 어떠한 상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

행선이라_ 모든 선법을 행하는 그런 내용이다.

다시 수보리야

이 법이_ 이 반야바라밀 법이

평등해서_ 고하가 없으니

이것의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_ 가장 높은 깨달음이니라.

아상도 없고_ 무아

인상도 없고_ 무인

중생상도 없고_ 무중생

수자상도 없는 마음으로

일체선법을 닦으면_ 수일체 선법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라_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이른바 선법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설 하되_ 여래가 말하되

곧 선법이 아니니_ 즉비선법이니

세상의 선법처럼 결과를 바라는 선법이 아니다 이겁니다.

결과를 바라는 선법이 아니니_ 묘행선법이니

이것의 이름이 선법이니라_ 이것이 참으로 선법이니라.

그런 말입니다.

 

, 이제 한번 같이 두 번만 읽어보시겠습니다.

부차입니다, 시작~

 

금강경 제 23장 정심행선분_ 청정한 마음으로 선법을 실행한다.

부차 수보리 시법평등 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즉비선법 시명선법

부차 수보리 시법평등 무유고하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 즉비선법 시명선법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