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Danye Sophia] 과연 현대사회에 산신령은 있을까?

Buddhastudy 2022. 5. 25. 19:19

 

 

 

옛날 우화나난 전설 야화 등을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산신령입니다.

 

산에는 산신령이 살고 있다는 믿음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인류가 태동하면서부터 시작된 역사적 산물이니까요.

 

산에 정령에 대한 믿음은 현대에 이르면서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그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무속인들이 명산을 찾아 영기를 받고

수행자들 역시 산으로부터 수행처를 얻고 있습니다.

 

특히 불교는 산속에 위치해서인지

유독 산신령에 대한 믿음이 강합니다.

어느 사찰을 막론하고 산신각을 모시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문헌에 따르면 싯다르타가 산신령을 모셨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더군다나 세존은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신에 대한 관심 자체를 무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불교에서 산신령을 크게 대접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 학자들은 불교가 대중화하기 위해

토착 신앙과 융화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민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샤머니즘에 산신령을 사찰에 모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주교가 교세 확장을 위해 제사를 인정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산신각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일까요?

불교에서는 산신각을 모시면서 신통력에 관계된 위인들을 죄다 모아놓게 됩니다.

그래서 산신을 비롯해서 용신이나 칠성, 그리고 신통력에 1인자라는 나반존자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산신, 용신, 칠성 나반존자는 실재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어떤 영향력을 인간사에 끼치는지에 대한 의문이 연달아 듭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무속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종교를 마치 도박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왜냐하면 사후의 세계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수천 가지의 종교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믿는 신이 사후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신앙은 일종의 베팅이 됩니다.

 

어느 종교에 배팅을 하느냐에 따라

사후에 대박을 칠지, 아니면 쪽박을 찰지가 결정되니까요.

 

그런데 과연 죽은 뒤에

어느 종교가 저승을 통치하고 있을까요?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수많은 단체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공존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이상하게도 사후의 세계만큼은 어떤 절대적 유일신이 독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설마 저승에서도 현실 세상처럼 갈가리 쪼개져 대립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신론은 유일신 사상에 밀려 무속과 몇몇 종교에서만 남아있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저승은 정말로 어떤 유일신이 권력을 몽땅 휘어잡고 있을까요?

경험칙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실 세상에 나라도 많고 민족과 문화, 종교 등이 세분화 된 것처럼

저승 또한 엇비슷합니다.

그렇기에 각 종교만다 성령체험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런 신비감을 조직 확산에 요긴하게 쓰고 있습니다.

 

아무튼 사후세계의 룰

그건 바로 무속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에 바탕에 저마다 다른 종교적, 문화적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이

저승의 양태인 것이죠.

그렇기에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샤머니즘에 문화를 공유하게 됩니다.

 

심지어 사탄이라며 무속을 멸시하는 기독교에서도

온갖 부흥회를 통해 영성 체험을 이끌어냅니다.

이름만 영성 체험이지 사실은 신들림 현상인 것이지요.

 

신들이 빙의되어 정보를 교류하면

그 주파수를 신도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빠른 속도의 방언이 입에서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신과 주파수가 좀 더 맞으면 그 방언을 해석하는 은사도 생기는데

이 역시 무당의 공수(점괘)와 같은 개념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에서도 샤머니즘의 신들림 문화는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종교라는 것은

무속의 알몸에 그럴듯한 옷을 입혀 치장한 것과 유사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불교의 사찰에 산신각이 모셔진 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실 산신각은 허울이 아닌, 나름의 기능도 톡톡히 합니다.

 

불공을 예로 들었을 때

과연 불·보살들이 사업을 번창하고 대학에 붙게 해주는 일을 하실까요?

 

만일 그런 복을 내려준다면

남의 복을 빼앗는 꼴이 되어 도둑놈의 오명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할 전문가가 필요하고

그 역할을 산신각에서 떠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불교에서 민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산신각을 두게 된 것은 필연입니다.

 

산신 신앙에 대해 학자들은

하늘 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하늘에 가까운 산봉우리에서 기도를 드리다 보니

산에도 그 주인인 산신령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단지 그런 이유 하나 때문에

산신 신앙이 팽배하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어서 산신이 없다면

다시 말해 어떤 영험이 없다면 그 신앙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산신령이 과연 있을까요? 없을까요?

 

등산을 하거나 산 주변을 맴돌 때

한 번쯤 그 산의 산신령과 교감해 보는 건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