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금강경 제24장 부처는 이 경에 대해 설한 바가 없다

Buddhastudy 2022. 12. 29. 20:05

 

 

 

無所設經分

-부처는 이 경에 대해 설한 바가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만일 어떤 사람이 무한히 많은 세상을

칠보로써 가득 채워 보시하더라도

어떤 선남자 선녀인이 깨달음에 대한 발원으로

이 경을 지니거나

사구게 정도만 간직하여 독송하고

때론 남을 위해 전해 주는 것에 비해

그 공덕이 크지 않느니라.

 

남을 위해 어떻게 일러줄 것인가 하면

상에 집착하지 말고 늘 한결같아

외계의 정보에 휘둘리지 않게끔 하면 되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일체의 법이란 것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제법 무상으로- 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에 대해 설하심을 마치셨다.

이에 장로 수보리와 여러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모든 세상의 천인과 아수라들이

부처님이 설하신 법문을 듣고는 모두들 매우 기뻐하면서 믿고 받들어 따랐다.

 

 

-解義-

 

나를 가치있게 하는 지혜를

불교에서는 반야라고 한다.

 

반야란

어떤 것이 나에게 유리한지를 바로 아는 견식을 말한다.

따라서 반야는 나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인도하게 된다.

그 방향이 바로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피조물이 지닌 시공의 한계에서 벗어나

실존화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피조물에서 조물주로 거듭나는 일이다.

세상에 이것만큼 이롭고 가치있는 것이 있을까?

 

흔히들 실속을 차리라는 말을 하는데

진짜 실속은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 외에는 없다.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살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살든

깨달음의 길을 걷지 않으면

그 결말은 허무할 뿐이다.

 

시공과 공간의 압박에서 오는 두려움에 떨다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사라지거나

어쩌다 종교라는 진통제를 맞고 괴로움을 일순 견뎌낸다 해도

약효가 빠진 뒤에 찾아오는 더 큰 고통에 신음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地始生於何 天終止於何

地一息破 天廣一乍散

人生如塵滅 問依歸於何

땅은 어디서 시작하고, 하늘은 어디서 끝나는가

땅이 단단한들 숨 한번 쉬면 꺼지고

하늘이 드넓은들 눈 한번 감으면 흩어지는 것을...

인생이란 먼지가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

어디에 의지해 돌아가야 하는가!

 

깨달아 온전한 상태가 되는 것보다

소중한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음,..

그것을 구하고 또 구하다 보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에 따른 인과를 불러올 것이다.

 

시간의 추이와 상황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금강발원을 세운다면

기필코 인과에 의해 깨달음이 일어나리라.

 

그런데 그 깨달음이란 것은 실체가 없다.

왜냐?

실존이란 것이 유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도 아닌 공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을 가르치는 불법의 실체 역시 없다.

세존은 귀중한 시간을 쪼개 경을 설했지만

법의 실체가 없는 까닭에 설한 바가 없다.

 

그래서 금강경이 이렇게 책으로 엮어져 있지만

그 실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공일 뿐이다.

 

금강경은

중생들의 인식을 공으로 바꾸기 위한 가르침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부정한다.

중생들이 지닌 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체 만유를 모조리 부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부처가 지닌 32상 설법에 대한 상

중생 제도에 관한 상

보시에 관한 상

인욕바라밀에 관한 상

법이 있다는 상

법이 없다는 상

여래에 대한 상.. 등등

모든 것을 부스고 또 부수어 텅 빈 공으로 유도한다.

 

금강경은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과

그것으로 인해 파생된 일체의 관념을 뛰어넘어 해탈할 것을 가르친다.

그래서 금강경은 그 자체로 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