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중도론 9. 깨달음을 얻기 위한 3가지 길!

Buddhastudy 2023. 4. 20. 20:23

 

 

 

1. 싯다르타의 첫 번째 구도행, 진아

 

 

싯다르타는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절감하고

참된 존재를 깨닫기 위해 출가하였다.

당시 그는 수행을 해 본 전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철학적 견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을 이끌만한 스승을 찾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찾은 첫 번째 스승은 밧가와이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숲속에서 고행을 하면서 마음을 닦고 있었다.

한쪽 다리로 선 채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은 기본이고

못이 박힌 판자 위에 서서 괴로움을 참거나

날카로운 바위에 살가죽을 문지르며 통증을 인내하는 등

여러 종류의 고행을 실천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며칠 동안 그들 무리에 섞여

자신이 몸담을 만한 수행인지 유심히 살폈다.

어느 날 싯다르타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밧가와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싯다르타에게 다가와 물었다.

 

젊은이, 무얼 그리 주저하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자네가 지금 보고 있는 것뿐이라네

진실로 이곳에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싯다르타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자네의 출가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네.

생로병사에 대한 두려움과 허망함에서 촉발되었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묻겠네, 생로병사는 누구의 문제인가?”

당연히 의 문제이지요

 

그렇지. ‘가 있음으로써 생긴 문제이지.

그런데 그 는 또 누구인가?”

“.....”

 

느닷없는 반가와의 질문에 싯다르타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대답했다.

몸뚱이가 있긴 하지만 이건 를 싣고 있는 상자 같은 것 같고

확실한 건 생각이 모여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생각이라! 그럼 생각이 를 만들고

가 있음으로서 생로병사가 생긴 것이구먼

새끼줄을 독사로 보면 온갖 두려움이 일겠지.

하지만 새끼줄을 새끼줄로 보면 어떻겠는가.

그렇듯 자네가 걱정하는 생로병사는 실상 새끼줄 같은 것이네.

독사로 보고 있는 마음만 거둬내면 간단히 해결 되지. 허허허

“....”

 

이보게 젊은이.

자넨 참으로 행운아일세.

여기저기 깨달음을 찾아 헤매지 않고

단번에 이곳을 찾았으니 말일세.

여긴 바로 그 생각주머니인 가 거짓된 것임을 밝혀

생로병사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곳이네.

생각이 만들어 낸 거짓된 자아

즉 가아를 바로 보면 진아에 대한 깨달음이 열리네.

진아를 찾으면 가아가 일으키는 모든 문제가 부질없는 것이 되지.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네.

생각해 보게.

참된 자아를 찾는 것보다 더한 깨달음이 어디 있겠는가

 

밧가와는 가아와 진아에 대해 설명했고, 그 논리는 매우 명확했다.

싯다르타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진아를 찾는 것과 고행이 무슨 상관입니까?”

 

자넨 생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마음대로 됐으면 이 자리에 있지 않겠지요.”

 

바로 그렇네.

생각이 일으킨 문제를 생각으로 해결하려 하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문제가 되풀이만 될 뿐이지.

그래서 생각과의 분리가 필요하네.

몸에 고통을 주면 어떻겠는가?

고통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터져나갈 것이네.

그럼 무조건 고행을 그만두려고 하겠지.

그럼에도 참고 계속하면 어찌 되겠는가?

머릿속에서 고통을 자신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분리를 시도할 것이네.

다시 말해 고통의 생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

괴로워 아우성인 생각을 관찰함으로써 생각과 떨어지는 것이야.

그것이 조금씩 성과를 내서 생각이 일으키는 대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불현듯 참된 자아, 진아를 깨닫게 되네

그렇다면 생각이 일어나는 자리에 그 진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그렇네.

진아를 깨닫게 되면

자네가 출가하게 된 생로병사의 문제는 저절로 풀리게 되는 것이야.

하하하

 

밧가와는 탈속의 미소를 지으며 싯다르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싯다르타는 잠깐의 대화 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밧가와의 논리를 부정하려 해도 허점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모든 수행은 마음을 닦으려 함이고

마음을 닦으려면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싯다르타는 마침내 밧가와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싯다르타의 첫 번째 수행은 시작되었다.

 

 

고행을 통한 생각과의 분리

이건 당시 수행자들 사이에서 꽤 유행하고 있던 위빠사나 수행이다.

물론 고행을 하지 않고 그저 생각만을 관찰하면서

수행하는 비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보다 극한 상황으로 만들어

생각과의 일전을 벌이려는 수행자들은 기꺼이 고통을 감수했다.

 

 

아무튼 싯다르타는 밧가와의 지도를 받으면서 고행을 통한 위빠사나 수행에 매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밧가와가 장담했던 수행의 경지에 이르렀다.

생각이 일어나는 자리를 찾아 진아를 깨달은 것이다.

마치 태풍의 눈 속에 들어온 것처럼

번뇌망상이 잦아들어 고요하기만 했다.

마음이 지극히 편해지고 삼라만상과의 동질성이 느껴졌다.

 

싯다르타가 생각을 일으켜 보니 예전처럼 쑥쑥 올라온다.

그런데 그렇게 일으켜진 생각에 대한 집착이 눈에 띄게 약해져 있다.

싯다르타는 수행의 동기였던 생로병사를 떠올려봤다.

 

나는 진아를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몸뚱이는 어떻게 되는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진아를 찾았다고 해서 생로병사가 없어진 게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생로병사가 생로병사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마치 꿈속의 환영처럼 다가온다.

허상으로 보이니 생로병사에 대한 그 어떤 번뇌도 일어나지 않는다.

, 내가 정녕 진아를 찾음으로써 생로병사를 극복한 것인가!’

 

싯다르타는 자신이 깨달은 진아의 경지를 즐겼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밧가와의 눈길은 흐뭇하기만 했다.

몇 달 동안은 화창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싯다르타의 내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건 일련의 의심이 움트면서이다.

 

지금 이 상태가 진아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결국엔 소멸할 게 아닌가?

스승님은 만물의 바탕이기에 영생한다고 하지만

어떤 논리나 실질적 체험으로 증명된 건 아니다.

생각의 장막이 거두어지고 나타난 진아 역시

고차원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

마음이 정화되어 지극히 고요해진 상태를 일러 진아라 이름 붙이고

절대성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

 

 

이런 싯다르타의 의심을 눈치챈 밧가와는 어느 날 조용히 다가와 타이르듯 말했다.

진아는 그 자체로 실존이네.

오고 감이 없고 생하고 멸하는 것도 없네.

영원히 불변하는 참된 절대의 진리란 말일세.

그러니 일체의 의심을 두어서는 안 되네

 

싯다르타는 스승의 말을 듣고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또다시 그의 심연은 의심으로 어지럽혀졌다.

진아가 실존임을 증명하지 않은 상태에선

온전한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날이 굳어져만 갔다.

 

알지 못하는 경지는 언젠가는 꺼져버릴 물거품이 아니랴!’

 

싯다르타는 밧가와에게

그동안의 가르침에 고마움을 표하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