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지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2024.03.19.)

Buddhastudy 2024. 3. 28. 20:28

 

 

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안분지족이라든지 평범한 소시민의 삶에서 만족을 자주 느낍니다.

제가 하는 일 자체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일상화된 부분이 많아서

이런 소시민적인 삶에 만족하는 태도가

현실 도피적이고 자기기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이 진정한 나의 행복인지 의문이 듭니다.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발전보다는 퇴보에 가까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계속 발전해서 기후 위기를 초래하여 우리가 모두 공멸한다면

이것이 과연 발전일까요?

단기간에 보면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좀 더 길게 봤을 때

과연 발전인지 아니면 해악인지에 대한 평가는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삶의 동력이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행위를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바로 욕구입니다.

 

우리는 욕구에 따라서 행위를 합니다.

욕구를 분석해 보면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먹고 싶다거나 자고 싶다거나 하는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가 있습니다.

이런 기본 욕구는 일정하게 충족되면 멈추는 성질이 있습니다.

배고프다고 밥을 열 그릇씩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 그릇을 먹으면 충분합니다.

잠을 열흘 동안 잘 수는 없잖아요.

몇 시간 자면 욕구는 끝이 납니다.

이런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시켜야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욕구는 개인적으로는 정당한 권리에 들어가고

사회적으로는 보장해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도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생존에 관계되는 식품, 약품, 식수 같은 것은

인종, 국가, 종교, 정치, 이념,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제공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상대적 욕구가 있습니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거나, 더 좋은 옷 입고 싶다거나,

더 좋은 차를 타고 싶다는 것이 바로 상대적 욕구입니다.

이런 상대적인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1억 원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만약 1천만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하고 같이 살 때는 내가 부자입니다.

그래서 만족이 됩니다.

그러나 10억 원을 가진 사람하고 같이 살면

갑자기 내가 가난해지고, 열등감이 생기게 되고,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멈추는 절제가 필요하고,

국가 사회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격차가 좁혀지도록

일정하게 조율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강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게 교

육 시스템이나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어야 합니다.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세금을 더 부과하고,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조금씩 균형을 잡아나가야

안정된 발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과욕이 있습니다.

술을 먹고 싶다고 많이 먹으면 나중에 괴롭잖아요.

과식도 건강을 해치고, 과로도 건강을 해치지 않습니까?

이렇게 과한 욕구는 멈춰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멈춰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금지해야 합니다.

과한 것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해악을 가져오기 때문에

마약을 금지하듯이 사회적으로 금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시민적인 평범한 삶에서

만족을 얻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물론 평범한 삶에 만족하면

도전 의욕이 없어지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어떤 이익을 추구하려고 했을 때는 맞는 말입니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게 작용하니까요.

하지만 인간이 어느 정도 공익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면

삶에 만족하는 것과는 별도로

공익을 위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공익적인 인간 정신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인간에게는 짐승 세계에도 없는 이타심의 현상이 나타날까요?

물론 짐승 세계에도 이타심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미가 자기 새끼를 보호할 때는 공익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인간은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타인과 다른 생명체까지도 자신을 희생해서 보호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정신작용은 때로는 애국심으로 때로는 애민심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결코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작용에 그런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생태적으로는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고 해서

어미가 새끼를 보호할 때 이런 작용이 나타나는데

인간에게는 타인을 향해서도 이런 정신작용이 나타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자비심이라고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이 가진 행동 양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작용이 커지게 되면

밥 한 끼, 옷 한 벌에 만족하며 검소하게 살면서도

공익을 위한 활동은 매우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적극성과 탐구 행위가 나타납니다.

 

그러니 개인적으로는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삶의 행복도를 높이시고,

회사 일을 할 때는 좀 더 공익적 관점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 적극성은 그대로 남게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