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85회) 의지하려는 연애

Buddhastudy 2011. 7. 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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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쪽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그죠? 그래서 결혼을 해야 뭐가 된다? 반쪽이 두 개 합해져서 온 쪽이 된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반쪽 하고 반쪽을 두 개 합하면 가운데 금이 있죠. 그죠? 그래서 모양은 온 쪽 같이 보여도 영원히 반쪽입니다. 그러다 한쪽이 떨어져 나가면 다시 또 뭐가 된다? 반쪽이 되죠? 그래서 완전한 행복에 이룰 수가 없다. 완전한 자유에 이룰 수가 없다. 그러니까 상대 없이 내가 완전해야 됩니다. 그래 다시 말하면 온달이 돼야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상대 온달하고 두 개가 이렇게 합해지면 겹쳐져서 어때요? 가운데 금이 없는 뭐가 된다? 하나가 되는 거요. 그러다가 하나가 죽든지 없어져도 또 고대로 온달이 되는 거요. 그래서 스스로 서야 됩니다. 스스로 서면 상대가 필요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상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꾸 기대감이 있죠. 그래서 부족해서 상대를 필요로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온전한 상태 하에서 상대와의 관계를 맺어야 된다.

 

그래야 그 관계에서 상대에게 도움을 주죠. 내가 완전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기대는 게 없기 때문에, 내가 상대에게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나를 저 사람이 약간, 내가 반쪽일 때 나를 약간 도와주기 때문에 내가 기대를 가지고 기대는, 그렇게 되면 나중에 살아보면 실망을 하게 되니까. 오히려 자신을 또 고통 속에 빠뜨리게 되죠.

 

지금처럼 이렇게 내가 힘들 때마다 사람을 찾는 것은 보편심리라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연애를 하면 우선 내가 힘들 때 나를 옆에서 그래도 좀 도와주고 이렇게 하려면 어떤 사람을 만나기가 쉬우냐? 연령차이가 나보다 좀 많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그리고 경제적으로 내가 힘들 때 도와주는 것도 연령차이가 있어야 되잖아. 그죠? 그래야 좀 경제력도 있고.

 

또 연령차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같이 막 대들고 싸우지는 않잖아. 그죠 내가 막 이렇게 해도 좀 이렇게 품어 줄 수가 있죠. 그러니까 연령차이가 좀 있는 남자, 그런 사람을 인연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더라도. 만약에 나이가 비슷하더라도 좀 그런 사람에게 자꾸 내가 끌리게 되는 거요. 의젓한 사람에게 끌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을 하든지 안 그러면 어쨌든 이렇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데 상대는 나를 그냥 힘들어 하니까 도와주기만 했는데 나는 괜히 좋아하는데 상대는 나를 또 안 좋아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이게 갈등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나보다 나이가 좀 많거나 안 그러면 나보다 의젓한 사람하고 만나놓으면 평생 의지하는 것도 있지만 평생 종살이를 해야 되요. 그런 사람 내말 잘 들을까? 안 들을까? 안 듣죠. 그러니까 내가 어려워 하니까 돌봐는 주지마는 진짜 진정한 대화는 안 돼요. 늘 이게 위계가 생긴다. 그래서 어릴 때는 보살펴 주는 게 좋아서 사귀었지만은 내가 점점점 크고 나이 들고 하면 이거 같이 대화를 하고 싶은데 영원히 같이 안돼요.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할 때는 내가 미리 각오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항상 남편에게 죽을 때까지 당신이 뭐라 그러든 하고 살겠습니다. 남편인 동시에 누구같이 생각한다? 아버지같이 생각한다. 친구이기를 포기해야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쪽은 딴 친구들 보고 친구도 같이 되려고 하면 여기 이제 갈등이 생긴다. 이거요. 그래서 제일 좋은 거는 내가 정진을 하고 수행을 해서 내가 좀 더 이렇게 남자 없이도 내가 좀 살 수 있는. 남자 없이 살 수 있으면 남자를 안구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완전한 사람끼리 또 서로 만나면 훨씬 관계가 부드러워 집니다. 결혼이 서로를 속박하지 않게 된다 이거야. 그런데 지금 우리의 결혼생활은 서로를 자꾸 속박해요. 그래서 결혼 생활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결혼 생활 때문에 정의로운 활동도 못하고, 결혼 생활 때문에 수행도 못하고, 결혼 생활 때문에 수련도 못가고.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이오. 그러니까 서로가 오히려 나 혼자 있으면 집을 비워놓고 못 가는데, 둘이 사니까 어때요? 한사람 집 봐주고 한 사람 갔다 올 수 있잖아. 그죠?

 

이게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관계인데. 협력 관계니까. 그런데 결혼이 서로를 속박한단 말이오. 그럼 그거는 결혼생활이 출발이 잘못됐기 때문에 이렇게 한평생 서로 속박 받고 사는 거요. 그래서 중간에 자꾸 또 탈출하고 싶은 거요. 집을 뛰쳐나오고 싶어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지금 외로워서 만나면 이제 같이 살면 속박이 되니까. 뭘 느끼냐? 귀찮게 느껴지는 거요. 그래서 헤어지고 싶다. 그래서 같이 사는 게 귀찮아서 헤어지면 다시 또 외로워지는 거요. 그럼 또 사람을 찾게 되고. 또 찾아가 살면 또 귀찮아 지고. 그래서 방황한다는 거요.

 

그래서 그런 성질을 알아야 되. 우리 마음이 그렇게 작용한다. 이건 잘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그렇게 작용하는 성질을 알고 대응하면 된다. 기대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거기 빠지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기대로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거는 지금 내가 일어나지 마라 한다고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건 무의식적으로, 마음에서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걸 내가 뭐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이런 마음이 일어나구나. 그러나 이런 마음을 따라가면 어때요? 결국은 나를 속박하게 된다. 나를 속박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속박을 그렇게 따라갈 때는 내가 속박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거를. 그런데 속박을 받으면 또 자유를 원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꾸 방황하게 되는 거죠. 어떤 선택을 할 때 이 선택을 하면 이런 일이 있을 거다 라는 걸 내가 과보를 받아야 된다는 거요. 그래서 그 속박 받는 게 뭐 나빠요? 남편한테 속박 받는 거 좋은 일이죠? 그래 뭐 결혼하면 평생 속박 받고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을 해버리면 되.

 

집이라는 것의 성격이 그래요. 집은 안온하게 보살펴 주죠. 보호해 주죠. 대신 집은 뭐에요? 감옥 아니에요? 그죠? 고향도 그래요. 보호 해 주는 대신에 뭐다? 감옥이에요. 부모라는 것도 뭐요? 보살펴 주는 대신에 잔소리꾼 아닙니까? 그죠? 감옥이에요. 이거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는 거요. 그래서 감옥이 싫어서 집을 뛰쳐나갔다. 그럼 나그네잖아. 외롭잖아. 그죠? 그럼 또 고향을 찾아오는 거요. 고향에 오면 또 온갖 사람, 집에 오면 부모, 형제, 일가친척, 동네사람 눈 살펴야 되잖아요. 그 뭐 눈치보고 살아야 되잖아. 그럼 또 뛰쳐나가죠. 뛰쳐나가면 또 외롭죠. 나그네니까. 그럼 또 돌아오고.

 

이게 우리 인생의 방황이란 말이오. 이게 혼자 있으면 외롭고, 둘이 있으면 귀찮고.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에요. 그러니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야 하고, 둘이 있어도 귀찮지 않아야 하는데. 온전한 틀이 되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둘이 있어도 귀찮지가 않게 된다. 왜 둘이 있으면 귀찮지 않게 되나? 상대에게 바라는 게 없으니까 귀찮을 일이 없잖아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것은 뭐 누구한테 바랄 거 없으니 역시 혼자 있어도 뭐 부족함이 없다. 이런 얘기요. ~ 그러면 앞으로 혼자 있으면 부족함이 없으니까 혼자 살면 됩니까? 혼자 살아도 되고 같이 살아도 되고. 그러니까 선택이 자유롭다는 거요. 그런데 혼자 살거나 같이 살거나 둘 중에 하나를 해야 되는 거, 중간 수. 그 다음에 하수는 혼자도 못살고 둘이도 못사는 사람, 이 대다수 사람이오.

 

그래서 현재는 자기는 기대는 성격이 있다면 내가 약간 속박을 받는 것을 내가 자초한다. 이대로 따라가면. 그래서 그 까르마대로 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외로울 때일수록 사람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지 말고, 내 스스로, 이 외로움이라는 게 어디서부터 오느냐? 결국 내가 마음을 닫을 때 외로워집니다. 내가 내 마음을 닫을 때 외로워지는 거요. 그건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지는 게 아니에요. 그걸 알아차려서 스스로 외로움에서 벗어나 버리면 외롭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는 건 아니라는 거요.

 

내가 돈이 없어서 돈 있는 남자를 구하고, 내가 외로워서 위로해 줄 사람을 구하고. 이건 어쨌든 내 이기심 아닙니까? 그죠? 이기적으로 만나면 반드시 뭐다? 과보를 받게 되요. 어쩌면 이게 인생살이인지도 모르죠. 과보를 각오해야 되는데. 그 과보가 따르는 줄을 모른다는 거요. 그러면 이제 여기에 복잡해. 내가 상대가 이래저래 따져서 좋아서 결혼을 했으면 상대도 내가 상대를 보는 만큼 상대도 나를 볼까? 안볼까요? 보겠죠.

 

~내가 남자를 사귀면서도 좋다고 하면서도 저게 앞으로 저게 장래가 어떨까? 저게 건강은 어떨까? 저게 나만 볼까? 이런 거 속으로 좀 이렇게 이렇게 헤아려요? 안 헤아려요? 그러면 상대도 그걸 헤아릴까? 안 헤아릴까? 헤아리겠죠. 당연히. 내 기대가 있으면 상대도 기대가 있는 거요. 그런데 막상 결혼해 살아보면 내 기대가 무너지듯이 상대기대도 무너지는 거요. 한쪽만 그런 게 아니에요. 양쪽이 다 그래.

 

그러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이해. 내 기대를 갖고 있는 것만 버리라는 게 아니라. 상대가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서, 상대가 실망할 때 실망할 만 하다라는 걸 내가 인정하고 그걸 받아들여 주면 좋죠. 또 내가 상대에 대해서 실망할 때 이게 상대 문제가 아니라. 내 기대가 높았다는 걸 내가 어느 정도 자각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 쉽겠지. 조금 정진을 하면 좋겠는데.

 

좋은 남편 만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 정진을 해 나가면 이렇게 스스로 서는 힘이 생기죠. ~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