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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25_3.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화를 자주 냅니다

Buddhastudy 2017. 11. 15. 21:19


내가 볼 때 답을 알고 오신 분이에요. 답을 알고 답을 실천하고 싶은데 실천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겠죠. 이 분은 이미 알고 있어요. 내가 잔소리라고 하는 것을. 그런데 우리가 잔소리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자체는 성격적 부분도 있을 거구요, 욕심이 많아도 있을 수 있어요. 내 자식을 정말 남의 아이보다는 좀 경쟁에서 앞서가는 아이로 기르고 싶다.

 

그런데 저는 생각할 때 그래요.

인생이 성공이 뭘까요?

과연 성공이라는 것은 있을까요?

인생은 순간순간이 소중한 겁니다.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만이 만족을 알고,

만족을 알고 사는 사람만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여러분, 등산을 하시지 않습니까? 등산하는 과정이 산꼭대기 올라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에요. 그 과정 과정이 즐거워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한 발짝 두 발짝 주변 환경을 봐가면서 그렇게 가는 과정이 그 여정이 행복한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게 보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요.

난 열매만 따겠다는 생각만 갖고 사는 사람들은

삶을 포기해버린 사람이나 마찬가지죠.

 

남편에게 잔소리하고,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그냥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가고, 우리 아이가 좋은 학교만 가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가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하는 과정이

행복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기 보다는

그냥 행복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죠? 행복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흔히 보면 곤충은 서서 다니지 않고 기어 다니지 않습니까? 곤충이 바라다보는 세상은 둥글까요? 높이가 있을까요? 아니오. 그 곤충에게는 이 세상은 평면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우리 사람은 직립보행을 하다보니까 높은 곳도 있고 낮은 곳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기어 다니는 곤충에게는요, 직립보행을 하는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세상이 다 평평한 줄만 알아요.

 

아이는 아직 크지 않았어요.

평면에 가까운 안목을 갖고 있는 아이에게

저 우주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아이에게 잔소리 밖에 안 되는 거겠죠.

 

아이 수준에 맞춰서 세상을 소통할 필요가 있는 거죠. 정말 전 여러분, 이런 얘기를 한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부모가 산부인과 가서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리고 수년을 기르고 난 이후에 비로소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죠. 한 아이는 가난하게 컸고, 하나는 부자로 컸습니다. 그런데 그 나중에 부잣집에서 아이를 찾아가는 사람이, 부잣집에서 내 아이를 이렇게 멋지게 길렀으니까 거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해 달라. 그래서 가난한 집으로 아이를 보내면서 손해배상 청구를 하죠.

 

그런데 판사가 뭐라고 이야기 하냐 하면 이유 없다고 기각을 해버립니다. 왜 이유가 없냐하면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서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 부분도 있지만, 그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라는 부분만큼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아이는 이미 성공이라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죠. 그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눈 맞추고 부모와 행복해 가는 과정까지를 우리는 행복이라고 봐야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대화가 필요하겠죠. 소통이 필요하겠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부분이 필요하겠죠. 그런 과정 과정 하나하나가 행복이 되어야 되는 거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성공의 방향으로 갔을 때 그는 영원한 행복은 맛볼 수 있겠으나, 목표 지향적 삶을 추구하다보면 결코 행복은 없어져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은 뭐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그 아이가 철이 나고 난 이후에 내가 너를 이렇게 기르려고 그렇게 했던 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부분이죠.

 

저 분재를 기를 때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철사를 감아서 분재를 만들지 않습니까? 그것은 가공되어진 분재는 결코 사람은 행복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그 나무 자체는 불행한 나무 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어찌 내 자식을 나의 맞는 분재처럼 기르려고 합니까? 그 아이는 그 아이 나름대로의 인격이 있고, 그 아이 나름대로의 품성이 있고, 그 아이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은 다릅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그렇다.”라고 하는 그 이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애써야 됩니다.

 

아이가 진정 무엇을 행복해 하는가? 아이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 일이 정말, 일을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닌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아이를 길렀을 때, 그것이 행복을 나눠주는 부모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잔소리 하는 부모이기보다는 아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부모,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경험, 그 경험을 통해서 아이의 미래를 찾아갈 수 있게 하는 부모역할 할 수 있는 것이 훌륭한 부모가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