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9)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4.4(목)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Buddhastudy 2019. 4. 5. 19:17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노회찬.

한 사람에 대해 그것도 그의 사후에...

세 번의 앵커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은 이보다 며칠 전에 그의 죽음에 대한 누군가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을 때 했어야 했으나

당시는 선거전이 한창이었고, 저의 앵커브리핑이 선거전에 연루되는 것을 피해야 했으므로

선거가 끝난 오늘에야 내놓게 되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학교에서 몇 푼거리 안 되는 지식을 팔고 있던 시절에 저는 그를 두어 번 저의 수업시간에 초대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저도 요령을 부리느라 그를 불러 저의 하루 치 수업 준비에 들어가는 노동을 줄여보겠다는 심산도 없지 않았지요.

 

저의 얕은 생각을 몰랐을 리 없었겠지만,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주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까지 그는 저의 강의실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그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노 의원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노회찬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정치인 노회찬은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인 노회찬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등진 직후에 전해드렸던 앵커브리핑에서 저는 그와의 몇 가지 인연을 말씀드렸습니다.

가령 그의 첫 텔레비전 토론과 마지막 인터뷰의 진행자가 저였다는 것 등등...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인연이라기보다는 그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을 터이고...

그런 몇 가지의 일화들을 엮어내는 것만으로 그가 가졌던 현실정치의 고민마저 다 알아채고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란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고, 그 답을 희미하게 찾아내 가다가...

결국은 또 다른 세파에 떠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논란이 된 그 발언은 나왔습니다.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

 

거리낌없이 던져놓은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워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에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