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Can I Be Happy While Being Aware? -Ven. Pomnyun’s Dharma Q&A

Buddhastudy 2019. 12. 25. 21:58


Ven. Pomnyun's Answer to " Can I Be Happy While Being Aware? ”

Selection from a Dharma Q&A session at Bethesda Chevy Chase Regional Service Center in Washington D.C. (September 18, 2019)

 

Questioner (Q): Hello Sunim. Nice to see you again. I’ve always been a curious person ever since I was a little boy. For example, when there was an ant’s nest, I would watch to see where the ants are going, where they’re getting their food and the trails they make.

Now in English speaking cultures, there’s a saying ignorance is bliss. Actually I’ve found curiosity to be one of the more positive factors in my life. It doesn’t seem like ignorance is bliss, is one of the approaches of the Jungto Society. For example, I’ve seen you give talks with a podium like this where it says Happiness school in Korean, and then later on we see a video about some three minute clip or so about some starving children in North Korea or a bird dying full of plastic. So is it possible for me to become happy without losing the awareness of those things that are happening in the world?OK. (Laughs) It’s something that I hope is true, but I don’t know if I can have blind faith that it is true.

 

제목 : 알아차리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여기 가난한 아이가 한 명 있다.

보니까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도우면 됩니다.

그런데 두 명 있다.

그럼 두 명을 도우면 됩니다.

100명 있다.

나는 5명밖에 도울 능력이 안 된다.

그럼 5명 도우면 됩니다.

그러면 95명은 어떻게 하느냐?

그걸 갖고 집에 와서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감정 낭비에요.

괴로워한다고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자기감정의 만족일 뿐입니다.

괴로워하는 시간에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모금해서 5명을 더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하지 내가 괴로워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됩니까? 그들에게...

나한테는 괴로움이고, 다른 이에게는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합니까?

 

만약에 자연환경이 파괴된다고 생각한다면, 괴로워한다고 개선되는 건 아니잖아요.

개선하는 데 있어서 내가 일회용 하나라도 안 버리는 실천이 중요하죠.

다른 사람에게 캠페인을 벌이는 게 중요하죠.

그렇게 해서 개선이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는 그거라도 할 수 있다는 거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걱정만 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도움이 돼요?

 

호기심은 매우 좋은 겁니다.

인간의 정신 작용 중에 최고로 고급적인 정신 작용이 자각증상입니다.

스스로 알아차리는 거.

이것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 자기 변화.

 

두 번째로 중요한 정신작용이 탐구작용입니다.

궁금해하는 것.

왜 그렇지?’ 이것이 연구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원천입니다.

 

우리가 창조력, 창의력 하는 것은 탐구에서 생깁니다.

부처님도 어린 시절에 이런 탐구를 하는 자세였습니다.

 

새가 벌레를 쪼아먹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가 죽지?’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둘 다 같이 사는 길은 없을까?’

 

그래서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답을 못해요.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이기느냐의 답만 있지, 살아남느냐의 답만 있지

어떻게 하면 같이 사느냐는 전해 생각도 안 해봤고 몰랐습니다.

 

아버지한테 물어봤어요.

아버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는 궁금했어요.

결국, 그것이 진리를 찾아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젠불교에서는

이 뭐꼬?’ ‘이것이 무엇이지?’ 이 화두가 제일 중요한 거요.

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우린 그냥 , 하지, ‘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지는 규명을 하지 않습니다.

우린 괴로워만 하지 왜 괴롭지?’ 이렇게 탐구하지 않습니다.

 

결혼 20년 생활에서 남편이 갑자기 바람을 피웠다고 합시다.

분노만 합니다.

왜 갑자기 남편이 딴 여자 생각이 났을까? 궁금 안 해요?

저 같으면 연구를 엄청나게 할 것 같아요.

어떻게 심리가 그렇게 바뀌었을까?

저는 노트 갖고 상대편 여자도 인터뷰할 거 같아요.

이렇게 탐구를 해서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붓다가 가르친 진리를 사성제(四聖諦- , , , ) 4가지의 진리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가 괴로움이다. 하는 겁니다.

, 현실이 어떤가, 실제가 어떤가 하는 겁니다/ ()

두 번째가 왜 괴로운가, 원인이 뭔가 하는 겁니다/ ()

세 번째는 이건 없앨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

네 번째는 그럼 어떻게 하면 없애는가/ ()

 

이런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 부디스트입니다.

믿음은 불교가 아니에요.

불교는 탐구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제일 궁금했던 게 점쟁이 할머니가 점을 쳐서 1년 운수를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동전을 이렇게 돌려서 쉬익~ 착 던져서, 올해는 어떻고저떻고 하는데 너무너무 궁금했어요.

할머니는 내가 묻는데 대답은 안 하고 야단만 쳤어요.

 

그다음에 무당도 참 신기했어요.

동네에 소를 잃어버렸을 때, 굿을 해서 그 범인을 잡습니다.

그러면서 막 북을 치고 굿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전부 와서 대나무를 손으로 잡아보게 합니다.

그런데 범인은 대나무를 잡으면 손을 덜덜덜덜 떱니다.

그럼 범인이에요.

저는 어릴 때 너무 신기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거짓말 탐지기와 원리가 똑같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갔어요.

교회에 다녔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목사가 자꾸 예수님은 처녀에서 태어났다자꾸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어떻게 처녀가 애를 낳을 수 있습니까?” 저보고

너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어리지만 이해가 안 되었어요.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뭐가 죄가 된다고 지옥 가나...’

그래서 교회 가는 것이 조금씩 적어지다 멈추었습니다.

 

중학교 갔는데 제 친구가 자꾸 절에 가자는 거에요.

난 템플에는 할머니들이나 다니지 애들은 안 다녀요.

그래서 애들이 왜 절에 가냐?”

, 요새 불교학생회라는 게 있어서 가서 공부 배운다고 가자는 거요.

그래서 따라가 봤어요.

그때 스님이 강의하는데,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탁 섰다는 거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스님, 그런 사람 본 적있냐...

못 봤다는 거요.

그런데 보지도 않고 그런 걸 얘기하면 어떻게 하냐?

어떻게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설 수가 있느냐?” 그러니까 그 분이

그러니까 부처지이러는 거요.

 

그때 제가 또 의문이 들었어요.

그 스님이 조금 전에 법문할 때, ‘누구든지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지금 물으니까 태어날 때 서야 부처라는 거요.

난 태어날 때 못 섰어. 그럼 난 부처가 못 된다는 거 아니오.

그러니 앞뒤 안 맞지 않느냐?

그 스님은 대답을 못 했어요.

그러나 지옥 간다는 소리는 안 했어요. 하하하.

 

그런데 어느 날, 소가 새끼 낳는 것을 봤습니다.

, 그런데 새끼가 나자마자 섰어요.

너무 신기했습니다.

어 저거 봐 낳자마자 서지 않냐.

어떻게 서지?

관찰을 해봤어요.

 

, 그런데 어미가 서서 새끼를 낳았어요.

, 엄마가 서서 새끼를 낳으면 새끼도 서구나

그런데 부처님 엄마는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낳았어요.

, 그래서 섰을 수도 있겠다.

제가 만약에 여자였다면, 아마 열 번은 실험을 해 봤을 거예요. 하하하.

 

이거 좋은 거예요.

저는 그래서 과학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종교인들의 얘기는 너무나 허황했습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이야기.

뭐 죽은 뒤의 이야기.

 

그래서 저는 종교를 싫어했습니다.

제가 이 종교인이 될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 안 했습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종교인이 되어 버렸어요.

그런데 이것도 할만해요. 하하하.

 

그러니까 제가 불교를 하게 된 것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탐구 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자가 아까 개미 얘기를 했는데 저는 개미만 연구한 게 아니에요.

저는 구더기도 연구했어요.

 

시골에 재래식 화장실이었어요.

거기 앉아서 보면 구더기가 막 기어 올라옵니다.

그 웅덩이에서 기어 올라오다 떨어지고 기어 올라오다 떨어지고 그래요.

그런데 너무 애써서 올라오다 떨어지고 올라오다 떨어지고 하는 것이 어린 마음에 안됐어요.

그래서 채를 가지고 와서 구더기를 건졌어요.

깨끗한 그릇에 담아 놨습니다.

그랬더니 다 기어 나와서 변소로 도로 들어갔어요.

 

그때 굉장한 의문이 생겼어요.

왜 깨끗한 곳을 두고 저곳으로 도로 들어갈까?’

, 깨끗한 것을 원한다는 건 내 생각이었구나

구더기는 변소가 자기 집이구나

 

그때 저는 천국에 대해서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는 천국 가고 싶지마는

어쩌면 천국에 갖다 놓아도 술집도 없고 노래방도 없고...

재미없다고 구더기처럼 기어 나오는 게 굉장히 많겠다.

무엇이 천국일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거요.

 

이것이 진리를 탐구하는데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그런 탐구적인 자세는 좋다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렇게... 대화를 하는 거요.

 

정말 훌륭한 목사님이라면, ‘신은 없다이렇게 누가 주장을 하면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 그걸 갖고 대화를 한번 해보자이렇게 접근해야 합니다.

 

(땡큐~ 스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