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행동을 말을 이렇게 한번 바꿔 봐요. 내 어머니도 돌보지 못하는게 남의 부모를 돌본다. 제 부모는 돌보지 못할지언정, 남의 부모라도 돌본다. 그러니까 내가 노인잔치에 가서 노인들 돌보지 않으면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보느냐? 이걸 자기가 생각해 봐야 된다.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을 빼가지고 다른 노인을 돌보는가?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어머니를 돌보지 않는 시간을 내가 다른 노인을 돌보는가? 어느 쪽이에요? 본인은.
네. 그러면 내부모만 돌보고, 남의 부모라고 돌보지 않는다. 하나. 내 부모도 돌보지만은 때때로 시간을 내서 남의 부모도 돌본다. 그러면 어느 게 더 좋아요? 그러니까 이런 게 다 생각 나름이라 그래요.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느냐? 이거야. 그러니까 제부모는 완전히 팽게쳐버리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남의 부모를 돌보러 다는 척 한다. 이러면 위선이라고 말합니다. 제 부모를 돌봐야 할 일이 꼭 이 사람아니면 돌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인데도 팽게치고. 안 그러면 집에 있는 자기 부모를 팽게치고. 바깥부모를 돌보는 이유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하면 이럴 때 위선이라 그래요. 그러나 제부모를 자기가 일주일에 한번이면 일주일에 한번 돌보기로 정기적으로 형제간에 회의해서 내가 일주일에 한번 돌본다. 한 달에 한번 돌본다. 이렇게 해서 돌보고 있잖아. 그죠? 남은 시간 내가 차도마시고, 친구도 만나고 살아야 될 거 아니오. 그죠? 그런데 내부모 아니지만 딴 부모가 어려움에 처해있다 하니까, 내가 스케줄을 조정해서 돌본다 할 때는 그날 내 부모를 돌보지 못한다고 해서 이게 나쁜 일이 아니고, 위선이 아니고, 내가 다른 부모도 시간을 내서 돌본다.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본인이 그거는 자격지심을 느끼는 거는 정말 제 부모는 돌봐달라고 형제들이 아우성을 하는데도 안 돌보고 지금 남의 부모 돌보러 다니는 그런 사람이라면 약간 위선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게 아니라 부모는 주말이면 주말, 매월이면 매월, 정기적으로 돌보게 정해져있겠죠. 그죠? 대강. 딱 안정해도. 그러나 이거는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일 아니오. 애강원 장애자를 돌본다. 독거노인을 돌본다. 이런 거는 일 년에 두서너차례. 정기적인 것도 아니고, 비정기적으로 하는 거기 때문에. 그것은 덧붙여서 좋은일이라고 보는게 낫지.
또 그런 노인들을 돌보면서 내가 시간을 좀 더 내가지고 어때요? 내 부모를 더 돌봐야 되겠구나. 이런 또 마음을 낸다면 이 일로 인해서 제 부모를 돌보는 마음을 조금 더 냈으니까 좋은 일이오? 나쁜 일이오? 좋은 일이지. 이렇게 받아들여야 된다. 자기 부모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부모를 돌보라고 부처님이 가르치고. 제 부모라고만, 제 부모만 돌본다. 남의 부모는 돌보지 않는다. 그러면 부처님이 뭐라 그럴까?
네 부모만 돌보지 말고, 남의 부모도 좀 돌봐라. 이렇게 가르쳐요. 의미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돌보는데 내가 돌본다. 내가 너희들을 돌봐준다. 하는 걸로 인해서 힘들어 한다. 햐~ 나는 이래 돌봐주는데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이렇게 힘들어 하면 부처님께서 뭐라 그러실까? 네가 돌본다고 해도 너가 사실은 한사람도 돌보는 사람이 없다. 그거 다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게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거다? 너를 위해서 하는거다. 이렇게 가르쳐.
왜 그럴까? 그 말은 돌보지 마라는 얘기가 아니라.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돌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돌보는 것은 돌보지 않는 것보다도 못하다. 이렇게 말할 때도 있다. 이럴때는 돌봐라 돌보지마라 이게 핵심이 아니고 요점은 뭐다? 돌보는 사람의 마음. 괴로워하는 이 마음을 치유한다. 이 말이오. 그래서 법문을 잘못 들으면 안돼요. 그래 경전에 세 케이스가 있어요. 탕녀옥야 거기는 이 여자가 인물이 잘나고 부잣집 딸이라고 결혼을 해서 남편을 잘 안돌봐요. 공손하지가 못해. 아주 불손해.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 옥야에게 아내의 종류. 종 같은 아내, 누이 같은 아내, 어머니 같은 아내, 독사 같은 아내, 살인자 같은 아내. 아내의 종류에 대해서 쭉~ 얘기를 해. 자기가 딱 들어보니까 굉장히 나쁜 아내야. 그래서 깨우쳐서 남편을 잘 받들도록, 그렇게 깨우쳐 줬단 말이에요. 그 다음에 또 어떤 경우가 있냐? 내 남편만 돌보고, 내 자식만 돌보고, 남의 자식은 신경도 안 써. 요즘 말하면 자기 가족밖에 몰라.
그럼 부처님이 뭐라 그럴까? 내 자식이 아니라도 남의 자식이 어려우면 돌보고, 내 남편이 아니라도 세상 사람에 대해서, 내 집이 아니라도,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라. 이렇게 가르친단 말이오. 또 승만 부인같이 오직 전 삶이 보디사트바로, 중생을 돕는 일만해. 그럴 때는 금강경에 나오듯이 어때요? 내가 일체중생을 구제하되. 사실은 한 중생도 구제한바가 없다. 왜냐하면 아상인상중생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니라.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또 불교에서는 이 탕녀 옥야를 깨우친 그것만 가지고 여자들에게, 남자에게 잘해라. 잘해라. 잘해라. 자꾸 이렇게 가르치니까. 고것만 보면 부처님이 여자는 누구한테 잘해라? 남자한테 잘해라. 그러니까 불교는 여성차별적인 가르침이다. 이렇게 이해한다. 이 말이오. 스님 법문도 쭉~하는데 주로 여성들이 질문이 많고, 남편 미워해서,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고 이러니까. 누구를 위해서 법문해요? 남편을 위해서 법문해요? 지금 아내를 위해서 법문해요? 그건 알아요? 내 법문이 여러분을 위해서 한다는 거 알아요?
그래도 들으면 주로 남편한테 참회해라. 이렇게 하니까. 이거를 현장에서 듣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괴로움이 벗어나고 행복을 얻는데. 이걸 분석하는 사람이 볼 때는 어때요? 쭉~ 분류를 해보니까 전부 여자가 뭐해라? 남자한테 잘해라 잘해라 잘해라 있으니, 아~ 불교는 무조건 여자는 남자한테 잘해야 되는구나. 남자가 술 먹었다해도. 그래도 잘못했다 그래라. 바람피웠다해도 그것도 잘못했다 그래라. 그러니까 여자는 그저 그냥 고개 숙이고 지내라는 얘기구나. 이렇게 얘기한다면 이건 맞지가 않다.
그래서 늘 얘기하잖아요. 서울 가는 길을 물을 때 인천사람은 동쪽으로 가라 그러고. 춘천사람은 서쪽으로 가라 그런다. 서울이 동쪽에 있어서 동쪽으로 가라는게 아니다. 이거요. 그의 조건과 처지에 따라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길을 말해준다. 이거요. 그러니까 본인이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할 때, 그거는 본인이 돌아봐야 되. 아~ 내가 내 부모를 모시지 않고 있구나하면 이걸 통해서 반성이 됐나? 안됐나? 반성이 됐으면,
이거 안했으면 자기 부모 안 모시면서도 자기가 잘못한지도 몰랐잖아. 그지? 그럼 이건 잘한 거요? 잘못한 거요? 잘한 거지. 이걸 통해서 깨우쳤잖아. 또 내가 내 부모만 모신게 아니고, 내 부모를 모신 가운데 남의 부모도 가끔 돌봐주니까 이것도 우리가 보면 잘한 일이오? 잘못한 일이오? 잘한 일이지. 두 번째 단계로 잘한 일 아니오. 그죠? 딱 자기 부모라고 고것만 딱 끝내는 게 아니라, 이렇게 틈틈이 남의 부모도 돌보니 이것도 잘한 일이다. 자~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3회 마흔두 살에 아이를 낳고 싶어요. (0) | 2011.12.02 |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2회 아들이 외로워 보여요. (0) | 2011.12.01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0회 교사 임용시험 (0) | 2011.11.29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29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싶어요. (0) | 2011.11.28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28회 가난해진 집안 형편 (0) | 2011.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