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5)

[법륜스님 즉문즉설 1125회] 길에 난 풀처럼 산다는 것의 의미

Buddhastudy 2015. 10. 8. 21:23

 

 

 

괜찮아. 두 번째 거부터 먼저 얘기하면 자연스러움이오. 원래 그래서 사촌 논사면 배 아프다 이런 말이 있잖아.

그러니까 배 아프다잖아. 자기는 괜찮아. 보통 사람은 배가 아파. 자기는 조금 덜 축하가 되지. 배 아픈 게 정상이야.

안 되는 거 없어. 마음이 그렇게 일어나는 걸 어떻게. 그건 잘못된 게 아니고, “, 마음이 그렇게 일어나구나.” 이렇게 보면 돼. 그냥 놔 둬.

어이구 잘 안나.

 

그러니까 그거는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마. 이 마음이라는 거는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거는 내가 생각으로는 그게 옳지 않아. 그런데도 그렇게 일어나. 건강에 좋은 거는 뭐요? 생각을 해보면 이게 더 건강에 좋다하지만, 그게 맛있나? 맛없냐는 거는 건강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요. 어릴 때부터 입맛에 많이 든 거는 맛있고, 안 먹어 본거는 맛이 없고. 그런데 맛있다고 꼭 건강에 좋은 거? 아니고, 맛있는데 건강에 나쁜 것도 굉장히 많아.

 

그런데 맛없는데도 건강에 좋은 게 있어. 여북하면 옛날에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이런 말이 있잖아. 그죠? 그런데, 마음은 그렇게 일어나. 마음은 약간 배가 아파. 그러나 배가 아프구나. 사촌이 논사니 내 배가 좀 아프네. 이렇게 그냥 받아들여. 이건 나쁘다 좋다하고 따지지 말고. 그러니까 진짜 배 아파서 행동을 그렇게 하면 문제가 있는 사람이죠. 질투심이 있는 사람이라 그러고, “, 내 속에 질투심이 좀 일어나네.” 이렇게 그냥 인정하고 거기 끌려가지는 마란 말이야.

 

, 지금 자기가 하듯이 , 가까운 사람들은 조금 덜 기쁘네.” 이렇게 알아차리면 돼. 고거 알아차리는 거 굉장한 거요. 잘 알았어요. 그 정도만 하지 그런 나를 자책도 하지 말고, 그렇게 큰 개선해야 될 그런 건 아니오. 다만 거기에 빠지면 조금 사람이 좀 쫀쫀해지지. 그러니까 빠지지만 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걸 자기가 알아차리고, “, 이렇게 중생심이 이거구나. 이래서 중생심이라 하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 되지. 자기가 아직 부처 아니잖아.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인정해야 돼.

 

괜찮아. 그런데 이런 거 하고 달라요. 예를 들면 친구하고 둘이 같이 있는데, 예를 들면 시험에 얘가 합격하면 내가 못하고, 내가 못하면 얘가 하고 이렇게 되잖아. 그죠? 이런 약간의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 세상이라는 게 보이지 않게, 형제간에도 경쟁관계에 있어. ? 형이 공부를 잘하고 내가 조금 못하면 부모가 늘 뭐라고 그런다? “형 좀 본받아라.” 이러면 나한테 피해가 오잖아. 그래서 가까이 있는 게 누가 잘하면 나한테 도움이 안 돼. 이해관계가 늘 걸려있어. 아무리 친해도.

 

그러니까 부부지간에도 남편이 잘나면 나한테 좋은 면도 있지만, 꼭 좋은 면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어디가면 꼭 어떤 남편의 아내로 소개돼. 지가 조금 잘나면 제 이름에 우리 남편이다. 이렇게 소개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인간사회에는 약간의 경쟁관계가 항상 놓여져 있어. 그런데 내가 결혼해서 둘이 행복하게 사는 거 있잖아. 그죠?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딴 부부도 행복하게 살 때는 이미 경쟁관계에 놓이지가 않아.

 

그러니까 경쟁관계에 놓이지 않는 거는 그렇게 기분나빠할 필요가 없어. 예를 들면 설악산에 가보니 너무 좋더라. 이것도 사실은 경쟁관계에 놓여. ? 좋다고 사람이 많이 몰려오면 내가 한가하게 구경하기 어렵잖아. 그지? 그런 거 말 안 해도 괜찮아. 그런데 예를 들면 스님의 법문을 듣고 좋아지는 거는, 이 사람들이 좋아질수록 부부관계가 좋아질수록 자녀교육이 좋아질수록 어떠냐? 내가 이게 공부를 잘하라고 가르치는 교육이면, 저 집 애가 공부 잘하면 우리애가 처진다. 이런 게 있을 수 있는데.

 

여기는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펴서 정신적인 질환이 안 되도록 마음이 편하도록 해놓으라고 하기 때문에 이런 아이가 자꾸 생기면 우리 아이도 학교 친구 삼기 좋아지고, 이웃집이 부부관계가 화목하면 사회전체가 좋아지잖아. 그지? 사회전체가 좋아지면 나한테도 뭐가 된다? 득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스님의 법문을 들어서 이게 예를 들면, 꼭 불교를 발전시키겠다. 이러면 기독교인들이 약간 경쟁해도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아갈 거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경쟁관계로 되지는 않아.

 

물론 일부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해.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경쟁관계는 아니야. 이모든 가르침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는 오히려 선물을 많이 해주는 게 좋아. 상대가 행복하게 사는 게 나한테 아무런 손해가 안 돼.

 

그런데 내가 돈에 욕심이 있으면 내가 돈에 집착을 하면, 심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한번 보세요.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 이런 집착이 있으면 나보다 돈 많은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약간 꿀려요? 안 꿀려요? 꿀리지. 비굴해져. 나보다 돈이 없는 사람에겐 내가 괜히 목에 힘을 줘요? 안 줘요? 줘요. 그래서 교만해져. 내가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을 하면 나보다 지위 높은 사람한테는 비굴하게 대하고, 나보다 아랫사람에게는 괜히 목에 힘을 주고 이렇게 돼.

 

그래서 이 경계에 내가 비굴해졌다가 교만해졌다가 이렇게 자꾸 끌려 다니게 돼. 그런데 내가 돈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돈에 대해서 별로 큰 가치를 안주면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돈에 그렇게 집착을 안 하면 어떠냐? 나보다 돈이 좀 많다하면 나하고 별로 이해관계가 없어. 비굴할 것도 없고, 나보다 돈이 좀 없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 교만할 아무런 이유도 없잖아. 그죠? 내가 지위에 대해서 별로 뭐, 지위가 높든 낮든 이런 거에 대해서 별로 집착을 안 하면 나보다 지위가 저금 높다고 그래서 내가 그 사람한테 눈치 봐야 될 이유도 없고, 나보다 지위가 조금 낮다고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깔아뭉갤 이유도 전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집착을 놓아버리면 어떠냐? 경계에 안 흔들리게 돼. 기복이 없어져. 그러니까 누가 주인이 된다? 내가 주인이 돼. 내가 지위에 집착하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를 머리를 굴려야 되고, 거기에 따라 내가 도 비굴해졌다가 교만해졌다가 이렇게 되는데, 내가 지위에 대해서 그냥 하나의 지위로만 보면, 그 사람이 높든지 낮든지 그거 알아보려고 머리도 안 굴리고, 또 높다고 소개되든, 낮다고 소개되든 대하는 게 똑같으니까 결국은 누가 주인이 된다? 내가 주인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남한테 내가 잘 보이려고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렇게 늘 눈치를 봐야 되니까, 내가 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거요. 끌려 다니는 거요. 그러니까 길옆의 한포기 풀이라는 거는 잘난 채도 안하고 못난 채도 안하고, 다른 사람이 쳐다봐주든 안쳐다 봐주든 신경도 안 쓰기 때문에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가 주인이 된다. 그러니까 부처가 된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우리가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별로 신경을 안 써. 우리는 욕하면 화가 나고, 칭찬하면 또 들뜨고 이러잖아.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데 별로 신경 안 써. 여러분들이 막 환오를 하면 저 사람들이 좋은가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막 욕을 하면 저 사람 지금 기분 나쁜가 보다.” 그냥 이렇게 생각해. 그런데 우리는 칭찬하면 내가 잘난 줄 알고, 비난하면 기분 나빠지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한포기 풀처럼 못 되는 거요. 여러분들은 잘나고 싶기 때문에 못난이가 된다는 거요. 잘나고 싶은 생각을 놓아버리면 진짜 잘난 인간이 된다.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이런 뜻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