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를 정말 버릴 건가요?
물건들이 화를 내며 나자빠졌다.”
지난 2008년 작가 김영하는 낯선 장소로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안정되었으나 정체된 삶 속에서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을 내 놓고, 먼지 쌓인 책을 정리하고 잠자고 있던 옷가지를 버리는 작업은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이걸 다시 쓸 일이 있을까? 자문했다가
나중에는 이게 없으면 못살까? 질문하며 버리고 또 버리고 나니
남은 짐은 고작 라면상자로 몇 개 분량.
그는 제대로 버려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이삿짐을 꾸린 사람들
그들 역시 많은 것을 버려야 했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쪼그라든 재정 상황과 그보다 더욱 두려운 유권자의 외면
11년 동안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영욕의 당사를 두고 떠나는 표정들은 착잡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현실은 당사만 옮겼다고 해서 모든 것이 새로워질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버렸는가를 지금부터 지켜보게 되겠지요.
그런가 하면
정작 버리지 말아야 했으나 버린 물건도 있었습니다.
기다림 2007
그들은 지난 2004년 천막당사를 거치면서 염창동 당사 앞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표식을 달았습니다.
시민의 마음을 되찾고자 했던 다짐은 단단했을 것이나
마음은 비좁은 당사를 떠난 그 순간부터 물러지기 시작했던 것일까
그 간절함을 새긴 나무는 국회로 옮겨진 뒤에 그 표식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지 오래.
“처절한 진정성”을 이야기하며 이삿짐을 꾸린 사람들이 버려야 할 것과 버려서는 안 되는 것,
역시 시민들은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내 삶에 들러붙어 있던 이 모든 것들
나는 오히려 그것들을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했던 작가는 대신 잃어버렸던 간절한 무언가를 되찾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버리고 제대로 채움을 이야기했던 작가 김영하의 책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오늘의 엥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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