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8일) 전국의 공기가 맑습니다.
비가 쏟아져도 공기가 맑으니까 참 좋지요.
엊그제까지 독한 미세먼지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깜박 잊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것이기도 합니다.
공기가 좋으면 나쁠 때를 잊어버리고 그래서인지 대책도 절실하게 나오지 않았다는 것.
오늘 같이 공기 좋은 날 굳이 앵커브리핑이 미세먼지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본이 미국 본토에 화생방 공격을 시도했다!”
2차 대선이 한창이던 1943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민들 사이에는 그런 소문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의 눈과 피부는 따끔거렸고, 도통 숨을 쉴 수 없다면서 아우성이었으니 상황은 적군의 화생방 공격을 의심할 정도로 심각했던 것입니다.
“LA형 스모그”라고 이름 붙여진 그날 이후에 사람들은 집을 나설 때 방독면을 쓰고 다녀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피스 공원 동물원의 당나귀 ‘피치’도 눈이 아팠는지, 고글을 쓰게 돼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요.
“일본이 미국 본토에 화생방 공격을 가했다!”
천만의 말씀,
LA의 자욱한 스모그의 원인은 자동차 매연이었습니다.
훗날 런던 폭으로 유명한 1950년대의 스모그가 수많은 런던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뒤에야 대책이 세워졌듯이,
그보다 10년을 앞섰던 LA 스모그는 일본의 화생방 공격이라는 2차 대전판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난 뒤에야 이 천사의 도시를 각성시켰습니다.
산업화를 거쳐 간 모든 도시들이 대기오염에 시달리고, 그 대가로 시민들의 수명을 단축시켰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공장의 굴뚝은 단지 경제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청정과 디젤이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순된 단어들의 조합 하나로 엄청난 디젤 차량을 팔아치운 자동차 기업들의 탐욕까지...
그리고 지금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의 탐욕으로 성장만을 앞세우고 있는, 그러면서도 이웃 나라의 고통은 전혀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거대한 공장 국가를 옆에 두고 있는 신세가 됐습니다.
당나귀까지 고글을 쓴 이후에 캘리포니아주는 맑은 하늘을 되찾기 위해서 긴 호흡의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당국자의 말을 빌리자면 “20년간 18만 톤의 유해가스를 사들였”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당국자가 바로 어릴 적 공포의 LA 스모그를 겪었던 당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시민들의 원성이 켜켜이 쌓인 이후 부랴부랴 대책은 발표되었지만...
아직 국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미세먼지 관련 법안만 50여 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의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 하니..
이것도 긴 호흡이라면 긴 호흡이랄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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