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의 프레젠트

이하영프레젠트) 저는 이렇게 합니다. 속는 셈치고 따라해 보세요

Buddhastudy 2025. 7. 3. 19:40

 

기대와 집착에 대한 관점

작가는 기대는 욕구에서 비롯되지만, 기대에 대한 집착은 두려움과 분노를 야기한다고 설명합니다. 욕구를 70~80% 정도 채우고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며, 100% 충족하려는 집착은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충족감을 얻을 수 없게 만든다고 조언합니다. 만족하며 사는 것이 즐겁게 사는 방법이며, 충족하려 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타인의 실망에 대한 대처

상대방의 실망에 대한 대응으로는, 실망하는 상대가 떠날까 봐 두려워하기보다는 서로에 대해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관계가 끊어질 정도의 실망이라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나을 수 있으며, 상대방이 변하기를 바라기보다는 서로 적절한 선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방법

타인의 기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신의 시선과 의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때 타인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대처

자신을 무시하거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감정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명상이나 마음 공부를 통해 내면의 아이를 치유하고, "그렇구나, 그럴 수 있다, 그래라"라는 '삼긍'의 자세로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화내는 사람의 감정을 동일시하지 않고, 알아차리고, 허용하고, 흘려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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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기대실망

어떻게 보면 모든 싸움의 근원인 것 같거든요.

왜 이렇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면서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 걸까요?)

 

기대라는 거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원하는 거잖아.

우리가 원하는 거고 사실 뭐가 원하는 거냐면

내 생각이 원하는 거야.

 

내 생각이 원하는 게 기대인데

그 기대한다는 건 사실 내가 없다라는 반증이야.

내가 없기 때문에 그걸 원하는 거거든.

 

근데 기대하는 거 좋아.

사람은 욕구의 동물이니까, 기대하는 건 좋은데

그 기대에 집착을 하게 되면

반드시 두려움과 분노가 생겨.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그게 뭐 이루어져도 좋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에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있어.

그 뭔가에 집착이 생겨

-반드시 이루어져야 돼.

그러면 그때부터 인간은 괴로워지는 거야.

 

인간이 괴로운 이유는 5가지가 있어.

-내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집착이 있어.

-두 번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무조건 좋을 거라는 착각도 있어.

-세 번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의 삶의 태도라는 게 있어.

-네 번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더라도 이것을 잃어버릴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분노가 있는 거야.

그래서 이 5가지 때문에 인간은 늘 괴로운 거야.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꼭 이루어야 한다는 집착이 제일 문제예요.

 

그래서 나도 어떤 걸 기대를 하잖아.

근데 기대를 했는데

그냥 이루어줘도 되고, 아니면 말고

그런 생각으로 살면 좀 삶이 좀 즐거워져.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유일한 방법일까요?)

 

그러지는 않지.

인간은 인간의 욕구의 동물이야.

그래서 뭔가 항상 욕구라는 게 나타나거든.

기대한다는 게 욕구를 말하는 건데.

그 욕구를 채워가면서 살면 돼.

 

나 같은 경우에는

어떤 내가 원하는 게 생겼어.

내가 원하는 게 생기면

그 욕구를 한 한 70%? 80%? 정도 채우면

만족하고 또 다른 걸 해.

 

근데 대부분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면

70에서 80% 채워지면

그 채워진 거에 대해서 만족할 줄 모르고

나머지 20~ 30, 남겨진 아직 채우지 못한 거에 대해서 집착을 한단 말이야.

그거를 다 채워서 충족감을 얻으려고 하는 거야.

근데 절대로 충족감이라는 거는 나타나지가 않는 거야.

?

이게 70에서 80, 80에서 90, 90에서 99까지 올라가는 순간

나머지 1%에 대한 집착이 생기거든.

그 집착이 생기는데

그 집착은 반드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돼 있어.

그럼 다시 이 일이 더 커 보이는 거야.

그러면 집착하게 돼 있기 때문에

절대 충족감이라는 거는 채울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충족감을 계속해서 채우려고 하면

만족감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사람은 만족하고 살면 즐겁게 살 수 있는데

충족 하루를 살면 괴롭게 살 수밖에 없어.

 

?

아직 채우지 못한 거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 때문이고

이 집착은 반드시 두려움과 분노를 만드는 거야.

 

다 채우지 못했으니까

이거를 채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는 거야.

그리고 이게 채워지지 않으니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거야.

그 두려움과 분노는 본질이 같은 거야.

 

그래서 집착하게 되면 두렵게 되고

집착하게 되면 화가 나는 거야.

그러면 인간은 괴롭게 돼.

 

그래서 난 항상 욕구가 나타나면

70~ 80%로 채우고, 그냥 만족하고, 또 다른 거 하고 살거든.

근데 그거를 한 99, 100까지 충족하려고 하다 보면

인간은 괴로울 수밖에 없어.

 

 

(근데 이제 상대방이 막 이렇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라고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실망하는 거에 대해서

좀 어떻게 대응을 하는 게 좋을까요?)

 

어떻게 보면 상대방이 실망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실망한 상대가 나를 떠나버릴까 봐, 무서운 거거든.

 

앞서 말했던 그 우리 연인 관계에서도 중요하지만은

결혼 관계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거든.

 

근데 그런 실망 때문에 관계가 끊어질 정도라면

미리 그 관계를 정리하는 게 나는 맞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기대하는 게 있잖아.

그거를 어느 정도 적절한 선에서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사람이 변하기를 바라면 안 돼.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사람은 사람이 바꿀 수가 없는 거야.

사람은 세상이 바꿔주는 거거든.

그 사람이 변해갈 때까지 내가 적응하는 게 결혼이지

이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게 결혼이 아니야.

 

 

(기대감이 가져다주는 강박에 대해서

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지도 좀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면 남의 어떤 기대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뭐냐 하면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

 

그게 뭐냐 하면 나의 어떤 내면이

나의 시선과 나의 의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의 내면이 타인의 눈치와 타인의 상식으로 채워지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은 그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살아간단 말이야.

근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굉장히 스스로가 실망하게 되고

스스로를 굉장히 옥죄는 그런 결과를 많이 맞이하게 되거든.

 

그래서 어떻게 보면 타인의 기대에 집착하면서 살게 되면

스스로의 삶을 못 살게 되는 것 같아.

그래서 자신의 시선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때

그때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더라도

나의 삶을 스스로가 개척해 나갈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해.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나를 무시하고,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압박감을 주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는 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우리가 누군가 나를 무시하고, 나에게 열등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또한 나를 비난하거나, 나를 뭐 미워할 수도 있고

나를 시기하거나, 나를 질투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

그래서 어쨌든 나에게 어떤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근데 사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부정적 감정을 주는 게 아니야.

그 감정이 나타난 이유는

내 안에, 나의 내면에, 상처받은 작은 내면아이가 있어.

그 치유되지 않은 사춘기 소녀, 사춘기 소년이 있단 말이야.

 

우리가 살아온 어떤 삶의 궤적 속에서

-나는 어떤 열등한 존재예요.

-나는 무시받는 존재예요.

-나는 어떤 미움을 받고 비난을 받는 존재라는

그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반드시 있어.

 

그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치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유되지 않은 모습으로 늘 나에게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까 비슷한 조건과 비슷한 환경이 나타날 때

그 치유되지 않은 내면아이가

그런 부정적 감정을 내가 경험하도록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거야.

 

그래서 사실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다라는 것은

내 안에 치유되지 않은, 아직까지 정화되지 않은

그런 내면아이가 있음을 알고

그 아이를 어떤 알아주고, 안아주고, 어떤 사랑과 자비로 품어주는

그런 과정이 필요해.

그게 어떻게 보면 명상이고, 그게 수행이고, 그게 마음공부가 되는 거야.

 

그래서 그런 아이가 있음을 알면

조금 조금씩 그 아이를 치유함으로써

앞으로 그런 비슷한 조건과 환경이 있을 때

나는 쉽게 상처를 받지 않는 거야.

 

?

그 부정적 감정에 내면아이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런 과정이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고

꽤 오랫동안 수행을 통해서 고칠 수가 있어.

 

당장 나에게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들게 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어떻게 하냐면

난 우리 엄마가 나한테 해줬던 이야기가 있어.

내 책에도 썼던 이야기인데

우리 어머니는 항상 그런 일이 있으면

‘3했어.

3그가 뭐냐 하면

-그렇구나

-그럴 수 있다.

-그래라 그래.

 

쉽게 말해서 누가 나에게 막 화를 내고 있어

막 화를 내면

그 화내는 그 사람의 어떤 그 화와

나의 감정을 동일시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막 화를 내면

그렇구나.

두 번째 그럴 수 있다. 저 사람 입장에서는 화낼 수 있다.

그래라 그래 화내라 그래.

 

늘 그렇게 ‘3하게 되면

나는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부정적 감정을 흘려 보낼 수가 있는 거야.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막 화를 내고 무시하고 날 열받게 할 때는

-어 저 사람 화났구나

-그리고 저 사람 입장에서는 화낼 수 있구나.

-그리고 세 번째는 화내라 그래.

 

그게 어떻게 보면 화냈구나라는 것은 어웨어니스awareness, 알아차림이라는 거야.

알아차리고

-두 번째 화낼 수 있어. 억셉턴스acceptance, 허용이라는 거.

-그리고 세 번째 화내라 그래 릴리징releasing 흘려보내기를 하는 거거든.

 

그래서 알아차리고, 허용하고, 흘려보내게 되면

우리는 그 화와 내가 동일시가 안 되고 그거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래서 항상 그런 일이 있으면

-어 그래 너 화났구나

-그래 화낼 수 있어

-화내라 그래

하면서 흘려보내면 돼.

 

마치 내가 주말에 쉬고 있는데

누가 어떤 판촉물을 가지고 나한테 홍보를 하러 온 거야.

그러면서 선물을 주겠다고 하는데

아 나 받기 싫어요.”

안 받았어.

그러면 그 선물을 누가 가져가?

그 사람이 가져가잖아요.

 

마찬가지야.

그 사람이 막 화를 내는데

내가 그 화를 안 받아주면

그 화는 그 사람이 가져가는 거야.

 

그래서 항상 알아차리고- 허용하고- 흘려보내는 것을 습관화하게 되면

우리는 부정적 감정과 동일시가 잘 안돼.

 

상대방은 그냥 악인의 역할을 한 것뿐이고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그 내면아이가

자신을 좀 치유해 달라고 목소리를 막 내는 게

그런 부정적 감정이라는 거야.

 

그러면 그런 부정적 감정이 나타났을 때는

내 안에 있는 그 내면아이를

안아주고- 알아주고- 사랑과 자비로 품어 안아야 돼.

그런 기회로 삼아야 돼.

 

그래서 그런 내면아이를 정화하는 게

우리가 소위 말하는

나의 관념을 분석하는 작업이고

나를 관찰하는 과정이고

나를 재정화하는 과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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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의 삶의 지혜였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다.

-그래라 그래.

 

어떤 화가 나는 상황에서

화를 내도 괴롭고

화를 참아도 괴롭다.

 

그때는 먼저

화가 났음을 알아차리는 거다.

그렇구나, 내가 화가 났구나.

 

화라는 감정이 나타났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화라는 분노는 반정도 줄어든다.

 

그리고 그 화가 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거다.

그럴 수 있다.

내 마음의 라는 내면아이가 활동하는 거구나.

 

마지막으로

옳음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거다.

화의 본질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분별이다.

 

화를 알아치리고

화라는 느낌과 하나되고

그것을 느끼며 흘려보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