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얘긴 잘 들었어요. 집구석이 참 재밌네요. 그런데 뭐를 물어보는 거요? 며느리가 스님한테 어이했으면 좋겠냐 물어보라 그래요? 이렇게 며느리한테는 일가친척들, 얼굴을 알든 모르든, 길가는 사람이든, 이렇게 밥을 잘 해가지고 많이 해 먹이면, 엄청나게 복이 되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고. 그래서 많이 해 먹이라고 그러더라고 그래. 왜 괜히 엄마한테 물어보라 그러노? 안 물어봤으면 이런 소리 안 듣지. 물어봤으니까 이런 소리 들어야 돼.
그러니까 그래 말하거든 “니가 왜 물어보라 그러노?” 이렇게 얘기하면 되잖아요. “네가 나한테 물어보라는 소리 안 했으면 니가 이런 소리 안 들었을 텐데. 네가 물어보라 해서 내가 물어봤더니 스님이 좀 더 많이 더 많이 해 주라고 그러더라고.” 또 전화 더 많이 해가지고 아버지보고 이래라 그래. “전화할 때 없어요? 좀 더 하세요. 밥 한 그릇만 떠 놓으면 되는데, 더 와도 되는데요.” 이렇게 늘 아버지가 “됐다.” 이러더라도. 시아버지가 “됐다.” 이러더라도 “아니요. 밥 한 그릇만 떠 놓으면 되는데 친구들 더 없으세요?” 이렇게 얘기를 그렇게 마음을 내라고.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새벽에 오는 할매는 우서방이 할매 있을 때, 저 옆방에 있을 때, “할매는 지집도 없나? 남의 집, 왜 자꾸 오노?” 이렇게 큰 소리로 이렇게 얘기를 해 버리라고 그래. 못 들은 척, 없는 줄 알고 큰소리로 해 버리라고 그래. 할매가 삐져가지고 안 오도록. 왜 안 돼요? 그러니까 왜 데리고 왔어요. 그냥 놔두지. 그러니까. 그런데 지금 물릴 수가 없으니까 한번 더 삐지도록 해가지고 계시면 이제 데리러 안가면 돼. 대신에 내가 가세요. 내가. 우서방이 싫어하니까. 내가 할매한테 놀러 가면 되잖아.
아니 그러니까 어쨌든 시간 내서. 그러면 저기 그렇게 안 오게 하려면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우서방한테 스님한테 물어보니까 할매가 복덩어리라고, 할매가 자꾸 이 집에 들락날락할수록 좋은 일이 생긴다고, 보이지 않는 좋은 일이 생기니까, 놔 놓으라고. 새벽부터 일찍 오는 건 좋은 일이라고 그러더라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우서방한테 자꾸 가서 뭐라고 그래요? 나한테 뭐라고 그래요? 본인한테 뭐라고 그래요? 그 사람들이 와서. 우서방한테 가서 자꾸 믿으라고 그래요? 놔두세요. 그건. 놔두세요. 신경질내면 스님한테 물어보니까. 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냥 놔두라. 그러더라. 됐어요? 이제? 보살님이 예의가 바르셔서. 왜 우서방이라고 자꾸 저렇게 하느냐? 생각하는데. 옛날에 어른 있는 데서 자기 남편을 “우리 남편이” 이렇게 말을 안 합니다. 아시겠어요? 그래서 “우 서방이오”, 어른한테 이렇게 말한다. 이거에요.
제가 나이는 어려도 저 보살님이 보시기에 시아버지같이 생각하는 거야. 어른으로 생각을 해서 자기 남편을 “우리 남편이” 이래 말 안 하고, “우서방”이다 이렇게 얘기한대요. 그런데 보살님 집에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집에 사람이 꼬여요? 안 꼬여요? 집에 사람이 꼬이죠. 이웃집 할머니도 새벽같이 오고, 목욕 갈 때 또 들렸다가, 목욕하고 올 때 들렀다가, 며느리가 보면 좀 귀찮을 그런 거는 이해가 돼요. 그러나 이걸 보면 보살님이 말은 더듬더듬 저러셔도 재밌잖아. 그죠? 이러면 복이 오는 거요. 사람이 얼굴이 매끄럽고 깨끗해도 복을 쫓는단 말이오.
며느리가 약간 복을 쫓는 사람이오. 그러니까 며느리 같으면 일단은 물으니까 얘기를 하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성경 얘기를 하면 ‘겉옷을 벗어달라면 속옷을 벗어주라.’ 이런 말이 있어요. 누가 겉옷 그것 좀 달라, 이러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상황의 주인이 돼라. 그 상황에서 자기가 주인이 되라. 이런 얘기에요. 겉옷 벗어 달라! 그러면 뺏기는 기분 아니오. 그죠? 속옷 벗어줄 마음을 내면 어때요? 그것은 내가 적극적으로 주는 거 아닙니까? 그죠?
그러니까 귀찮게 생각하면 괴로움이 되고, 오히려 시아버지께 “아버님, 더 모실 분 없으세요? 밥 한 그릇만 놓으면 되는데요.” “아이고 네가 귀찮아서.” “아니에요. ‘밥만 한 그릇 더 놓으면 되는데요, 이왕지 찌개다 해 놨는데. 괜찮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이 상황에 주인이 된다. 이 말이오. 며느리를 괴롭히려고 내가 얘기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가 스스로 주인이 돼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꼬이는 것은 그게 눈에 보일 때는 밥그릇도 손해나고 여러 가지 손해가 나지만은 그것은 집안에 복이 들어오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며느리가 아직 젊어서 몰라서 그래요. 그래서 오히려 밥 한 그릇 더 놓으면 되는. 제사지낼 때도 이왕지 지내는 제사에 어때요? 제사 안 지내는 사촌들 누구 있으면 밥 한 그릇 더 얹어 놓으면 되잖아. 그죠? 귀신이 먹고 가는 것도 아니고. 정성인데. 이런 마음을 내면 되는데. “왜 우리 제사도 많은데 남의 제사 지내냐?” 이런 게 다 복을 쫓는 행동이다. 이래요. 이게 수행적 관점에서 하고, 두 번째 도저히 힘에 부쳐서 못하겠다. 이렇게 되면 좋은 방법은 뭐요? 집에 없는 거예요.
아침 일찍이 절에 가는 거예요. 토요일 날 아침 일찍이 절에 가서 기도하고, 이렇게 봉사하고 저녁에 들어오면 돼요. 그러면 와서 먹을 게 없으면 어때요? 안 오겠죠. 저그가 꺼내 먹던지. 그러니까 지혜롭게 해야 되. 그걸 갖다 귀찮아서 피해가면 도망자가 되죠. 더 적극적으로 봉사를 가는 거예요. 더 적극적으로. 그러니까 고쳐야 된다면 고치는 방법이 그렇게 지혜로워야 되고. 그다음에 이왕지 벌어진 상황이라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게 낫다. 이런 얘기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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