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Danye Sophia] 붓다의 간화선! 싯다르타도 화두참구했다(有 無 空 화두를 잡아라)

Buddhastudy 2022. 1. 12. 18:48

 

 

수행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1원인(실존)을 알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1원인은 어떤 원인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명실상부한 삼라만상의 근원입니다.

물론 삼라만상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참나, 진아, 열반, 해탈, 절대, 불성같은 이름을 붙이면 왜곡이 되어 그것을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사실 1원인(실존)’이란 이름도 부자연스러운 건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왜곡이 최소화되어 방편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원인을 어떤 방법으로 찾을 수 있을까요?

 

산꼭대기에 오르는 길은 많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존에 나와 있는 수행법 모두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런 길은 특출한 소수의 사람만 오를 수 있는 벼랑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원효나 달마 정도의 근기를 타고난 분들은 어느 길이든 상관이 없지만

일반 수행자들은 처지가 다릅니다.

그들은 정형화된 지름길이 아니면

이번 생애에 산꼭대기에 올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도로 새지 않고 성큼성큼 오를 수 있는 수행법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싯다르타가 남긴 불법의 원형입니다.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참선이나 위빠사나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먼 후대에 나오게 되는 간화선의 화두도 참구하였습니다.

 

싯다르타가 의식에 품고 있던 화두는 딱 하나입니다.

바로 1원인입니다.

 

사실 싯다르타는 이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 기존 수행에서 얻은 열반과 해탈, 절대의 경지를 부정했습니다.

그런 최고의 경지에 제1원인을 대입했을 때 그것이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싯다르타는 그것을 증명해 내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는 초월적 경지와 리적 각성이 하나로 부합해야 깨달음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싯다르타는 1원인에 대한 화두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싯다르타는 어떤 방식으로 1원인의 화두를 참구해 나갔을까요?

이제 그의 의식으로 들어가 함께 공부해 봅시다.

 

 

싯다르타는 제1원인을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구조로 보았습니다.

자존체이니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구조는 무엇일까요?

그건 유와 무입니다.

 

1원인은 유무보다 한 단계나 혹은 두 단계, 아니면 그 이상으로 단순할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유무보다 단순한 것으로 자신이 이루었던 열반과 해탈, 절대를 떠올려 봤습니다.

생각이 올라오지 않는 의식 상태가 유무보다 단순한 상태인가?

생각의 멈춤과 동시에 유무의 경계 또한 사라졌으니 가능할 법도 하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건 생각이 없어서 유무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주관적인 착각일 수 있다.

따라서 유무보다 단순한 구조를 찾기 위해서는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생각으로써 그것을 찾는 수밖에 없다.”

 

 

싯다르타는

생각을 없애 유무의 화두를 푸는 것은 방법이 잘못됐다고 봤습니다.

혹자는 생각이 없어지면 유무의 문제 자체가 사라지면서

답이 해결된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그렇게 해결하면 1원인에 대한 증명이 안 되고

결국 자신만의 주관적 깨달음에 국한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수시로 생각을 일으켜 1원인의 화두를 꼭 쥐었습니다.

 

이제 싯다르타는 1원인의 화두를 하나씩 정리해 나갑니다.

유무보다 단순한 구조는 세 가지 경우수가 있습니다.

유무를 떼어 유와 무를 독립체로 보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자신이 생각할 수 없는 미지의 X입니다.

이것을 싯다르타는 초유무로 놓았는데, 지금의 용어로 바꾸면 공입니다.

 

싯다르타는 유무보다 단순한 구조로 유와 무, 그리고 공의 세 가지 경우수를 상정하고 이것을 화두로 삼아 참구해 나갔습니다.

 

첫 번째, 는 자존할 수 없습니다.

를 만든 또 다른 원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에서는 신을 제1원인으로 놓지만

그 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근거를 대지 못하면 모순에 빠집니다.

 

두 번째, 는 자존의 문제에선 보다 조금 나아 보입니다.

그런데 창조의 문제에서 걸립니다.

에선 아무것도 나올 수 없기에 역시 제1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유와 무가 동시에 존재하거나 도 아니고 도 아닌 제3의 존재 형태를 떠올립니다.

편의상 이것을 공이라 부릅시다.

 

그렇다면 유무보다 단순한 구조로 을 상정할 수 있는데

여기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역시 유에 속하지 않느냐는 것과

의 비유비무한 상태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 유무보다 이 단순하며 실재한다는 사실을 밝혀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의 명제를 정립한다고 제1원인을 찾은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보다 더 단순한 구조를 또 찾아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제1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유무의 계단을 올라 에 이르고

다시 을 발판 삼아 그 이상의 구조를 떠올려야 합니다.

이 과정에 부합해 유무의 의식에서 공의 의식으로 발전하고

다시 의 의식마저 뛰어넘어 제1원인의 상태에 도달할 것입니다.

 

화두를 푸는 만큼 의식은 변화하고

화두가 모조리 풀렸을 때 의식은 깨달음 자체가 되어 있게 됩니다.

싯다르타는 이와 같은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다가 결국 그 답을 찾게 됩니다.

 

세간에는 정혜쌍수라 하여 선정과 반야를 나누지만

형이상에 대한 화두는 이미 형을 잊었기에 선정과 반야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싯다르타의 화두는 그 자체로 선정이고 반야이며

그렇기에 싯다르타가 화두를 푸는 동시에 그는 무상정등각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싯다르타는 그냥 있는 상태에서 한 생각을 일으켜 제1원인의 화두를 풀었고

일찍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는 깨달음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이성이 궁극에 이르러 삼라만상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일깨운 역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불교의 주류는 간화선입니다.

간화선을 한다고 참선이나 위빠사나, 반야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승들은 모든 공부를 두루 하면서 간화선을 중심에 삼는 것이지요.

따라서 수행승들은 간화선이 얼마나 큰 공효를 지니고 있는지 압니다.

 

그건 맞는 얘기지만 문제는 그들이 잡고 있는 화두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존께서 최후에 잡았던 화두는 오로지 제1원인 딱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대신할 화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간화선은 오랫동안 불교 수행자들이 직접 체험해 입증한 유력한 수행법임에 틀림없지만

결과적으로 화룡점정을 못했습니다.

점 하나를 찍지 못해 용이 승천하지 못한 것으로

이제 그 그림에 제1원인을 찍어 넣으면 수행법이 완성될 것입니다.

 

요컨대 제1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유무보다 단순한 구조가 필요하고

그래서 유와 무와 이 등장합니다.

싯다르타가 했듯이 이 셋을 주사위처럼 가지고 놀며 화두를 풀어 보면 어떨까요?

 

복잡한 지식은 당신의 의식을 빈틈없이 채워 가지만

단순한 구조를 찾는 화두는

당신의 의식 자체를 무한히 넓혀 그 경계를 지워버리게 될 것입니다.

경계가 없는 당신의 의식이 궁금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