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76회 스님 말씀대로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해봤더니.

Buddhastudy 2012. 10. 29. 04:18
출처 YouTube

 

그런데 야단할지 안 할지 어떻게 알고 미리

지난번 질문하고 잘 생각해 보세요. 지난번에 어떻게 질문했느냐 하면. 저는 제 의견을 마음껏 발표도 못 하고, 남의 눈치만 보고 그런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한다. 그게 저의 큰 문제인데. 우리 남편이 나보고 너는 그게 문제다. 싫은 소리 좀 하고 이렇게 해라. 왜 싫은 소리도 못하고 그렇게 있느냐? 이렇게 문제 제기를 받았다. 그래서 스님이 그렇다면 잘 됐다. 남편한테부터 한 번 싫은 소리를 해 봐라.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그죠?

 

그래서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해 보니까. 남편이 이번에는 뭐라 그래요? 너는 너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 못 하는 게 문제다라고 했지. 그런데 이번에는 표현을 하니까 남편이 또 뭐라고 그래요? 너는 네 의견만 고집하는 게 문제다. 너 의견을 표현 못 하는 게 문제라고 어제는 얘기했다가. 오늘은 표현을 하니까. 너는 네 고집만 하고, 남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너 밖에 모른다. 이게 네 문제다. 이렇게 지금 문제를 제기했다는 거 아니에요. 그지?

 

그러니까 이게 이젠 지난주 보다 훨씬 더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 진 거요. 그러니까 나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고.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남고려 안 하는 사람이다. 이게 훨씬 더 본질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나는 남을 배려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나만 만날 손해 보는 인간이다. 이렇게 거꾸로 알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이 안 나는 거요. 그런데 이제 남편에게 한 번 물어보니까.

 

너는 너만 알고, 남편을 이해 잘 못 하고, 너만 보호하는 사람이다. 고 마땅히 해야 될 일인데도 눈치 보고 너한테 손해된다면 얘기 안 해 버리고. 이렇게 내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고 남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지적이 들어왔잖아. 이게 훨씬 더 나의 본질에 가까운 거요. 현재 내 모습에 가까운 거요. 보살은 절이 중요한 게 아니오. 그럼 아까 저쪽 사람이 듣고 오해할라.

 

내가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내 성격이 소극적이고, 내가 상대를 배려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런 거요. 그러니까 내가 상대에게 얘기를 하면 상대가 내 말을 들어줘야 된다. 이게 너무 강한 거요. 눈치를 딱 보니 저게 안 들어 줄 거 같애. 그러니까 안 하는 거요.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는 거요. 원하는 데로 안 되면 입을 딱 다물어 버려요. 이런 사람 살기 좀 힘듭니다. 살기가.

 

그런데 그러니까 말이 적고, 굉장히 착해 보이고 그러죠. 스님 늘 이런 법문 했는데. 착한 여자 무섭다. 이런 말 하는데. 착한 여자 무서워요. 착한 여자는 고집이 황소고집인데 첫째 자기가 고집이 센 줄 몰라요. ? 착하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착한 여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어느 날 사고를 칩니다. 보따리를 싸 나간다든지. 이런 일이 생기고. 그래서 착한 여자에서 좀 벗어나야 되요. 착한 여자가 좋은 게 아니에요. 그 착한 여자가 진짜 착한 게 아니에요. 에고가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그래요.

 

남편한테 대들고 싸움도 못하는 이유가 너 같은 인간하고 싸우는 내 자신이 용납이 안 되는 거요. 그래서 겉으로는 그냥 입 다물고 있지만, 속에는 너는 인간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숫제 싸우는 사람은 사람이고 생각하고 싸우는 거거든요. 안 싸우는 사람은 인간 취급을 안 해버려요. 그래서 이게 좋은 게 아니에요. 그래서 첫째 내가 어떤 얘기를 할 때 상대가 내 얘기를 들어줘야 된다라는 생각을 지금부터 버리세요.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올라온다는 게 내 업식이거든요. 아까 얘기한 데로. 까르마란 말이야. 내 업식이니까. 그건 내가 안 올라오려고 해도 안 돼요. 본능적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그걸 내가 알아차려야 됩니다. ~ 내 업식이 올라오네. 내 생각대로 돼야 돼서가 아니고, 내 이 습관이에요. 이건 내 습관일 뿐이에요. 습관적으로 그런 생각이 올라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내 생각대로 돼야 된다는 이 생각을 버려야 된다가 목표면.

 

그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오~ 내가 또 내 까르마에 휘둘리고나. 내 업식에 내가 사로잡히구나. 이렇게 자꾸 알아차리면 돼. 올라오면 내려놓고, 올라오면 내려놓으면 돼. 목표가 이거 버려야 된다는 게 목표면 이게 올라올 때 어~ 하고 금방 내려놓을 수가 있는데. 내 생각이 옳다는 데 사로잡혀 버리면 버릴 이유가 없어진단 말이오. 참회를 한다는 것은 아~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한 번 한다고 다시는 잘못 안하면 그 수행 끝나게. 못된 버릇은 다생겁래로 지어 와놓고. 없앨 때는 단박에 없애겠다고. 그 자체가 벌써 욕심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을 내가 이생 내내 닦아야 할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 안 되면 한 번 더 하고, 두 번 안 되면 세 번 하고, 세 번 안 되면 네 번하고, 다섯 번안되면 열 번하고, 열 번 안 되면 열한 번 하고, 백번 안 되면 백 한 번 하고 자꾸 해 나가야지. 지금 절이 중요안하다고 얘기하잖아. 형식이 중요 안 해요. 내용이 담겨 있는 형식이라야 돼. 절이 하기 싫은 사람은 싫은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서 절을 하라는 거요. 아상이 강한 사람은 아상을 꺾으라고 절을 하는 거요.

 

본인은 절을 많이 하라고 그러면 힘들지 몰라도 절 정도는 뭐. 그러니까 이게 착한 사람이니까 108배 절하는 거로 면피를 하려는 거요. 자기 잘못을 나는 108배 했으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회계로 면피하려는 거죠. 오늘 회계했으니까 오늘 잘못한 거 다 해결이 됐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다시 얘기하지마는, 내가 상대에게 얘기를 할 때, 어떻게 해달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나의 요구란 말이오.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그걸 상대가 들어줘야 할 어떤 이유가 없어.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는 그 사람의 문제요. 내 얘기를 듣고, “오 그래할 수도 있고 내 얘기를 듣고 아니야할 수도 있어. 그런데 나는 아니야하는 소리가 듣기가 싫어. 너는 아니야하면 안 돼. “아니야할 거 같으면 내가 숫제 말을 안 하는 게 좋아. 그래서 말을 안 하는 거요. 착해서 말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너무너무 내 요구에 대한 결벽성, 완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거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남편이 뭐라고 그러든 그냥 해버려. 우선. 지난번 시킨 데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를 되고 안 되고 그 결과의 반응이 어떻고를 전혀 고려하지 마라. 지금 너무 그걸 고려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심리위축이 와있기 때문에 그냥 해버려. 그러면 거의 100% 상대가 노우할거요. 그럴 때 상대가 노우하는 거를 내가 받아들여야 돼.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받아들이란 말이오.

 

그 오늘 가서 집에 가서 얘기하니까. 남편이 너는 너밖에 몰라. 이런 말을 할 때. 그래 당신 말이 맞네. 듣고 보니. 나는 나밖에 몰라. 이렇게 받아들이란 말이오. 그러면서 또 내일 가서 또 얘기해 버려. 그러면 너는 너밖에 모른다고 그러는데 왜 그래? 하면 그래 맞어. 맞어. 그러네. 이렇게 해서 상대를 통해서 계속 내 모습을 찾아가야 돼. 이런 지적을 계속 받으면서. 이걸 두려워하지 마라. 이거야. 정진하는 사람은. 그래서 계속 부딪쳐 봐요.

 

오늘 또 가서, 또 자기 나름대로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또 가서 확 질러버려요. 그러면 또 뭐라 그러면 그걸 갖고 괴로워하지 말고, 아이고 못하겠다. 이러지 말고. ~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어. 이렇게 받아들이고. 그래도 또 불만이 있으면 가서 또 말해 버려. 말하는 연습을 자꾸 하라니까. 내가 내 속에 있는 말을 못하는 거는 사실은 상대편 때문에 못하는 게 아니에요. 이거를 내 결벽성 때문에 못하는 거요. 그러니까 일어나는 생각을 계속 내 질러 버려요. 계속 내질러 버려.

 

그러면 상대로부터 공격이 계속 들어오겠죠. 그죠? 그것을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편의 의사. ~ 상대는 저렇게 생각하구나. ~ 저분은 저렇게 생각하구나.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어. 이런 식으로 교감을 해 나가면서 상대와 내가 대화가 되는 거요. 그러면 나도 내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상대의 의견도 내가 다 들어낼 수가 있고. 이게 열린 자세가 되는 거요. 본인은 꽉 폐쇄돼 있어. 연습을 자꾸 해야지. 일주일 해보고 와서.

 

요번 주 내 가서 한 번 질러봐. 다섯 가지쯤 내 질러 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반응이 오는지. 그거를 이렇게. 너는 너 밖에몰라. 이런 소리 들으니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전에는 당신 왜 그래? 너도 너 싫은 소리 해봐. 이렇게 얘기했을 때는. 그것이 나를 비판하는 소리지만은 역시 난 착한 사람 아니에요. 그지? 그런데 요번에 너는 너밖에 몰라 하니까.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 아니오. 그죠? 기분이 좀 나쁘겠지. 이렇게 자꾸 시도를 해 봐요.

 

그때 내가 이렇게 생각하라니까. 그래 난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야. 이렇게 받아들이라니까. 뭐 나만 나밖에 모르나? 이 세상사람 다 지밖에 모르는데.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이게 진실이에요. 나는 남을 위하는 사람이다. 이건 거짓이에요.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이걸 내가 진실을 알아가는 거요. 이게 좋다 싫다 나쁘다 이런 생각 하지 마. ~ 그래. 가만 살펴보니 내가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네. 이거 알아 가는 거요. 그래서 계속 부딪혀 봐요. 절에 다니면서 공부 잘못하면 에고를 착한 것으로 포장해서 이렇게 잘 못 될 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