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82회 신랑에게 화가 나면 원망감, 억울함에 죽을 것 같습니다

Buddhastudy 2012. 10. 31. 03:57
출처 YouTube

 

질문한 내용을 보면 심각하게 적어놨는데 스님이 볼 때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 왜 심각하지 않다 하냐 하면, 심각한 줄을 자기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 얘기요. 알고 있다. 자기문제인 줄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남편에 대한 이해도 있고. 지금 굉장히 심각한데 심각한 줄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이렇게 첫째 말씀을 드리고요. 이 성질에 어떻게 어떤 남자가 사랑해주겠어요? 지금 읽어보니까 나라도 싫겠어요. 이렇게 성질이나 박박 부리고 획 돌아버릴 정도로 화를 내고 이러면.

 

그러니까 남편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다. 이걸 좀 보셔야 돼요.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 어머님 일찍 돌아가시고 양모 밑에서 성장하고 그러면서 뭔가 사실은 양모 밑에서 자라나, 생모 밑에서 자라나 사실은 차이가 없습니다. 괜히 친엄마라도 얼마나 야단치고 때리고 그래요. 그죠? 그래도 그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양모는 그거보다 덜 해줘도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뭐 때문에 그렇다. 양모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실제 객관이 더 심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마음에서 이래서 생긴 문제요.

 

그래서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고아원에서 아이들에게 물론 나쁘게 한 사람도 있지마는, 어떤 집 부모보다도 더 잘 보살펴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조금만, 친부모도 살면서 야단 많이 쳐요? 안쳐요? 치잖아. 그래도 치면 고아라서 그렇다. 내 부모 아니라서 그렇다. 자꾸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상처가 돼서 그래요. 양모라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어머니가 다시 말하면 새엄마가 잘못한 것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마는,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문제다.

 

그 새엄마도 또 시집와서 어때요? 사는데 자기도 힘들겠어요? 안 힘들겠어요? 힘들겠죠. 여러분들이 자라다 한 번 재혼을 해보세요. 힘든 일이에요. 힘든 일이니까 짜증도 내고 신경질도 부리고 그렇게 되는 거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갈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지금 여기서는 새엄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나도 이제 나이 들고 살아보니까. ~ 새엄마도 참~ 아버지한테 오셔가지고 그 전처 아이들 키우고 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조금만 잘못하면 상처입죠. 그래서 그런 새엄마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이해를 하는 게 나를 치료하는 길이에요.

 

내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느냐? 새엄마를 이해하고 새엄마에 대한 은혜를 생각할 줄 알면 내 아픈 상처가 치유가 된다. 이 말이오. 그 새엄마에 대한 어떤 한이 있고, 거기에 대한 상처가 있으면 그건 지금의 내 상처가 계속 덧나고 치유가 안 된다. 그럼 새엄마하고의 상처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부부지간에도 나타나고 결국은 그것이 또 자녀에게 또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과거가 나쁘니까 현재가 나쁘고 현재가 나쁘니까 미래가 나쁘다.

 

지금 수행 정진해서 과거를 좋게 생각해버리면 어때요? 현재도 좋아지고 미래도 좋아진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은 삼생의 업을 닦는 거다. 이 말이오. 삼생의 업을 닦는 거다. 그래 첫째는 새엄마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다음에 그 은혜에 감사하고, 내가 그동안에 오해한 거에 대해서 반성하고 뉘우치고 참회하고 이런 과정이 첫째 필요하다. 그래서 내 치료를 좀 해라. 두 번째 남편에 대한 이해. 남편이 자기밖에 모르고 뭐 어쩌고, 뭐 어쩌고. 자꾸 이러는데.

 

내가 자라는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 듯이, 그 남편도 어릴 때 만약에 편안한 집에서 자랐다면 그런 식으로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길들여 있는 거요. 그에 따라서 그도 행동할 뿐이지. 거 무슨 남편이 나쁜 인간이라 그런 게 아니다. 이 말이오. 만약에 남편이 아내에게 여자에게 상냥하고 이렇게 못 했다면 남편이 그걸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나쁜 인간이라 그런 거도 아니고, 그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렇게 못 하는 그런 삶의 구조가 있다. 이런 얘기요.

 

어떤 경우든 그 사람의 자라는 환경의 입장에서 다 살펴보면, 그것이 나에게 좋던 나에게 나쁘든 그럴만한 이유는 다 있습니다. 그러고 그 사람이 몰라서 그런 행동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알고 고치려 하는데도 어때요? 그게 잘 안 고쳐지는 경우도 있다. 그게 잘 안 고쳐지는 줄 아니까 옆에서 문제제기하면 예 제가 고치려고 하면 안 고쳐집니다.” 이래 말하면 귀여운데. “난 죽어도 이식대로 살 거야.” 꼭 말을 이렇게 하잖아. 그죠. “내가 고치려고 하는데 안 된다.” 이런 말을 안 한다. “그게 뭐가 문제야.”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옆에 사람이 더 기분 나쁘다. 이 말이오.

 

그 사람은 방어벽이 있다는 거. 자기를. 그런데 그렇게 말해도 속으로는 그러면 고칠 생각이 없느냐? 그건 아니에요. 자기도 자기가 안 고쳐지니까 그냥 짜증이 나니까 말을 그렇게 정 반대로 그냥 해 질러 버린단 말이오. 그럼 우리는 또 말 갖고 또 오해를 사고 감정을 상하고 이러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을 다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마는 그중에 하나쯤은 누구? 남편 하나쯤은 어때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만하지 않느냐? 길가는 사람까지 다는 못 해주더라도.

 

그래서 그걸 꼭 내 남편이니까 해줘야 된다. 이렇게 의무감을 갖지 마라. 그냥 내 공부 삼아, 내 공부 삼아,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업식대로 살아가는데 서로 업식이 다르다. 이게 함께 살려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 조화를 이루려면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내 남편 이거 하나 정도 가지고 연습을 한번 해보자. 조화를 이루는 게 가능한지. 서로 다른 것이 인정되고 화목해지는 게 가능한지. 이렇게 수행차원에서 바라보세요.

 

안되면 ~ 이게 내가 업식에 사로잡히고나.’ 이렇게 공부 삼아 자꾸 접근하라는 거요. 이렇게 가볍게 수행 삼아, 공부 삼아 접근을 하면 안 되더라도, ‘안 되네, 다시 해봐야지.’ 이렇게 되는데. 이걸 자꾸 상대를 뜯어고쳐서 내 맘에 들도록 자꾸 하려고 하니까. 그게 뜻대로 안 되니까 자꾸 짜증 나고 화나고 미워지고 이렇게 된다는 거요. 그래서 질문하신 분은 두 가지. 하나는 양모에 대한 이해, 은혜. 그러고 남편에 대한 이해. 이런 차원에서 공부 삼아서 해보시라.

 

그렇게 하려면 자기 정진을 꾸준히 해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마장, 바뀌려고 할 때 끝에 발악을 한단 말이오. 안 떨어지려고. 업식이라는 게. 그때 눈을 확 뒤집어 놓는단 말이오. 그럴 때 거기 안 속아 넘어가야 되거든요. 그러려면 정진하는 힘이 있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