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102회 인생이 무상하고 꿈이라는데 이 꿈에서 깨고 싶습니다

Buddhastudy 2012. 11. 7. 04:18
;출처 YouTube

 

https://youtu.be/-064QlchlFw

 

 

인생이 무상하다 할 때 이 표현은 잘못된 거요. 무상이라는 뜻은 허무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상이라는 거는 하나의 과학을, 사실에 대한 객관적 표현일 뿐이에요. 어떤 존재가 영원하다든지, 변하지 않는다든지, 이런 게 아니고. 모든 이 세상의 존재는 변한다는 얘기에요. 물질세계는 물질세계대로 변한다. 이거를 우주는 성주괴공한다. 그래. 우리들의 육신은 생명은 생명대로 변한다. 이걸 뭐라고 그러냐? 생로병사라 그래.

 

우리들의 정신세계. 이 마음은 마음대로 변한다. 이걸 뭐란다? 생주이멸이라고 그래. 항상 하는 것, 영원한 거, 불변하는 거 이런 건 없어. 이 세상에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요.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모습이오. 그런데 우리가 착각을 해서 변화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 영원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자꾸 변화하니까 어때요? 고통이 된다. 이 말이오.

 

변한다고 고통이 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변하는 걸 변하지 않는다고 잘못 생각하니까 실제로는 변하니까 거기에 고통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무상이라는 말은 허무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상이라는 것은 하나의 객관 법칙을 말하는 거요. 그건 허무한 거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변하는 것을 변한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데, 변하는 거를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시간이 흘러놓고 보니까 자기 의도하고 자기 생각하고 안 맞잖아요. 그러니 고통이 생기는 거요.

 

(질문 생략...)

 

첫째 줄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모르는 소리. 인생이 무상하다는 할 때 인생은 허무하다. 그런 뜻이 아니다. 이 말이오. 인생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한다. 이게 제행무상이오. 그러고 또 인생 무상할 때 그건 인생이 허무하다. 이런 의미에요. 그래서 인생은 뭐? 살만한 가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 왜 살만한 가치가 없어요? 살만한 가치가 있지.

 

어떤 이유로 사는 거 아니오. 그냥 이렇게 사는 거요. 살 바에야 잘 사는 게 낫지, 못 사는 게 나아요? 평범하게 사는 게 낫지 불행하게 사는 게 나아요?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있게 살지 괴롭게 살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가 뭔가 움켜쥐고 하는데, 집착하는데, 그게 내 손에 잡히지를 않습니다. 잡히는 것 같지마는 시간이 지나면 또 바뀌어요. 그런 이치를 알면 생겨났다고 즐거워할 것도 아니고 소멸한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이런 얘기요.

 

새싹이 피어났다고 막~ 좋아했다가 낙엽이 진다고 울고 그럴 일이 아니다. 새싹은 새싹대로 좋고, 낙엽은 낙엽대로 좋고. 인생이 꿈이라는 것은 허무하다. 인생이라는 것은. 쓸데없는 거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인생이 꿈과 같다. 이 말은 꿈에 여러분들이 강도를 만났다. 이거야. 그래서 도망을 다닌다. 눈을 뜨고 보니 강도가 없어. 이거는 그냥 마음에서 그려진 거지 실제가 아니다. 이게 꿈이에요. 헛거다. 이 말이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저 사람은 나쁜 놈, 저 사람은 좋은 사람.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고, 하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거요. 내 업이 그려낸 그림에 불과하다. 그 실제라고 믿지 말라는 거요. 마치 꿈이 실제가 아니듯이 우리가 지금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시비분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꿈같은 것일 뿐이다. 실제가 그렇지 않다는 거요. 내 마음이 그려낸 하나의 그림에 불과하다는 거요.

 

그러니까 그거는 집착할 바가 못 된다. 이거야. 마치 꿈은 눈뜨면 헛것인 것처럼, 우리가 지금 시비 분별한 거 이거는 깨닫고 나면, 이건 다 꿈과 같은 거요.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꿈속에서 꿈이 실제인 줄 착각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도망 다닌다고 땀을 뻘뻘 흘리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생각이 그려낸 환영 속에 지금 사로잡혀서 지금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래서 꿈에서 깨듯이 이 환영에서 깨라.

 

그래서 인생살이가 사는 게 꿈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옳으니 그르니 맞니 틀리니 기쁘니 슬프니 하는 이것은 마음이 그려낸 거다. 이거야. 그건 마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났다. 은인을 만났다. 하는 거와 같은 거다. 그래서 마치 눈뜨면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다 헛 거인 것처럼 마음이 그려낸 이런 것들은 여러분들이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그냥 하나의 헛된 공상, 망상에 불과한 거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거기서 깨어나면 여러분들은 이런 괴로움에 휘둘려서 살지 않게 된다.

 

여러분들 제가 이래 앉아있지 않습니까? 그죠? 여러분들이 볼 때 내가 괴로울 일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여러분들이 보는 눈에는. 없지. 괴로울 일이 뭐가 있어? 부모가 있어? 자식이 있어? 마누라가 있어? 재산이 있어? 뭐가 있어? 얼마나 가볍고 좋으냐? 그러지마는 이 머리통 속에 들어가면 자기 나름대로 또 고민이 있나? 없나? 온갖 고민이 있어. 그죠? 북한의 굶어 죽는 애들 생각해야지. 인도 애들 생각해야지. 아프가니스탄의 것도 생각해야지.

 

~ 하나하나 따지면 뭐 온갖 여러분들은 내가 볼 땐 여러분들이 괴롭다 하면, 내가 볼 땐 그거 뭐, 그거 뭐 해봐야 집안 살림 그거밖에 아니지 않느냐. 지금 난 나라가지고 어이 되느냐? 세계가 어이 돼야 되느냐? 이 지구환경이 어이 돼야 되느냐? 그러니 내가 볼 때는 그건 고민거리도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들 나보고 뭐라고 그래? 그건 스님이 괜히 쓸데없이 혼자서 그런 생각하는 거지. 뭐 스님 그래 생각한다고 그게 뭐? 뭐할 거냐? 이거야.

 

그런 것처럼 내가 여러분들을 보면, 여기 계신 이 보살님. 뭐가 문제겠어요? 아무 문제 없지. 오늘 아침에 식사하고 오셨어요? 여기서 점심 드셨어요? 저녁 굶을 거요? 먹을 거요? 옷 입고 있지. 뭐가 문제요? 잠잘 집 있겠다. 옷 있겠다. 얻어먹든지 절에 가서 먹든 세끼 밥 먹겠다. 사실 아무 걱정도. 그런데 저 머리통 속에 들어가 보면 세상 짊을 혼자 다 짊어지고 있어. 그래서 이 마음에서 만든 병이다. 이거요. 모든 병이 다.

 

오늘 앉아서 법문 들으며 히히덕 히히덕 웃을 땐 아무렇지 않다가, 내일 아침에 진단해서 암이다. 하면 죽는다고 이런단 말이오. 암이 그러면 갑자기 생겼나? 웃을 때는 있었어요? 없었어요? 있었어. 마음이 다 짓는 거요. 마음이 암을 짓는 게 아니라. 괴롭고 슬픈 게 마음이 짓는 거다. 암이 있어도 지금 뭐 신경 안 쓰면 아무 문제도 아니고, 없어도 혹시 있을지 모른다. 이래 생각하면 밤잠이 안 오고 그런 거요.

 

의사 또 말 잘못해주면 어때요? 없는데도 밤새도록 맨날 며칠로 죽는다고 난리요. 그래서 이런 건 다 마음이 짓는 거다. 그래서 마치 꿈하고 똑같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꿈 깨듯이 이 망상으로부터 깨어나라. 이런 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