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극을 받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

Buddhastudy 2022. 5. 31. 19:33

 

 

 

오행의 생하는 것이 지나치면 독이 되듯이,

극하는 것이 너무 없으면 병이 된다.

오행의 상생상극은 중용을 요구한다.

무극불기, 즉 극함이 없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를 극하는 것, 거스르고 반대하고 거절하는 것 때문에 나는 배우고 단련되어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오행의 상생상극 두 번째

극을 받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 하는 제목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극을 받는다는 것은 도전을 받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은 도전에 대한 긍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도전이 적절하면 우리는 ..역을 키우게 되고

그것이 우리를 성공으로 인도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극을 받지 않으면, 너무 우리 인생에서 도전을 받지 않으면 단련될 수 없다.

오행은 상생과 상극이 적당히 있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만물은 극을 받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

이 그릇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가 아니라 크게 쓸모가 없다, 쓰임새가 없어진다, 이런 의미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난 극을 받지 그냥 사는대로 살겠다해도 굉장히 좋죠.

그런데 만약에 내가 쓸모 있어지겠다, 쓰임새가 있어야 되겠다고 하면

그릇을 이루려면 극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보통 이걸 역학용어로는 무극불기,

나를 극하는 것이 없으면 내가 그릇을 이룰 수 없다.

나는 나를 극하는 것을 이기고 겪어서 그릇을 이룬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이것을 극즉생이라고도 합니다.

극하는 것은 나를 찌그러뜨린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극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살려준다.

 

오행에 대입시켜보면

목극토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목생토의 작용을 한다는 것이죠.

오행의 상생상극은 겉만 보면 안 되고 그 내면, 속과 결과를 다 봐야 합니다.

, 이런 산이 있다고 생각합시다.

산은 흙으로 되어 있는데, 이 토산이 나무나 풀이 없는 민둥산이라 하면 비가 오면 유실되겠죠.

그러나 나무를 심어서 푸르게 만들어 놓으면

비가 오거나 풍화작용에도 흙이 유실되지 않고 보존할 수 있겠죠.

목생토가 결과적으로 성립한 것입니다.

 

토도 마찬가지죠.

토극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물은 흙으로 막힌다,

그래서 물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만

실재로는 토생수의 의미가 있는 것이죠.

이땐 생한다는 말은 그릇, 쓸모를 말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땜이 있다고 치면 땜을 막아서 물을 가두어 두면

홍수조절과 농업용수와 발전 등등으로 쓸모있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만물은 극을 받아야 그릇을 이룬다라고 하는 것이 여전히 토극수에도 연결되는 것이죠.

 

수극화, 물이 불을 끈다, 대단히 직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것도 수생화의 이치가 적용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자동차 엔진의 냉각수인데,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탑일 수도 있고요

물을 통해서 엔진의 뜨거움, 엔진이 과열되는 것을 막는 것, 그것이 수극화의 작용이죠

그러면 엔진이 불이 계속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극한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극즉생이 성립한다고 하겠습니다.

 

, 화극금, 너무나 잘 알죠. 금속이 불에 녹는데

화극금, 화생금이라도 이미 역학에서 표현할 정도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죠.

제철소의 용광로 속에서 엄청난 불길에 의해서 금속이 제련되지 않습니까?

금 같은 것은 천도가 넘어야 녹고, 철 같은 것은 2500도가 넘어야 녹아서 추출할 수 있으니까

순수한 금속을 이루려면 불의 제련을 통과해야 한다.

특별히 역학에서는 이 화생금의 형태를 금화교역이다.

금은 화를 만나야 순수해진다.

 

금극목,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금극목도

사실은 금생목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숲에 보면 간벌을 해서 차곡차곡 나무를 놔놨죠.

만약 빽빽하게 나무들이 자란다면 나무들이 굵게 크게 자랄 수 없을 겁니다.

키를 다투다 보니까. 충실하게 자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숲 전체의 건강성으로 보면 간벌을 해주는 것이

, 금극목을 해주는 것이 숲을 살리는 금생목의 결과가 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역학이나 이런 것들은 다 피흉추길이거든요.

흉한 것을 피하고 길한 것을 쫓아간다.

이거는 본능이잖아요. 생리가 본연의 성향인데,

그리고 그 역학적인 용어로 하면 탐생만극이거든요.

생해주는 것, 나를 도와주는 것을 탐내고 나를 극한 것을 싫어한다,

이런 뜻이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사는대로 사는게 아니라

만약에 그릇을 이루겠다고 하면

쓸모있어지겠다고 하면

무언가 단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거절당한 것을 힘들어하고

자존감도 내려가고 거절당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이지만

생각을 해보면 거절당하는 자체가, 일이 이루어져 가는 패스할 수 없는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에서도

환란 중에 기뻐하라,

환란은 연단을 낳고, 연단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성품을 이루나니라

이게 그릇을 이룬다는 정확한 의미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도전을 받아서, 극을 받아서

그것을 잘 이겨내고 단련이 되면

우리는 쓸모있어 진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앞전에는 너무 많이 도와주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건 독이 될 수 있다.

이번에는 너무 도전을 받지 않는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그것도 내가 쓸모있게 되는데 도움이 안 된다,

 

 

물론 모든 생명은 사랑받기를 원하고

지나치게 제어, 통제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 이치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또 다른 음양의 반전이 있다,

그래서 생해진다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며

극한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만물은 극을 받아서 그릇을 이룬다.

하는 이야기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