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122회 법륜스님 새해 법문 (2011 시무식)

Buddhastudy 2012. 11. 13. 04:32
출처 YouTube 

 

안녕하세요. . 새해에는 복 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시고, 복 많이 나눠주세요. . 올해는 불기2555년입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2555년이 지났습니다. 남방불교에서는 올해 아주 큰 행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지, 성불하신지 26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아주 올해는 그런 좋은 해로 큰 축제들이 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단기 4344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 왕검님께서 단군의 지위에 오른지 4344년이 되는 해다. 이런 얘기요.

 

또 올해는 서기 2011, 21세기 들어와서 첫10년이 지나고 두 번째 10년이 시작이 되는 첫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또 올해는 신묘년이라고 해서 토끼의 해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토끼처럼 가볍고, 재빠르고, 귀엽고 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토끼에게 나쁜 이미지가 하나 있는데 잘하기는 잘하는데 게으름 피우는 이미지가 있죠. 그런 나쁜 이미지는 받지 않으시기 바라고요.

 

올해와 내년은 연달아서 중요한 해입니다. 모든 해가 다 중요하지마는 특별히 더 중요하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즉, 여러 가지 예언자들이 말하는 소위 지구 멸망의 해다. 라고 알려진 게 몇 년입니까? 2012년입니다. 지구가 멸망할지, 지구가 새로운 기운으로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지, 그 멸망이 어떤 멸망인지 무지의 멸망인지, 욕망의 멸망인지, 암흑의 멸망인지 그건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마는 옛날부터 그렇게 불리든 해입니다.

 

또 한반도 주위에 있는 나라들, 한국을 비롯해서 일본도 미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바뀌는 해입니다. 북한까지 포함을 해서. 이렇게 한꺼번에 주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의 국가지도자가 바뀐다. 이것도 참 드문 해입니다. 이런 어떤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이 어떤 변화가 예고되는 그런 시대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이 변화가 긍정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나갈지, 그렇지 않으면 나쁜 방향으로 변화해나갈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지. 현재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매우 불안전한 시기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불안정성이 어떤 희망으로 나아가는 기회로 될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굉장히 위험에 빠지는 어떤 그런 위기의 상황이 될지. 현재 알 수가 없다. 이거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시대상황에 놓일수록 개인의 정진을 잘 해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림이 없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된다.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삶,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삶, 세상에 굴림을 당하지 않는 그런 주인 된 자세로 살아야 한다. 이게 첫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수행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두 번째로는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된다. 이러한 혼란을 안정시키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위기냐? 기회냐고 점치는 사람이 아니고, 그런 기회주의자가 아니고, 위기를 기회로 전화시킬 수 있는 역사의 창조자가 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디사트바다. 보디사트바는 난세일수록 빛이 나고, 어두울수록 빛이 나고, 위기에 처할수록 그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욱더 귀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더 배우고 실천을 해서 스스로에게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혼란에 빠진 세상을 바로잡아서 어리석은 중생들도 보디사트바의 도움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된다.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성불이라면 어리석은 자도 이 보디사트바에 공덕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한다. 이것이 정토다. 이런 얘기요.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내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흔들림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수행자로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될 건가? 우리 정토회에 소속 돼 있는 행자들은 첫째로 수행자여야 한다. 이런 얘기요. 이런 저런 핑계로 자신의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행복을 자기가 만들어 내야 한다. 법구경에 있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라는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늘 명심해야 한다.

 

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거나, 미움이 있거나, 분별이 있거나, 방황하거나, 하면 이거는 누구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다 나의 문제다. 내 마음이 짓는 바다. 이 원칙이 분명해야 되는데 자신의 흔들림, 자신의 괴로움을 자꾸 누구 탓으로 여러분들이 돌린다면 이것은 첫째 수행적 관점이 아니다. 이런 얘기요. 이거를 분명하게 움켜쥐어야 된다. 이걸 놓치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다.

 

이걸 움켜쥐고 있으면 흔들림이 없을 거고, 설령 놓쳐버려서 흔들렸다면, 내가 흔들리면 금방, ‘~ 내가 놓쳤구나.’ 이렇게 수행자는 마음이 가야 된다. 우리는 아직 부족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흔들릴 수가 있다. 그러나 흔들리느냐? 안 흔들리느냐? 가 수행자의 기준이 아니고, 수행자라면 흔들릴 때 자기를 본다. 이런 얘기요. 흔들릴 때 누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 자기를 보는 자다. 내가 놓쳤구나. 내가 관점을 놓쳤구나. 이렇게 봐야 수행자다.

 

백번 천번 만번 흔들릴 수가 있다. 오늘 열심히 하고 내일 흔들릴 수가 있고, 지금 결심하고 찰나 후에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의 원인을 밖으로 돌린다면 이미 그는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비록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안 그러면 어떤 지식을 쌓고 절에 오래 살고 지위가 높고 하는 거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우리는 늘 이렇게 흔들린다. 흔들린다는 것은 경계에 끄달려 버렸다. 경계를 탓하게 된다.

 

그 경계를 탓하는 게 금방 자기에게로 돌아올 수 있으면 짧게 흔들리고 제자리로 돌아오고. 또 짧게 흔들리고 제자리로 돌아오고. 이렇게 돌이키는 힘이 있어야 된다. 흔들리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돌이키는 힘이 있느냐? 이 문제다. 돌이키는 힘이 없다면 돌이키려는 생각이 없다면 그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꾸 이걸 놓친다. 그런데 그 경계, 그 경계를 남편이나 자식이나 이거는 경계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때는 다른 거는 경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일체가 다 경계다. 일체가 다 경계다.

 

여기서 일체라고 말하는 것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런 얘기요. 그것이 무슨 이유로 핑계를 대든, 그것은 부모로 탓하든 스승을 탓하든 스님을 탓하든 대통령을 탓하든 북한을 탓하든, 자신의 괴로움이 남으로부터 왔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미 수행적 관점을 놓쳤다. 그래서 우리가 이 좋은 법을 우리에게 깨우쳐주시고 알려주신 부처님께 귀의하고 그분을 찬탄하고 공경하는 것. 그리고 그 좋은 부처님의 법이 뭐냐? 바로 행과 불행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키는 거다. 그래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 내가 일으켜서 내가 받는 거다. 이걸 우리가 일체유심소조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업자득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