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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세르비아 역사 정치경제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3. 1. 12. 19:48

 

 

1. 소개

정식명칭 세르비아공화국줄여서 세르비아는

남동부 유럽의 발칸반도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로

수도는 베오그라드 (Београд / Beograd)입니다.

 

세르비아의 국기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국가 연합을 이루던 시절인

20048월에 세르비아공화국의 국기로 제정되었으며

200611. 세르비아의 헌법에 의해 채택되었습니다.

 

세르비아의 국기는 위로부터

가로로 빨강, 파랑, 하얀색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으며

왕관과 두 마리 독수리가 그려진 국가 문장이

국기 왼쪽 가운데에 들어가 있습니다.

빨강은 혁명과 민족의 피, 파랑은 하늘, 흰색은 자유를 상징하며

이는 푸른 하늘 아래 자유롭게 살기 위해

피를 흘렸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독수리의 두 머리는 하늘과 땅, 종교와 세속, 국가와 교회 간의 조화를 상징하며

흰색의 십자가는 세르비아 정교를 나타냅니다.

십자가 옆에 붙은문자 ‘C’ 4개는

단결이 세르비아인을 구원한다(Само слога Србина спашава).”

세르비아 표어에서 ‘C’로 시작하는 4개 단어를 상징합니다.

 

세르비아는 남동유럽의 발칸반도 중앙 판노니아 평원에 위치하며

구 유고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내륙국입니다.

동쪽으로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서쪽으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등과 접해 있습니다.

 

세르비아의 국토면적은 약 77km²

이는 대한민국의 약 80% 정도의 크기입니다.

2021년 기준 약 87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는, 인구수 세계 100위권 정도로

서울 인구수 970만 명보다 적은 수치입니다.

 

세르비아의 1년 총 GDP2021년 기준

600 억 달러로 세계 81위이며

1인당 GDP는 약 8700달러로 세계 77위 수준입니다.

 

세르비아의 공용어는 세르비아어이며

민족 구성은 세르비아인이 83%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외 헝가리인, 보슈냐크인 등이 있습니다.

 

세르비아의 종교는 85% 인구가 정교회를 믿고 있으며

그 외 소수가 가톨릭, 이슬람 등을 믿고 있습니다.

 

 

 

2. 역사

슬라브족이 세르비아를 포함한 발칸반도에 이주하여

부족국가를 수립한 6세기에 시작됩니다.

 

세르비아 지역은 원래 일루리아 민족의 땅이었으나

6~7세기에 슬라브족의 남슬라브계에 속하는 세르비아인이 이주하여

발칸반도의 주요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9세기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고

9~10세기 동안에는 불가리아의 속국으로 지냈으며

11~12세기에는 비잔틴제국의 보호 아래 있었으나

12세기에 단독으로 세르비아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14세기 중반, 세르비아 제국은

스테판 듀샨 대왕의 통치로 최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듀샨 대왕은 스스로 세르비아 제국을 선포 및 차르를 칭하며

동로마 제국과 맞먹는 황제국임을 선언했습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시대가

듀산 대왕의 세르비아 제국 시절이었지만

이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355. 스테판 듀샨이 급사하면서 상황은 돌변하기 시작했고

오스만투르크의 발흥에 맞서, 1389년 세르비아와 불가리아가

연합군을 형성하여 대항하였으나 코소보 싸움에서 대패하며

세르비아는 1459년부터 350년 동안

오스만트루크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세르비아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났고

1817. ‘밀로스 오브레노비치공이 자치국을 세운 이후

1876.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대투르크 반란을 계기로 투르크와 싸웠습니다.

 

이어, 1877-1878년에 일어난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자

세르비아는 불가리아 등과 함께

베를린회의에서 국제적으로 독립을 승인 받았습니다.

 

세르비아는 1882년부터

오브레노비치()가 통치하는 왕국이 되었으나

1903년 알렉산드르 오브레노비치가 암살된 뒤

카라게오르게비치()가 통치하게 됩니다.

 

세르비아는 제2차 발칸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국력을 자랑했지만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국주의 팽창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중,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의 가브릴로 프린치프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를 사살한 사건을 계기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동안 유럽은 혼란 속에 빠졌으며

전쟁이 끝난 후 유럽의 국가들은 새로운 질서를 갖추게 됩니다.

 

1918. 세르비아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일원으로 편입되었고, 이 왕국은

1929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일 국가로 묶여본 적 없는 민족 집단들은

민족, 지역 간 분란이 심화하여가며 왕위가 바뀌는 등

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3. 역사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의 점령과 분할에 맞서 싸웠으나

국내에서도 다민족 간에 군사적 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독일과 크로아티아 분리주의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였고

이어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군사정치 세력이 유고슬라비아를 장악합니다.

 

티토는 총선거를 통해 왕정 폐지를 선언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이루며

유고슬라비아 인민 연방 공화국을 선언했습니다.

 

국명은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변경되어

1992년까지 유지됩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후신인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과 구분하기 위해

구 유고 연방이라고도 불립니다.

 

티토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회주의 국가의 동맹 강화인

바르샤바조약 기구와 서방세계 사이를 45년간 넘나들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유고 연방을 통치했습니다.

 

당시, 구 유고 연방은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시켜

전반적인 봉급 수준이 동유럽 국가에서 가장 높은 국가였습니다.

 

집세와 연료비는 저렴하며,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이루어져

유고슬라비아인들은 높은 소비력으로

서유럽에 유학하거나 취업 활동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와 함께 원자재 수입비용이 크게 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경제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견제하던 티토가 사망할 무렵

동유럽 각지의 공산정권이 차례로 붕괴되면서

사회 각계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1989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민족의 발칸 지배를 향한 초민족적인 선언을 합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그 해,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여

유고슬라비아 연방체제는 붕괴되었고

다음 해 보스니아마저 독립하게 됩니다.

 

세르비아는 이에 맞서 같은 동방정교 문화권인

몬테네그로와 함께 신()유고연방을 결성합니다.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이웃 국가에 있는 세르비아인들에게

대 세르비아 결속을 외치며 군사적 행동을 촉구했고

보스니아-크로아티아 내전에 개입하여

각 지역의 세르비아인들에게 무기 등을 지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1992UN 안전보장이사회가 내전을 종식하기 위해

세르비아에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게 되고

이에 세르비아는 외교적으로 고립되며 경제난이 가중되었습니다.

 

1998년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에서

신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코소보 사태가 일어났고

이에 밀로셰비치는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UN은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고 EU도 경제제재를 결의하여

더욱 더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세르비아에서는

외교적 고립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밀로셰비치의 잔혹함이 국민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밀로셰비치는 13년간 차지한 권좌에서 물러났으며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되어

2006년 감옥에서 사망합니다.

 

밀로셰비치가 물러난 직후인 2003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외교, 국방, 대외 경제, 인권만을 연합하고

경제와 국경, 치안은 공화국 각자가 관할하는 국가 연합을 출범시켰습니다.

 

이후, 2006년 몬테네그로는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분리 독립을 결정하였습니다.

 

 

3. 정치

세르비아는 1835년 유럽 최초의 근대 헌법 중 하나인

스레테녜 (Sretenje) 헌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헌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후 시대에 따른 변화에 맞춰 다양한 헌법을 채택했으며

밀로셰비치 축출 이후

독립 공화국 실정에 맞춰 헌법을 개정하였습니다.

 

세르비아는 명시적으로 의회는 단원제

행정부는 의원내각제를 구성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의회의 투표가 아닌 국민 직선제로 선출되며

연임은 최대 2번까지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전군을 통솔하는 총사령관의 역할과

의회의 동의를 받아 총리를 지명하는 절차상의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세르비아 의회의 안건에 대해

1회에 한해 거부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의회의 재의결에 그리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여

대통령의 거부권은 사실상 무용지물로써

대통령은 상징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2021년 현재 세르비아의 대통령은

2017년에 당선된 알렉산드르 부치치 (Aleksandar Vučić) 대통령입니다.

 

세르비아는 191UN 회원국, 교황청,

몰타 기사단 및 EU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 세계의 언론들은 한결같이

세르비아와 러시아의 관계가

수 세기에 걸친 종교적, 인종적 및 정치적 동맹관계라고 말합니다.

 

세르비아 군대는 국방부에 예속되어 있으며

육군과 공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내륙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다뉴브(Danube), 사바(Sava)강 및 티서(Tisza)강을 순찰하는

강상함대(江上艦隊)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징집병에 크게 의존했던 세르비아 군대는

병력 감축과 재편성 및 전문화 과정을 거치면서

2011년에 징병 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군대는 28,000명의 현역 군인들이 복무하고 있으며

20,000 여명의 전투 예비군

그리고 약 170,000명의 비전투 예비군이 보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내 안보뿐만 아니라

몇몇 다국적 평화유지 임무에 참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레바논, 키프로스, 코트디부아르 및 라이베리아 파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세르비아는 군사 장비의 주요 제조국이자 수출국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민간인의 무기 소유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외교 부문에서 세르비아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인 NATO의 개별 동반자 관계 실행 계획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싶어 했으나

1999년에 NATO가 감행한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폭격을 기억하는 국민들의 반대가 심하기 때문에

NATO 가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4. 경제

200010월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실각한 이후

세르비아는 경제 자유화 물결 속에서 가파른 경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20001인당 GDP 1,200달러에서

2014년까지 약 6,000달러로 증가했으며

20123월에는 세르비아의 가장 중요한 무역상대국인

유럽 연합의 가입 후보 국가가 되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는데

2009년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마이너스 역성장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정부에서는 경제 위기의 영향에 맞서 고군분투했지만

공공부채가 2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경제 위기 전, GDP30% 수준이었던 부채는

70%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현재는 50% 수준으로 서서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수 870만 명 중 노동 인력은 320만여 명으로

이 중 50%는 서비스 부문, 30%는 산업부문

그리고 나머지는 농업부문에 고용되어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세르비아는 외국인직접투자 FDI

400억 달러를 끌어들였습니다.

 

투자에 참여한 우량 기업으로는

페라리로 명성을 알린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 (Fiat Chrysler Automobiles)

독일의 엔지니어링 기업 지멘스 (Siemens)

독일 대기업 보쉬 (Bosch)

미국 최대의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 (Philip Morris)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르비아는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무역 불균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며

수출액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어 유럽 자유무역연합 EFTA와 자유무역협정을

EU와는 특혜 무역제도인 CEFTA 중앙유럽 자유무역협정을

미국과는 일반관세 특혜 등을 체결하였습니다.

 

세르비아 경제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부문은 에너지 산업입니다.

 

석탄이 풍부하고 석유와 가스의 매장량이 상당한데

55억 톤에 달하여 알려진 갈탄의 매장량은 세계 5위 수준입니다.

이는 유럽에서는 독일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관광산업에서는 특별히 유명한 명소는 없지만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갖추고 있습니다.

 

2019년의 경우, 36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숙박시설을 이용하였는데, 이 중 절반이 외국인이었습니다.

관광은 주로 유명한 산과 온천에 집중되어 있으며

가장 유명한 산악 리조트는 코파오니크(Kopaonik),

스트라 플라니나 (Stara Planina)산맥 및

즐라티보르(Zlatibor) 산악지대입니다.

 

기타 관광 상품으로는 악마의 마을(Đavolja varoš)이라는

신비로운 암석지대가 있으며

세르비아 전역에 산재한 정교회 수도원을

성지 순례하는 관광 상품과

다뉴브강을 따라 즐기는 크루즈 관광 상품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