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상투메프린시페 민주공화국.
약칭 상투메프린시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서쪽으로 약 320km 떨어진
기니만 남동부에 위치한 나라로 수도는 상투메입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국기는 1975년에 공식 제정되었으며
‘상투메프린스페 해방운동’이라는 정당의 당기를 기초로 하였습니다.
국기는 위로부터 초록, 노랑, 초록이 배치되었고
노랑은 초록의 1.5 배 크기이며, 깃대 쪽에는 빨간 삼각형이 그려져 있습니다.
빨간색 삼각형은 독립을 위한 투쟁을, 초록색은 농업을
노란색은 상투메프린시페의 중요한 농산물인 코코아를
그리고 검은색 별은 블랙 아프리카의 일원임과 동시에
상투메프린시페 두 개의 큰 섬인 상투메섬, 프린시페섬을 의미합니다.
상투메프린시페는 대서양에 위치한 중앙아프리카 지역에 속하는 섬나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입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국토 면적은 약 960㎢로
이는 경상북도 영천시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2020년 기준 약 22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 세계 179위로 경기도 양주시와 비슷한 수치입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1년 총 GDP는
2019년 기준 약 4억 달러로 세계 185위이나
1인당 GDP는 1,900달러로 세계 144위 수준입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나
토착어와 함께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이 문맹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주민의 대부분은 아프리카 종족 간 혼혈이거나 포르투갈인과의 혼혈이며
종교는 인구의 90% 가량이 로마 가톨릭을 믿고 있습니다.
2. 역사
상투메프린스페는 1471년 포르투갈인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무인도였으며
1483년부터 포르투갈의 죄수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노예들의 노동생산력으로 인해 당시에는 서인도 제도에 앞서서
최대 설탕 생산지가 되기도 했으나
16세기 후반 브라질이 설탕의 주산지가 되어 농원경영자가 섬에서 철수하였습니다.
이후, 상투메프린스페는 앙골라로부터의 노예 중계 기지가 되었고
19세기에 노예무역이 폐지되면서
카카오와 커피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어 이 나라의 주산업이 되었습니다.
상투메섬과 프린시페섬은 세계 최대의 카카오 산지로 번영하였으나
두 섬의 노동 조건이 노예 상태와 다름없다는 것이 전 세계에 폭로되었고
이는 농업생산량 감소의 원인이 되며
지금의 가나 지역인 골드코스트에 그 지위를 빼앗겼습니다.
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상투메프린시페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승인되었으며
1900년대 중반 포르투갈의 해외 주가 되었습니다.
1900년대의 초기에는 모잠비크 앙골라 등
구 포르투갈령으로부터 약 3만 명의 아프리카인 노동자가 이주해와
카카오를 중심으로 커피, 코프라, 코코야자 등의 농원기업이 활기를 띄었습니다.
상투메프린시페는 포르투갈의 해외 주가 되었으나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상투메프린시페 해당 위원회(CLSTP)가 창설되었고
이들의 투쟁은 노동자들의 저임금 반대 투쟁의 형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1974년에 이르러 포르투갈 본국에서 정변이 일어나자
그해 말 잠정 정부가 수립되었고
1975년 7월 12일에 상투메프린시페는 독립을 맞이하게 됩니다.
1975년 12월의 헌법개정으로 국회의원 33명을 선출하고
초대 대통령에는 상투메프린시페 해방운동의 서기장이었던 코스타가 취임하였습니다.
코스타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여
대통령이 농업 장관, 국가개혁 장관, 노동장관 등을 겸하게 됩니다.
코스타는 1991년까지 3번의 대통령을 지냈으나
1991년 3월에 실시된 선거에서 비동맹 중립노선을 지향하는
트로 보아 다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1995년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여 장교들은
대통령 트로보아다를 비롯한 정부 요인을 체포. 5인 군사평의회를 설치합니다.
하지만, 미국과 EU의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가봉이 군사행동을 촉구하는 등의 강경 자세에 굴복하여
군부는 1주일 만에 사면보장을 조건으로 트로 보아 다에게 권력을 이양합니다.
이후, 트로보아다는 국방 장관을 해임하고 민심 수습책을 발표하였으며
19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합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된 상투메프린시페는
2003년에도 쿠데타가 발생하여
‘페르난두 페레이라’ 군부가 당시 대통령이었던
메네제스 정권 전복을 성공하는 듯했지만
역시 미국과 UN, 아프리카 연합 등의 압력으로
일주일 만에 메네제스는 대통령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군부와 정부가 권력을 분점하여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타협하게 됩니다.
3. 정치 & 경제
상투메프린시페는 독립 당시 제헌 헌법에 따라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직접적 보편적 참정권과 비밀 투표에 의해
5년 임기로 선출되며, 연임이 가능합니다.
2021년 현재 상투메프린시페의 대통령은
2016년에 취임한 에바리스토 카르발요입니다.
국가의 최고 입법 기관인 국회는 55명의 위원으로 구성
이들은 4년 임기로 선출되어 반기별로 모임을 갖습니다.
과거에는 상투메프린시페 해방 운동당만이
유일한 합법 정당으로 사실상 일당 지배체제였으나
1990년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최초로 민주개혁을 단행 다당제 국가가 되었습니다.
상투메프린시페는 독립 이래 일관하여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했지만
미개발 상태를 면하지 못하자 1985년부터 서방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모색했습니다.
대외 관계에서는 소련, 앙골라, 쿠바 등 공산국가와
전통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개방 정책을 추구할 필요성 때문에 국내의 강경좌파 세력이 감소되고
점차적으로 여러 국가와 관계 개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상투메 프린시페의 1인당 GDP는 약 1,900달러로
이는 케냐, 니카라과와 비슷한 수치로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코코아 생산이
국가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코아의 국제 시장 가격이 높은 해를 제외하고는
보통 수입이 수출을 넘어서는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국내 식량 작물 생산이 국내 소비를 충족시키기 부족하여
국가는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상투메프린시페는 인간 개발지수의 측면에서
평균적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보다 우수하여
대부분의 사회 지표들에서 발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아동이 교육 제도에 등록되어 있고, 기대 수명이 70세로 높아졌으며
대다수의 인구가 수도와 전기에 대한 접근성이 있어
앞으로의 경제 발전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적도 근방의 대서양에 위치한 상투메프린시페는
가봉의 북서해안에서 30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세이셸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국가로
상투메와 프린시페 두 섬과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투메 섬 바로 남쪽의 룰라스섬이 적도에 걸쳐 있습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기후는 열대 기후로
1년 내내 기온이 27도 내외이지만, 가장 더울 때도 32도를 넘지는 않는 편입니다.
습도는 높은 편이나 밤에는 기온이 낮아 서늘하며
6월~9월, 그리고 12~2월이 건기에 속합니다.
우기는 3월~5월, 10월~11월이며
평균 강수량은 남서부 지역이 연간 500mm, 북부 지역이 1,000mm 정도입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음식문화는 아프리카와 포르투갈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로즈도스(Arroz doce)로 불리는 쌀 푸딩은 전통적인 아침 식사요리로
달콤한 옥수수와 코코넛이 아로즈 도스를 준비하는 데 사용됩니다.
일반적인 식사는 카사바, 빵, 그리고 생선구이로
상투메프린시페의 주요 식품에는 해산물, 조리된 바나나, 옥수수 등이 포함됩니다.
뜨거운 향신료는 대부분 요리를 준비하는데 사용되는데
특이하게도 일부 요리에는 향신료로 커피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또 다른 전통 요리에는 칼룰루(Calulu)가 있습니다.
칼룰루는 건조한 생선 또는 말린 고기를 재료로
토마토, 양파, 마늘 및 다양한 향신료로 맛을 냅니다.
칼룰루는 일반적인 가정식임과 동시에 결혼식 등에서도 제공되며
외부인들에게는 풍부한 진미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문학과 시는
풍부한 루소폰(lusophone) 아프리카 문학으로 여겨집니다.
로마 제국 시절, 포르투갈 지역을 두고 ‘루시타니아’ 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에서 유래하여 ‘루소(luso)’는
현재도 포르투갈을 의미하는 형용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루소’라는 단어와 언어를 뜻하는 ‘폰’이 합쳐진 ‘루소폰’은
포르투갈과 브라질을 포함하여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상투메프린시페에서는
유명한 루소폰 아프리카 문학가
‘프란시스코 호세 텐 레이로 (Francisco José Tenreiro)’ 가 있습니다.
그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의 지리학자이자 시인으로
‘아프리카의 심장’이라는 시를 통해
국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5. 인물
상투메프린시페 출신의 유명한 인물로는
누누 산투로 알려져 있는 축구감독.
‘누누 에를란데스 시몽이스 이스피리투 산투’가 있습니다.
그는 현역 시절의 포지션은 골키퍼였으며 무리뉴가 이끌었던 FC 포르투 시절.
팀의 세컨 키퍼로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일조하였습니다.
선수 시절은 포르투갈 리그와 스페인 리그에서 뛰었으며
감독 경력으로 여러 팀을 거치다가 현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유일한 비백인이자 아프리카계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누누 산투는 포르투갈령 상투메 프린시페 시절인 1974년
상투메에서 태어나 기마랑이스의 비토리아 SC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으며
그의 국적은 상투메 프린시페와 포르투갈 국적으로 이중 국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20살 때부터 포르투갈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누누 산투는
20대 중반에 접어들어
1999년부터 스페인 2부 리그인 CP 메리다와 CA 오사수나 등을 거쳐
골키퍼로서 경력을 쌓은 후 2002년 호세 무리뉴가 이끌던 FC 포르투에 영입됩니다.
비록 FC 포르투의 메인 골키퍼는 아니었지만
시즌 중 세컨 키퍼로서 여러 활약을 한 누누 산투는
FC 포르투를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는데 일조하며
이후 러시아 명문 팀인 디나모 모스크바로 이적합니다.
남은 선수 생활 동안 러시아 리그와 포르투갈 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2010년 36세로 은퇴하며 골키퍼 코치로서 스페인의 말라가 CF와 계약합니다.
2012년 5월 누누 산투의 본격적인 감독 행보가 시작되는데
포르투갈 리그의 히우 아브 FC를 맡으면서
그는 팀을 이끌어 팀 역사상 최초로 UEFA 유로파 리그로 진출시켰습니다.
중위권의 팀으로 높은 성과를 거둔 누누 산투는
여러 곳에서 관심을 받게 되는데
2014년부터 세계 4대 리그 중 하나인
스페인 라리가의 발렌시아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그는 쟁쟁한 팀들이 있는 라리가에서
발렌시아를 맡은 첫 번째 해에서 4위라는 성적을 거두었고
리그 중 레알 마드리드와 치러진 홈/원정 두 번의 경기에서도
1승 1무로 패배를 하지 않은 기록을 만들며
이달의 라리가 감독으로 세 번이나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발렌시아로 4위라는 결과를 만든 후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해서 성적이 좋지 않았고
자리에서 경질된 후, 잠시 FC 포르투에 머물렀다가
2017년부터는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튼을 맡게 됩니다.
잉글랜드 1부리그인 프리미어에서도 그는
이달의 프리미어 리그 감독으로 수 차례 선정되었으며
1980년 이후 처음으로 울버햄튼을 유로파 리그 진출을 하는데 성공 시킵니다.
2021년 울버햄튼과의 계약을 종료한 그는
이후로도 에버턴이나 토트넘 등 많은 팀에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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