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우주로 간 달마 1화 네 마음을 내놓아라

Buddhastudy 2023. 9. 14. 19:39

 

 

오늘은 단다예 김중걸님의 소설

<우즈로 간 달마> 1권을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마음을 내놓아라.

 

"사부님 드디어 문제를 풀었습니다"

커다란 바위를 타고 포물선을 그리며

곤두박질치는 서늘한 추풍에 우수수 사지를 떨어대는 소나무!

그 사이 사이를 뛰어오르며 괴성을 질러대는 잔나비들!

평온한 심산유곡에 때아닌 사람의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누런 가사를 펑퍼짐하게 둘러매고 아슬아슬하게 비탈길을 오르는 승려!

그의 이름은 혜가이다.

 

구슬땀이 알알이 맺혀 비 오듯 쏟아져 내리건만

얼굴엔 기쁨이 가득 넘쳐 환희에 차 했다.

무슨 좋은 소식이기에 숭산이 가하는 중력의 압박도 잊은 채

아찔한 벼랑 끝을 아슬아슬하게 타오르고 있는 것인가!

천길 벼랑 끝에는 석양을 등지고 바위처럼 꿈쩍 않고 앉아 있는

신비로운 자태가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다.

솔잎으로 뒤덮여 그 형상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는 틀림 없으리라.

 

그의 이름은 달마!

벼랑길을 오르고 있는 혜가의 스승이다.

달마는 520년 경에 남인도 향지국에서 이곳 숭산의 소림사로 건너와서

몇 년째 수도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가 혜가를 처음 만난 것은 소림사 경내에서다.

그때 혜가는 신광이란 이름의 승려였는데

인도에서 왔다는 달마를 업신여기며 자신의 박식함과 깨달음을 자랑하곤 했었다.

경전을 해박했던 혜가였기에 그는 불교 경전 곳곳을 인용하며

달마를 굴복시켜 보려 했다.

부지불식 중 달마에 대한 경계심이 컸던 까닭이리라.

 

달마는 늘 묵묵부답으로 대하다가

하루는 이런 신광이 안쓰럽게 보였던지

굳게 다물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경전이라?..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먹이로다.”

 

신광은 자신이 신성시하는 경전을 모욕하는 말을 듣자

더욱 격분하여 경전의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달마는 갑자기 붓에 먹물을 찍어서는 종이 위에 떡을 한 개 그리더니만

신광의 코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림에 그려진 떡'을 먹어 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신광이 깜짝 놀라며 무슨 뜻인지 몰라 주저하고 있자

달마는 신광을 한번 빤히 바라보며 웃고는 고개를 돌려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신광의 머릿속에는

달마가 그려준 '그림의 떡'이 계속해서 맴돌기 시작했다.

부지불식중 그 '그림의 떡'은 신광의 화두가 되어 온 몸에 각인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광은 불현듯 실상과 허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경전이란 중생을 해탈로 인도해 주는 진리의 가르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가르침에 얽매여서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면 그 용도를 다한 것이거늘..’

 

경전에 매어 또 다른 허상에 빠져 있던 신광!

그는 자신에게 깨우침을 준 달마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제자로 거두어 줄 것을 간청했다.

신광의 근기를 알아본 달마는 그에게 혜가라는 법명을 내려주고 제자로 삼았다.

그리고 그에게 참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선법(禪法)을 가르쳤던 것이다.

 

사부님, 제가 눈을 떴습니다. 눈을······.”

칡넝쿨을 당기며 벼랑끝 너럭바위 위로 모습을 드러낸 혜가는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말을 뱉었다.

그러자 망부석처럼 굳어있던 달마의 몸뚱이에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수북이 쌓인 솔잎들이 하나둘씩 땅에 떨어지더니 이윽고 달마는 깊은 선정에서 깨어났다.

 

혜가가 아닌가?

네가 여긴 어인 일이냐?”

사부님, 어인 일이라니요, 제가 눈을 떴습니다. 눈을요······.”

혜가는 손가락을 고추 세워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네 눈이 감겨 있던 적이 있었던가? 어인 호들갑이냐?”

물론 늘 뜨고 있었지만 뜨고 있단 사실을 여태껏 알지 못했으니

장님이나 마찬가지였습지요.”

그랬더냐? 허허.”

 

달마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능청스럽게 반응을 하고는

다시 선정에 들어 가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자신의 견성에 별다른 반응이 없는 달마를 보자 혜가는 초조했던지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사부님, 이제 문제를 풀었으니 법을 완성한 듯합니다.”

문제를 푼 것이 정녕 사실인가?”

예 틀림없이 제 본성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혜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스승이 반응을 보이자 금세 화안열색이 되었다.

이제 스승으로부터 견성의 인증을 받으면

자신은 일개 수도승에서 대사의 칭호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스승의 법맥을 이을 수제자로 낙점을 받아

후대에 길이 그 이름을 빛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감격스러운 순간이 지금 목전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다. 너는 누구이냐?”

조금 전 가볍게 툭툭 던지던 목소리와는 달리

달마의 음성은 어느새 묵직한 저음이 되어 주변에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저는 불()입니다.”

혜가는 기다렸다는듯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이라?··· 그렇다면 불()은 무엇인고?”

 

혜가는 이미 예상했었던 질문이라고 생각하였던지 입가에 미소를 슬쩍 띄우고는

달마의 질문을 자신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란 분별을 벗어난 하나의 생명 즉 일심(一心)을 말합니다.

상대가 끊어져 절대의 경지에 머무르는 실존이 옵니다.”

혜가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달마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정답이라고 확신은 했지만 늘 자신의 허점에 비수를 날리던 스승이 아니던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네가 불()인 것을 어떻게 보았느뇨?”

 

달마의 질문에 혜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일순간에 불()이 되었습니다.

화두참구의 궁극에 이르러 가아(假我)의 꿈에서 깨어나 삼라만상의 바탕이 되어

실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닫고 나니 제가 곧 진리이며 시작과 끝임을 알았습니다.”

 

혜가의 대답이 끝나자 이내 달마의 질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영생을 얻었느냐?”

,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열반을 얻었느냐?”

, 그러하옵니다.”

 

달마의 연속된 질문에 혜가는 자신이 득도하였음을 거리낌 없이 바로바로 답했다.

그런 혜가를 보고 달마는 웬일인지 잠시 하던 질문을 멈추고는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고유한 정적이 둘 사이에 흘렀다.

정적 사이로 간간이 바람이 방향을 바꿔가며 홍엽(紅葉)을 두드리고 산짐승 소리가

장단을 맞추었다.

혜가는 숨을 죽이고 스승의 하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의 하문에 따라 자신의 앞으로의 거취가 결정 날 것이다.

혜가는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마른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달마는 제자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선정에 들어 가부좌를 틀고

바윗돌처럼 앉아 있는가 싶더니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띄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노심초사 불안했던 혜가는 스승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신이 분명 법인(法印)

받게 된 것으로 확신했다.

 

허허, 네가 한 소식 들은 것이 맞긴 맞구나. 기특하도다.”

드디어 스승의 법인이 떨어진 것이다.

혜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에 힘을 꾹 주며 억눌렀다.

이제 자신도 어엿한 법승이 아니던가!

이미지 관리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사부님의 한량없는 가르침 덕분이옵니다.”

혜가는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리며 스승의 가르침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혜가야.~”

갑자기 들려온 달마의 음성!

스승으로부터 법인을 받은 줄로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혜가는

반전을 일으킬 것만 같은 달마의 말투에 잔뜩 신경이 곤두섰다.

또 다른 비수가 날아오지는 않을까 긴장하며

의심스런 눈길로 스승을 바라봤다.

 

네가 분별의 꿈에서 깨어나 너의 참 모습을 본 것은 맞도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한 가지 한 가지 묻겠노니

너는 네가 본 본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느냐?”

증명이요?”

혜가는 본능적으로 스승의 반격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챘다.

이제 방어에 사활이 걸렸다.

 

그렇단다.

내가 너의 득도를 인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네가 스스로 너의 득도를 증명해야 마땅한 것이 아니겠느냐?”

사부님, 조금 전에 제가 깨달은 바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허허. 네가 방금 전 말한 내용은 이제 갓 산사(山寺)에 발을 디딘 행자승은 물론이고

제가의 일반 속인들도 웬만하면 다 아는 내용이 아니더냐?

그런 걸 가지고 어찌 너희 득도를 증명했다 할 수 있겠느냐?”

 

사부님, 제가 분명히 가아(假我)의 꿈에서 깨어 불()의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그 이상 무슨 증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수행은 일관되게 주관적 행()이고 그 결론 또한 주관적 성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무슨 남들에게 보여줄 증명 따위가 필요하겠습니까.”

혜가는 자신이 득도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증명하라고 하는 스승의 말에

순간 가슴속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성취한 바를 몰라주는 스승에 대한 원망 같기도 하고

아니면 뭔가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그렇지 않았을 때 생기는

자괴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혜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스승에 대한 불순한 생각을 얼른 지워버리고

자세를 다시 고쳐 잡고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스승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혜가야, 네 말이 모두 맞단다.

수행의 시작과 끝은 주관에 머문단다.

그렇다면 네 주관에 다시 묻겠다.

네가 본 불성은 어떤 원리로 영생할 수 있겠느냐?”

스승의 질문은 한치의 빈틈도 주지 않고 혜가의 마음을 찌르고 들어갔다.

혜가는 무엇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거야 불성은 절대이기에 자 존하고 그러므로 영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무엇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닌 스스로 존재하는 제1원인이기에

당연히 영생의 존재입니다.”

혜가는 자신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지 짐짓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냐? 그럼, 네가 본 불성 이전에

또 다른 무언가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느냐?”

 

혜가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사부가 자신의 견성을 믿지 못하여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부님, 어차피 마음을 탐구하는 것은 형이상학이 아니겠습니까?

불립문자의 영역이라 하지요.

그럴진대 어찌 언어로써 표현할 수 있겠으며 어찌 일일이 증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증명할 수 없다면 네가 이룬 경지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제가 분명이 보았습니다. 다만 증명할 수 없을 뿐입지요.”

네가 보았다는 것은 너의 주관일 뿐이고 증명이 안 된다면 어찌 확신을

할 수 있으리오.”

 

멈출 줄 모르는 달마의 질문은 어느덧 비수가 되어 혜가의 가슴에 꽂혔다.

마치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여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기라도 할 듯

인정사정없이 매섭게 몰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