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우리의 에너지는 갈등으로 낭비되고 있다

Buddhastudy 2023. 9. 19. 19:24

 

 

외적인 사회생활도 피곤한 일이다.

오늘날의 일이란 대부분 감정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으로도 우리는 정신적 에너지의 고갈을 느낀다.

그것은 사회화의 결과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바람직한 모습으로 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내면화된 사회의 압력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의 에너지는 새어나가 버린다.

그런 격차, 속박, 부자유를 인식하고 불편해질 때

자유를 향한 여행이 가능한 에너지가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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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의 에너지는 갈등으로 낭비되고 있다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날 정신적인 노동을 합니다.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게 아니고.

근데 육체적 노동을 하면 보통 피로해진다,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근데 정신적인 노동은 피곤해진다, 이런 표현을 쓴 거죠.

이 피곤할 곤 자라는 게

나무 나무가 이 틀 안에 갇혀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피곤은 정신적으로 갑갑하다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지식 노동을 주로 하니까

근데 지식 노동의 대부분은 사실은 감정노동이죠.

서로 소통해야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또 협업해야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무수한 또는 상당한 정도의 감정노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은 집에 퇴근해서 돌아오면

아무 말도 하기 싫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사람이 늘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에너지는 항상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지쳐 있죠.

그래서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정신노동이 곧 감정노동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사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과

나의 의지와 의지 또는 욕구와 욕구가

부딪히고, 그걸 조절하고, 때로는 싸워야 되고 하는

대립과 투쟁과 갈등이라고 하는 게 없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리더, 지도자를 따라보기도 하고

어떤 이론을 채택해서 내가 그 어떤 이론적인 방패를 삼기도 하고

어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나만의 어떤 독특한 기준을 가지기도 하고

이렇게 하지만

어쨌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겪는 어떤 갈등적인 국면 같은 것은

우리의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소모시킨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근데 외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 마음공부 쪽에서는

내적인 갈등으로도 우리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내적인 갈등은

특히 조금 내성적이고 또 사실은 조금 착한 사람들? 남들 보기에?

그런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사람들에게는

as isto be

지금, 현재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하는 두 개가 갈라져 있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가야 해라고 하는 내적인 어떤 압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몸은 거기 따라가지 못할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에는 또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심지어는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처벌할 수도 있는

이런 내적 구조가 되어 있어서 조금 더 복잡하다.

그리고 에너지가 그쪽으로 새어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as isto be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그게 교착 상태가 되는 거고

서로 마주 보고 부딪히면 내적으로는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고

또 어느 쪽으로도 못 가면 표류하는 것이고

이렇게 되는 것이죠.

 

특히나 이 세상에서 사악하지는 않게 노력해서 성공하고 싶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인 갈등이

에너지를 잡아먹는 하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너무 긴장하면 안 된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또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한탄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유사시에는 너무 긴장하거나 긴장하면 얼어붙죠.

또는 스토리텔링 한탄을 하거나 하는 건

둘 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죠.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집중해야 된다.

집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시시각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 모든 것에 에너지의 문제가 있고

이게 지쳐버린 상태에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이

그것도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자가 들어가잖아요.

그 힘이 없어질 수 있다.

그러면 슬퍼지거나 분노에 빠지는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될 수가 있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건 뭐다?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렇다.

 

그런데 인간은 그걸 에너지라고 말하지만

마음의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신바람, 심령 이런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인간은 어떨 때에 신바람이 나냐? 또는 기운이 나냐?라고 보면

한 세 가지 정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투쟁할 때, 역설적이게도 싸울 때 우리가 힘이 납니다.

왜냐하면 적을 통해서 내가 살아 있다

또는 내가 적과 싸우고 제압하면서 내가 힘이 있다라고 하는 그걸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적과 투쟁할 때 나는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는 여러 가지 형태의 도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이 자아라고 하는 것은 항상 좀 부담스럽고 무거운 짐이죠.

근데 그 자아를 일시 내려놓을 수 있는 자아 도피일 수도 있고

어찌 됐건 잠깐 제쳐놓을 수 있는 그런 상태

 

예를 들면

술을 먹는 거 그죠?

마약에 취하는 거

육체적 쾌락에 탐닉하는 거

또는 철학이라든지 종교라고 하는 것에 이렇게 깊이 들어가는 것

 

전부 우리가 도피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잠깐 자기를 잊어버릴 수 있는

물질적인 또는 정신적인 모든 문화적인 모든 것들을

그걸 통해서 또 기운을 또 좀 회복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세 번째는 조금 더 건전한 방식인데

우리가 노력해서 실제로 내 앞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이럴 때 환경을 극복하는 지성의 힘을 발휘했는데

그것이 통해가지고 문제가 해결되고

이럴 때 엄청난 효능감을 느끼면서

또 기운이 올라오게 됩니다.

 

 

하여튼 우리는 기운이 부족하다라고 생각하고 항상 피곤하지만

싸울 때, 도피할 때, 그리고 성취할 때,

부분적으로는 우리는 힘을 느끼고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렇게 사회에서는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내적으로, 내면적으로는 뭐냐 하는 것이죠.

우리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큰 업적을 이룰 수도 있고 성취를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보면은 사소한 버릇, 습관 하나를 쉽게 고치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저 같은 경우는 맥심커피, 믹스커피를 여전히 끊지 못하고 있는

필요한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변해야 한다라고 하는 생각은 있지만

변화를 위해서 내 몸을 바꾸고 내 행동을 바꿀 정도의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바깥 사회생활에서 너무 지쳐버렸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더군다나 나의 내면 또한 복잡하다.

내적인 갈등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해 버렸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나는 성경과 불경을 읽고, 또 마음공부 책을 읽고, 마음이 한껏 고양돼서

평화가 중요하다.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지, 남과 싸우지 않아야지, 미워하지 말아야 돼, 사랑해야 돼

뭐 이렇게 해서 굉장히 마음의 흐뭇한 상태가 되어서

아침에 그렇게 해서 출근을 하게 되면

그 순간에 바뀌죠. 바뀐다기보다 박살이 나죠.

 

그래서 내가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이상

to be를 갖고 있지만

as is 실제는, 실제 모습은 눈앞에 미운 놈이 보이고

그러면 또 화가 나고

그것 때문에 다른 일도 막 엉망이 되고

그러면서 마음이 지치고, 피곤하고, 행복하지 않은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있는 것과 있어야 될 것 사이의 긴장이

결국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소모, 에너지의 소진 이런 것들로 다가와서

남아있는 에너지가 없으니까

뭔가 나의 어떤 습관을 바꿔보려고 해도 쉽지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있어야 될 모습의 사이에 간극이 크면 클수록

그것이 나를 이끌어가기보다는 자책하게 만들고, 대립하게 만들어서

에너지가 글로 다 새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이나 관념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내면에는 해악이 될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그래서 규칙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원칙을 강하게 견제하는 사람, 이런 선을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은

항상 싸울 준비,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투쟁이 조금은 나에게 힘을 그 순간에는 줄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나의 어떤 삶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다 그쪽으로 빼앗아 가 버리는

그런 사실이 되겠죠.

 

이걸 마음공부에서 그러면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되느냐?

결국은 나라고 하는 것은 속박되어 있다. 그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싸우거나 도피하거나 성취할 때 말고는

나의 에너지는 이렇게 as isto be 사이에 걸려서 다 세워나가고

뭐라 그럴까 exhausted, 번아웃, 남아 있는 에너지가 없다.

 

가장 큰 것은

내가 사실을 취급하지 않고

바람직한 것, 당위를 자꾸 내세움으로써

자꾸 이 격차가 벌어져서

그 격차 사이로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뭔가를 바뀌어진다, 변화한다고 했을 때는

바람직한 모습이 바뀌는 게 아니고

있는 지금의 모습만 우리가 다룰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부분을 놓치면 토대가 없어진다. 사실적인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이 사회 체제에 잘 수능하고 습득하면 학습하면

그 사회 체제가 우리에게 보상을 해주잖아요.

그래서 먹고살 만해집니다.

 

무의식 중에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크게 튀지 않고, 대립하지 않는

즉 잘 사회화되면

그 사회로부터 상당한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비교적 안전하게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무의식 중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야생성 그죠?

길이 없는 곳을 자기 발로 길을 열어가는 그런 야생성

또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힘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안전과 불편함 사이의 뭐랄까?

시소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교적 안전하고 좀 불편해도 참을 만하고

만약 이렇게 살아가도 되겠다라고 하면 문제가 없는 거죠.

변화도 불가능한 것이죠.

 

근데 점점 불편해져

그리고 내가 점점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러면 알면 알수록 더 불편해지고

더 불편해지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행동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겁니다.

 

불편하고 부자유스럽다라고 하는 인식이 강해지면

그 감수성이 굉장히 커져서 감정이 생기게 되는데

그 감정이 emotion 아닙니까?

emotione가 아웃, 밖으로 이런 뜻이고

motion이 행동이잖아요.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행동이 되어서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그 무엇이거든요.

그게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수성이 열려야 행동할 수 있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아까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그죠?

그리고 내가 불편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그래서 내가 행동해야 되겠다라고 하는 것이 충분히 성숙되면

그것은 자유를 향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래서 불편하다거나,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괴롭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하는 것들은

사실은 좀 역설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새로운 여행길, 자유를 향한

혹은 자유로운 여행길로 가게 해주는 문일 수도 있다.

결국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안전이 너무나 나에게 중요해서

좀 불편해도 자유롭지 않아도

혹은 이건 아닌데 싶어도 그건 중요하지 않고

나는 안전하게 살래라고 하는 가치가 압도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나는 자유롭고 속박되지 않은 삶이 필요해.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너무 불편해 라고 하면

그 불편함이 여러분들을 움직여서

자유를 향한 여행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에너지는 거기서 나온다. 그죠?

에너지는 정서, 감정에서 나온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현대인들은 그러니까 너무나 이성적이고, 너무나 계산적이어서

감정을 거의 이렇게 죽여버렸는지도 모르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오늘 주제는

내가 만약에 심리적인 에너지가 없다고 느낀다면

나는 진정한 의미의 불만, 불편 그리고 속박이라고 하는

느낌을 느끼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자라는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