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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고대 그리스의 매춘

Buddhastudy 2023. 10. 12. 19:25

 

 

서양의 고대를 대표하는 문명이며

유럽 문명, 문화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는

기원전 800년경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택한 정치 방식은 초기에는 귀족정이었으나

식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평민들의 권한이 확대되었고

이에 아테네에서는 민주정

스파르타에서는 과두정의 형태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아테네를 비롯한 큰 폴리스들은

상공업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해 나갔는데

그중 고대 그리스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업종으로 매춘이 있었습니다.

 

주요 도시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은 항구들에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매춘부로 고용되었으며

이들은 경제 활동의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매춘은 은밀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으며

사람들은 사창가를 비난하지 않는 대신

규정을 도입하여 합법화했습니다.

 

기원전 600년경에 활동했던 솔론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

아테네의 민주주의 기초를 닦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정치가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아테네는

농업 위기로 인해 경제기반의 붕괴와 사회분열로 인해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솔론은 세력이 약했던 아테네를 일으키기 위해

살라미스를 둘러싼 메가라와의 항쟁에서 승리하며

이후, 개혁을 추진하여 전반적인 산업구조 전체를 변혁시켰는데

그는 가격이 규제되는 국가 매춘업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매춘은 여성의 경우에는 전 연령층에서 종사하였으며

남성의 경우에는 젊은 남성들이 매춘부가 되어

주로 남성 고객을 상대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아테네에서는 자유로운 여성과의

혼외 관계는 심각하게 다루어졌습니다.

간통의 경우, 남편이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할 때

상대 남자를 죽일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졌습니다.

 

간통한 여성들 또는 매춘부들은

결혼이 금지되었고

공적 의례들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남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30세였는데

이들은 자신의 아내 이외

다른 여성과 성적 관계를 갖는 경우에는

노예와 매춘부를 만날 수 있었으며

일반적인 여성과의 간통인 경우에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매춘부들은 그 종류에 따라 몇 가지 등급이 있었습니다.

최하 계층의 매춘부는 포르나이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소득의 일부분을 가져가는 포주의 소유물이었습니다.

포르나이라는 단어는 팔다라는 뜻을 가진

페르네미(πέρνημι)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포주는 시민이 될 수 있었으며

이들의 활동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득원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고전기에 포르나이는

이방인 출신의 노예들이었으며

헬레니즘 시대부터는 일반 시민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팔리게 된 어린 소녀들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포르나이는 보통 아테네의 항구인 피레우스(Piraues)

혹은 아테네의 케라메이코스(Kerameikos)와 같이

그 시대의 홍등가에 위치한 윤락업소들에게 고용되었습니다.

 

포주에 고용된 포르나이 보다

거리에서 일하는 독립적인 매춘부는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잠재적 고객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하여

매우 화려한 화장을 사용했습니다.

길거리의 매춘부들은 다양한 출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일을 찾지 못한 외국인 거주자 여성들, 가난한 과부, 혹은 포주로부터

독립하는데 성공한 포르나이들이었습니다.

포르나이보다 한층 자유로운 상태에 위치한 길거리 매춘부들은

아테네 도시에 등록되었고,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보다 더 비싸고

독점적인 특성을 가진 매춘부로 헤타이라가 있었습니다.

동반자라는 의미의 헤타이라

낮은 계급의 매춘부들과는 달리

개별 고객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성과 함께 우정을 제공했습니다.

 

헤타이라는 종종 교육을 받았으며

자신의 재산을 직접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활발한 매춘업이 이루어지는 아테네와는 다르게

초기의 스파르타에서는 매춘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금속과 화폐의 결여, 그리고 리쿠르고스(Lycurgus)가 도입한

엄격한 도덕적 체제로 인해

스파르타는 성에 관해 엄격한 잣대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4세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스파르타 시민들도 점차 경제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매춘부들과 접해지기 용이해졌습니다.

 

스파르타의 사창가는 헬레니즘 시대까지

타이게투스(Taygetus) 언덕의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Dionysus) 신전 근처에 존재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매춘업으로

가장 활발한 도시는 코린토스였습니다.

코린토스는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던 폴리스이자

현재 그리스에도 존재하는 도시 이름입니다.

고대 도시국가 코린토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중간에서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게 펼쳐진 땅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지협의 교통과 교역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아테네, 테베와 경쟁하며, 까만 형상 도기를 주로 수출했는데

이후 아테네 장인들에게 시장을 잃게 됩니다.

 

무역 경로를 차지하고 있는 덕에

상업이 많이 발달한 코린토스였지만

고대 그리스 세계의 양대 강국인 아테네, 스파르타로 인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진 폴리스였습니다.

 

그리스 세계에서 3번째 국력을 자랑한 코린토스에는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사원에 있었습니다.

 

 

 

아프로디테의 신전은 매우 부유했으며

천 명이 넘는 헤타이라를 고용했습니다.

이러한 헤타이라들은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바쳐진

남성들과 여성들이었습니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아프로디테 신전의

헤타이라를 보기 위해 코린토스에 방문했고

이로 인해 도시의 부는 증가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사창가는 수많은 저자들에 의해 기술되었는데

그 모습은 폼페이에 보존된 로마의 사창가

, 어둡고 좁으며 악취를 풍기는

장소들과 유사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매춘부를 가리키는 많은 은어들 중 카미타입스(khamaitypếs)

바닥에 엎드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용어는 더 이상 이들보다 낮은 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시사 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매춘은 합법적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

일반적으로는 노예 취급을 하거나 시민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작품 속에서도 등장합니다.

그리스 희극은 시대별로 Old Comedy 희극인 고기희극부터

중기희극을 거쳐 New Comedy 신기희극으로 나누어집니다.

-고기희극은 주로 정치적 주제들과 관련되었지만

-신기희극은 개인적 주제들과 아테네인들의 일상을 다루었습니다.

 

희극에서의 사회적 관습은 좋은 신분을 가진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금해졌기 때문에

연극 내 거리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유일한 여성들은 필연적으로 매춘부들이었습니다.

 

또한, 작품 속 캐릭터 설정으로

주연의 어린 시절 소녀 친구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에는 어릴적 자유롭고 도덕적이었으나

해적들에 의해 매춘부로 전락하는 역할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작품 내 매춘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탐욕스러운 역할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매춘부들의 캐릭터들은

행복한 결론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채널 내 재생목록 세계사에 있는

지난 스파르타 역사에 이어

코린토스 전쟁을 다루기 전

아프로디테 신전 성업을 이루었던

코린토스 및 그리스 매춘업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매춘은 은밀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으며

도시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분위기도 각기 달랐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아테네에서는

포르나이, 헤타이라 등의 활동들이 활발하여

추후, 연극을 통한 문학작품에도 등장했으며

엄격한 사회적 잣대를 이루고 있었던 스파르타에서는

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제3의 도시국가인 코린토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프로디테 신전의 헤타이라를 보기위해

코린토스를 방문하였고, 이로 인해 도시의 부는 증가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