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비이원 시크릿] 부정적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Buddhastudy 2023. 12. 12. 19:43

 

 

 

이번 영상은 저희 아카데미 강의실에서 찍고 있어요.

조금 더 쾌적해요, 이 공간이.

사무실에서 찍는 것보다는 넓으니까.

 

, 여러분 오늘 이 영상의 주제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법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부정적인 감정을 접하게 되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죠.

 

수많은 책들이 있고, 수많은 심리적인 그런 기법들

그런 것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부정적 감정에서 빠져나와야 되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이 많습니다.

 

근데 제가 지금 이 영상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아주 기본적인, 근원적인 원리예요.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하나 느낍니다.

힘들어요, 미칠 것 같아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죠.

 

이유가 뭘까요?

근본적인 어떤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렇죠?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뭐냐면은

감정이나 느낌, 생각, 의도 아니면 심지어는 행위

이런 것들을 할 때

우리 안에서 순식간에 하나의 동일시가 일어나 버립니다.

그 동일시의 공식이 뭐예요?

I AM THAT이에요.

I AM THAT I AM = 나는 내가 나라고 규정하는 이것이다.

I AM THAT= 나는 이것이다.

라는 동일시가 일어나 버립니다.

그럼, 이 동일시는 왜 일어날까요?

사실 이 동일시가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 자체가 나타날 수가 없어요.

 

개체존재 이 개아라는 어떤 렌즈는, 개아라는 채널은

어떤 하나의 규정과 나라는 느낌이

동일시가 됨을 통해서

세상을 나타내고 관찰을 하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나 느낌, 생각

이런 것들이 나타날 때

그것과 내가 동일시 되어버리는 현상 자체는 절대로 나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현상이 없으면 뭐예요?

세상 자체가 기능하지 않아요.

 

?

상대성이 작용하지 않고, 이원성이 작용하지 않으면

우리가 체험하는 우리가 관찰하는

이 이원적인 세상 자체가 나타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동일시

우리 안에 등장하는 모든 내적인 움직임,

이 현실을 출력해 내는 본래 요소인

심층 무의식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관념들의 움직임들은

나는 이것이다라는 규정을 통한 동일시가 없이는

세상으로 그 형태를 드러낼 수가 없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동일시 자체는 나쁜 게 아니란 얘기예요.

 

문제는 뭡니까?

어떤 하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딱 나타났을 때

그것과 동일시가 딱 돼버리면서 뭐예요?

I AM이 나타날 때 동일시된 채로 나타나죠.

딱 돼버리면서 뭐예요?

고통을 받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하나의 감정이 나타나고 느낌이 나타날 때 뭡니까?

동일시가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이야기 드렸죠.

그러면 뭐가 돼버려요?

나는 이 감정이다라는 느낌이 자기도 모르게 작용하면서 뭡니까?

떡이 돼버려요.

부정적인 감정이 그야말로 떡이 되어서 딱 하고 붙어버립니다.

 

그럼, 뭐예요?

나는 고통받고 있다라는 규정이 활동을 하게 되는 거예요.

나는 괴롭다

 

이 동일시로부터 이 규정으로부터

나는 이 고통이다라고 정의를 해버리는 이 규정으로부터

모든 고통과 슬픔과 분노, 증오,

이러한 탐진치에 해당하는 가치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어요.

감정이란 게 훅하고 나타난 그 순간에 이미 뭡니까?

동일시가 딱 하고 일어나고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감정이다라는 관념이

순식간에 이미 완료된 채로 다운로드가 되어버립니다.

이 규정으로부터 잔상이 나타나게 돼요.

존재의 잔상이라는 게

나는 이것이다라는 규정이 연속되어야 되기 때문에

또 하나의 잔상을 만들어냅니다.

 

이 존재 전상에 해당하는 트랙이

이제 나의 현실로서 펼쳐지게 되는 거죠.

어떤 현실이겠어요?

이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서

괴로워하는 현실이 트랙으로서 펼쳐지게 되는 겁니다. ~.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 자체를 대하는 법을

저희가 알아야 돼요.

이 부정적인 감정을 어떤 식으로 다룰 것인가?

어떤 식으로 다뤄야 될까요?

 

가장 근원적인 방법은

어떤 하나의 감정과 떡이 되는 나를 대면했을 때

자기 자신한테 안에서 이렇게 자문을 해봐야 됩니다.

물어봐야 돼요, 스스로한테.

나는 고통스럽다 나는 기분이 나쁘다.

이것이 진실인가?”라고 물어야 됩니다.

 

이것이 진실이다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이렇게 물어봐야 돼요.

그렇다면 나는 이 감정인가?”

물어봐야 합니다.

 

동일시라고 말씀드렸죠.

내가 이 감정이 돼버리는 거예요, 순식간에.

 

재밌는 게 있어요.

나는 이 감정인가?’라고 물어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나라는 것은 뭐예요?

인식의 주체이죠.

인식의 주체이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으로서 작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뭐예요?

감정이라는 건 뭘까요?

일단 주체인 나에 의해서 인식되는 하나의 대상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내 감정이라고 느끼지

나와 감정 자체가 완전히 동일시되지는 않거든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감정은 감정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어떤 나는 또 따로 있는 것 같고, 그렇죠?

 

이게 뭡니까?

나의 감정이라고 느껴지지만

나와 감정을 동일시하고 있지 않다면은

그 감정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돼요, 딴 게 아니라.

 

근데 기본적으로 라는 것은 하나의 허수이기 때문에

동일시할 무언가가 없으면 존재를 알 수가 없어요.

존재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조금 좀 치사한 거죠.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 나라는 것이 매 순간 표현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무언가를 끌고 오는 겁니다.

여기에 감정이 선택이 되는 거죠.

 

동시에 감정도 뭡니까?

자기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라는 허수가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동일시라는 도식을 완성해 줄 나라는 것을 또 끌고 오는 거죠.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딱 타고 온 거예요.

 

그렇다면 뭡니까?

딱 붙어 있다면 분리시켜주면 돼요.

이 동일시를 끊어주면 됩니다. 딴 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만나면

그것이 누구에게 의하여

관찰되고 있는지, 인식되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세요.

나에 의해서 관찰이 되겠죠.

그 어떤 나가 되든지 간에 나에 의해서 관찰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알려지죠.

 

그런데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뭡니까?

한 발짝 물러나야 됩니다.

무엇으로부터 감정과 동일시되어 있는 나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는 거예요.

어떻게?

어떤 감정과 떡이 되어 있는 나를 아는 또 다른 나로

한 발짝 물러나시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은 감정을, 이 감정 자체를

길거리에 돌멩이 보듯이, 외부의 대상을 보듯이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갖다가 구경꾼의 시선이라고 불러요, 구경꾼.

주시자죠.

그 유명한 주시자의 관점으로

주시자의 자리로 일단 후퇴를 하는 겁니다.

 

감정이나 생각, 느낌,

어떤 이런 내적인 움직임들을 만나게 되면

일단 그것에 떡이 되지 마시고

이 감정을 아는 놈은 누구인가?’ 하고 물어보면서 살펴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감정이라는 얘를

길가의 돌멩이나 하늘의 구름을 보듯이

대상으로서 대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연습이 좀 필요하죠.

처음에는 항상 이제 습관적으로 떡이 돼버리니까, 그렇죠?

 

이게 바로 구경꾼의 시선이며

동시에 자연스러운 주시자 관점의 시작이에요.

 

주시자의 관점으로 머물 수 있게 되면은

감정을 대상으로서 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주시하는 자의 느낌을 찾아서 보는 거예요.

이게 첫 번째 스텝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딱 붙어 있는 상태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라는 정체성을

이 감정과 동일시되어 있는 상태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서 떼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탈동일시가 일어나게 돼요.

나는 이 감정이 아니다라는 규정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의지할 어떤 라는 구심점을 잃은 감정의 파도는

자연스럽게 힘을 잃고 가라앉게 됩니다.

내부 원리 자체가 라는 것에 동일시를 통해서

나는 이것이다, I AM THAT 이런 형태로

동일시를 통해서 합쳐져야지만

그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어떤 심리적인 기법이나

아니면 뭐 여러 가지 이제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들

이런 것들을 사용하든지 간에

이 원리를 알고 계셔야 돼요.

 

모든 내적 움직임은, 모든 감정, 느낌들은

어떤 동일시를 통해서만

어떤 나를 설정을 해두고, 그 나와의 동일시를 통해서만

힘을 쓸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럼 뭐예요?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좋은 앎이 되는 거죠.

어떻게 하면 되니까?

탈동일시를 시켜버리면 되는 겁니다.

 

탈동일시하는 방법은 뭐다?

감정에 떡이 되어 있는 나 자체를

알아차리는 또 다른 시선으로 한 발짝 옮겨가시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이 주시자 관점의 첫 번째 시작이라는 겁니다.

 

처음에는 다소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하다 보면 돼요. 하다 보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뭡니까?

우리가 너무나 습관적으로 익숙하게 감정을 대할 때

나와 감정을 동일시 시켜버리면서 떡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감정과 그 감정이 떡이 되어 있는 나를

동시에 알아차리는 어떤 시선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 시선 쪽으로 한 발짝 이동을 하게 되면

감정으로부터 탈 동일시가 일어나면서 뭡니까?

동시에 나의 관점 자체가

개체적인 관점에서

그 개체마저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주시자의 관점으로 물러나게 돼요.

일석이조죠.

 

감정으로부터도 해방되며 동시에 뭡니까?

주시자 관점을 확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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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에 대한 근원적인 부분

어떻게 해결을 해야 되는지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한번 짧게 다뤄봤습니다.

 

이 방법은 여러분들이 꾸준하게 연습을 해보셔야 돼요.

동시에 뭐냐면

주시자 명상의 첫걸음이에요.

그것도 각 잡고 앉아서 하는 주시자 명상이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 삶 안에서

어느 순간에든지 수행할 수 있는

주시자 명상 수련의 첫 번째 스텝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고

구경꾼의 자리로 물러나는 거예요.]

 

그렇게 탈동일시를 이끌어내고

그다음에는 뭡니까?

[‘이 감정을 보는 놈, 감정이 떡이 되어 있는 놈을 아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으로 들어가서 안착하는 것이죠.]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면 됩니다.

 

짧게 알아본 감정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방법이었고요.

또 다음 영상에서 여러분들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