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삶은 꿈이다. 우리는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Buddhastudy 2024. 2. 26. 19:49

 

 

삶은 꿈이다.

우리는 컨텐츠를 소비하며 살고 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는 현실과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는 외부 경험을 기억으로 저장한 다음

이것으로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컨텐츠는 오감에 의존한다.

즉 인간은 경험을 편집하는 존재다.

더 이상 편집하지 않을 때 번뇌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오늘은 삶은 꿈과 같다.

우리는 꿈과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살 뿐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어 볼까합니다.

 

전 근대사회라고 하는, 산업화 이전의 사회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네트워크 관계적 사회였다고 할 수 있겠죠.

분자사회라고 할 수 있겠죠.

원자와 원자가 잘 결합되어 있는

결합력이 매우 중요하고

결합력을 유지해야 우리가 생존할 수 있던

그런 사회를 전근대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가문이나 종족

그 속에서 어떤 위치나 이런 게 되게 중요하게 되겠죠.

근데 이게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개개인이 노동자가 돼야 되니까

결합 관계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이 결합관계를 깨고 다 원자화되게 되죠.

 

원자화된 사람들이 도시로 와서

지식 노동을 하건 육체노동을 하건

노동자가 돼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사람들은 일단 원자화되었기 때문에

관계에서 자유롭지만

또 다른 면으로 보면

뿌리 뽑힌 개인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게 더 발달해서 21세기 요즘에 들어와서

개인은 거의 분자도 아니고 원자도 아니고

거의 양자적으로

팥죽처럼 끓고 요동치는 그런 어떤 확률적 존재

뭐 이런 식으로 되어 가는 것이죠.

 

분자사회에서 원자사회로 넘어오면

도시화가 되고 나서 사람들은

더 이상 니가 누구 집 자식이냐?’

이런 거를 묻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소속과

그 소속 속에서의 위치를 질문할 필요가 없는 거죠.

별로 의미가 없으니까

 

이런 관계적 질문은 사라지고 있는 거고

21세기에 양자적 사회로 이렇게 넘어가면

너는 누구냐?’라고 하는 정체성을 묻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어질 것 같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점점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인간은 점점점점 휘발해 버리는

그 존재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고

뭔가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어찌 됐건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꿈과 현실, 꿈과 삶이

별로 그렇게 구분의 실익이 있는가? 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삶이 되었든 드라마가 되었든

우리의 오감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걸로 우리가 느끼지 않습니까?

 

그거는 똑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삶을 꿈과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진부한 표현이고

이거를 콘텐츠라고 하는 말로 좀 바꾸면

좀 더 우리가 와닿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콘텐츠일 뿐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콘텐츠를 보고, 콘텐츠를 듣고, 콘텐츠를 감각하면서

그것의 기억과

그 기억이 만들어 내는 정서와 논리

그리고 행동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죠.

 

결국 지금 사회는

온라인적으로 오프라인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콘텐츠를 소비하거나

약간 비중이 다를 수 있지만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죠.

 

이 콘텐츠의 다른 말은 환상이거든요.

실체는 아니거든요.

현실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실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그게 영혼 불변하는 뭐가 존재가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인간의 삶은

콘텐츠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고

이걸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살다가 죽는데

근데 콘텐츠라고 하는 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이게 스토리고 허구고 환상이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또 이게 얄궂게도

우리의 현실에, 우리의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에

깊숙히 들어와서 작용하고 있단 말이죠.

그걸 부정하는 건 또 비현실적이죠.

 

그래서 콘텐츠 사회가 되었다

허구인데 실질의, 실상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이 꿈과 다름없다.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콘텐츠에 불과하다라고 하는

이런 관찰 혹은 관찰을 통한 발견이

그러면 심리적인 문제

즉 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에 도움이 되냐?

매우 도움이 된다

혹은 그게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콘텐츠에 불과하다라고 하는 것은

현실과 현실감이라고 하는 것이죠.

현실은 우리가 겪는 거고

현실감은 드라마, CG가 잘 돼 있는 거

이런 거 되게 실감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현실과 현실감은

이제는 별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게 서로 같이 섞여 있거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구분이 의미가 있느냐?

왜냐하면 우리는 전부 시각이라든지, 청각이라든지, 촉각이라든지

또 그것이 만들어 내는 어떤 느낌과 정서, 그리고 논리

이런 속에서 전자적으로 뇌는 작동하기 때문에

현실과 현실감은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을

안에서 어차피 데이터로 받아서

이게 좋은 거냐, 싫은 거냐, 불쾌한 거냐, 쾌적한 거냐

이렇게 프로세싱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어떤 구분에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바깥 생활을 단절하고

자기 방에 처박혀서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만 사는

그런 또는 게임을 하면서 사는

드라마를 보면서 사는

그런 삶도 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어찌 됐건 우기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은 현실보다는 가상 세계에서

훨씬 더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거기다가 쓸 테니까

이 사람에게 있어서 삶은

정말로 현실과 현실감이 구분이 안 되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인식이 깊어지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부딪히는 순간에는 리얼하죠.

그것도 차가 이렇게 오는데 안 피하면 죽죠.

 

리얼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남은

인상, 기억, 그다음에 그때의 느낌 이런 자극

이런 것들은 다 기억이 되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우리가 느낌도 느끼고, 정서도 만들어 내고, 논리도 만들어 내고, 입장도 정리하고

이렇게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콘텐츠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그걸 가지고 뇌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에

우리는 바깥에서 거칠게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다가

삶이라고 하는 전쟁터에서 부서지는

그런 식의 패배적인 삶이 아니라

그냥 파도구나

파도는 거칠수록 서핑하기에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파도가 클수록.

그런 파도를 타고 즐기는 그런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삶이 꿈이다라고 하는 것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죠.

너무 거기에 큰 의미를 두거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삶이 우리를 짓누르게 되겠지만

하나의 콘텐츠다, 문화적 체험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덜 괴로워하고

지금보다 좀 더 감탄하면서 살 수도 있는 거죠.

그 정도의 자율적인 영역은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흘리는 눈물, 우리가 웃는 웃음,

이런 것들이 더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은 꿈이다.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