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도를 닦는 사람은 이기적인가?

Buddhastudy 2024. 2. 27. 19:35

 

 

마음공부는

불편하고 괴로운 마음을

어찌 해보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리적인 출발점에서 점차 깊어져 가다 보면

에고를 가지고 궁극적인 평안에 이르는 길은 없으며

나와 세계를 구분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에고가 이런식으로 점차 혹은 급작히 해체되고 나면

사랑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것은 나 중심 세계의 해체이고

자타의 구분에 의지하지 않는 인식과 행동이다.

마음공부는 그래서 제대로 끝까지 하기를 권한다.

이기적 시작이었지만

반드시 반전이 있고 보람이 있다.//

 

 

오늘은 도를 닦는 사람은 이기주의자인가?’ 하는 제목으로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에서 보통 마음공부, , 종교, 영성 같은 경우는

이타주의를 강조를 하죠.

그래서 키워드들을 보면은

사랑, 자비, 봉사, 헌신, 희생, 보시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마음 먹고 마음공부나 영적인 어떤 탐구를 하려고 해도

사실 이런 것들은 언뜻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쉽게 가까이 못 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제목을 이기주의와 도닦음

이렇게 영적공부이렇게 한번 다뤄봤습니다.

 

 

사람은 보통 어떨 때 마음공부를 시작하겠습니까?

결국은 불편한 거죠.

마음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기를 한번 돌아보고 다른 길을 찾아보게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출발은

자리, 스스로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나는 이 땅에 중생들을 구제하려고 태어났다라는

자각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수는 없겠으나 적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남에게 주는 것이 아까울 때까지는

에고가 어떻게 보면 점점 약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죠.

 

왜냐하면 내가 이 인간과 세계의 비밀 진리를 깨닫겠다라고 하는 거니까

이 에고가 우주만큼 커지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도 닦는 사람들이 되게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죠.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가정과 사회의 기본적인 의무나 책무를 등한시하는 것 같고

그런 것들을 돌아보지 않고

뭔가 자기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 같으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가 처음 시작에서부터 점점점점 깊이 들어가서

제 길을 잡게 되면

결국은 어떤 지혜에 이르게 되는가 하면

에고, ‘내가 뭘 하겠다라고 하는 이 체제를 가지고

궁극적인 평안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이게 진짜 어떻게 보면 깨달음이죠.

 

또 인식론적으로 보면

내가 있고 세상이 있고

내가 세상을 인식하고

그래서 나도 있고 세상도 있고

인식의 내용도 있고

이건 분열되고 구분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이분법적인, 나와 세계를 가르는 이 구분 방식으로는

투쟁을 그리고 불행을 피할 수가 없겠구나

이게 근본적인 인식의 오류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

공부가 제자리를,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편성된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점점점점 혹은 급작스럽게

해체 내지 붕괴되는 과정이 예정이 되어 있고요.

 

이 과정에서 무슨무슨 주의라는 거 있지 않습니까?

개인주의, 전체주의, 이기주의, 이타주의라고 하는 그 주의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편협된 시각 아닙니까?

왜곡되고 경향성이 있는.

 

그래서 이 경향성을 가진 의식이

사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이해가 되는 순간에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했던 질문

이타적이어야 한다는데’, ‘나를 버려야 한다는데

그거는 머릿속에서의 생각이죠.

몸 전체가 내가 필요 없을 때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움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사람을 쥐어짜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이런 나 중심의 세계가 해체되면

억지로 쥐어짜서 나오는

사랑, 희생, 봉사, 자비 이런 건 필요 없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사랑을 베풀고 있는 내가 자꾸 확인이 되고

자비로움, 그리고 용서해 주는 내가 자꾸 확인이 되니까

나와 세계라고 하는 이 구분이

결코 사라지기는 커녕 더 강화되니까

이러면 아주 골치 아픈

뭐 누구 말마따나 깨달음 에고

깨달은 에고는 답도 없죠.

 

그래서 사랑을 억지로, 자비를 억지로 행하지 않아도 된다

뭔가 자연스러운 전개가 일어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이 뭐냐? 자비의 본질이 뭐냐?라고 보면은

결국은 나와 나 아닌 것으로 세상을 구분하는 그 구분이 사라지면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구분 당하는 서러움을, 분노를 많이 겪어봤지만

우리도 모르게 구분하고 있겠죠.

 

그래서 그것이 없어지면

나와 너에게 궁극적인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온전하고 올바른 인식이죠.

건전한 인식이죠.

그러면 이 인식이 오염되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본다라고 하는 것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냐는 거를

이게 진짜구나이걸 찾아내는 게 아닙니다.

내 자신의 기울어짐과 오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하게 새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

효과가 뭐냐?

그래도 좀 효과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장 큰 효과는

내 주변의 인간관계가 좋아진다는 겁니다.

이게 좋은 게 좋다든지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니고요.

인간의 행불행은 대부분 중요한 인간관계에서 결정되는데

여기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다음에 나와 세계, 나와 너로 구분하는

이 구분 짓기를 하지 않는 이 과정이

점차점차 자연스럽게 전개되면서

나와 그 사이에 넉넉한 공간과

그 공간에 따뜻함이 배어들게 되면서

상당 부분 인간관계가, 날선 인간관계가

무디어지고 완화되고 따뜻해집니다.

그래서 나도 살 만하고, 너도 살 만하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 부분을 좀 실감했으면 좋겠고, 여러분들이.

그리고 최소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는 없어도

자기 자신은 편해질 수 있다.

그리고 편해진 자기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서

다른 사람들이 좋은 영향, 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몰랑하는 거하고 좀 다릅니다.

 

내가 깨닫겠다라고 하는 것은

좀 이기주의적인 극단이죠.

아까 이야기한

내가 우주를 어떻게 어떻게 좌지우지하겠다라고.

 

가상하긴 합니다마는

이 이기주의 극단에서

모두가 사실은 깨달음이었구나라고 하는

그걸 이타주의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어쨌든 나와 너가 구분되지 않는 이런 세계관으로 전환이,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결론은 뭐냐 하면

이기적이려고 하면 제대로 이기적이어라.

이기적이려고 하면 끝까지 이기적이어라.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그 고비를 넘지 않으면

그다음 풍경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죠.

 

다른 데도 비슷할 겁니다.

마음공부 세계에서도 끝까지 가보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이왕 시작했으면

제대로 끝까지 하시라, 해보시라 라는 권유를 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